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마시는 즐거움

마시즘 지음 | 인물과사상사
마시는 즐거움



마시즘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9년 5월 / 336쪽 / 14,800원





마실 것에 감춰진 위대한 이야기



교황이 세례한 사탄의 음료수



“아침을 알리는 한 잔. 식사의 마침표를 찍는 한 잔.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주는 한 잔을 마신다.”무슨 스핑크스 퀴즈쇼 같은 이야기냐고?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 ‘커피’ 이야기다. 커피가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커피가 세상에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커피를 발견하고 지켜온 3명의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다.

커피의 시작은 염소지기: 첫 번째, 여기 위대한 발견을 한 염소지기가 있다. 6-7세기 무렵의 에티오피아, 염소를 돌보며 평생을 보낼 줄 알았던 칼디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다. 어떤 나무 열매를 먹은 염소가 길길이 날뛰는 것이다. 궁금한 칼디도 이 붉은색 나무 열매를 먹어보았다. 곧 온 신경이 또렷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염소지기 칼디는 염소처럼 날뛰며 이슬람 수도원의 수도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사연을 들은 수도사는 커피는 악마의 열매라며 불구덩이에 커피를 던진다. 역사적인 커피 로스팅이 시작된 것이다. 불 속에서 타오르는 열매의 그윽한 향기가 수도사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마음이 바뀐 수도사는 타버린 열매를 수거해 음료로 만든다. 바로 커피의 탄생이다.

이슬람 수도사들은 이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들은 야심한 밤에 진행되는 종교 의식에 커피를 마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후 커피는 메카와 카이로를 비롯한 이슬람 문화권에 널리 알려진다. 그러면서 소수의 수도사가 아닌 대중의 음료가 된다. 그동안 이슬람교에서는 술이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며 금지시켰다. 하지만 커피는 술 대신에 마실 수 있는 합법적인 대안이 되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사교 활동을 이어갔다. 도시에는 하루가 다르게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이 커피에 취한 것이 분명하다며 커피를 금지할 정도로.

교황님은 사탄의 음료 마니아: 16세기 로마. 이슬람의 전유물인 커피가 유럽에 흘러들어간다. 마실 것이라고는 물 아니면 술밖에 없었던 유럽인들에게 커피는 충격적인 음료였다. “이렇게 시커멓게 생긴 것을 어떻게 마셔!” 하지만 곧 소수의 지식인과 예술가, 힙한 것을 찾는 이들을 중심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이들이 있었다. 이교도들의 음료를 경계하는 신자, 사람의 정신을 깨우는 게 두려운 지배층, 맥주와 와인을 파는 선술집 사장들이었다. 이들은 이교도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불렀다. 이슬람교도들이 와인을 마시지 않기에 악마가 커피로 벌을 내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논란이 갈수록 커지자 이들은 당시 교황인 클레멘트 8세에게 사악한 커피를 금지시켜 달라는 청원을 하기에 이른다. 교황은 결정을 내리기 전 커피의 맛을 보았다. 그리고 교황은 그 맛과 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1605년, 클레멘트 8세는 커피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어째서 사탄의 음료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리고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당장 커피에 세례를 내려 사탄을 쫓아내고 이를 진정한 기독교의 음료로 명할지어다.”

사약이냐 커피냐, 그것이 문제로다: 교황의 지지를 등에 업고 커피는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에 대해 불신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18세기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커피가 인간을 서서히 죽게 만든다고 믿었다. 커피가 사람의 정신을 강제로 깨우고, 잠을 못 자게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커피가 독약임을 증명하기 위해 쌍둥이 사형수를 불렀다. 그리고 1명에게는 커피를 다른 1명에게는 홍차를 마시게 했다. 의사들은 각각의 사형수에게 하루에 3번 한 사발씩 커피와 홍차를 마시게 했다. 마침내 실험에 참가한 인물 중 첫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매일 보고를 하던 의사였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의사가 죽었다. 그다음에는 구스타브 3세의 차례였다. 그는 암살을 당했다. 남아 있는 죄수들은 실험을 계속했다. 최초로 사망한 사형수는 홍차를 마신 사람이었다. 그의 나이 83세였다. 커피를 마신 죄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실험을 기록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오래오래 장수했다. 그리고 스웨덴의 커피 소비가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커피, 근대 이성의 잠을 깨우다: 이슬람에서 건너온 커피는 유럽을 정복한다. 커피를 마시기 전의 유럽인들은 물이 깨끗하지 않아 항상 맥주나 와인을 마셔야 했다. 커피는 몽롱했던 유럽인들의 정신을 또렷하게 깨워주었다. 또 한 가지, 커피를 마시는 커피하우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토론과 예술 활동이 벌어졌고, 각종 소식들이 오가며 관계를 맺고, 정보를 교류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그렇게 잠도 안 자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사람들이 이성의 시대인 ‘근대’의 문을 연다. 커피가 근대 이성의 잠을 깨운 것이다. 우리가 흔하게 마셔왔던 이 음료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맥주가 된 위대한 실수



빵을 만든다더니 맥주를 만들었네: 기원전 4000년경 농경사회가 막 정착한 이곳은 보리와 밀이 풍부했고,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곡식을 발효해서 빵 만들기를 즐겨 했다. 하지만 가끔 빵으로 굳지 못하고 액체로 남아버린 실패작이 있었다. 아까운 마음에 맛을 본 메소포타미아인,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 바로 맥주의 탄생 비화다. 몇몇 고고학자는 맥주를 양조하려다 실패한 것이 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빵과 맥주는 똑같은 양식이었다. 빵은 고체 상태의 맥주였고, 맥주는 흐르는 빵이었다. 물론 최초의 맥주는 지금과 달랐다. 커다란 독 안에 담긴 맥주 위에는 곡식 찌꺼기가 떠 있고, 바닥에는 쓴맛이 나는 잔여물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에 둘러앉아 빨대를 이용해 맥주를 마셨다. 이 행위에는 ‘이 맥주 안에는 독이 없고, 나는 너를 신뢰해서 함께 마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맥주가 상했으니 금식 중에 마시거라: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맥주 장인이 모여 있는 곳은 바로 교회였다. 당시 수도사들은 직접 노동을 해서 수도원을 운영해야 했기에 맥주를 양조해 팔았다. 수도사들은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가졌기에 맥주 양조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수도사들에게 위기가 있었다. 바로 사순절이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부활절 전까지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이때는 기도와 절제, 금식을 한다. 중세 수도사들에게 사순절은 혹독함, 그 자체였다.

16세기 독일 바이에른 지역, 파울라너의 수도사들은 굶주림 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금식 기간에 액체를 마시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곧 그들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맥주를 양조한다. 바로 육체와 영혼을 정화시키는 맛의 맥주다. 그리고 그들은 이 맥주가 교황에게만 닿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독일에서 로마까지 배송 기간 중에 맥주가 상한다는 사실은 깜빡 잊은 채. 마침내 육체와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맛이 난다는(하지만 상해버린) 맥주가 로마에 도착했다. 이를 마셔본 교황의 반응은 어땠을까? 교황은 이렇게 맛없는 맥주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런 맥주라면 사순절 동안 마셔도 별 문제가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이 맥주의 끔찍한 맛에서 절제의 미덕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렇게 교황은 맥주를 사순절 기간에 마시는 것을 허락한다. 파울라너의 수도사들은 행복했다. 비록 안주를 먹을 수 없었겠지만 그들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맥주를 만든다. 각종 과일과 꽃을 넣어 보기도 하고, 맥주에 홉을 넣는 방식을 개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도원 맥주는 오늘날 유럽 맥주의 베이스가 되었다.

맥주가 맛이 없어서 혁명이 일어난 나라: 국민 1명당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체코다. 체코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딱 3가지다. 여자와 맥주, 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은 맥주를 사랑하는 나라 체코에 맥주를 만드는 능력을 주진 않았다. 맛이 너무 없어서 영국이나 독일의 맥주를 수입해야 했다. 1838년, 기어코 불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체코의 도시 플젠에서는 맥주가 맛이 없다는 이유로 술집 주인과 시민들이 36배럴(약 1만 3,000병)의 맥주를 바닥에 쏟아버렸다.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역사는 이를 ‘골든 혁명(Golden Revolution)’이라고 기억한다. 플젠의 시민들은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브루어리(brewery)를 만들었다. 영국과 유럽의 선진 양조 기술을 배웠고, 독일에서 요제프 그롤이라는 브루어리 마스터를 초빙하기에 이른다.

1842년 11월 11일, 드디어 플젠의 첫 맥주가 베일을 벗는 날. 맥주를 따르자 시민들은 경악을 했다. 플젠의 맥주는 너무나도 맑은 황금빛이었다. 하지만 당시 맥주는 모두 어두운 갈색이었다. 이렇게 또 1만 3,000병을 바닥에 부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맥주를 마신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플젠의 맥주는 이전까지 마셔본 적이 없는 시원하고 강렬한 맛이었다. 특히나 황금빛의 색깔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플젠의 맥주는 독일과 프랑스, 미국까지 진출한다. 바로 세계 맥주 스타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라거(Lager)’다. 우리는 플젠에서 만든 이 맥주를 ‘필스너 우르켈l’이라고 부른다.

맥주는 평등의 술이다: 맥주는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언제나 인류와 함께해왔다. 상류층만 즐길 수 있었던 다른 술과 달리 맥주는 황제의 술이었고, 백성들의 술이었다. 혁명가의 술이기도 했으며, 패배자를 위로하는 술이기도 했다. 맥주는 실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더욱 너그럽다. 편의점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우리의 삶에서 맥주가 사라지는 날이 오면 문명이란 게 없어질 거라고.

5,000년 동안 사랑받은 음료의 비밀



‘차(茶)’는 무려 5,000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매일 38억 명이 차를 마신다고 한다. 대체 무엇 때문에 차 이파리 하나 들어간 음료에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열광해온 것일까?

프로먹방러 신농, 차를 발견하다: 기원전 2,732년 중국.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도 않고 하룻밤 요기를 위해 토끼나 쫓고 다니던 시절이다. 이때 태어난 신농(神農)은 사람들에게 농사를 알려준다. 중국인들은 달력과 도끼, 쟁기 등을 만든 신농을 농사의 신으로 떠받든다. 또한 신농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실험쥐(?)를 자처했다. 하지만 아무 풀이나 먹으면 떡실신(?)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신농은 풀 뜯어 먹고 중독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로 차 때문이다.

신농이 중국 남부의 산맥 지대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하인들은 끓인 물이 안전하다는 신농의 말에 따라 물을 준비했다. 이때 바람에 날아온 마른 잎이 끓는 물에 떨어졌다. 신농은 신기하고, 궁금해서 한 입 마셔보았는데 원기가 회복되고 기운이 돋았다. 차의 발견이었다. 그 뒤로 신농은 식물을 잘못 먹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람을 볼 때마다 차로 해독을 했다고 한다. 차는 가장 트렌디한 의약품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의학서인 『신농본초경』에는 차의 효능이 담겨 있다. “차는 술처럼 취하지 않으며, 물처럼 오염되거나 독성을 띠지 않는다.” 새로 나온 상품이나 음료수들이 ‘성분빨(?)’을 내세우듯 차 역시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찻잔은 사랑을 싣고: 기원전 733년 당나라. 도교사원 용개사의 지적선사는 강가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온다. 그는 아이에게 육우(陸羽)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육우는 훗날 단순히 건강용으로 마시던 차를 맛과 예절의 경지에 올린 차의 성인이 된다. 질풍노도의 시기까지 육우는 그저 차 심부름을 해주는 아이에 불과했다. 도교사원에서 자랐지만 도사가 될 생각은 없었고, 소를 돌보는 일은 지루해했다. 가끔 차를 재배하고 달이는 역할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사원 밖에 있었다. 결국 집을 나가게 되었고 지적선사는 그 뒤로 차를 끊었다. “육우가 만든 차 아니면 맛이 없어.”

세상을 둘러본 육우는 사람들이 마시는 차 맛이 엉망임을 알게 된다. 그는 오랜 방랑 끝에 고향에 돌아와 『다경(茶經)』이라는 책을 낸다. 다경에는 차의 기원부터 찻잎을 따는 법, 제다 과정, 차의 종류와 다기, 수질, 예절 등자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다. 오늘날의 차 문화도 『다경』의 손바닥 위 셔플댄스에 불과하다. 그때까지도 지적선사는 차를 마시지 않고 있었다. 황제는 생각한다. 육우의 차가 얼마나 맛있기에 그런 것인가? 황제는 지적선사를 궁전에 불렀다. 그리고 지적선사에게 궁전 최고의 차를 대접한다. 차를 잠깐 마신 지적선사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그러자 황제는 지적선사 몰래 데려온 육우의 차를 대접한다. 지전선사는 맛을 보더니 경탄한다. “내 아들마저도 이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황제는 육우의 차를 의심했던 것을 뉘우친다. 그리고 육우와 지적선사, 두 사람은 드디어 재회한다. 차가 단순히 약재가 아닌 맛을 갖춘 음료가 된 순간이다.

음료계의 평론가, 노동의 등장: 건강에도 좋다. 맛도 좋아졌다. 하지만 두 장점만 가지고는 잠깐의 유행으로 그칠 수 있다. 수천 년간 내려온 차의 힘은 당나라 노동(盧仝)이라는 사람이 완성한다. 노동은 차를 발견하지도, 차를 잘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차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대신 끝내주는 감상평을 남긴 시인이었다. 노동이 남긴 시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은 『칠완다가(七椀茶歌)』다. 7잔의 차를 마시면서 느낀 효능과 감상을 적은 시다. 『칠완다가』의 문장은 중국에서 글 좀 쓴다는 문인은 반드시 외워야 하는 작품이었다. 노동의 『칠완다가』 이후 차를 읊는 시가 많이 나타난다. 좋은 차를 맛보고, 멋진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엘리트의 소양이 된 것이다. 누가 더 차를 잘 만드는지에 대한 차 경연 대회가 열리고 차의 맛을 분별하는 티 테이스터들도 생겼다. 이런 현상은 동양 전체로 퍼져나갔다.

한잔의 차에 담긴 건강과 맛과 문화: 우연히 발견한 마실 것이 약재가 되고, 음료가 되고, 문화로 피어난다. 차뿐만 아니라 맥주, 와인, 커피, 콜라까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료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다. 하지만 차의 변화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신농, 육우, 노동이 중국의 거대한 역사에 찻잔을 올려둔 것이 1막이었다면, 2막은 더욱 거칠고 격렬한 양상으로 이어진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녹차에서 홍차로 차의 경쟁 무대가 옮겨간 것이다. 건강, 맛, 문화에 ‘자본’이라는 값어치가 붙으면서 차와 차를 마시는 인간은 또다시 변한다.



엉뚱하지만 진지했던 사람들의 음료



대통령이 된 맥주 창고지기



“맥주는 역사상 가장 평등한 음료다. 승자를 위하여, 또는 패자를 위로하며 우리는 같은 맥주잔을 들기 때문이다.” 여기 패자를 위한 맥주가 만들어지는 곳이 있다. 시골의 작은 양조장에 찾아온 그는 맥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1974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더욱더. 그는 양조장 일꾼을 모집한다는 이야기에 이곳을 찾아왔다. 그는 몸을 떨며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바츨라프 하벨, 국가의 감시를 받는 인물입니다.”

국가에 쫓긴 불온 인물은 왜 맥주를 만들었는가?: 하벨은 원래 공산당의 집권을 풍자하는 극을 쓰는 작가였다. 1968년 체코에서 발생한 민주자유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이 일어날 때까지 그는 글의 힘을 믿었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은 소련에서 내려온 탱크에 의해 꺾인다. 하벨의 글은 금지되었다. 아니, 그들이 막지 않아도 그의 펜은 이미 꺾인 상태였다. 그는 글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양조장에 도착한 하벨은 ‘자신은 공산당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양조장 사람들은 술렁였다. 마침내 양조장 총감독은 청년을 웃으며 환영한다. “괜찮아. 우리 양조장에는 집시들도 있다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