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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존 스튜어트 밀



박홍규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9년 5월 / 167쪽 / 10,000원





머리말_ 왜 지금 밀인가?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자유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자유주의자다. 그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자서전』을 읽었을 것이고, 3세 때부터 받은 천재교육에 대해서도 알 것이다. 나아가 페미니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가 여성 해방론의 고전인 『여성의 종속』을 썼고, 영국에서 여성 투표권이 인정되기 59년 전에 남녀 투표의 평등을 주장했음도 알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위대한 정치』라는 제목으로 한국 정치가와는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른 밀의 위대한 정치 활동을 찬양하는 책도 나왔으니 그를 위대한 정치가로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밀의 생애와 사상을 ‘성실함과 진지함에 대한 향수’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밀이 엘리트만의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금수저 여성들의 해방만을 주장했으며, 그런 국내 정치의 원칙과 마찬가지로 국제 정치에서도 엘리트 선진국이 후진국을 식민지로 삼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보았다면, ‘성실함과 진지함에 대한 향수’는 웃기는 헛소리가 되고 ‘자기도취와 위선의 악취’만을 풍기고 말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비판적 관점에 서는 것이지만, 밀을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 밀은 우리 시대에도 교훈을 준다. 무엇보다도 밀은 사상의 자유를 특히 중시한 자유주의자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국가보안법을 두고 있는 한국을 자유(주의) 국가로 보기는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심지어 그는 동성애의 자유도 주장했다. 호주제 따위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남녀평등도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밀의 자유주의 사상은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밀의 ‘위대한 정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그런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그 점이 가장 중요한데도 말이다. 따라서 밀을 존경해 그를 따르는 자유주의자라면 당연히 국가보안법이나 동성애, 호주제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물론 19세기 인도에는 자유가 필요 없고 독재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듯이, 지금 한국도 19세기 인도와 같은 수준이어서 독재만이 필요하다고 본다면 더는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밀을 좋게 본다고 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밀은 사상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자유는 기본적으로 엘리트에게만 인정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도 명색이 철학자로서 19세기 영국에서는 당대의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린 만큼, 그런 말을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식민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그렇게 말했다. 당시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자유가 인정될 수 없고 전제 독재가 당연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인도의 자유를 열망해 그의 『자유론』을 읽은 인도인들은 당연히 배신감을 느꼈다.

그런 밀이 20세기 전반까지 살았더라면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 대해 자유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을 일제 덕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35년간 인도를 지배한 총독부인 동인도회사의 영국 본사에 고급 간부로 근무하면서 자신을 비롯한 영국인들 덕분에, 인도가 영국 지배 이전의 불행을 극복하고 제대로 굴러가서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인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것인데, 당대 세계에서는 영국이 ‘세계 최대의 식민지’를 지배해 모든 인류에게 ‘세계 최대의 행복’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행복의 시대였고 자기야말로 그것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세계 최고의 행복 창조자라고 생각했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마찬가지로 천재인 자기를 비롯한 엘리트들이 국민에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한편 밀은 태어나 3세부터 제국주의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에게서 소위 천재교육을 받는 과정에서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으니 거의 평생 철저한 제국주의자였던 셈이다. 당시 대영제국의 시대에는 누구나 당연히 제국주의자였을 것이니 지금 와서 그 점을 특별히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그런 것은 영국인의 본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밀의 스승격인 제러미 벤담을 비롯해 반제국주의자였던 사람도 많았다.

사실 밀의 제국주의는 엘리트 자유주의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사실 밀이 거의 평생 근무한 동인도회사는 런던에 있는 부자 권력자들이 공유한 회사로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돈을 버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엘리트 선진국이 ‘개돼지’ 후진국을 지도 편달하는 제국주의가 당연히 신이 내린 사명과 같은 것이었다. 평생 그들을 엘리트 자유주의와 제국주의로 옹호한 밀보다 훨씬 앞서서 자유주의와 제국주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가 많았지만, 이 책의 부제를 ‘엘리트 자유주의와 제국주의의 기원을 찾아서’라고 붙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앞에서 밀을 ‘위대한 정치’를 한 사람으로 보는 책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밀의 조국인 영국에서도 그를 ‘위대한 정치’를 한 사람이기는커녕 정치가라고 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쓴 한국인 정치학자의 학문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밀이 한차례 하원의원을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정치 운운하려면 나는 밀이 평생을 두고 근무한 동인도회사의 활동이야말로 ‘위대한 정치’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사실 밀은 무엇보다도 ‘동인도회사 직원’이나 ‘제국주의자’로 불러야 마땅한 사람이고, 그런 점에서 ‘위대한 정치’를 했다고 평가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은 19세기 동인도회사 직원 동료이거나 지금까지도 동인도회사 향수에 젖어 사는 제국주의자일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정치』의 저자는 밀의 동인도회사 근무에 대해 그런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그가 밀의 동인도회사를 보는 관점은 먹고살기 위한 직업 정도로 보인다.



위대한 아버지와 망각된 어머니



밀의 생애는 보통 3기로 구분된다. 즉 성장, 위기, 성숙이다. 이는 밀이 『자서전』에서 1840년대 이후를 ‘나의 정신적 성장의 제3기’라고 부른 것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앞의 두 시기는 위기가 찾아온 1826년 전후를 말한다. 3기에 각각 해당되는 연령대는 성장이 20세까지, 위기는 34세까지, 성숙은 34세부터 68세까지다. 한편 『자서전』에서 밀은 자신에게 조기교육을 베푼 아버지 제임스 밀에 대해서는 한국식 효도의 차원에서도 극심하다고 할 정도의 엄청난 존경심을 보인다.

하지만 어머니 해리엇 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밀은 19세기 초반에 남녀평등을 주장한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였으므로 남존여비의 차원에서 어머니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어머니가 자신의 결혼을 반대한 탓에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 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처음에 밀의 결혼에 반대한 어머니는 아들이 결혼한 후에는 아들과 화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밀은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멀리했다.

반면 밀은 어머니와 같은 이름(해리엇 하디)인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찬양을 쏟아냈다. 그것도 그냥 아름답다거나 현모양처라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이상으로 지적으로나 활동적으로 뛰어난 천재 운운 하는 것이어서 너무나 놀랍다. 그녀도 밀의 어머니처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밀처럼 그녀를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음에도 말이다. 사실 밀의 아내인 해리엇 하디가 밀이 말하는 정도로 뛰어난 여성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뒤 묘지 부근에 작은 집을 짓고 그녀가 죽은 호텔 방의 가구를 사들여 매년 몇 개월씩 그곳에서 지냈으며, 결국 그곳에서 죽어 함께 묻혔을 정도로 그는 열부(烈夫)였다.



밀의 조기 천재교육



밀은 1806년 5월 20일 런던 부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밀이 태어난 지 3년 뒤에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공리주의 시조인 제러미 벤담을 만나 가장 충실한 벤담 학파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벤담이나 프랑스 유물론자와 같이 인간을 자연물로 보고, 동물학ㆍ생물학ㆍ물리학의 방법에 따라 인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견고한 경험적 기초 위에서 확립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교육받지 않은 다른 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하고 아들 밀을 3세 때부터 자신이 교육시켰다.

여기에서 벤담의 백지설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의 정신이 아무런 선입관념이나 지식을 갖지 못한 백지와 같다는 것이고, 따라서 좋은 교육을 하면 좋은 지식을 갖게 된다는 교육론을 낳았다. 그래서 3세부터 5세까지 그리스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고전, 8세부터 라틴어와 라틴어로 쓰인 고전, 9세까지 대수학과 프랑스어, 12세까지 논리학을 습득하게 했다. 아버지는 밀에게 자연과학과 고전을 중심으로 공부시키되, 벤담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고 본 종교나 형이상학, 특히 시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존 밀턴과 월터 스콧만을 높이 평가해 그들의 작품은 읽도록 했다. 그리고 예술로서는 유일하게 음악을 가르쳤다. 그 결과 밀은 12세에 이미 보통 30세 이상에야 가능한 지식을 습득했다. 한편 밀은 자신이 받은 교육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큰 혜택이었고, 정확한 사상을 낳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논리학을 꼽았다. 그리고 15세에 경제학ㆍ역사학ㆍ철학ㆍ자연과학을 배웠고, 벤담의 책을 읽으며 사물과 인생의 목표에 대한 통일적 관념을 형성했다.

그런데 밀의 천재교육에는 무엇보다도 엘리트주의가 나타난다. 이는 밀이 어려서부터 플라톤의 『대화편』에 심취한 것에서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밀의 유명한 저서인 『자유론』은 프랭크 터너가 『예일대 지성사 강의』에서 말하듯이 “매우 특별한 사람, 그러니까 사회에서 살아가는 천재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터너가 말하듯이 밀은 천재만이 인간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그들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의도로 자유를 지지했다. 즉, 일반인의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밀은 누가 천재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자서전』을 보면 천재는 자신과 아내와 아버지뿐인 듯하다. 이는 니체가 초인을 말하면서도 누가 초인인지를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니체의 책을 읽는 독자는 누구나 자신이 초인이 되는 것같이 착각해 니체를 존경하게 되지만, 니체는 대부분의 인간을 경멸했다. 밀도 그런 니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밀이 가장 좋아한 과목이 고대 역사, 당연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사였다. 그리스사와 로마사는 사실상 비서양 사회에 대한 서양의 침략사였다.

그리스ㆍ로마의 역사와 함께 밀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또 하나의 역사는 아버지가 쓴 『영국령 인도의 역사』였다. 밀은 이 책의 집필 과정을 보면서 성장했는데, 아버지는 이 책의 퇴고와 복사를 아들에게 맡겼다. 그 과정을 통해 이 책의 내용은 밀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밀의 출생과 함께 시작된 이 책은 밀이 11세 때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는 밀이 17세기 이후 52세까지 35년간 인도를 지배한 행정기관인 동인도회사의 간부로 살아가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천재교육이 갖는 문제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회교육이나 실천교육을 결여한다는 점이고, 어쩌면 ‘인조인간’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밀의 천재교육이 주입식 암기의 영재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독서하면서 요약과 비판을 하고, 아버지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이해력을 더욱 깊이 하는 방식이었던 만큼 인조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도리어 개성 교육이라는 점에서는 진취적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한편 밀이나 아버지도 문제점을 느꼈는지, 1819년 아버지가 동인도회사에 취직한 다음 해, 밀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프랑스 몽펠리에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최초로 친구를 사귀는 등 참된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변화, 특히 자유를 맛보았다.

한편 영국의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벤담은 제임스 밀과도 친해서 이미 교육을 통해 밀에게 벤담의 공리주의가 당연히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밀 자신에게 공리주의가 명확하게 확립된 것은 1821년 프랑스에서 돌아온 뒤부터였고, 특히 16세 때(1822년)부터 벤담의 집에서 격주로 친구들과 모여 토론하고 밀 스스로 공리주의자라고 부른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밀도 벤담의 영향을 받아 유용성을 최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행동은 행복을 증진시키는 유용성의 정도에 따라야 옳다는 것이었다. 가령 사형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유용한지, 참된 억제력이 있는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지, 그 자체를 두고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도 자연권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그것이 좋은 국가를 갖게 하는 유일하게 확실한 방법이라는 이유에서 옹호했다. 특히 공리주의자들은 군주정치보다도 귀족정치를 더욱 혐오했는데, 그것이 국교회와 법률가 계급에 의해 조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밀의 정신적 위기



제임스 밀은 10대의 밀을 완전한 합리적 존재의 완성이라고 보았으나, 밀 자신은 20세(1826년)가 되면서부터 정신적 위기를 경험해 1830년경까지 집필을 중단했다. 즉, 목적의 결여, 감정의 결여, 의지의 마비, 절망의 의식이었다. 그러나 위기의 시작은 더욱 빨랐다. 사실 공리주의 활동을 시작하기 전인 1821년에 이미 밀은 벤담의 사상이 퇴색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 후 5년 뒤 밀은 벤담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했는데, 공리주의 원리의 근거인 쾌락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 결국 그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위기는 20세 청년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으나, 밀에게는 어린 시절의 천재교육부터 20세까지의 격무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동시에 아버지와 벤담에 대한 심리적 콤플렉스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의 위기였고, 일상생활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앞에서 우리는 밀이 어린 시절 시 읽기를 금지 당했다고 했다. 밀은 거기에서 비롯된 정신의 위기를 당연히 시와 시인의 만남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1827년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를 만나고 그들의 시를 읽어 감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밀이 낭만주의에 심취함과 동시에 사랑을 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런데 그 위기는 밀과 같은 상황에 있던 작가 장 프랑수아 마르몽텔의 회상록에 나오는 아버지의 죽음을 읽고 극복되었다고 밀은 『자서전』에서 말했다. 정신적 위기를 극복한 밀은 벤담 철학의 일부를 버리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 하나는 위기의 극복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 감정을 철학의 기초로 삼아 지성과의 균형을 모색한 것이었다.

밀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을 소유한다거나 도구와 방법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라고 보았다. 또 행복이 아니라 인권, 즉 다양성, 자유, 정의, 특히 개인ㆍ집단ㆍ문명의 자발성과 독자성, 변화와 충실한 생활을 주장했다. 반면 편견, 획일성, 정신적 박해, 권력과 인습과 여론에 의한 개인의 억압에 반대했다. 나아가 질서나 평화에 대해서도 그것이 정염(精炎)이나 상상력을 갖는 살아 있는 인간의 다양성이나 색채를 없애는 대가를 수반하는 것이라면 반대했다.

상식적으로 품위, 공정, 정의, 자유라고 하는 것, 즉 개인은 타자의 어떤 도덕적 전제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공리주의가 주장한 산업과 재정과 교육의 대계획, 공중위생의 대개혁, 노동과 여가의 조직 등에는 무관심했고, 대신 노동자나 여성, 백인 이주 식민지인들의 자유와 정의를 주장했다. 따라서 백인이 정복한 식민지는 제외되었다. 물론 그는 여전히 공리주의자로서 합리성ㆍ경험적 방법ㆍ민주주의ㆍ평등을 찬양하고, 종교ㆍ초월주의ㆍ몽매주의ㆍ도그마주의ㆍ직관적이고 논증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신앙에 반대했다. 그것은 이성의 포기, 계급사회, 특수권익, 자유로운 비판에 대한 불관용, 편견, 반동, 부정의, 전제, 비참함을 나타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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