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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문법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습관의 문법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9년 6월 / 344쪽 / 15,000원





습관의 독재



왜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번만”이라도 해보는 게 필요한가? 작은 습관의 힘



“약자들의 싸움은 패배해서는 안 된다. 만약 패배할 것 같다면 무조건 도망치고, 이길 수 있는 싸움만 골라서 해야 한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솔 알린스키의 말이다.

프랑스의 독립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베르나르 아스크노프도 승리의 경험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난 단지 폭로하는 데서 만족을 느끼고 저항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운동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그것이 실천되기를 희망한다.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불의를 폭로하고, 그 순간 언론의 조명을 받는 운동의 방식도 있다. 일시적으로 매우 만족스럽고 뿌듯하지만, 결국 뭔가를 바꾸기 위해선 폭로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난 구체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그것을 얻어내는 경험들이 축적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시민들이 정치나 운동에 참여하면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선 작은 승리나 성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 심리학자 칼 웨익은 「작은 성공들: 사회문제의 규모를 재정의 하기」라는 논문에서 ‘작은 성공’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무게감을 줄이고(‘별거 아니군’) 노력의 요구량을 감소시키며(‘이만큼만 하면 되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수준을 높인다(‘나는 이것도 할 수 있잖아!’).”

‘작은 승리의 힘’이라는 이치를 잘 알고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엔 이런 금언이 상식으로 통용된다. “무언가를 해내는 게 완벽한 것보다 낫다.” ‘달성 가능한 작은 것들’부터 시작하라는 의미다. 습관도 마찬가지다. 나쁜 습관을 바꾸거나 좋은 습관을 가지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새해 결심’처럼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면서 비장한 느낌을 즐기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쁜 습관을 바꾸는 데에 가장 큰 장애는 스트레스다. 심리학자 웬디 우드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의지력이 떨어졌거나 당황했을 때 쉽사리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너무 피로하여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는 평소 하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습관을 바꾸고자 할 때에 자신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해선 절대 안 된다는 걸 말해준다.

미국의 자기계발 전문가 스티븐 기즈는 “작은 습관은 의지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트로이의 목마와 같아서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뇌의 통제실로 쉽게 들어가고 큰 결과를 낸다”고 말한다. 따라서 점진적인 단계별 변화 노선을 택해야 한다. 심리학자 엘렌 랭어는 “인간은 세부 단계에 따라 어떤 일을 할 때, 처음 한 발짝 내딛고 나면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가져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이런 특성을 이용한 게 이른바 ‘문전 걸치기 전략’이다. ‘단계적 요청법’이라고도 한다.

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적 같은 변화를 불러오는 작은 습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작은 습관 전략은 아주 사소한 행위를 억지로라도 매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것은 ‘너무 사소한 일이라 실패하기조차 힘들다’는 특성 덕분에 부담이 없으면서도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한 힘을 발휘한다.” 기즈가 쓴 『습관의 재발견』이란 책을 읽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이런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하루 30분 운동이 쉽지 않으니, 팔굽혀펴기 운동이라면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하라’는 조언이었다. 그는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비웃었다가 실제로 딱 한 번 해보고 나서, 이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기즈는 한 번 하는데도 어깨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고, 팔꿈치에 윤활유라도 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왕 자세를 취한 김에 몇 번을 더 했고, “좋아, 한 번 더. 좋아, 두 번만 더. 자, 다시 한 번 더!”라는 식으로 잘게 나눈 목표를 세웠더니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는 나쁜 습관을 끊는 것보다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게 쉽다며, 작은 습관 시스템은 적용이 쉽고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주는 강점이 있다고 역설한다.

기즈는 “mini habit”이란 표현을 쓴 반면, 미국 스탠퍼드대학 행동경제학자 B. J. 포그는 ‘tiny habit’이란 표현을 썼다. ‘tiny habit’을 ‘깨알 습관’으로 번역한 김호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위해 깨알 습관을 정할 때에는 3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하루에 한 번씩 반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한 번 하는 데 30초가 걸리지 않으며, 거의 노력이 들지 않는 행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습관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윌리엄 제임스가 제시한 ‘가정 원칙’은 적극 시도해볼 만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바라는 습관을 아직 갖고 있지 않다면, 모든 면에서 이 습관을 이미 가진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그 행동 자체가 곧 실제 믿음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는 제임스가 1884년에 발표한 ‘감정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인간은 슬프기 때문에 울고, 무섭기 때문에 떤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 상식에 대해 제임스는 이의를 제기했다. “울기 때문에 슬프고, 떨기 때문에 무섭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설명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감정은 순전히 몸에서 기원하는 본능적인 것이지 정신에서 기원하는 인지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덴마크의 내과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랑게도 1885년 이와 비슷한 이론을 독립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제임스-랑게 이론’이라고도 부른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다. 팔굽혀펴기 운동처럼, 새로운 시도를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번만이라도 해보자. 그걸로 끝나더라도, 속된 말로 밑질 게 없잖은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 쓰인 명언일망정,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다음 조언을 믿어보는 게 어떨까? “믿고 첫걸음을 내디뎌라.”



개인과 자아



왜 일부 성공한 유명 인사들은 패가망신을 자초하는가? 자아 팽창



우리 인간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동물이다. 자신을 남들보다 좋게 인식하는 성향을 가리켜 ‘자기 고양 편향’이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게 바로 자아 팽창이다. 자기고양 편향은 “타인의 부정적 측면을 선택적으로 강조해서 자기를 우월하게 지각하는 인지 기제”라는 점에서 “단순한 허세와는 다르다.”

자기고양 편향을 사회적 지위의 문제와 연결시킨 영국 보건학자 마이클 마멋은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대적인 지위에 대한 관심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높은 지위를 가진 것으로 스스로를 평가해 자존심을 세우려는 심리적인 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어떻게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지능, 애정, 창조성, 근면 등 기준을 하나 정한 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 만약 평범한 미국인이라면 스스로를 평균보다 더 낫다고 평가할 것이다.”

사실 그런 편향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이건 다 갖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자기고양 편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정신건강의학자 김병수는 “경제적 불평등은 경쟁을 유발시키고,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아를 팽창시키게 된다.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자기고양이 덜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을 시켰더니 일본인도 미국인 정도로 자기고양이 심해졌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경쟁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더 우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자극한다.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더 자기고양에 빠지는 것은 경쟁에서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야 한다는 열망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에 살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나아져서 얻을 경제적 이익도 적기 때문에 우월해지고 싶다는 열망도 줄어들게 된다. 자본이 균등하게 분배되면 자아를 팽창시킬 이유도 사라진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의 자기고양 정도가 불평등한 사회에 비해 약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불평등의 정도가 비교적 심한 나라들에서 이른바 ‘아이 자존감 키워주기 운동’이 크게 유행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무되고 자극받는 자아 팽창은 폭력성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간 학계에선 낮은 자존감이 폭력을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낮은 자존감 이론’이 정설처럼 여겨져 왔지만, 미국 사회심라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다른 이론을 제시했다. 이른바 ‘위협받는 자만심 이론’이다. 자만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바우마이스터는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극단적인 사례로 자신에 대한 폭력적 행동, 즉 자살을 꼽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명예가 실추되거나 부도가 나면 자부심이 손상되기 때문에 자살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폭력적인 자존심>이라는 글에서 위협을 받을 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폭력적인 성향을 띤 유명인들은 대개 자존감이 높았다. 사담 후세인은 결코 겸손하거나, 자기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부르짖은 ‘지배자 민족’ 이론도 낮은 자존감 때문에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례는 낮은 자존감이 아니라 높은 자존감이 공격성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소셜미디어는 자아 팽창의 치열한 경쟁 시대를 몰고 왔다. 이원석은 “자아 팽창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고백이 일기를 통해서 은밀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일기가 하던 역할을 새로운 소통 매체로 소셜미디어가 대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령 페이스북에 자신이 어디로 놀러 가고, 무엇을 먹었다고 자랑함과 아울러 일상과 시사 등에 대한 자기의 섬세한 감상과 예리한 성찰, 광범한 지식을 과시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종종 자신의 진보적 스탠스를 과시하거나 자신의 겸손한 영성을 자랑하기도 한다. 혹은 특정한 영역에 대한 공개적 자백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그 점에서 거룩함을 인정받고자 한다.”

문제는 자아 팽창 그 자체라기보다는 남들과 무엇을 비교하느냐는 기준이 아닐까? ‘협동심’이라거나 ‘겸손’이라는 덕목을 비교하는 법은 없다. 그런 덕목은 오히려 자아 팽창에 방해가 되는 것이니 한사코 피해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자아 팽창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대체로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가 큰 몫을 차지한다. 드물게 자수성가를 한 사람은 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아 팽창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소보다 큰 척 자랑하다 배 터져 죽은 맹꽁이 이야기는 우화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크게 성공한 유명 인사들 가운데 자신의 첫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무한대의 자아 팽창을 추구하다가 결국 패가망신의 길로 접어든 이가 많다. 그 과정에서 어이없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몸이건 정신이건 결코 무한대의 팽창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개인과 사회



왜 개인적으론 합리적인 게 사회적으론 불합리할까? 구성의 오류



“개별적으로 타당한 이야기가 전체적으로는 틀리는 현상을 ‘구성의 모순’ 또는 ‘구성의 오류’라고 말한다. 즉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옳다고 생각한 행동이 구성원 전체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행동이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운동 경기장에서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이 경기 상황을 더 잘 관람하기 위하여 일어선다면 뒷줄에 앉아 있던 관람자들이 모두 일어서게 되며, 결국 모두가 제대로 관람하지 못하는 현상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케인스는 ‘절약의 역설’을 강조하여,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하여 수요를 진작시키는 정책을 취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개인이 저축을 많이 하면 미래의 소득이 늘어나 바람직하지만, 모든 국민이 소비하지 않고 저축한다면 오히려 물건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는 등 국민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개인이 불황에 저축을 늘리면 안전감을 느끼겠지만 모두 다 그렇게 하면 소비가 줄어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절약의 역설’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스 케인스가 1936년에 출간한 『고용ㆍ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개인행동의 논리와 전체 경제가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예시한 이 역설은 ‘구성의 오류’의 대표적인 예로 자주 거론되지만, 케인스 이전에도 여러 학자가 비슷한 말을 했다. 이 개념의 원조를 『구약 성경』 <잠언> 11장 24절에서 찾기도 한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케인스에게 ‘구성의 오류’는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반론이기도 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사람들은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함으로써 (전체와 부문을 혼동하는) ‘구성의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의 이론은 ‘합리적 비합리성’, 즉 개인적 차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불합리적 결과를 초래하는 합리성을 핵심으로 한 것이었다.

경제학자 폴 새무얼슨이 1955년판 『경제학원론』에서 내린 간결한 정의에 따르자면, “구성의 오류는 부분이 참이라는 이유만으로 전체를 참으로 간주하는 오류다.” 참으로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개념이지만, 당시 정책 등과 같은 현실적인 분야에선 완전히 외면되었다. 오죽하면 칼럼니스트이자 공공경제학자이기도 했던 월터 리프먼이 1963년 1월 30일자 칼럼에서 ‘구성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재정 정책에서 사람들에게 이걸 이해시키는 데엔 한 세대가 걸릴 것이라고 했을까? 리프먼이 그런 개탄을 한 지 거의 두 세대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재정 정책을 비롯한 모든 정책 분야에서 ‘구성의 오류’는 만연해, ‘이론 따로, 현실 따로’ 현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특히 국제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좋은 예다.

구형건ㆍ박정숙ㆍ정재웅은 「제도, 규범 그리고 반복되는 금융 위기」라는 논문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을 ‘구성의 오류’에서 찾는다. 이들은 금융 위기의 발생과 확산에 기여한 각종 제도와 규범들은 합리적ㆍ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것으로 각 부분에선 최적의 결과를 낳았지만, 전체적으론 파국을 가져왔다고 진단한다. 금융시장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 국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합리적ㆍ과학적 사고 못지않게 ‘군중심리’나 ‘야성적 충동’에 의해 움직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되어 확산되었을 때 다른 부분이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기술 문제가 개입되면 ‘구성의 오류’가 커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미국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전쟁의 세계사』에서 1884년에 쏟아져 나온 기술 혁명의 결과가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제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어떤 어이없는 결과를 낳았는지 영국 해군을 중심으로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맥닐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이르러서는 포격 통제 장치가 너무나 복잡해진 나머지, 어떤 설계를 채택하고 어떤 설계를 폐기할지를 결정해야 할 제독들마저 여러 설계안이 어떤 기술적 문제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 문제를 다루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더 이상 합리적이거나 만족스러운 결정을 보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밀 유지라는 이유로 관계자들의 지혜를 모으기가 쉽지 않았고, 파벌 싸움과 자신의 경쟁 상대가 이익을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고도의 수학적 소양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였고 그 문제에 가장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던 사람들조차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결여된 정책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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