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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존 엘더 로비슨 지음 | 동아엠엔비
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존 엘더 로비슨 지음

동아엠앤비 / 2019년 8월 / 448쪽 / 16,000원



짜릿한 제안

나는 엘름스 칼리지의 ‘자폐 워크숍’에 초청을 받았는데, 그 워크숍의 리더는 누가 봐도 나였다. 내가 대학의 워크숍을 맡다니! 최근까지 내가 맡았던 워크숍이라고 해봤자 내가 일하는 로비슨 자동차 수리소에서였다. 그곳에서는 벤츠나 재규어, 랜드로버 같은 차량을 수리한다. 실은 나는 대학 문턱도 밟지 못했다. 내 생애 첫 직업은 로큰롤 공연의 음향 및 조명 효과 엔지니어였다. 모두 독학으로 터득한 기술을 썼다. 그러다 20년 전에 공연계를 떠나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다. 오늘날의 나는 자동차 수리공이자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그런데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자서전을 출간한 뒤로는, 와서 얘기 좀 해달라는 초청이 늘기 시작했다. 그것도 꽤 놀라운 곳들에서 말이다.

자라면서 나는 내가 남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 이유는 몰랐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1990년대 이전에는 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40대에 들어선 1997년에야 아스퍼거 판정을 받았다. 내가 왜, 어떻게 남과 다른지를 깨닫자 힘이 불끈 솟고 해방감이 밀려왔다. 내 얘기를 세상과 나누겠다는 강한 의지도 생겼다. 처음 만난 이들은 뉴잉글랜드 지역 아스퍼거 증후군 연합(요즘은 ‘뉴잉글랜드 아스퍼거 자폐 네트워크’로 불린다) 사람들이었다. 정말 멋진 모임이었다. 회원들은 매달 두 번씩 만나 서로의 삶의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 온통 따뜻함이 가득했다.

자폐 아이들의 부모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내가 스스로를 부양하는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라난 걸 보고 용기를 얻곤 했다. 그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니, 내가 자폐증을 가졌다는 걸 모르고 살아온 게 약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실 자라면서 한 번도 내가 돈을 벌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굶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부모들은 자폐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옷 입고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런 낮은 기대치는 내게 충격이었다. 요즘의 잦은 자폐 진단에 따른 의도치 않은 부작용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나는 첫 책인 『나를 똑바로 봐』를 출간하기 전에도 강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 출간이 강연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책 출간 후에 청중이 늘어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열렬한 성원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자폐에 관심 있는 이들로부터 수많은 이메일, 전화, 메시지가 쏟아졌다. 초기에 내게 연락해온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엘름스 칼리지의 총장인 짐 멀런이었다.

엘름스 칼리지의 워크숍 날, “저는 베스 이스라엘 병원의 포닥 연구원이에요.” 린지가 내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린지 오버만 박사’라고 쓰여 있었다. “저희는 자폐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연구에 대한 안내 전단지를 좀 두고 가도 될까요? 사실 자폐인의 감성지능 강화 프로젝트에 자원할 성인들을 찾고 있거든요. TMS라고 불리는 새로운 기술을 실험 중이에요. 경두개자기자극술(Transcranical magnetic stimulation)의 약자죠. 전자기장을 이용해 뇌 피질에 신호를 유도해내는 거예요. 자폐인들이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기르도록 돕는 겁니다.” 마지막 말이 관심을 끌었다. 하마터면 “그게 바로 내 문제인데요.” 라고 내뱉을 뻔했다.

잠시 후 그녀는 5분 동안 거울신경, 전자석, 펄스 에너지 등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내 책을 읽었나? 아니면 내가 엔지니어로 일한 이력을 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를 통해 뇌를 바꾼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생각했다. 린지는 나를 설득했다. “매우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요. TMS가 전자기 에너지를 뇌 회로에 전달하면 뇌 회로는 새로운 연결성을 갖게 되죠.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뇌의 특정 연결성을 강화시킬 수 있어요.” 나는 생각나는 대로 재빨리 질문들을 쏘아댔다. 린지도 대뇌 피질이며 뇌 가소성 같은 용어를 써가며 적극적으로 답을 했다. 어쨌든 나는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저보다는 저희 지도교수님이 더 잘 설명하실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는 내게 준 명함의 뒷면에 ‘알바로 파스콸-리온 박사’라고 적어주며 다음 주에 찾아가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날 저녁, 나는 린지와 그녀의 지도교수를 검색해보았고, 베스 이스라엘 병원이 하버드 의대의 부속 병원임을 알았다. 파스콸-리온 박사는 의학박사이자 뇌과학자로 현재 베스 이스라엘 병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린지는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곧 세계 유수 대학의 교수로 임용될 예정이라고 나와 있었다. 희망이 몽실몽실 솟아올랐다. TMS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출입문과도 같았다. 나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의료용 자기장

“뇌를 하나의 전자기 기관이라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그 기관에 소량의 전기를 주입해 밸런스를 맞추려는 겁니다.” 알바로 박사를 처음 만난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알바로는 내게 TMS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그가 TMS에 관여하게 됐는지 말해주었다. TMS가 타인의 감정적 사인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나를 어떻게 도울지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하나의 전자기 매트릭스와 같다고 한다. 하나의 뇌세포 및 뉴런이 미세한 선과 세포 결합들로 이루어진 미로를 통해 다른 수만 개의 뉴런과 연결되는 형태인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때였다. “그래서 그 기술로 나 같은 자폐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겁니까?” 알바로가 말했다. “자폐인들은 타인이 표출하는 무언의 사인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죠. 통상적으로 이들은 뇌에 그런 기능을 담당할 전선이 없다고 해요. 뇌 속의 연결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그렇다고 보는 연구자들도 있고요. 또 전선이 없는 데다가 연결도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죠. 우리는 이렇게 봅니다. 전선은 있는데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요. TMS로 감정을 담당하는 선을 작동시키려는 게 우리의 목적이에요. 감정을 되살리는 거죠.” 사실 처음에 이들이 나를 초대한 목적은 내가 강연을 통해 연구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주길 바라서였다. 즉, 실험에 참여할 자원자들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는 강연에서 실험에 대해 소개하는 건 물론이고, 스스로도 참여하겠노라 마음먹었다.

사전 동의

그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그 주말에 나는 보스턴까지 차를 몰고 갔다. 목적지인 ‘비외과적 뇌 자극을 위한 베런슨-앨런 센터’가 모습을 드러냈고, 린지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환영했다. “이쪽은 셜리 팩토예요. 저처럼 포닥(post doctor) 과정을 밟고 있죠. 그리고 이쪽은 우리 연구실 조수 린이에요.” 린이 내가 쓴 책을 언급했다. 내가 그들의 실험에 참가한 첫 성인 자폐인이자, 자폐의 경험에 대해서 책을 쓴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부분 자폐 아동 및 청년 대상이었다고 했다.

바로 그때, 알바로가 방으로 들어섰다. “이쪽으로 오세요. 주위를 한번 둘러봅시다.” 방 안에는 편해 보이는 의자와 의료용 전자 기기들이 여러 대 있었다. “이게 바로 TMS 기계입니다.” 알바로는 ‘EEG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뇌파를 모니터하는 기계 등 다른 기계들도 소개했다. 방 안에 적응하는 데 약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에 의하면 알바로의 연구 센터에서는 자폐, 취약 X 증후군(다운 증후군 다음으로 가장 흔한 정신지체의 원인), 우울증, 알츠하이머 등 다양한 병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2주 뒤에 나는 사전 동의서에 서명했다.

뇌를 지도화하기

동의서에 서명하고 일주일 후에 실험이 시작됐다. 검사실에서 셜리와 린지는 나를 컴퓨터 옆에 앉히고 말했다.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나는 사람이 말하는 걸 지켜보세요. 들리는 말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면 앞의 버튼을,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면 뒤쪽 버튼을 누르시면 돼요. 한번 시험 삼아 해볼게요.” 화면 속의 사람이 말했다. “하늘은 녹색이다.” 나는 뒤쪽 버튼을 눌렀다. 곧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케이크를 드세요.” 이건 말이 되지. “고속도로를 마시세요.” 말이 안 되는걸. “좋아요.” 셜리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마지막 질문까지 마쳤다.

이 이상한 질문들의 진짜 목적은 6개월 후에나 알 수 있었다. 비상식적인 질문들은 함정이었다. 연구자들이 정말로 관찰한 건, 내가 질문을 듣고 이를 어떻게 신체에 ‘미러링’ 하는가였다. 이를테면 “고양이를 쓰다듬으세요.” 라는 지시는 몸을 앞으로 내미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재빨리 팔을 내밀어 앞 버튼을 누르리라고 예측한 것이다. 반면 ‘머리를 빗으세요.’와 같은 지시는 손을 뒤로 쓸어내렸다 올리는 행동과 연관이 있다. 연구자들은 내가 손을 뒤로 쓸어내리려는 충동 때문에 팔을 내밀어 앞쪽 버튼을 누르는 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지를 관찰한 거다.

그 후, 나는 뇌 자극 실험실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TMS에 대한 반응을 체크할 거예요. 사람마다 반응은 조금씩 다르답니다. 아주 낮은 레벨의 진동 하나로 운동 피질에 자극을 줄 거예요. 운동 피질을 택한 이유는 뇌 부위 중 가장 측정이 쉬운 부위이기 때문이죠. 거기를 자극하면 근육이 움직이게 돼요. 일단 검지를 움직이게 하는 부위를 찾고 나면, 손가락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TMS의 레벨을 낮출 거예요. 그리고 이 일련의 반응이 일어나는 배경에 대해 기록하는 거지요.” 그렇게 뇌 자극 실험을 한 후 오후에는 MRI 촬영이 있었는데, 내 뇌를 찍은 이미지는 168장이나 되었다.

음악이 살아나던 밤

나의 첫 TMS 실험 날이 됐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컴퓨터 앞에서 치러야 할 또 다른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행은 셜리와 그녀의 조수가 했다. “화면 속에 여러 얼굴이 스치고 지나갈 거예요. 얼굴의 표정을 보고 알맞은 버튼을 눌러 답하시면 돼요.” 그들이 말했다. 왼쪽 버튼은 ‘행복’을, 오른쪽 버튼을 ‘슬픔’을 의미했다. 제3의 감정은 가운데 버튼이었다. 간단하게 들렸지만, 너무 빠른 속도로 표정들이 지나가다 보니 내가 보는 게 뭔지도 헷갈렸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또 다른 테스트를 내밀었다. 화면의 물체를 보고 그게 무언지 재빨리 말하는 테스트였다. 개… 집… 자동차… 핀셋.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물체들이 나열된 순서가 뭔가 이상했다. 그런 식으로 얼마간 진행됐다. 비로소 나는 테스트의 대상이 ‘보는 것을 또렷하게 말하는 능력’임을 깨달았다. TMS로 그런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걸까.

드디어 대망의 TMS 시간이었다. 셜리가 시작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소리를 내면서 1초마다 한 개의 진동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정적인 리듬이 30분 동안 쭉 계속됐다. 내 불안감은 첫 번째 진동이 오는 순간 사라졌다. 퐁! 하는 소리가 내가 옛날에 칸델라 사에서 일했을 때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때 나는 레이저를 쏘는 일을 했었다. 퐁! 퐁! 퐁! 매 진동마다 머리가 움찔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불편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쩐지…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그렇게 30분이 금방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퐁! 하는 소리가 나더니 실험이 끝났다. 잠시 후 셜리가 말했다. “좋아요, 그럼 처음에 했던 테스트를 다시 해보죠!”

이번에는 처음보다 나열된 물체의 종류가 적었다. 따라서 본 것을 말하기도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곧 문제에 대한 답이 여러 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동물? 셰퍼드? 답이 하나일까 아니면 여러 가지일까?’ 어쨌든 나는 노력했다. 하지만 첫 테스트보다 잘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정신은 말짱했지만 생각을 해내는 데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말이나 문장을 내뱉는 데도 신중해야 했다. 연구원들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기분은 괜찮으세요?” 셜리의 질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실험의 즉각적인 효과가 약 15분간 지속될 것이고 그 시간 동안 나를 유심히 관찰하겠노라고, 그녀는 했던 말을 반복했다. ‘왜 그래야 하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15분 동안 나는 얼이 빠져 있었다.

실험 후 30분이 지나자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신경과 전문의와 ‘마무리 테스트’를 할 차례였다. 다시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됐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매 실험마다 하는 의례라고 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의사가 되물었다. “월요일요.” 그런데 답에 약간 문제가 있었다. 사실 그때는 화요일 저녁이었다. 의사는 잠시 후 내게 그 사실을 알렸다. 의사는 이내 내게 날짜를 물었다. “8일인가요?” 내가 물었다. “우리가 지금 어디 있죠?” “여기가 무슨 나라인가요?” “여기는 몇 층인가요?” “지금이 무슨 계절이죠?” 의사는 질문들을 재빨리 쏟아냈다. 질의응답을 마치고, 나는 앞선 얼굴 표정 인식 테스트보다는 훨씬 잘해냈다고 확신했다. 물론 날짜와 요일은 조금 틀렸지만 말이다.

의사는 내가 혼자 집에 가기에 충분한 상태라고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차를 타고 병원 주차장을 뱅뱅 돌아 나왔다. 집까지는 긴 여정이었다.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의사인 친구 데이브였는데, 그도 경과가 어떤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나는 별로 해줄 말이 없었다.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으니까. 그런데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문득 깨달은 게 있었다. 바로 내 말투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비록 정확히 어디가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 계속 그 미스터리를 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게 가능할까?’ 바로 내 목소리에 어딘가 모르게 감정이 좀 더 실려 있었다. 문장 끝마다 목소리 톤이 더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했다.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전화를 끊자마자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물론 연구원들은 내 목소리 변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아니, 전혀 눈치 채지도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팟의 전원을 켰을 때, 운율 문제 따위는 저 멀리 사라졌다. 익숙한 노래가 흐르자 제대로 한방 얻어맞은 듯했다. 마치 환각 증상에 빠진 느낌이랄까. 터배리스 브라더스의 20여 년 전 라이브 무대 음악을 들으며, 나는 난생처음 그런 기분을 느꼈다. 지금 차 안에 흐르는 노래는 정식 앨범 수록곡은 아니었다. 작은 무대에서의 라이브 음악을 직접 짜깁기한 앨범이라 레코드사에서 내놓은 음반만큼 음질이 좋지는 않았다.

차 안에 흐르는 터배리스 브라더스의 노래는 천 번은 들은 곡이었다. 늘 그저 그런 비공식 음원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모든 게 달랐다. 한 음 한 음의 뉘앙스가 의미 있게 들렸다. 마치 소리를 이해하는 폭이 천 배는 넓어진 것 같았다. 뇌 자극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음악을 듣는 방식에 새로운 물꼬가 터진 듯했다. 요전 날, 나는 분명히 같은 곡에서 이상한 쉭쉭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었다. 하지만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건 바로 커비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질질 끌고 다녀서 낸 소리임을 깨달았다. 터배리스 브라더스는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며 완벽한 하모니를 자아냈다. 아무리 어려운 음에서도 완벽한 소리였다.

그걸 듣는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30년 전에 나는 보수를 받고 노래를 들었다. 모든 이들이 정확한 음정을 내는지 날카롭게 주시했다. 물론 요즘엔 그저 노래를 듣고 추억에 잠기는 걸 즐긴다. 그날 밤에 나는 뭔가가 크게 달라졌음을 감지했다. 음악을 더 자세히 들었을 뿐 아니라 훨씬 깊은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오래 음악계에서 일했으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가수의 감정에 내 감정을 이입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TMS 덕분에 그럴 수 있게 됐다. ‘자폐가 없는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음악을 경험할까?’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터배리스의 노래가 끝나고 다음 곡이 시작됐다. 또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기억이 마치 영화를 보듯 재생되기 시작했다. 가수 에디 홀먼이 〈거기 외로운 소녀여〉를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요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에디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연이 끝날 때 그가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기쁨에 찬 소리를 지른 것도 생각났다. 노래 중간에는 밴드 구성원들이 말하는 소리도 흘러나왔다. 나는 그 순간 친구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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