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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투를 바꾸면 아이는 행복해집니다

박미진 지음 | 메이트북스


엄마가 말투를 바꾸면 아이는 행복해집니다

박미진 지음

메이트북스 / 2019년 8월 / 310쪽 / 15,000원



1장 엄마의 말투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는 엄마가 믿는 대로 자란다_ 피그말리온 효과
믿음은 조각상도 숨 쉬게 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섬, 키프로스에 젊은 조각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상을 완성했는데,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자신의 작품인데도 그만 그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이 차갑고 딱딱한 여인상을 정말 살아 있는 여인처럼 대했고, 조각상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목걸이와 반지 같은 선물을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서 있는 것이 힘들까봐 침대에 눕히고 베개를 받쳐주기까지 했다. 그의 사랑과 정성은 결국 신을 감동시키기에 이르렀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조각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여인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이 신화의 조각가 이름은 피그말리온이다. 그리고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타인의 믿음이나 기대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이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다. “당연히 저도 제 아이가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자라날 거라고 믿어요.” 엄마라면 당연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문제는 이 말 뒤에 꼭 ‘그러나’ 또는 ‘하지만’ 같은 접속사가 붙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는데, 아이가 자꾸만 나를 실망시켜요.” “그러나 성적 받아오는 걸 보면 그런 믿음이 와장창 깨진다니까요!”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아이를 대하라:
피그말리온 신화에서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조각상을 사랑하다니,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걸까?’ 하는 자기의심이나 ‘이 여인상이 정말 인간이라면 내가 진심으로 사랑해줄 텐데’ 하는 안타까움 등의 잡음이 끼어들 틈이 없다. 두 번째로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을 정말로 살아 있는 여인처럼 대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대하듯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선물을 하며 조각상을 공감하고 배려했다.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을 사랑했듯이, 불가능할지라도 ‘가능함’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미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대하라. 아이가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미 아이가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대하라, 이것이 피그말리온의 신화가 전해주는 믿음의 진실이다.

엄마와 이야기할 때가 제일 좋아!_ 3 대 7의 법칙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였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한 구절이다. 이 속에 엄마가 아이와 대화할 때 갖춰야 할 태도와 그 효과까지 모두 들어 있다.

잘 들어주기만 해도:


아이: 엄마, 오늘 친구랑 싸웠어.

엄마: 저런, 어쩌다 그랬어?

아이: 걔 눈엔 내가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였나봐. 미주알고주알…



아이는 엉뚱한 오해를 받아서인지 목소리에 억울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아이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엄마로서 무언가 조언을 해주어야 할 것 같고,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경청의 재주를 가진 엄마라면 아이의 말에 중간 중간 적절한 추임새만 넣어줄 것이다. 모모처럼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들어주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화가 나서 씩씩거리던 아이의 목소리가 차츰 안정된다. 억울함을 실컷 토해내고 나니 화가 어느 정도 풀리는 것이다. 그쯤 되면 아이는 꽤나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아이: 걔랑 다시 이야기를 해야겠어. 그래도 오해가 안 풀리면 어쩔 수 없지.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엄마: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엄마들은 대부분 아이의 문제에 즉각 개입을 해서 해결책을 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가진다. 하지만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의외로 많은 문제가 술술 해결된다.

아이에게 대화의 70%를 맡겨라:
미국 웨슬리 대학교의 심리학자 크리스 클라인케 박사는 대화 중인 어떤 사람의 발언량을 33%, 50%, 67%로 조작한 비디오를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매력도를 평가해달라고 했다. 발언량과 매력도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발언량이 33%인 경우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즉, 자신은 30%만 말하고 70%는 상대방이 말하도록 했을 때 호감도가 가장 올라갔다. 이것이 ‘3대 7 법칙’이다. 우리는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을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는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도 결국은 인간관계다. 아이에게 대화의 70%를 맡기면 아이는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을 즐거워하게 된다. 아이로부터 세상에서 엄마와 얘기하는 게 제일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 무섭다는 중2병도, 파충류의 뇌가 된다는 사춘기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이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엄마와 이야기해보자.’

2장 잔소리가 훈육이 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이 마음속 ‘청개구리’_ 백곰 효과


“게임 좀 그만 해!”, “너 자꾸 핸드폰만 하고 있으면, 압수할 거야!”, “만화책 좀 그만 보고, 글로 된 책 좀 읽어!” 엄마들이 많이 하는 잔소리의 주제들이다. 물론, 이 정도로 짧게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한다. 한마디면 될 말을 주저리주저리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게다가 대부분은 ‘이거 하지 말고 저거 하라’는 소리다. 그런데 과연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백곰을 생각하지 마시오:
‘백곰을 생각하지 마시오’라는 글을 읽었을 때 머릿속에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이 무엇인가? 혹시 북극의 설원과 ‘백곰’을 떠올리지는 않았는가? 우리 마음속에는 청개구리 한 마리가 살고 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청개구리 말이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대니얼 웨그너 교수는 실험으로 우리 마음속에 살고 있는 청개구리를 증명했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A, B, C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백곰과 관련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후 A그룹에게는 ‘백곰을 기억하세요’라고 말하고 B그룹에게는 ‘백곰을 생각해도 되고 다른 생각을 해도 된다’고 지시했다. 그리고 C그룹에게는 ‘절대 백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5분 동안 눈을 감고 백곰이 생각날 때마다 벨을 누르라고 했는데 어느 그룹이 가장 벨을 많이 눌렀을까? 바로 C그룹이었다. 심지어 1년이 지난 후, 당시에 보여줬던 백곰 관련 영상의 내용을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도 C그룹이었다.

흔히 ‘백곰 효과’라고 부르는 이 실험을 통해 웨그너 교수는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는 이론을 만들었다. 특정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에 집착하게 되는 역설적인 효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잔소리 대신 대화를 하자:
“너 한 시간만 게임하겠다고 엄마와 약속했어, 안 했어? 지난번에도 엄마와 한 약속을 안 지켜서 혼났으면서 아직도 정신도 못 차렸지? 도대체 뭐가 되려고….”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에 등 떠밀려 책상 앞에 앉아 있어봤자, 아이의 머릿속에는 오직 게임 생각뿐이다. 게임 생각을 안 하고 싶어도 그럴수록 강박적으로 ‘게임’의 화면이 눈앞에 왔다갔다한다. 아이가 생각하고 싶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 때문이다.

더욱이 잔소리를 하는 과정에서 앞서 살펴봤던 피그말리온 효과 등이 나쁜 방향으로 한꺼번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엄마는 나를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 게임이나 하는 사람으로 보는구나. 나는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잔소리를 해봐야, 이익은 제로를 넘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어버린다.

“엄마와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됐네. 게임은 내일 또 하도록 하자.” “이제 숙제할 시간이네. 엄마가 도와줘야 할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엄마는 지금부터 책 읽을 건데, 너는 무슨 책 읽을 거야?” 이렇게 주의를 환기시켜보자. 당장은 아이가 계속 게임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릴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백해무익한 ‘금지어 잔소리’ 보다는 아이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는 것이 느리지만 빠른 길이다.

3장 아이의 자율성을 성장시키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자율에는 책임도 따름을 가르쳐라_ 제로 톨러런스 원칙


아이의 자율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면, 의외로 많은 부모가 ‘무조건적인 허용’이나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율이 아니다. 자율성은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통제해 절제하는 힘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드워드 데시 교수는 자율성 격려의 핵심은 “자신의 권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이해하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자녀와 함께 외출을 했는데, 아이 손에 플라스틱 총알이 든 장난감 총이 들려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이가 길을 걸으면서 슬쩍슬쩍 길바닥이나 나무를 향해 총을 쏘아댄다. “엄마는 네가 길에서 장난감 총을 쏘는 것이 몹시 불안하구나.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총알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야. 네가 계속 손에 들고 가고 싶으면 더 이상 총을 쏘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약속해야 해. 아니면 지금 엄마에게 총을 맡겨도 되고. 어떻게 하겠니? 선택은 네가 하렴.” “안 쏠게요.” “좋아.” 이렇게 아이와 약속을 했지만 아이가 걷는 것이 지루해졌는지 다시 장난감 총을 쏘았다. “네가 그 장난감 총을 엄마에게 맡기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구나. 이리 줘!” 아이가 장난감 총을 등 뒤로 감추며 변명을 한다. “심심해서 나도 모르게 그랬어요. 다시는 안 쏠게요.” 이때 엄마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권리에도 한계가 있음을 가르쳐라: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한 장을 방치하는 순간, 그것 주위로 범죄가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1994년 뉴욕시장으로 선출된 루돌프 줄리아니는 이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바탕으로 범죄의 온상이었던 지하철 내의 낙서를 모두 지우도록 했다. 지워도 낙서가 다시 생겨나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범죄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낙서를 지우기 시작한 지 90일 만에 범죄율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3년 후에는 무려 80%가 줄어들었다.

이후 줄리아니 시장은 제로 톨러런스, 즉 무관용 원칙을 시 행정에 적용했다. 신호 위반, 쓰레기 투기 같은 경범죄 단속을 통해 더 큰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훈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사소한 한 번의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한 번, 두 번 방치하다 보면 자율성과 자율에 따른 책임을 가르치겠다는 의도는 결국 흐지부지되고 만다. 처음부터 넓은 선택의 폭을 허용해주되, 자율에 따른 책임까지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장난감 총 사례에서도 아이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을 때 ‘한 번은 봐줘도 되겠지’, ‘아이와 실랑이하는 것도 힘들고 지친다’라는 생각이 오히려 아이의 자율성을 해친다. 부모가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야 아이의 자율성이 커진다. 마찬가지로 아이에게도 엄마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아이에게 엄마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킬 의지가 생겨난다.

자율의 다른 얼굴, 책임:
“삶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삶은 선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결국 결과로 이어지며, 그 결과에 따른 보상은 물론이고 책임까지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아이에게 자율성을 가르치는 이유는 B와 D 사이에 있는 C의 힘을 길러 주기 위해서이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자율에는 언제나 결과와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능하다면 아이와 함께 자율성의 한계를 설정하자.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설 경우 빚어질 결과 또한 미리 정하거나 알려주자. 한계를 정한 것은 ‘너’이며,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선택한 것도 ‘너’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또한 ‘너 자신’임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불가피하게 부모가 한계를 정해주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도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해주자. 무엇이 왜 중요한지를 아이가 깨달아야 더 자율적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

4장 아이의 긍정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너는 어떤 늑대에게 밥을 주겠니?_ 하얀 늑대, 검은 늑대 전략


인디언 체로키 족에게 전해오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소개되어 아는 사람이 많아진 이야기이기도 한데, 흔히 ‘하얀 늑대, 검은 늑대 이야기’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늑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얘야, 모든 사람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한 늑대는 아주 나쁜 늑대지. 분노와 질투, 교만, 게으름 같은 것들로 똘똘 뭉쳐 있어. 반면에 다른 늑대는 착하단다. 사랑과 긍정, 친절, 희망, 용기, 끈기를 가진 늑대야. 이 늑대들은 우리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싸우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자가 묻는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아이와 엄마의 마음에도 두 마리의 늑대가 산다:
아이들의 마음에도 두 마리의 늑대가 산다. 물론 엄마의 마음속에도 두 마리의 늑대가 산다. 그런데 엄마가 매일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아이의 마음에 사는 나쁜 늑대에게도 밥을 준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것도 못해서 뭘 할 수 있겠니?” “너 때문에 못살겠다.” “넌 왜 맨날 그 모양이니?” 엄마가 계속 이렇게 말한다면 아이의 마음에 사는 ‘사랑과 긍정, 친절, 희망, 용기, 끈기를 가진 좋은 늑대’가 이기고 싶어도 이길 도리가 없다.

나쁜 늑대는 힘이 세다:
엄마가 아이 마음속 나쁜 늑대에게 밥을 꼬박꼬박 챙겨 주지 않더라도, 좋은 늑대보다는 나쁜 늑대가 더 힘이 세다. 분노와 질투, 교만, 욕심, 게으름 같은 것들이 얼마나 힘이 센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긍정, 희망과 용기, 끈기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북돋우고 힘겨운 과정을 통해 발달시켜야 한다. 아이의 내면에 존재하는 나쁜 늑대가 커다랗게 자라 있을 때 엄마가 할 일은 그 늑대를 더 키우는 것이 아니라, 착한 늑대의 힘을 키워 주는 것이다.

“괜찮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힘든 일이 있었나 보구나. 무슨 일인지 엄마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네가 거기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네. 도전하는 네 모습이 참 보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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