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틸러에게 묻다
김시균 지음 | 북스토리
신스틸러에서 묻다
김시균 지음
북스토리 / 2019년 6월 / 492쪽 / 25,000원
꿈은 가난할 수 없다
카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 * 손종학
<미생> 마 부장으로 1대 ‘마블리’가 되다: 손종학. 비슷한 연배이면 모를까. ‘2030세대’에게 그의 이름은 조금 낯설다. 얼굴을 본 것 같긴 한데, 쉽게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조연들이 늘상 겪곤 하는 이 ‘의문의 1패’는 중견 배우 손종학에게도 비켜갈 수 없는 것이었으니…….
그래도 대기만성이라 했다. 착실하게 사는 이에게 영광의 빛줄기는 어느 순간 쏟아지는 법. 손종학에겐 5년 전 이맘때가 그랬다. 2014년 10월 7일 첫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미생>에 조연 출연했던 것이다. 무턱대고 극단 일을 시작한 지 27년째에 접어든 시기. 우연찮게 나온 이 17부작 시리즈는 손종학이라는 존재를 남녀노소 대중에게 각인시킨 일대 계기가 된다. 희대의 ‘꼰대’, ‘마초’ 상사 마복렬 부장으로 분하면서였다.
손종학 이름 석 자는 몰라도 ‘마 부장’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이 악독한 마초 상사는 <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감초 캐릭터였다. 그 흔한 로맨스 코드 하나 없이 직장인들의 애환을 절절히 녹인 <미생>에서 그의 존재는 특히 유별났다. 요컨대 오상식 과장(이성민)과 저 멀리 대척점에 선 기피 1순위 상사였던 것. 극 중 마 부장의 ‘암 유발’ 명대사(?) 일부만 복기해보자.
“아니, 대체 애를 몇이나 낳는 거야? 애 둘이라고 하지 않았어? (중략) 애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임신이야!”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그리고 성희롱? 그게 왜 성희롱이야. 파인 옷 입고 온 그 여자가 잘못이지. 그래서 내가 뭐 만지기를 했어, 들여다보기를 했어. ‘숙일 때마다 그렇게 가릴 거면 뭐 하러 그런 옷 입고 왔니. 그냥 다 보이게 둬.’ 이 말이 성희롱이야, 어? 성희롱이야? 반어법이잖아.”
“커피 좀 타 오라는 것도 성추행이래요. 시집 못 가는 거 걱정해주는 것도 성추행이래요. 이놈의 기 센 여자들 등쌀에 살 수가 없어!”
★ 굉장히 현실적인 악독 상사였어요. 보는 사람마다 뇌리 깊숙이 각인이 됐죠. 그런데, 직장 생활은 해본 적 없으시다면서요.회사 생활 경험만 없을 뿐이죠. 극단 자체가 어지간한 직장보다 군기가 세요. 위계가 있고 엄격하고, 과거엔 ‘빠따(야구방망이)’로 맞고, 기합 받고 이런 건 흔한 광경이었어요. 직장 안 다녀봤어도 주변에 회사원들이 좀 많겠어요. 얘기 들어보면 알지. 저도 밥벌이하는 직장인이나 마찬가지예요(웃음).
★ 캐스팅은 어떻게 되신 건지요?
김원석 감독 만난 날이 베트남 합작 드라마 찍는다고 하노이로 출국하기 전날이었어요. 부랴부랴 짐 싸고 있었는데, 제작사 대표가 전화했어요. 가기 전에 미팅 좀 하고 싶다고, 그래서 짐 싸다 말고 밤 열한 시에 경기도 일산으로 갔어요. 거기서 김 감독을 처음 만났죠.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감독이 그러대요. 영화 <일대일>에서 연기한 변오구에서 ‘마 부장’을 보았다고. 근데 나중에 캐스팅 후 들은 말이지만, 제작진에서 그날 미팅하고 조금 고민했대요. 예상보다 순하게 생겼다면서, 허허.
★ 실제 선생님 모습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는지.
허허, 그건 제가 얘기한다고 믿으실 것 같진 않고. 아니라고 해도 또 안 믿을 것 같고. 마 부장이 최 전무 라인이잖아요. 어찌 보면 조직에 굴종하는 인물인 거죠. 전 어렸을 때부터 저항감이 유독 강했어요. 학교와 학연에 매이는 삶을 절대로 못 견디는 기질이었죠. 자유로운 걸 좋아해요. ‘독고다이’처럼 지낸 세월들인데, 젊은 시절 후배들이 제 눈에서 막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고 그랬어요.
자유로운 영혼, 권위에 반항하다: 손종학은 1967년 서울 태생이다. 날 때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걸까. 학창시절 그는 틀 안에 갇힌 삶이 끔찍이도 싫었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초ㆍ중학교 때엔 선생들의 매질이 끊이질 않았다. 권위에 조금이라도 저항할라치면 체벌이 기다렸다. “폭력에 굴하지 않고 곤조 있는 학생”이었던 그가 학교에 거부감이 든 건 당연했다. 결국 서울 중대부중 2학년 무렵, 그는 학업을 작파한다.
★ 아예 그만두신 건가요?
아, 그건 아니고. 공부를 안 한 거죠, 허허. 영 재미가 없으니까. 고등학교 졸업까지 하고 대학은 동양공전(동양미래대학교) 건축학과에 갔어요. 당시 건설 경기가 좋았던 시절이라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어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역시나 금세 시들해지더라고.
★ 그러다 연극과 인연이 닿은 거군요.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시다면.
대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스무 살 때. <사막의 꽃이 되리라>라는 2인극을 홀로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연극을 수도 없이 봤죠. 보면 볼수록 ‘뜨거워진다’랄까. 하, 점점 더 교실에 앉아 있는 답답함을 도저히 못 견디겠더군요. 이거 하라 저거 하라 하면 기질적으로 굉장히 싫어하니까.
★ 그러다 이듬해 민예극단에 들어가신 거군요.
맞아요. 스물한 살, 대학교 2학년 때였으니 1987년 봄이었네요. 그해 어느 신문 지면에 민예극단 워크숍 단원 뽑는다는 작은 기사를 봤어요. 30~40명 정도 뽑는다더군요. 이걸 보면 ‘맨 땅에 헤딩’ 한번 해보자 한 거죠. 연극 해본 적 없고 전공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마치 무엇에 씐 것처럼. 마당극을 주로 하는 극단이었는데 <서울말뚝>이라는 공연을 올린다대요. 여기서 마당극, 창극은 기본적으로 다 배웠어요. 판소리, 한국무용 같은 연기 외적인 부분도 같이요.
★ 학교생활보다 즐거우셨겠어요.
그럼요. 뭔가 새로 만들어가고 몰랐던 걸 알아가는 재미가 상당했어요. 연기할 때 각각의 캐릭터들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이들의 삶을 생각해보고 그러는 게 참 흥미롭더군요. 작품 외적으로도 즐거웠고요. 동료들이랑 땀 흘리고 울고 웃고 그랬던 시간들, 지금 생각해봐도 참 행복했습니다. 일 끝나고 사석에 돌아왔을 땐 술 한 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그런 ‘사람 냄새’에 중독돼버린 거죠.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손종학에게는 스물한 살이 바로 그런 시기였다. ‘학업’이라는 답답한 ‘알’을 깨고 나와 ‘연극’이라는 새 세계로 진입했다. 장손인 아들이 안정적 직업을 갖길 바란 양친은 저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든 아들을 반길 리 만무했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불가피했다.
★ 이후 생활은 어떠셨어요?
그야말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이었죠. 안정된 생활이 아니니까. 고정적인 월급이 보장돼 있는 분들은 미래를 계획할 수가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계획 자체를 세울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잡념을 오히려 덜어내게 되더군요. 앞날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이 도리어 해가 되니까. 내일 생각, 잡생각 없이 24시간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충실하자는 식으로 여태껏 살아온 겁니다.
★ 무명 생활이 모종의 견딤의 시간이셨겠어요.
그래도 그리 힘들었다고 여기진 않았습니다. 저는 다행히 집에서 얻어먹고 다녀서 배고픔은 몰랐으니까. 지방에서 혈혈단신 올라와 자취하며 살던 동료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거죠. 이 친구들 얘기 들으면 그저 놀랍고 경이로울 뿐이에요. 다만, 돈을 벌지는 못하니 사람 구실 못 하고 산 건 있어요. 경조사, 부조 이런 거 있으면 낼 돈이 없어, 몸으로 때우기도 하구요. 연극 일에 계속 몰입하면서 주변을 두루두루 챙기고 관심 가져주지 못한 건 지금도 부끄러워요.
아버지 제사상에 올려드린 상패: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있다. 손종학에게는 2003년이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여 후,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가 공전의 히트를 친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일곱. 선배 연극인 김당희와 함께한 <늙은 부부 이야기>는 그 시절 황혼 로맨스물로 널리 각광받았다. 홀로 사는 60대 남녀가 만나 사별하기까지를 다룬 이야기로, 극 중 손종학은 주인공 박동만을 열연했다. “그해 ‘연극인 대상’을 안겨준 작품이죠. 난생 처음 연극만 해서도 먹고살 수 있게 됐어요.”
★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이 소식을 들으셨다면 정말 좋아하셨겠어요.
당시 받은 상패를 아버지 제사상에 올려드렸어요.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이걸 직접 보셨으면 뭐라 하셨을지……. <늙은 부부 이야기>는 이후 이순재 선생님 등 여러 대선배들이 주인공으로 연기하시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작품에 처음 출연한 건 바로 접니다. 오리지널인 거죠(웃음).
★ 그렇게 연극인 생활을 이어가다 점점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오고 계세요.이후로도 연극은 계속했죠. 지금까지…… 어림잡아 70여 편 올렸어요. 두 아들 커가고 자연히 돈이 더 들대요. 연극 외에도 섭외만 들어오면 뭐든 해야 되겠고……. 영화와 드라마는 다른 세계였어요.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았으니까요.
★ 집에서는 어떤 아버지이십니까?
허허, 방임형이에요. 바깥에 풀어놓는 거죠. 지들 인생이잖아요.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건데. 이번에 큰아이가 수능을 봤어요. 파일럿 하고 싶다고 항공대 가겠다네요. 알아서 잘하겠죠(웃음).
★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출연한 이래로 조연 활동을 꾸준히 하고 계세요. 대부분 기가 센 캐릭터 위주이시죠.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이 많달까요. <내부자들> 대외협력실장, <검사외전> 김 판사. <반드시 잡는다>의 최 형사 등……. 혹시나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안 하세요?뭐, 생겨먹은 게 그런 건데요, 허허. 아무래도 <박쥐> 때는 영화를 처음 해보다 보니 너무 ‘생짜’였고……. 솔직히 그런 걱정은 없어요. 나는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기존의 인식을 깰 만한 배역이 나오면 언제든 도전할 테니까. ‘마 부장’처럼 재미있는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는 거고요.
인터뷰가 끝난 건 점심시간 무렵. 그는 자주 가는 곰탕집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 충무아트센터 건너편에 있는 곰탕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나란히 시켰다.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떠넘기던 와중에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지금 이 길을 후회해본 적 없으신가요?” 그가 허허 웃으며 답했다. “늘 후회하죠. 그러다 또 털고 일어나는 거지.” 땀 흘린 만큼의 보람은 있기에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았다, 재밌게 살았다, 잘 버텨왔다”면서. 그러더니 덧붙여 말했다. “후배 진선규가 청룡영화상 조연상을 받았을 때 이런 멋진 말을 날리더라고. ‘먼 우주에 있는 멋진 배우를 향해 나아가겠다.’ 나 역시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더 멋진 배우를 향해 나아갈 겁니다(웃음).”
배우로 살기로 했다
고 연봉 직장 때려치우고 연기에 투신 * 허성태
결혼 6개월차 회사원, 오디션 도전하다: 허성태. 부산 출신인 1977년생의 이 배우는 이름만으로는 아직 대중에게 낯설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복기하노라면 어느 순간 ‘아하’ 하게 된다. 이를 테면 영화 <밀정>의 초중반부.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정출(송강호)에게 ‘쩍’ 소리 나게 뺨 맞던 친일 정보원이 바로 그다.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허성태의 얼굴을 세상에 알린 대표적 장면이다. 그의 존재감은 <남한산성>에서 더욱 빛났다. 서늘한 눈빛과 함께 청나라군을 지휘하던 용골대. 조선 충신 최명길(이병헌)의 아우라에 밀리지 않던 이 장수 또한 허성태였다. 어디 이뿐일까. 영화 <범죄도시>의 초중반부. 장첸에게 이글대는 눈빛으로 맞서다 황천길로 가버리는 조선족 깡패 독사도 그다. 코믹 영화 <부라더>의 스님 형배, 범죄물 <꾼>에서 희대의 사기꾼 장두칠도 허성태였다.
2011년 당시 고액 연봉 엘리트 회사원이었던 그는 어느 늦은 밤. 회식 후 귀가해 아내와 도란도란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화면 하단으로 흘러가는 문구 하나가 문득 눈에 띄었다. ‘SBS 기적의 오디션에 도전할 인재를 찾습니다.’ 신인 배우 발굴 취지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취기가 조금 남아있던 허성태는 순간 도전 욕구가 인다. “여보, 나 저거 한번 해봐도 될까?” 아내는 의외로 쿨했다. “재밌겠네, 한번 해봐요.” 그렇게 된 것이다. 이제 막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던 결혼 6개월차 회사원 허성태는 난생 처음 배우 오디션에 뛰어들었다. 그때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 충동적이었던 거네요?
우연찮게 해본 거죠. 반 장난삼아. 아니 근데, 거기 계신 심사위원 분들 전부 저더러 소질이 있다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배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지만 재능이 있다고 해주시니……. 그 격려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평생 못 해볼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근데 이 정도로 인생이 바뀌게 될 줄은……(웃음).
<올드보이> 오대수로 입증한 가능성: 딴에는 ‘반 장난 삼아’했다고 해도, 그에게 배우라는 꿈이 없었던 건 아니었던 듯싶다. 2011년 6월 24일 첫 방영한 <기적의 오디션> 1화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멀쑥한 먹빛 정장 차림의, 회사원 티가 역력한 그가 심사위원단(배우 이범수, 김갑수, 이미숙, 이재용, 영화감독 곽경택 등) 앞에 선 채로 거의 울먹이듯 말했다. “제가 왜 이렇게 해야 하냐면, 사실은 제 아내 때문입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 이거 안 하면 내 남편 아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맨날 남 눈치 보면서, 돈이 어떻고 현실이 어떻고 그런 거 생각하지 마라. 나 직장 있다. 내 5년 만에 벌 것을 당신은 10년 만에 벌면 되잖아. 그렇게 적극 밀어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카메라에 담긴 그의 얼굴은 잔뜩 상기된 채였다.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돼 있었고, 목소리는 거의 울먹거릴 지경. 감정을 미처 추스를 새 없이 준비해온 연기를 꺼내야 했다. 당시 그가 선보인 건 <올드보이>의 그 유명한 후반부 신이었다. 참혹한 진실을 깨달은 21세기 오이디푸스 오대수(최민식)가 제 딸을 볼모로 협박하는 우진(유지태)에게 지난 과오를 속죄하며 애원한다. 귀기가 느껴지는 최고난도 연기가 펼쳐졌다.
“제발, 제발 미도에게만은 이 사실을 알리지 마라……. 걔가 무슨 죄가 있냐……. 다 내가 잘못한 거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 미도만은 그냥 놔둬 좀 어! 흐……, 만약에 니가 미도 귀에 내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하면…… 너 우진이 너 이 지구상 어디서도 니 시체를 발견할 수 없을 거야! 왜? 내가 잘근잘근 씹어 먹을 테니까……. (중략)…… 야……, 우진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이 말 다 취소할게……. 우진아, 나 니가 나보고 니 똥개가 되라면은 내가 똥개가 된다! 왈왈! 꼬리 살랑살랑……. 어때? 우진아, 우진아.”
이 순간 그는 아예 오대수와 혼연일체가 된다. 심사위원마다 절찬을 쏟아냈다. “그거 진짜로 민 거 아니죠?(마지막에 허성태는 가위 대신 때밀이로 제 혀를 자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무튼 굉장히 잘 봤어요.”(곽경택) “기교가 섞이지 않은 연기 잘 봤습니다.”(이미숙) 허성태를 가장 유심히 본 듯한 배우 이재용은 이같이 말했다. “예민함 같은 게 단순한 개인기 차원을 넘어선 것 같아요. 느낌, 열정 이런 것들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 어떻게 연습한 건가요, 연기해본 적 없었다면서요.
그냥, 영화에서 본 대로 따라 한 거죠. 그저 계속 반복, 또 반복 했어요. 2주 동안 정말이지 미치도록요? 준비해온 걸 모두 마치고 나니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고 계시더군요. 알고 보니 합격이었던 거예요. 멍한 상태이면서도 대단히 감격스러웠죠. 아, 내가 연기 재능이 있긴 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된 첫 순간이었고요(웃음).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6개월간 내내 합숙생활을 했어요. 이범수 선생님이 살신성인으로 열심히 가르쳐주셨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