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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시선

김민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경계인의 시선

김민섭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0월 / 251쪽 / 15,000원





대학은 정의로운가? - 위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대학과 교수와 조교




위법과 편법: 2017년 3월에 ‘대학의 법과 정의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영화 〈재심〉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와 대학 문제의 당사자인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들을 초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한동안 대한민국의 대학이 ‘위법’을 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대학원생 조교로 행정노동을 하거나 시간강사로 강의노동을 하면서, 그 어떤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건강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등이 모두 남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답답한 마음에 ‘근로기준법’이나 ‘국민건강보험법’을 들추어보고, 애써 그것을 해석해 보고서는 무척 서글퍼졌다. 딱히 위법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조교는 노동의 대가를 임금이 아닌 근로장학금으로 받는다. 그에 따라 ‘노동자’가 아닌 ‘학생’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모호해진다. 시간강사는 대개 한 대학에서 주 9시간 이상 강의하는 일이 드문데, 주 15시간 이하 근로자는 건강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받을 수 없는 ‘초단기 근로자’로 분류된다. 결국, 대학은 적어도 법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위법이 아닐지라도 ‘편법’이다. 법의 느슨한 지점을 이용해 그 경계를 넘나들며 벌이는 비열한 행위다. 그래서 나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은 정의롭습니까?”

“총장과 이사장을 고발하고 싶습니다”:
토크 콘서트를 기획하게 된 것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생 신정욱 때문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우연히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총장과 이사장을 고발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행정 노동자인 대학원생 조교들이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데는 문제가 있으므로, 대학의 관리자인 총장과 이사장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신정욱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신정욱은 그때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의 총학생회장이었다. 그래서 학과 대표자들과 협조할 수 있었고, 함께 ‘고발’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이나 동국대학교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의 외로운 싸움을 돕고 싶었다. 고민해보니 고발을 하려면 변호사가 필요할 테고, 그러면 ‘수임비’가 발생할 것이었다. 얼마가 드는지 물어보니 ‘300만 원’이라고 했다. 그가 어두운 표정을 짓기에 나는 왜 그랬는지 “그거 같이 모아봅시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법과 정의를 말하다’라는 이름의 토크 콘서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300만 원을 모으기 위해 ‘다음 스토리펀딩’에 프로젝트를 개설하고, 토크 콘서트 입장권을 후원 형식으로 판매했다. 1화 ‘학생에게 장학금이 아닌 임금을’로 시작해 11화 ‘대학원생의 연구는 누구의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로서 대학에서 겪는 여러 부당한 처우에 대한 글을 썼다. 84일 동안 289명이 393만 8,500원을 모아주었다. 프로젝트 진행 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변호사 수임비에는 조금 부족한 액수였지만, 그래도 기뻤다.

을과 을의 싸움:
시간강사 문제를 대하며 절망스러웠던 것은 내부의 조직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오랜 시간 운동을 해왔다는 주체들 간에 서로 의견이 달랐다. ‘시간강사법’을 두고서도 찬성과 반대가 갈렸다. 시간강사법을 찬성하는 이들은 “교원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고, 반대하는 이들은 “현 법안이 통과되면 3분의 2에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토크 콘서트 중, 동국대학교에서 왔다는 어느 대학원생은 다음과 같은 질문지를 제출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후원에 참여했는데 동국대 조교 인원이 80퍼센트로 감축되는 사태가 벌어져 죄책감이 듭니다. 실제로 학내 구성원들의 원성도 잦은데 앞으로 어쩌면 좋을까요? 무거운 질문 죄송합니다.’

동국대학교 측이 고발에 대응하는 방식은 상식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았고, 정의롭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었다. 우선은 조교들을 찾아다니며 ‘고소 취하장’에 서명하기를 권했다. 거기에는 “저는 학생으로서 본분에 충실하고자 하며 이 사건으로 인해 총장님과 이사장님을 비롯한 학교의 관계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서명한 이들에게 ‘다음 학기 조교 선발 우선권을 주겠다’고도 말했다는 것 같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교 제도가 개편되면 어떠한 불이익이 있을지에 대한 대조표도 만들어 홍보했다. 퇴직금과 4대 보험을 보장하면 월 수령액이 오히려 줄어들고, 대학원생을 행정조교로 선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협박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특히, 대학원생들은 국가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참여할 수 없을 것을 가장 걱정했다. 대표적으로 BK21사업은 “4대 보험을 받는 대학원생은 사업에 참여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노동을 하면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조교 노동은 4대 보험을 보장하지 않으니 중복 수혜가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악법이 만든 숨을 쉴 만한 틈새다. 조교 장학금을 받으며 연구원으로 일하면 대학원생들은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동국대학교 측은 대학원생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렸고, 그것으로 그들이 서로 반목하도록 만들었다. 을과 을의 새로운 전쟁을 부추기고서 자신들은 뒤로 빠졌다. 비상식과 비합리를 목도하고 문제를 제기한 이들에게, 우리는 종종 책임을 묻는다. ‘너희가 조용히 있었다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나서서 모두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 제기자에게 손가락질하기를 멈추고, 잘못된 제도를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예컨대 4대 보험 가입으로 국가 프로젝트 참여가 힘들어진다면, 그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니까 학교 내부의 조교 노동에 대해서 예외 규정 두기를 요구하면 그만이다. 그에 더해 동국대학교 측이 제시한 대조표를 참조하면, 월 수령액이 다소 줄어든다고 해도 퇴직금을 받을 경우 연봉 총액은 10만 원가량 줄어드는 데 그친다. 그러나 고용보험 가입에 따라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오히려 실수령액은 개인에 따라 수백만 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동국대학교 측은 이러한 사실을 따로 고지하지 않았다.



“왜 교수들은 침묵하는 겁니까?”:
박준영 변호사는 토크 콘서트에 패널로 참가한 최은혜(인문학협동조합 연구복지위원장), 신정욱, 김선우(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이영이(전 상명대학교 강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고는 특유의 재치를 섞어서, 때로는 재심의 경험에서 나온 진지함을 보이며, 답을 해나갔다. 나는 그가 했던 말 중 다음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들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왜 교수들은 침묵하는 겁니까?’

그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쉽게 정의로움과 대의를 말하지만 자기 영역의 정결함을 돌아보지는 않는다. 그러한 정의로움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서, 그를 토크 콘서트에 초대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토크 콘서트를 마치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의로움을 묻기 이전에, 자기 영역의 정의로움을 먼저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이 정의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의 상아탑’, ‘지성의 전당’이라는 수식어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청년에게 말걸기 - 청년과 아재의 경계에서



젊은 꼰대의 탄생


‘취준생’을 마주한다는 것:
‘청년 멘토’로 이름이 있는 H를 만났다.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대개 강연을 하거나 책을 홍보해서 생계를 이어가지만, H는 새로운 청년문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우선은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가 ‘취업’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도움을 주는 데 주력한다. 성과가 좋아 그를 찾아오는 청년이 무척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이 사회의 취업구조를 바꾸거나 근본적 문제를 개선할 방안은 되지 못하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H는 술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젊꼰’이라고 아느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그것이 대강 ‘젊은 꼰대’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20대 꼰대도 많은 모양이죠?” 하고 되물으니, 그는 “아휴, 말도 마십시오. 걔들이 더합니다.”라고 답했다. 어쩌면 그와 나 역시 다음 세대를 폄하하는 꼰대가 이미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취준생과 함께해온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싶어 들었다. 그와의 대화가 모두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논지만을 대강 복원해보자면, ‘보상 심리’로 압축된다.

취준생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혹한 시대를 보내고 있음은 굳이 짚고 넘어갈 필요도 없다. 금융권 대기업 출신인 H도 그들이 이전의 자신보다 더욱 심화된 경쟁의 장(場)에 있음을 잘 안다. 그런데 그러한 아픔을 겪은 세대가 보상받고 싶은 심리를 어떻게 내면화할 것인가? H에 따르면, 그들은 어느 세대보다도 빨리 ‘꼰대’가 될 것이다. 혹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젊은 꼰대’라는 단어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느낌을 준다. ‘꼰대’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로 수록되어 있고, 일상에서 거의 ‘아재’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젊은’이라는 형용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뜨거운 커피 안에서 녹지 않는 얼음처럼 이질적으로 부유하는 한 세대가 있다. 딱히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어느새 자신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그런 미지근한 꼰대가 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어느 세월을 견뎠는데” 하는 자기 서사를 이미 가졌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의 부모 세대가, 혹은 조부모 세대가 자신들을 ‘민주화 세대’와 ‘산업화 세대’로 지칭하는 ‘보상의 서사’와도 닮았다.

저마다 자기 세대가 어느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생존 경쟁을 했고 거기에서 살아남았다고 믿는다. 지금의 청년세대 역시 그렇다. 성장이 정체된 한국 사회에서 취업과 생존을 위한 가혹한 경쟁을 해온 그들은 거기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어떤 보상 심리를 간직하게 된다. 나는 그것이 이전 민주화ㆍ산업화 세대가 가진 자존감과는 다소 다르겠으나, 상당히 큰 분노로 적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그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아재’와 ‘꼰대’가 될 사회적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언제부터 꼰대가 되었습니까?”:
꼰대가 된 이들에게 “당신은 왜, 그리고 언제부터 꼰대가 되었습니까?”라고 묻는다고 그들이 친절히 답해줄 리는 없다. 오히려 화를 벌컥 내며 자신이 소통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설명’을 시작하기가 쉽다. 당연하겠지만, 자신이 꼰대인 줄 아는 꼰대는 더는 꼰대가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 출간된 책 『청춘의 가격』은 왜 청년이 젊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명료하게 말한다. 이 책은 인터뷰를 통해 청년의 현실을 진단하고 몇몇 연구원이 그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느 대학원생의 인터뷰를 읽다가 한동안 눈이 멎었다.

“지금 노동시장 밖에 머물고 있는데, 이 시기가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요?”라는 질문에, 30세의 대학원생은 2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대답했다. 취업 시도를 하지 않거나 취업에 실패한다면 지금의 아픔이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지만, 취업에 성공한다면 ‘미화’ 혹은 ‘변질’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와 비슷한 나이에 대학원을 다녔고, 대개 관찰자로 존재했다. 직장인 친구들과 대학원의 젊은 연구자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 덕분에 그의 ‘젊은 꼰대론’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보낸다.

누구나 어제보다 꼰대가 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조직 안에서 알게 모르게 대표적인 꼰대가 되기도 했다. 조교들을 관리하는 조교장이 되었을 때는 전임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후배들을 통제하고 감시했다. 내가 근무한 학과 사무실은 석사과정 합격통지서를 받은 예비 신입생들에게 방학 중 2개월이 넘는 기간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급 근무를 시키는 관례가 있었다. 학기 시작 후 일을 할 수 있게 인수인계를 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후배 길들이기의 일환이었다.

신입생 시절에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몇 년 후 조교장이 된 나는 합격통지서를 받은 예비 신입생에게 전화해서 ‘조교로 일하고 싶으면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교 근무를 하지 않으면 단 한 푼의 장학금도 받을 수 없다고, 그것이 이곳의 문화라고 덧붙였다. 예비 신입생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록을 포기했다. 그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후배들에게 ‘다음 학기 신입생이 조교 근무를 하고 싶지 않아 등록을 포기한 것 같은데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인간이었는지를 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면서, 나는 내가 과거를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화하고 ‘추억’해왔음을 알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후배들에게 그 추억을 강요하는 못난 인간이기도 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쓴 이유를 서문에서 ‘내가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나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썼다.’ 라고 밝혔다. 8년 동안의 대학원생 조교와 시간강사 시절을 돌아보고,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거와 현재를 계속 추억하고 미화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 내가 두려웠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대학의 젊은 꼰대였다.



조직의 논리에 동화되는 괴물:
자신이 몸담은 사회와 개별 조직이 가진 구조의 문제점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는 ‘경계’다. 회사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학에서는 대학원생 조교와 시간강사가, 또 어느 공간에서는 어린아이가, 여성이, 청년이, 그 균열을 가장 잘 목도한다. 그러나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교수가 되고, 가장이 되고, 소수자에서 다수자가 되면, 점차 그 균열을 외면하게 된다.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과거에 인지했던 처참한 풍경을 망각한다. 그것을 ‘필요악’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순응하지 않는 개인을 악한 존재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지 않으면 개인이 아닌 조직의 논리에 동화되어 괴물, 즉 꼰대가 되어버리기 쉽다. 많은 사람이 단순히 ‘나이 먹음’이 아니라 경계에서 얼마나 더 중심으로 발을 내딛느냐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바꾼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그 어느 세대보다도 훨씬 경쟁에 익숙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는 그들에게 꼰대가 될 만한 조건을 충분히 마련해주었다. 이른바 ‘젊꼰’이 탄생하기에 가장 알맞은 때인 것이다. 『청춘의 가격』에서 인터뷰를 한 대학원생은 성공한 청년들만 꼰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런 청년은 소수일 뿐이다. 다만, 치열하게 그 경쟁에 참여했든 참여하지 않았든, 자신이 그러한 장 안에 있었다는 경험과 감각만은 남는다. 이 글은 나를 위한,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버린 모두를 위한 변명이다. 나는 아직 꼰대가 되지 않았을 청년들에게, 그리고 나처럼 꼰대가 된 청년들에게,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 다른 세대보다 조금 빨리 주체적으로 자신을 성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이 보상의 서사에 매몰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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