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헌의 생산적 책읽기
안상헌 지음 | 북포스
안상헌의 생산적 책읽기
안상헌 지음
북포스 / 2019년 9월 / 304쪽 / 15,000원
1장 아직도 가슴 설레는 그 말, 책
책은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는 것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를 하면 할수록 그 양은 늘어가지만 그보다 더욱더 강한 소유욕이 발생하여, 얻고 나서 생기는 만족감보다 더 큰 허무감과 더 큰 소유욕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고 말한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더 커지는 것처럼. 끊임없이 소유를 추구한다는 말은, 우리가 충분히 나약하다는 증거다. 그것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구 역시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파에톤의 이야기가 나온다. 파에톤은 태양신 헬리오스와 인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이지만 인간사회에서 자란다. 그는 ‘빛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인 ‘파에톤’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네가 태양신의 아들이라도 되느냐?’ 억울한 마음에 그가 찾은 곳은 아버지의 신전. 그는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날개 달린 네 필의 말이 끄는 태양마차를 하루 빌린다. 그러나 파에톤은 태양마차를 몰 줄 몰랐다. 마음대로 날뛰며 세상을 뜨겁게 달구던 태양마차는 신 중의 신 제우스가 던진 벼락을 맞고 추락한다. 파에톤의 죽음이었다. 파에톤은 이래도 내가 신의 아들이 아니냐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친구들이 고개 숙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과 부러워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고 싶었다. 하지만 파에톤은 지상으로 돌아올 기회를 잃고 말았다.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기 위해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지만 그 속의 지혜와 따뜻한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다. 소유는 그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돈은 오직 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계단일 뿐이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은 돈이나 소유가 아닌 다른 것으로 찾아야 한다. 바로 마음이다.
모든 책에는 배울 것이 하나씩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소문보다 별로구만!’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미있네. 주인공 연기가 예술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영화가 따분했지만 후자는 재미를 찾아냈다. 똑같은 영화를 보아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발견 또한 다르다.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라는 말이 있다. 숨은 뜻을 발견해내는 능력은 놀라움을 찾아내는 눈에 달려 있다.
영화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책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잘 찾는다. 문제는 영화와 책의 재미없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무관심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고집스런 자존심이 한몫한다. 영화나 책을 보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예컨대 아이처럼 웃거나 눈물을 흘리면 사람들이 나를 놀리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한다. 이 정도로 감동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존심 상해서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재미있어도 재미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자존심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감동에 이르지 못한다. 책뿐 아니라 세상을 통해 배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존심을 버리고 아이다움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자존감의 폐해는 오만으로 이어진다. 한 권의 책에서 많은 이야깃거리와 진리들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용이 시시하고 다른 사람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며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주로 오만으로 인해 진리에 눈 감은 사람들이다. 오만이 책과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한 권의 책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했던 흔적과 고집까지 숨어 있다. 이것을 자신과 다르다고 하여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은 태도다. 사람에 대한 애정 없이는 다른 사람에게서 어떠한 지혜도 얻을 수 없다. 설령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남의 것이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을 때였다. 이미 그리스 로마 신화를 수없이 접해왔기 때문에 신화에 관한 책이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었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같은 신화를 읽으면서도 나는 왜 그런 ‘눈’을 갖지 못했을까, 수없이 무릎을 쳤다. 덕분에 잃었던 감동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찮은 일에서도 배우는 사람이 되려면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3살짜리 아이라도 배울 게 있다면 허리를 낮춰서 질문을 던져보자.
2장 책은 느림을 가르쳐주었다
당장 이해 안 되면 나중에! 내일을 기약하는 여유를 배운다
“세상의 어떤 것은 시적(詩的)이다.” 어느 시집에서 읽었던 구절이다. 깊은 뜻이 담긴 것 같아 며칠 동안 수없이 고민했으나 도무지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이 말의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한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은 주인공이 이상한 벌레로 ‘변신’ 하는 이상한 책이었다. 그 변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얼마 전 현대인들의 소외에 관한 글을 쓰면서 머리가 번뜩였다. 그제야 비로소 『변신』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어가는 어느 개인의 단상임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을 만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고 앞뒤를 다시 읽고 사전을 찾아보아도 행간의 숨은 뜻은 쉽게 발견되질 않는다. 최소한 그 당시의 사고로는 말이다. “그 시대의 문제는 그 시대의 관념이나 지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따라서 책을 읽다가 난해한 문장을 만나면 골머리 앓지 말고 일단 넘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넘을 수 없는 담벼락을 붙잡고 씨름을 한들 소용없다.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나는 안 된다’는 패배의식을 강화한다. 그때는 초연한 자세로 ‘이런 말도 있네’ 하며 그냥 넘어가자. 때가 되면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어보자. 물론 때를 만들려는 노력도 쉬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이비리그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이 된 루스 시몬스가 대학을 다닐 때 일이다. 부유한 가정 출신의 학생들 속에서 가난한 흑인 여학생이 대학생활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접하는 불어 수업 시간이 가장 큰 곤혹이었다. 우두커니 강의실에 앉은 채 몇 주 동안 시간만 보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교수님을 찾아가 말했다. “강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업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러자 불어 교수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걱정하지 마. 그냥 이대로 계속 수업을 듣다보면 언젠가는 다 알아듣는 날이 올 거야!” 처음에 그녀는 어쩜 저렇게 무성의하게 대답할까 하며 실망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시간에 생소했던 어휘가 또렷하게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훗날 그녀는 불어교수가 되었다.
배움은 존중과 비례한다
책을 너무 만만하게 본다든지 깔보게 되면 배울 게 차고 넘쳐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흘려버리게 된다. 저자에게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책읽기는 형식적인 정보 획득 외에는 별로 소득이 없다. 자신감을 갖고 책을 대하되 존중하는 마음은 잃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책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덤벼들자. ‘이 책에는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으니 열심히 해보자’고 결심하자. 설령 책의 내용이 형편없더라도 처음부터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실망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사물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은 실제로 오감이 떨어지기 경우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관심이 커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나이가 들어도 뛰어난 감각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의 핵심들을 잘 짚어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는 나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적 에너지 문제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현대인들의 노화는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인 것이다.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고, 훌륭한 인물을 만나도 그러려니 싶다. 좋은 시를 만나도 좋은 줄 모르고,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준 가족들을 보아도 무덤덤할 뿐이다. 이것이 정신적 노화가 아니고 무엇일까?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는 다 타버린 장작이다. 무릇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이 아쉬워야 한다. ‘그래도 아직 할 게 남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야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면 살 이유가 없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어 무엇을 얻는다 한들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빛나게 해 줄까? 배우는 사람이란 정신적으로 맑고 건강해서 항상 자신의 마음에 새로운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수로에 낀 이끼를 깨끗이 닦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은 아이와 같다.
3장 책과의 깊은 대화 속으로
만장일치와 권위에 굴복하지 마라
사람들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험난한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중심을 잃고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자신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문용어로 ‘집단사고’라고 한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움직일 수 없고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을 만드는 것이 집단사고이다. 미국의 피그만 침공 작전 실패,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대한 안일한 대처, 챌린저 호의 폭발, 워터게이트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에 대한 관리자들의 대처 등이 모두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굳이 내가 꼼꼼히 따져보지 않아도 집단의 의견이 옳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안일하게 거수기 역할을 한 것이 결국 소수 의견을 죽이고 어리석은 결정으로 이어진다.
책에도 집단사고가 등장한다. 어떤 책에서 주장하는 말들은 글쓴이 자기만의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읽었던 책들과 들었던 이야기와 경험들을 조합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책은 무조건 옳아’라는 태도를 잠시 접어두고, 책 속에도 얼마든지 근거 없는 권위적인 집단사고가 개입되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읽어야 한다. 이때 의식적이며 비판적인 태도는 집단사고의 틀 속에서 우리를 구해낼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문장일수록 의문부호를 갖고 두 번, 세 번 읽어야 한다. 한 번은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한 번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그래야만 집단사고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읽어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매번 남들이 얘기한 것만을 놓고 세상을 논하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읽고도 잘못된 결과를 얻는다면 오히려 읽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읽는 것보다 읽은 내용을 가만히 따져보는 일이 더 소중하다. 짧게 보면 변화를 만드는 건 결국 소수의 의견이었다. 처음에 무시되던 소수의견이 결국 변화의 기폭제가 되고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다수의견이 되는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 파도에 쓸려가는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내 중심을 잡아야 하며, 이를 위해 비판적 독서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인생의 무게를 찾아서
찰스 핸디는 『헝그리 정신』에서 프란시스 킨스만이 주장하는 인간에 대한 세 가지 심리적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생계유지형, 외부지향형, 내부지향형이 그것이다. 생계유지형은 금전적 욕구와 사회적 안전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외부지향형은 성공의 외적 상징인 존경과 지위를 제일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반면 내부지향형은 개인적인 성숙과 자아실현에 높은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 주위에서 사람들이 읽고 있는 책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유형을 짐작할 수 있다. 생계유지형은 10억 모으기나 자격증 수험서, 각종 기술서적들을 중심으로 읽는 반면 외부지향형은 경영서, 인간관계, 리더십, 자기발전을 위한 실용서들을 주로 읽는다. 내부지향형의 사람들은 오래된 인문고전이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돕는 책들을 들고 다닌다.
사람이 가지는 삶의 목적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젊은 시절의 목적은 생존을 위한 수단의 확보와 안정으로, 경제력을 보장해주는 직업을 얻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기본적인 욕구충족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다 직업을 얻고 생활이 안정되면 개인의 발전과 사회적 성공이 눈에 들어온다. 문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성공이 엄청난 시간소모와 주위, 특히 가족들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하면 잃어버린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삶의 목적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행복으로 바뀐 것이다.
1912년 4월,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빙산과 충돌했다. 이 여객선에는 2,200명이 타고 있었지만 구명보트에는 1,000명 정도밖에 태울 수 없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순서를 무시하고 구명보트로 뛰어내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차례가 왔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나이든 신사들도 있었다. 1등 객실의 승객들에게는 특별히 우선적으로 구명보트가 제공되었는데 이런 특혜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린 이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테프트 대통령의 군사고문인 아치볼트 배트와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아스터도 있었다.
인간 욕구의 최후 단계는 자신을 잃어버림으로써 찾아온다. 그가 얻기 위해 노력한 경제적 안정과 개인의 발전, 친구와 가족의 행복을 넘어 세상 자체를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때가 이때이다. 이제 개인의 욕구는 사라지고 세상의 발전을 위한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자기 삶이 세상에 의해 주어졌으므로 삶의 의미 또한 세상에서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소멸 자체가 아니다. ‘의미 없는’ 소멸이다.
책 읽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발전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가치관이 스며있는 것들을 즐겨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삶의 최후 욕구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갑작스런 죽음에 이르러 세상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닫고 비참에 빠질지 모른다. 삶은 때로 깃털보다 가볍다. 책은 그 인생에 무게추를 달아준다.
4장 좋은 책은 고르는 게 아니라 가리는 것
좋은 책을 고르기란, 많이 읽어서 좋은 책을 가리는 것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서는 일단 목적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리더십을 배우겠다’는 목적으로 필요한 책을 구입한다고 가정해보자. 검색을 위해서는 입력어가 중요한데 그러자면 약간의 기초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검색을 위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키워드로 ‘리더십’을 입력하고 검색하면 사전적 의미부터 대표적인 저자와 전문가들, 그와 관련된 카페나 블로그의 자료들이 펼쳐질 것이다. 이 검색 데이터 가운데 내게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눈여겨보면서 해당 분야의 기초 지식을 쌓고, 검색 키워드도 적어둔다. 대개 이 단계에서 ‘리더십’과 관련된 여러 키워드를 찾으면 좋다.
그리고 나서 인터넷서점에 접속하여 ‘리더십’을 검색하면 수백 권의 책이 뜬다. 이것은 제대로 된 검색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내용을 좁혀야 한다. 이때 미리 찾아둔 키워드로 다시 검색한다. ‘셀프리더십’도 있고, ‘서번트 리더십’도 있고, ‘팔로우십’도 있다. 다양한 키워드 중에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단어로 다시 검색한다. ‘셀프리더십’이라고 쳤더니 검색 권수가 확 줄어든다. 그리고 나서 각각의 책들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목차를 본다. 목차를 보면 책의 주된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덕분에 목차만 자세히 봐도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목차를 중심으로 서문을 참고해서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저자 소개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가 어떤 경력을 가졌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원하는 책인지 아닌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저자가 베스트셀러 작가이거나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인 경우라 할지라도 목차를 살펴보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좋은 저자라고 해서 항상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좋은 저자가 항상 나를 위해서 책을 쓰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이런 과정을 거쳐 책을 고르면 실패의 확률이 좀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