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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독식 사회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지음 | 생각의힘
엘리트 독식 사회



아난드 기리다라다스 지음

생각의힘 / 2019년 6월 / 423쪽 / 18,000원





그러나 세상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힐러리 코헨은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와 골드만삭스의 가르침에 한껏 고무되었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은 그녀 세대에게 일반적이었지만 코헨의 배경을 감안하면 뜻밖이었다. 그녀는 휴스턴의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고소득자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코헨은 유아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킨케이드 스쿨(the Kinkaid School)에 다녔는데, ‘전인(全人)’ 교육과 ‘지적ㆍ육체적ㆍ사회적ㆍ윤리적 균형 성장’의 철학을 표방하는 사립 학교였다. 이러한 학교에 다니는 대다수 학생이 그렇듯이, 그녀가 한때는 높은 이상을 품다가 사회봉사 요건을 완수하고 결국 아버지처럼 돈 잘 버는 화이트칼라 직종에 자리를 잡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로였다.

그런데 코헨은 꽤 오랫동안 정치와 공공서비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2032년 힐러리 코헨”이라는 대통령 출마의 꿈을 품었고, 고교 시절에는 휴스턴 시장의 청년 협의회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하버드 대학의 여름 강좌인 ‘의회: 정책, 정당, 제도’를 수강했고, 미 의회에서 인턴으로도 일했다. 그녀는 몸에 밴 사업에 대한 흥미, 정치에 대한 고유한 열정 그리고 어렴풋하나마 수학 또는 과학의 한 과목, 혹은 기타 어려운 학문을 접해보고 싶은 마음을 품은 채 대학에 갔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자신의 변화를 감지했다. 교육학에 관한 신입생 세미나를 수강한 그녀는 거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었는데, 그녀는 이 책을 두고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아마도 대학 생활 그리고 결국 인생의 행로를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코헨은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이 인생의 목표라고 착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검토해요. 영광, 돈, 명예, 명성 등. 무엇보다도 그는 이러한 것들이 결국에는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하죠.”

그에게 유일한 지고의 선은 ‘인간의 행복’이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코헨은 철학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이 고대의 고민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이해하고 싶었기에 심리학, 신학, 인지과학 수업도 들었다. 학위를 따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녀는 ‘타인을 위하는 인간의 행복’이라는 관념을 추구하고 싶다는 결단을 내렸다.

코헨이 2학년이던 해, 첫 두 주 동안에는 ‘점령하라 운동(Occupy Movement)’이 출범했다. 이 운동이 선전한 덕에 코헨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미국인들이 구글에서 ‘불평등’을 검색한 횟수는 두 배로 늘었다. 그리고 그녀가 3학년이던 해 봄, 예수회 출신이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즉각 “시장의 절대적인 자율성과 금융 투기를 거부하고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빈곤이 발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또 코헨이 졸업을 앞두었을 무렵,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불평등을 통렬하게 폭로했다.

그리고 피케티와 몇몇 동료들은 코헨이 졸업과 동시에 돈을 벌기 시작한 2014년 무렵, 깜짝 놀랄 사실을 담은 논문을 출간한다. 연구는 코헨 같은 대졸자가 소득 상위 10퍼센트에 속할 것이라는 신중한 가정을 전제로 해서, 1980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보다 세전 수입이 두 배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만일 코헨이 소득 상위 1퍼센트에 속한다면 그녀의 수입은 부모님 시대의 1퍼센트가 번 것의 세 배 이상 될 것이었다.

연구에는 같은 기간 미국인의 하위 50퍼센트의 세전 평균 임금이 1만 6,000달러에서 1만 6,200달러로 인상되었을 뿐이라는 놀라운 사실도 포함되었다. 즉 1억 1,700만 명의 사람들은 “1970년대 이래 경제성장에서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고 피케티, 이매뉴얼 사에즈 등은 말했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였던 기술 혁신의 한 세대가 미국인의 절반을 위해서는 이렇다 할 진보를 가져다주지 못한 것이다. 코헨은 양극화되는 미국의 현실 속에서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2010년에 코헨은 의회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보기에 의회 인턴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배우는 구닥다리 방식이었다. 의회 인턴을 마친 그녀는 이번에는 교육 테크놀로지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그리고 4학년이 되기 전 해의 여름, ‘블랙 라이브즈 매터’가 한창이었다. 그녀는 장차 자선가가 되려는 다른 많은 사람을 따라 골드만삭스의 인턴 애널리스트로 여름을 보냈다. 이러한 선택이 과연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이상을 품은 이에게 적합한 것인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 또래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기업이 가르치는 기술이 변화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도구라는 견해, 골드만과 같은 회사가 옹호하는 그 흔한 견해에 감명을 받은 사람은 코헨만이 아니었다.

코헨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골드만의 노력에도 인턴을 마친 그녀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좀 더 온건한 선택으로 맥킨지를 생각했다. 맥킨지 고객의 압도적 다수는 기업이지만 코헨 같은 젊은이의 사고방식을 아는 채용 담당자들은 사회 그리고 공공 부문의 프로젝트를 강조했고, 만약 고용된다면 아이티 지진 복구를 돕고 로마 교황청에 자문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리라고 생각하며 기업 설명회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코헨은 농담으로 말했다.

코헨은 맥킨지에 입사했다. 코헨은 입사 초기에는 “황홀한 동시에 섬뜩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주위의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과로와 현실로 괴로워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대부분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조로운 업무들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보았던 대로 “지난 수십 년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문제에 접근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고객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말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그녀가 접한 프로젝트 대부분은 여기서 비용을 깎고, 저기서 시장 진입 전략을 짜는 등 그저 보통의 기업 자문 업무였다. “좀 더 일상적인 일들의 실행일 뿐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코헨은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 종종 강하게 권유하곤 했던 랍비 과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곧 봉사의 길이라는 논리가 매우 강력했기 때문에 회사 경험도 영적인 일에 유용한 준비라고, 또 만일 “랍비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맥킨지 경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한편 맥킨지에 일자리를 잡으면서 코헨은 ‘마켓월드(MarketWorld)’에 합류했다. 마켓월드는 현 상태로부터 이익을 얻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일도 해내는 신흥 권력 엘리트의 세계인데, 이 세계는 계몽된 사업가와 자선단체, 학계, 언론, 정부, 싱크탱크의 세계에 있는 그들의 동료로 구성된다. ‘지식 소매상’으로 불리는 자신들의 사상가, 자신들의 언어, 나아가 자신들의 영토도 보유하고 있다. 마켓월드는 네트워크이자 커뮤니티지만, 그와 동시에 일종의 문화이자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이들은 대중의 삶, 법, 사람들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개혁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유시장과 자발적 행동을 통해 사회변화가 추구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신들의 욕구에 적대적인 세력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승자와 그들의 동맹이 사회변화를 감독해야 한다는 생각, 현 상태의 최대 수혜자가 개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신봉하고 또 촉진한다. 한편 코헨은 맥킨지에서 처음 몇 주를 보내면서 아직 마켓월드의 본색을 알지 못했고, 자신의 일에 회의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결국에는 몇 달 그리고 몇 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마켓월드의 생각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외부에 있을 때, 그녀는 기업에서 훈련된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돕는 데 필수적이지만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을 키워간다는 주장에 경외심을 품었다. 하지만 일단 내부에 들어오자 그녀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타이어 회사가 비용을 줄이거나 태양 전지판 제조업자가 세계로 뻗어가는 유망한 시장을 선택하는 데는 정말 유용하지만, 모든 영역의 만병통치약으로서 지위를 누릴 자격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편 경영 컨설턴트와 금융가들은, 이들이 포함된 작은 엘리트 무리가 어떻게 한 세대가 일군 혁신의 성과 대부분을 어떻게 차지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인공이다. 금융 부문은 소비자와 노동자뿐만 아니라 산업 자체도 희생하면서 미국 경제로부터 점점 더 많은 가치를 뽑아냈다. 국가 재원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월스트리트 주변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는 기업의 신규 투자나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컨설턴트들은 생산성 혁명을 기업에 들여왔다. 그들은 기업에 모든 것을 최적화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그 결과 기업의 공급 사슬은 더 빈약해지고 손익계산서는 더 충실해졌다. 또한 이러한 최적화로 인해 노동자를 대하는 기업의 태도는 더 박해졌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해고, 해외 이전, 동적인 작업시간 관리, 기업 발전의 덜 긍정적인 면인 자동화 등의 사태에 직면했다. 바로 이것이 기업의 이윤과 생산성은 상승하는 데 비해 노동자의 임금은 정체되었던 부분적인 이유다.

코헨은 이러한 해결책이 지닌 힘에 대한 믿음을 점점 잃고 있었다. 이어서 자신이 실제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지 않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곰곰이 다음 행보를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는 종종 미국인의 삶에서 기업과 부자들이 너무 많은 발언권을 가진 반면, 보통 사람들은 너무 적은 발언권을 가졌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더욱 활력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맥킨지로부터 자문을 얻겠다고 결정했다. 코헨은 팀에 합류하라는 요청을 받았고, 시민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맥킨지 컨설턴트들이 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결정이 그녀가 존경해마지않는 대통령의 생각이라면 아마도 그대로 해야만 할 것이다. 다른 한편, 그녀는 자신을 오도했던 바로 그 신화에 대통령도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었다. 왜 지역 사회 조직가들을 찾아가지 않는 것인지 그녀는 궁금했다.

코헨과 동료 컨설턴트들의 작업은 기업가와 부호들이 자기 이익을 넘어 사회적 과제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기업 엘리트들이 그저 끼어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 일을 아예 떠맡으려는 것인지 질문해볼 수도 있었다. 만약 후자라면, 돈이 있는 자들에게 민주주의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맡기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것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이는 논리적으로는 가능한 일이지만 개연성은 떨어진다.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 설계를 기업 컨설팅 회사에 맡기는 것의 위험은 권력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마켓월드의 문제 해결사들은 가해자를 찾아 나서지 않으려 하며 책임을 묻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코헨은 자신과 동료 컨설턴트들도 민주주의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관심을 무시하거나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악의나 고의가 아니라 이들의 머릿속의 모델 때문이었다.

결국 코헨은 맥킨지를 떠났고 오바마 재단에 정규 직원으로 합류했다. 그러나 여전히 컨설팅 회사의 급여를 받는 동안 그녀와 동료들은 ‘기업식 사회변화’라는 미묘한 균형 잡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의 시선에서 민주주의를 더 활력 있고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했지만, 되도록 자신들의 동료인 승자에게 너무 심하게 도전하지는 않아야 했다. 그들은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끌어올려야 했지만, 그 제도를 이끄는 사람들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아야 했다.

한편 코헨은 여전히 랍비가 되는 꿈을 버리지 않았는데, 좋은 일을 함으로써 성공하기를 바라는 데서 오는 타협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마켓월드와 그 논리에서 벗어나서 살고 싶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위신과 생활방식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코헨은 또한 대규모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계속 종교적인 훈련에 매혹된다는 점에서 그녀는 시장 신앙을 버리고 자신을 바칠 만한 또 다른 신앙을 갈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녀는 시장 신앙을 선택하겠다기보다 그것에 굴복했었다.

이 신앙은 오늘날 상당수의 분별력 있는 사람들을 붙들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코헨처럼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사로잡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믿는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자신이 해결하기를 바라는 문제의 근원에 자리한 시스템을 보호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내심 다른 방법이 없는지, 그곳에서 자신의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한다.



윈윈



스테이시 애셔는 창가 쪽 자리에서 판타지 스포츠(온라인에서 가상의 팀을 꾸려 스포츠 경기를 치르는 게임)의 힘을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애셔는 포트폴리오위드퍼포스라는 이름의 자선단체를 운영하는데, “건강한 경쟁과 나눔을 결합한 강력한 플랫폼”이 홍보 문구다. 이 짧은 표현은 테크노 유토피아주의, 자본주의, 자선의 느낌을 용케 뽑아냈다.

다른 사람을 돕는 데 헌신하게 되었다는 비즈니스 세계의 수많은 이들처럼, 애셔의 이야기도 아프리카를 만나며 시작된다.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는 동안 그녀는 탄자니아의 한 고아원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하루 한 끼를 확보하기 위해 동생을 등에 업고 수 마일을 걸어 다니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녀는 고아원 운영비가 한 달에 250달러에 불과하며 그런데도 자금이 부족해서 식당 문을 닫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그녀는 말했다. “그 순간, 내 삶은 영원히 바뀌었죠.” 애셔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판타지 풋볼을 좋아하고, 누구나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마다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애셔는 판타지 풋볼 모델을 모방해서 선수 대신 주식을 넣고, 수익금은 승자가 선호하는 자선단체로 보내는 방안을 생각했다.

애셔는 사회변화를 둘러싼 접근법 중 하나인 “윈윈”과 그 감칠맛 나는 방식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는 시장 우위의 시대에 크게 유행하는 접근법으로, 스티븐 코비의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그 매력을 포착해냈는데, 그중 네 번째 습관이 바로 “윈윈을 생각하라”였다. ‘윈윈은 삶을 경쟁의 영역이 아니라 협력의 영역으로 본다. 윈윈은 모든 인간의 상호 작용에서 서로의 이익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정신과 마음의 틀이다. 윈윈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만족스러운 합의나 해결책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우리 둘 다 파이를 먹게 되는데, 그 맛은 진짜 끝내준다!’

이러한 생각은 변화에 대한 마켓월드의 접근을 부채질했고, 또한 그 덕에 사회적 기업, 사회적 벤처 캐피털, 임팩트 투자, 베네피트 기업(이윤 창출과 사회적 책임 모두를 적극적으로 행하는 기업), DBL(‘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기업 실적을 측정하는 비즈니스 원칙), TBL(DBL에 ‘환경 지속성’이 추가된 것을 말함), 기업의 사익 추구를 교화시킨 공유가치 이론,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부하는 상품 등 승자에게 좋은 것과 모든 이에게 좋은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가정하는 다양한 표현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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