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거짓말
정철운 지음 | 인물과사상사
뉴스와 거짓말
정철운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월 / 273쪽 / 15,000원
제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
호랑이는 그곳에 없었다
기자가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않으면 그 끝은 보통 희극 같은 비극으로 끝난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 1월 24일자 《동아일보》는 1면에서 호랑이 사진을 내보내고 “멸종됐던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산 호랑이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시민 박 아무개가 1979년 12월 29일 경북 경주 부근의 대덕산 기슭에 등산 갔다가 호랑이를 발견, 사진 2장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한국산 호랑이가 58년 만에 등장해 동물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다음 날 《한국일보》는 사진 속 호랑이가 어린이대공원에 살고 있는 벵골산 호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동아일보》가 박씨를 추궁해 박씨가 어린이대공원에서 촬영한 것이란 실토를 받아냈다. 취재원의 거짓 정보에 언론사가 농락당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당시 교수 코멘트를 통해 한국산 호랑이가 틀림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박씨가 일반 카메라로 어떻게 호랑이가 뚜렷하게 나올 만큼 근접 촬영을 할 수 있었는지, 상식적인 의문을 갖지 않고 특종에 눈이 멀었던 결과 오보를 내고 말았다.
1993년 3월 19일자 《국민일보》에 뇌종양 수술을 받고 쾌유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국민일보》는 “홍씨는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았다. 수술 2개월째 홍씨 뇌종양은 지름이 1cm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고 종양의 감소가 꾸준히 확인됐다. 그는 몸무게가 7kg 정도 늘었을 뿐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당시 홍씨는 이미 뇌종양으로 사망한 뒤였다. 홍씨 가족은 홍씨가 사망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 피해가 크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내기도 했다. 홍씨는 보도가 나가기 20여 일 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국민일보》는 정정 보도문을 냈다. 당시 기자는 “솔직히 시간에 쫓겨 확인을 하지 않고 썼다. 홍씨는 전부터 알고 있었고 가끔 병세 확인도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확인하지 않고 쓰는 바람에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기사를 보도하기 직전 전화 한 통화만 했어도 오보를 막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실수는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2014년 4월 19일자 《오마이뉴스》는 「용산역 화장실에 붙은 창피한 표지판」이란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용산역 화장실에 금연 스티커가 ‘Smoke-free Building’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 이는 영어로 흡연이란 의미라며 비판하는 기사였다. 해당 기사에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독일인에게 이 문구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함께 박장대소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기사는 “외국인이 많이 이용하는 곳에 표기하는 영어는 주의해야 한다”며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 기사에는 곧 “기자님 창피한 줄 아세요. 사전만 봐도 바로 나오는데”라는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에 ‘Smoke-free’를 검색하면 바로 ‘금연’으로 번역된다. 자신의 영어 실력을 과신하지 말고 기사를 올리기 전에 한 번만 검색을 했더라면 망신은 당하지 않을 사안이었다. 그나저나 그 독일인은 대체 누구였을까? 아무튼 기사는 삭제되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독자들에 의해 즉각적으로 오보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다. ‘내 기사에는 반드시 오탈자가 있다’는 전제를 갖는 것도 기자들의 의무다. 《한국일보》는 1956년 3월 12일자 기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이승만 견통령으로 내보냈다. 大統領을 뽑는다는 것이 犬統領을 뽑았고 교열에서도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당시는 납 활자를 쓰던 시대였는데, 직원이 대(大)자를 견(犬)자로 잘못 뽑은 것이라는 설과 大자 위에 이물질이 끼었다는 설이 돌았다. 어쨌든 대통령을 하루아침에 ‘개’로 만들어 버린 이 사건으로 ‘큰 위기를 겪은 《한국일보》는 이후 大統領이란 글자를 하나로 묶어 고정 활자로 만들어 썼다.
제2장 야마가 팩트를 앞서면 진실을 놓친다
“5ㆍ18은 북한의 특수부대가 개입한 폭동”
2013년, 5ㆍ18을 앞두고 TV조선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해 게릴라전을 벌이며 광주 시민을 선동했다는 ‘북한 개입설’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채널A는 자신을 광주에 투입되었던 북한군이라 주장하는 남성을 인터뷰해 내보내기도 했다. 모두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 기고만장했던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역사 왜곡을 넘어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하는 장면이었다.
5월 13일, 지금은 ‘심의 제재의 전설’이 되어버린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탈북자이자 전 북한 특수부대 장교인 임천용과 뉴라이트 계열 원광대학교 사학과 이주천 교수가 출연해 “600명 규모의 북한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북한 게릴라다”, “5ㆍ18은 무장폭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5ㆍ18 자체가 김정일이 김일성에게 드리는 선물이었다”는 주장을 50여 분 가까이 펼쳤다. 특히 이날 방송에선 “북한의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는 광주에 투입됐다”, “사망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의 가묘다”, “망월동 5ㆍ18 묘역의 신원 미상자 묘 70여 개가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묘다”, “5ㆍ18은 북한의 모략전이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라는 등 근거 없는 주장들이 그대로 전파를 타고 나갔다. 이에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5ㆍ18의 비극을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의 명예를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5ㆍ18의 의미와 가치를 무너트려 시청자들이 5ㆍ18의 진실을 호도하도록 조장했다”며 해당 프로그램이 공정성과 객관성, 명예훼손 금지, 품위 유지 등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장성민의 시사탱크>의 심의를 요청한 5월 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선 방송사 최초 광주 투입 북한군 인터뷰가 나갔다. 5ㆍ18 당시 자신을 광주에 있던 북한군이라 주장한 이 남성은 김명국이란 가명으로 등장해 “광주 폭동 때 참가했던 조장, 부조장은 (다시 북으로 돌아가서)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라도 사람들은 광주 폭동이 그렇게 들통 나면 5ㆍ18 유공자 대우를 못 받는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방송이었다. 당시 이 같은 종편의 무리한 보도가 연달아 이루어진 시점은 상징적이다. 특히 이 무렵엔 종편이 섭외했다고 보기 힘든 탈북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를 두고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종편의 탈북자 섭외를 도와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채널A 보도를 반박하는 보도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5월 18일 “5ㆍ18의 북한 개입설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신군부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자신들의 주장이 과장이었다고 털어놨다”고 보도했으며 5ㆍ18을 현장에서 샅샅이 취재하고 그 내용을 기초로 『10일간의 취재수첩』을 펴낸 김영택 전 동아일보 기자는 (북한 개입설을)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5월 20일자에서도 주한 미국대사관이 유네스코 측에 “5ㆍ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의 가치를 인정하며 보관하겠다”는 동의서를 보낸 것을 1면 기사에서 전하며 “이런 동의서를 보낸 것은 미국 정부가 5ㆍ18을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민주화운동으로 보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 해석했다. 《동아일보》는 “유네스코는 북한군 개입설이나 폭동설 등은 허위라고 결론짓고 2011년 5월 25일 만장일치로 (5ㆍ18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고 보도했다. 사고는 채널A가 치고 수습은 《동아일보》가 하는 격이었다.
결국 채널A는 21일 <김광현의 탕탕평평>과 메인 뉴스 <채널A종합뉴스>에서 사과 방송을 했다. TV조선 또한 22일 메인 뉴스를 통해 “진실과 거리가 먼 발언이 방영돼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과 관련 단체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5ㆍ18 북한군 개입설 진실을 밝힌다’란 기획 아래 6개의 리포트를 통해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했다. TV조선과 채널A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이 컸던 것에 비하면 징계는 가벼웠고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수많은 실패 속에 그저 게이트 키핑이 부족했던 한 번의 실수처럼 잊혔다. 사실 이 정도 사안이면 방송사가 문을 닫아야 했다.
표현의 자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이 있다. 독일은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형사처벌한다.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독일인은 없다. 한국은 어떠한가. 용납돼선 안 될 주장이 그럴듯한 가짜뉴스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희대의 왜곡방송 사건 진상을 온전히 추적하지 못했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가짜뉴스를 유포했던 방송사 사주들은 지금도 버젓이 방송 사업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봉하 사저가 495억 원짜리 ‘노무현 아방궁’이 되기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주간조선》은 악연이 깊다. 《주간조선》은 1991년 10월 6일자 「노무현 의원은 재산가인가」라는 기사에서 노무현 의원이 재산이 상당하다, 인권변호사 활동이 과장되었다, 요트 타기를 즐겼다, 노사분규 중재 과정에서 노사 양쪽에서 돈을 받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부정할 수 있을 만큼 악의적인 보도였다. 당시 노무현 의원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결과, 재판부는 1992년 《조선일보》에 2,000만 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가 깨끗한 정치인이고, 근로자와 농민들을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라는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재산을 얻기 위하여만 노력하는 부도덕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할 것이므로 피고들은 이 사건 기사에 의한 원고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보도는 대부분 과장 또는 왜곡된 것이었다. 노사 양쪽에서 돈을 받았다는 부분 역시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특히 “원고(노무현 의원)가 탄 요트는 제작비가 120만 원의 범선”이란 점을 언급한 뒤 “이런 사실은 누락한 채 요트는 일반적으로 모터를 부착한 고가품이고 요트 타기는 호화 사치성 오락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이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원고가 사치성 오락을 즐긴 것과 같은 인상을 주도록 의도되었다”고 판시했다.
노무현 아방궁 논란은 이렇듯 악연이 깊은 《주간조선》이 2007년 9월에 쓴 「봉하마을 ‘노무현 타운’ 6배 커졌다」란 제목의 커버스토리 지면에서 시작되었다. 《주간조선》은 노 대통령의 형 노건평 부부가 사저 옆 6개 필지를, 부산상고 동문 강 아무개가 노 대통령 생가 터 3개 필지를 각각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또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측근인 정 아무개가 사저 뒤쪽 산자락 2개 필지를 샀고 대통령 경호실이 3개 필지를 사들여 사저를 둘러싼 인근 14개 필지가 노 대통령 측근의 땅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주간조선》기사에 반박했다. 우선 7,000평 가까이 되는 사저 뒤편 임야의 주인인 정 아무개는 대통령과 안면도 없는 사람으로 귀향 발표 전에 투자 차원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생가 터는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창인 강 아무개가 생가 복원을 염두에 두고 구입한 것이고, 대통령 경호실 소유 토지는 경호대기동 신축을 위해 법에 따라 구입한 것으로 소유자들이 각기 다른 동기와 목적에 따라 취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간조선》 보도를 시작으로 《조선일보》ㆍ《중앙일보》ㆍ《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 부지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대라며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은 “사저 뒷산에 수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숲이 조성된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중앙일보》는 2007년 11월 10일자 「봉하마을에 ‘노무현 정원’ 만드나」라는 사설을 통해 봉하마을 주변 삼림을 건강한 숲(웰빙 숲) 가꾸기 사업 대상으로 정한 것을 비판했다. 웰빙 숲 조성이 대통령 개인을 위한 특혜성 사업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봉화산 웰빙 숲 사업은 노 대통령이 귀향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당시 한나라당 출신 김해시장이 2005년부터 추진한 사업이었다.
《조선일보》는 2007년 9월 10일자 「노무현 타운」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작년에 대통령이 노사모 회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모아 ‘(우리가) 청와대에서 삼겹살을 못 먹게 되면 고향에 넓은 마당을 만들어놓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편협한 활동으로 국민의 혐오감을 산 노사모가 앞으로 1만 평짜리 노무현 타운에서 보란 듯이 파티를 열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언론들도 잇따라 전임 대통령들과 사저 규모를 비교한 기사를 실어 호화 사저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당시 사저 규모가 아닌 사저 땅값을 확인해보면 노 대통령 사저 규모의 5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터의 개별 공시지가는 15억 원으로 노 대통령 사저 터 구입 가격 1억 9,000만 원의 7배가 넘었다. 면적만으로 호화 사저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일명 ‘노무현 타운’은 봉하마을과 직접 관련이 없는 김해시의 각종 사업으로까지 번졌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수십억 원이라던 봉하마을 관련 예산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나중에는 495억 원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2007년 김해시는 봉화산 일원 관광 자원 개발 사업 기본 계획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복원을 포함해 봉하마을 일대 10개 사업에 시도 예산 75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사업을 처음으로 제안한 건 한나라당 소속 김해시 의원이었다. 관광 사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제안한 사업 예산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동아일보》와 《경향일보》 등은 봉하마을 단장에 모두 75억 원이 투입된다고 보도했다.
반면 《조선일보》ㆍ《중앙일보》ㆍ《문화일보》는 봉하마을 단장에 165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며 다르게 보도했다. 봉화산 웰빙 숲 조성 사업 예산 30억 원과 봉하마을에서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화포천 생태 환경 복원 사업비 60억 원을 포함시킨 결과였다. 이후 동아일보는 김해시 진영시민문화센터 건립 예산 255억 원을 포함시켜 봉하마을 관련 예산이 모두 420억 원이라고 보도했고, 닷새 뒤 《조선일보》는 「봉하마을 일대에 세금 460억 쏟아 붇는다」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 기사에는 김해시 진영공설운동장 개보수 예산 40억 원이 봉하마을 관련 예산으로 새롭게 포함되었다. 여기에 더해 2008년 2월 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해당 예산이 495억 원까지 액수가 늘어났다. 법에 근거해 짓고 있는 대통령 경호ㆍ경비 시설 예산 35억 원까지 포함시킨 결과였다. 결국 김해시에서 하는 모든 개발 사업은 노무현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로 보도가 계속되었다.
‘노무현 타운’ 논란은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10월 ‘노무현 아방궁’ 논란으로 번졌다. 한나라당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 측근인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의 쌀 직불금 부당 수령 의혹이 불거지자 봉화 대 봉하로 맞불을 놓겠다면서 ‘노무현 아방궁’ 프레임을 만들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2008년 10월 14일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처럼 아방궁 지어놓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측과 민주당은 “기자들은 제발 한 번이라도 직접 봉하마을을 찾아와서 보고 진짜 아방궁인지 아닌지 확인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9년 5월, ‘아방궁에서 산다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전직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간이 흘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2016년 5월 1일 일반인에게 첫 공개되었다. 같은 날 《연합뉴스》는 “노무현재단이 1일 일반에 개방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사저는 아방궁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형태라는 소감이 대다수”라고 보도했다. 《한겨레》 역시 2일자 「“아방궁이긴커녕 소박한 집이네요”」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언론에서 아방궁이라고 하도 떠들어서 집이 무척 크고 화려할 줄 알았는데, 한마디로 소박했다. 사랑채에 손녀의 낙서를 지우지 않고 놔둔 것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고 말한 방문객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국민일보》도 같은 날 「소박하고 투박… 서재엔 1,000권의 장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울신문》도 「봉하 사저 일반 공개… 밀짚모자 쓰던 소박한 흔적 고스란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관련 소식을 전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 지면엔 관련 기사가 없었다.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 다음 날 국회에서는 포항 지역 사업 예산이 330억 원 추가 배정되어 통과되었다.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포항은 이명박 당선자의 고향이었다. ‘아방궁’ 프레임에 확성기 역할을 했던 언론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