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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생상담소

페이허이즈 지음 | 성안북스


니체의 인생상담소

페이허이즈 지음

성안북스 / 2019년 11월 / 408쪽 / 18,000원



가장 좋은 친구는 ‘나’ 자신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보라


강인한 마음을 기르는 첫걸음은 ‘자기 존중’이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강인한 마음을 기르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 여정의 첫 단계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아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한 한 젊은이가 연예계 스타처럼 팬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꿈을 꾸며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정작 음악에 재능이 없던 그는 2년, 5년, 10년이 흘러도 여전히 무명가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버티면 언젠가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붙잡고 10년 동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우리가 꿈꾸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으로 도피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기 자신마저 잃고 말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한 채 인기 있는 분야나 좋아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선택한다. 이런 사람이 아주 많지만 자신의 성격과 재능을 알지 못한 채 선택한 직업에서 기대하는 성과를 얻기는 굉장히 어렵다.

사람들은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공자의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종종 ‘즐기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실 성공하려면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성격과 재능이 도전하려는 분야와 잘 맞는지 알아야 한다. 특히 중차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먼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스인이 아폴론 신전에 괜히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를 새겼겠는가. “자신에 관해 대충 넘기거나 자신을 속이지 마라. 항상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니체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싶다면 다음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보라.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영혼의 성장을 돕는 것은 무엇인가? 내 마음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푹 빠져 몰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다 보면 자신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그 본질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을 아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면 과거에 자신이 행한 일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미래의 방향을 명확히 세울 수 있다. 전혀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유쾌한 인생의 비결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은 아직 얻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초월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일단 그것을 손에 쥐면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욕망은 늘 당신을 사로잡고 있다. 그 욕망이 곧 우리의 삶이다.”

이런 이유로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쇼펜하우어의 관점은 상당히 비관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욕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얻지 못해 괴로워하고, 얻으면 엄습하는 권태에 괴로워한다. 또 욕망을 충족할 경우 새로운 욕망이 생겨 다시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삶의 욕망의 고통과 만족,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다. 고통은 인생의 맛이고 권태는 인생의 본질이다. 더 나아가고,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면 고통과 권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이처럼 어둡고 위험한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굳이 쇼펜하우어가 톡톡 건드리지 않아도 우리는 편한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 넓은 집에서 살고 싶은 욕망, 잘생기거나 예쁜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쥐어짜며 괴롭힌다. 성공의 길에는 으레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그 과정을 건너뛰고 달콤한 열매만 취하기를 바라며 고통스러워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언제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괴로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까? 물론 아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일을 순조롭게 해낼 수 있다. 창작도 마찬가지다. 즐거움이 가득하면 마음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즐거워질까? 사소한 일에도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는 어린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해보자. 아이들은 작은 장난감 하나에도 마냥 즐거워한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이유는 현재를 진심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인간은 ‘즐거운 마음’을 타고난다. 단지 성장하면서 마음에 왜곡이 일어난 즐거움의 자리에 우울함과 권태가 들어선 것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니체의 말을 들어보자. “즐거운 마음은 타고난 것이니 시들게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즐거운 마음이 사라졌다면 지식을 많이 쌓고 예술을 접해보자. 그러면 마음에 점차 즐거움이 생길 것이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자기 통제력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자기 통제력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을 비롯해 물질적 유혹 등 자기 통제력을 위협하는 ‘적’은 아주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물질적 유혹은 이겨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다음 두 가지 유형 중 당신은 어느 쪽이고 싶은지 생각해보자. 유형 A는 항상 서둘지 않고 침착하며 진심으로 자기 일을 즐긴다. 유형 B는 늘 서둘고 긴장하며 이따금 경솔하게 행동한다. 두 가지 유형 중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어쩌면 대답하기 전에 어느 쪽 유형이 더 성공하기 쉬운지 알고 싶을지도 모른다. 미리 말하자면 두 유형 모두 성공할 수 있다. 단, 유형 A가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쯤이면 모두들 망설임 없이 유형 A를 선택할 것이다. 두 유형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로 돈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

“돈들 소유하려는 욕망이 지나친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된다. 이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능력을 쏟아 붓는다. 돈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한숨 돌릴 기회조차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는 소유욕에 완전히 사로잡혀 소유욕의 노예가 된다. 이들은 풍족한 마음, 활기찬 행복, 원대한 이상처럼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무시하고 결국 돈만 소유한 가난뱅이가 된다.”

니체는 이 말에서 유형 A와 B의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유형 B는 돈의 노예가 되어 인생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이런 유형을 “돈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돈에 종속된 사람”이라고 했다. 유형 A는 많은 일을 간파하고 예측하며 소유욕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정신적 즐거움을 즐긴다. 두 유형 중 어느 쪽이 더 쉽게 성공할까? 어느 쪽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돈에 집착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형 B는 상당한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석유왕 록펠러처럼 말이다. 반면 유형 A는 돈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열정을 가지고 자기 일을 즐길 줄 안다. 이들은 화학 연구에 몰두한 노벨 같이 사업 분야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

이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형 A를 선택한다고 해서 돈을 경시하며 무소유의 경지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니체는 속세와 약간 동떨어진 사람이었으나 그런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소유욕은 죄악이 아니다. 소유욕은 사람이 열심히 일해 돈을 벌게 해준다. 사람은 돈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자유와 자립도 얻을 수 있다.” 니체는 풍족한 생활과 자유, 자립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니체가 돈을 대하는 태도다. 물론 풍족함과 자유는 소유욕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누릴 수 있다.



집중력의 중요성




몰입과 집중이 성공을 만든다


몰입과 집중이 성공을 살다 보면 유난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가령 머리가 유달리 좋거나 기억력이 월등하거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재주가 좋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간 더 뛰어난 사람에게는 질투심을 느끼지만 월등히 뛰어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존경심이나 호기심을 보인다. 왜 그런 걸까? 니체는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사람들은 천재에게는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천재의 등장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천재는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괴테가 ‘하늘의 별들과 경쟁하려는 욕망이 없듯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재능이 뛰어난 천재도 부지런히 노력해야 훌륭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결국 천재는 기적이 아니라 일반인이 상상하지 못하는 그들의 집중력과 노력의 ‘일상’일 뿐이다.”

니체는 세상에 기적은 없으며 우리가 기적이라 말하는 것은 대부분 일반인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말로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천재의 등장에 그리 신기해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어느 학생이 수학을 유달리 잘한다면 그것은 그 학생이 수학을 좋아하거나 수학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쉽게 포기하는 것과 달리 자신 있게 문제를 풀어간다. 이 학생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경우 나중에 수학천재로 불릴 수 있다.

세상에 일반인과 달리 비범한 재능을 갖춘 천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천재는 예술 분야에 많이 등장한다. 가령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은 모두 10대 시절에 세계적인 걸작을 만들었다. 이들이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걸작을 만든 것은 천부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부적 재능이 있어도 이를 발굴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만약 멘델스존이 중국 농촌에서 태어났다면 평생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작곡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천부적 재능을 발굴해 음악을 배워도 노력하지 않을 경우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음악, 문학, 그림 등 예술 분야에서 천부적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가정환경이나 노력 부족 등으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모든 내용은 집중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천부적인 수학 천재는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을 집중해서 배울 경우 훌륭한 수학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집중력을 잃고 다른 데 빠져버리면 좋은 수학자가 되기 어렵다. 수학, 음악, 문학 등 어느 분야에서 특출한 업적은 남긴 천재는 대개 몰입해서 오랫동안 자기 분야를 공부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하고 싶은 분야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 몰입하면 성공할 수 있다. 천부적 재능이 있는 천재든 평범한 사람이든 집중력은 성공의 기초다.

결과에 집착하는 긴장감을 내려놓아라


자기 일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예컨대 중요한 회의에서 고위임원의 눈에 들어 승진하고 싶다는 기대가 크면 긴장해서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과도한 긴장감에 휩싸일 경우 무얼 해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잠도 설치고 만다. 강렬한 기대는 오히려 중요한 회의를 망치게 만든다. 가령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려는 생각에 긴장해서 말을 제대로 못하거나 질문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한다. 이때 우리의 이성은 긴장하면 일을 망친다고 알려준다. 이성은 긴장감을 억제하고 침착함을 되찾으려 하지만 늘 강력한 긴장감이 이성을 압도해버린다. 이성이 패배하고 긴장감이 승리할 때가 바로 일을 망치는 순간이다.

일을 망치는 이유는 결과에 너무 집착해서다. 물론 직장인에게는 회의가 무척 중요하다. 운동선수에게 노력의 결실을 얻는 경기가 중요하고 연기자에게 재능을 증명할 공연이 중요하듯 직장인에게는 회의가 중요하다. 분명한 사실은 결과에 지나치게 신경 쓰면 정작 일에 집중하지 못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인생은 짧다. 검은 죽음은 심지어 저녁 무렵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무얼 하든 기회는 지금뿐이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에 무언가를 이뤄야 하고 또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버리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과가 아무리 중요해도 여기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 결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것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려놓으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설사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해도 즐겁게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것은 긴장해서 일을 망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자신감을 잃게 하는 열등감




누구에게나 열등감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자신감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성공 수준은 그의 자신감이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성공을 거둔다. 이러한 자신감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열등감이다. 과연 성공한 사람에게는 열등감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인류는 자연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속성은 그대가 외부의 요구에 본능적으로 응답하게 한다.” 인류가 지닌 자연의 속성 중 하나가 열등감이다. 저명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아들러 심리학, 오늘을 살아갈 용기』에서 열등감과 우월감을 다루고 있는데, 정도만 다를 뿐 사람에게는 모두 열등감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끝없는 욕망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충족할 수 없다. 끝없는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우리는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셈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기나긴 시간에 비해 우리의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다. 순간적으로 왔다가 떠나는 나그네에 불과한 것이다. 옛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진시황과 한문제는 불로장생 영약을 얻어 시간을 정복하려 했다가 실패해 역사의 웃음거리로 남았다. 그 광활한 공간과 기나긴 시간이 열등감의 근원이다. 사람은 정복할 수 없는 우주와 시간 앞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개인이 열등감에 휩싸이는 이유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어서다. 학생의 경우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반에서 늘 1등을 하기는 어렵다. 반에서 1등을 독차지할지라도 전교에서 항상 1등을 하기는 힘들다.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다고 전국에서 1등을 하는 것은 힘들다. 그만큼 모든 욕구를 다 충족하기를 어려운 일이다.

최대한 양보해 전교, 전국 심지어 전 세계에서 성적이 가장 좋아도 열등감은 있다.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가정 환경이 열악해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닌다면 부유한 학생 앞에서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집안이 부유하다고 열등감이 없는 건 아니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으면 성적이 좋고 집안이 부유해도 예쁜 사람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설사 준수한 외모까지 갖췄더라도 늘 행복하고 즐거울 수는 없다. 인생이 언제나 순탄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성적, 가정형편, 외모, 행복까지 모두 갖춘 사람은 드물다. 어떤 부분에서 콤플렉스가 있으면 그 방면에 뛰어난 사람을 볼 때 자연스럽게 열등감을 느낀다. 사람에겐 모두 장단점이 있으므로 평범한 사람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모두 열등감이 있다. 여러 가지 재능을 갖추고도 과거시험에서 1등을 하지 못한 증국번은 1등으로 급제한 장지만을 보고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청나라 정치가 유용은 남다른 재주꾼이었으나 천재로 불린 기윤을 보고 열등감을 느꼈다. 증국번이나 유용처럼 역사적으로 유명한 위인도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평범한 우리가 어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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