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치킨
메린 매케나 지음 | 에코리브르
빅 치킨 - 항생제는 농업과 식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메린 매케나 지음
에코리브르 / 2019년 3월 / 512쪽 / 25,000원
닭은 어쩌다 중요해졌나
질병, 그리고 운 나쁜 해: 릭 실러는 병원에 입원해본 적도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3년 9월 어느 아침, 산호세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열이 펄펄 끓는 채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 다리는 평상시보다 3배 정도 부어 있었고 자주색을 띠었으며, 심하게 부푼 데다 염증으로 딱딱해져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였다. 몸 어딘가가 감염되어 세균이 혈류 속으로 퍼져나간 게 분명했다. 이렇게 결론 내린 의료진은 그의 정맥에 다양한 유형의 병원균을 퇴치할 수 있는 광역스펙트럼 항생제를 투여했고, 하루가 지나자 붓기는 가라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실러가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아픈 다리로 체중을 버텨보려 애쓰고 있을 때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응급실로 오기 전 구토와 설사에 시달리며 동네 병원을 찾았을 때 그에게 받아보라고 권한 검사의 결과를 받아 든 주치의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주치의가 물었다.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실러가 대답했다. “저 지금 입원 중인데 거의 죽다 살아났어요.” 주치의는 전화를 끊고 그를 돌보고 있는 병원 담당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검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살모넬라균은 식품매개 질환을 일으키는 흔한 원인이다. 원인을 파악한 의료진은 거기에 맞는 치료를 했고, 며칠 뒤 열이 내리고 걸을 수 있게 된 실러는 퇴원했다.
몇 주 뒤 캘리포니아 주 보건부의 조사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실러는 비로소 자신이 왜 아팠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조사관 에이다 유(Ada Yue)는 그의 감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실러는 그녀에게 며칠 전에 그가 먹은 패스트푸드 간식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요, 그보다 더 오래 걸려요.” 그녀는 그가 아프기 몇 주 전에 장을 보거나 음식을 사 먹은 장소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가 어째서 질문을 그렇게나 많이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의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이 거의 동시에 발병했는데, 같은 식품이 그들 모두에게 병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당시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감시하는 연방기관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캘리포니아 주 보건부와 손잡고 그 가능성을 좁히는 작업을 벌이는 중이었는데, 그들은 주범으로 떠오를 소지가 있는 몇 가지 식품에 관심을 집중했다. 특히 닭고기를 구입한 적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내약제 감염’ 하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들, 즉 인생 말년을 요양병원에서 보내는 사람들, 혹은 만성 소모성 질환과 씨름하는 사람들에게나 발병하는 것이라고 넘겨짚기 십상이다. 하지만 내약제 감염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스포츠 선수, 피어싱 하는 10대,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 등 일반인들이 흔히 겪을 수 있다. 그리고 내약제 세균은 매년 적어도 7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원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항생제균은 수백만 건의 질병(미국에서만 매년 200만 건)을 일으키며, 수십억 달러의 의료비를 지출하도록 만들고, 임금을 줄이고, 국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2050년이 되면 항생제 내성은 세계적으로 매년 100조의 비용을 발생시킬 것으로 추정된다.
항생제가 등장한 이래 병원균은 줄곧 자기들을 죽이고자 고안된 항생제에 맞서 방어기제를 키워왔다. 예로 페니실린은 1940년대에 나왔는데 1950년대에 그에 대한 내성이 세계를 휩쓸었다. 1948년에 등장한 테트라사이클린은 1950년대를 거치면서 내성이 생겨 약효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에리트로마이신은 1952년에 발견되었는데 1955년에 내성이 나타났다. 실험실에서 합성한 페니실린 사촌뻘인 메티실린은 1960년 페니실린 내성에 맞서고자 개발되었는데,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포도상구균이 그에 맞서는 방어기제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이 균은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상구균(MRSA)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에 새로운 항생제들이 개발되었지만 역시나 그 선배들과 같은 길을 밟았다.
사람들은 항생제가 빠르게 내성을 키운 것과 관련하여 그저 의료계가 오랫동안 약물을 남용한 데 따른 결과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항생제는 초기부터 또 하나의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식용으로 사육되는 동물에게 투여된 것이다. 고기로 팔려나갈 운명인 동물은 상시적으로 사료와 식수를 통해 항생제를 제공받는데, 그 대부분은 인간에게 사용될 때와 달리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항생제는 식용 동물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더 빨리 무게를 늘리도록 하거나, 밀집된 축산 환경에 취약한 질병에 걸리지 않게끔 예방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는 가축 사육에 쓰인 약물에 내성이 생기면, 결국 인간이 그 약물을 사용할 때의 유용성마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소수의 통찰력 있는 연구자들은 내성균이 가축에게서 생겨나고 급기야 농장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조용히 확산할 거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수십 년 동안 묵살되었다. 내성균이 농장을 벗어나는 간단한 경로는 가축의 최종 산물인 육류를 통해서다. 하지만 내성균은 두엄, 폭풍우에 의한 유출수, 지하수, 먼지의 형태로, 농장에서 일하거나 거기서 생활하는 이들의 피부나 의복, 미생물 편승자를 통해 농장을 벗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빠져나간 유기체는 추적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확산하며, 질병을 일으키고, 발원한 농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질병통제예방센터 소속 과학자들이 실러를 주저앉힌 살모넬라균 질환을 추적하고 있을 무렵, 세계의 정반대 지역에서 일군의 과학자들이 또 한 가지 내성균을 추적하고 있었다. 중국 과학자들은 집중 사육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가 내성균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을 점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13년 7월 그들은 상하이 외곽의 돼지 두엄에서 대장균의 변종을 발견했다. 이거야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일이었다. 수많은 대장균 변종이 대다수 동물의 내장을 거처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장균의 내용은 이례적이고 놀라웠다. 전에 아무도 본 적 없는 유전자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콜리스틴(colistin)이라는 약물에 내성을 부여하는 유전자였다.
콜리스틴은 1949년에 발견된 약물인데, 의료계는 수십 년 동안 그 약물을 조악하며 독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즉 콜리스틴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터라 병원균도 두 번 다시 그 약물과 접할 일이 없었으며, 자연히 그에 대한 방어기제를 생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농업계는 진작부터 그것을 써오고 있었던 것이다. 콜리스틴은 나온 지 한참 된 화합물이라 값이 쌌고 따라서 조밀한 우리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내장이나 폐의 감염을 미연에 막아주는 저렴한 조치였다. 그리고 아무도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 중국의 연구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콜리스틴이 안전하다는 가정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돼지에게서 새로운 유전자를 발견했다. 세포분열 할 때 유전적으로 물려받음으로써, 이 세균에서 저 세균으로 점프함으로써 퍼져나가는 세포 내의 독립적인 DNA 플라스미드 루프에서였다. 이는 콜리스틴 내성이 부지불식간에 세균 세계에 퍼져나갈 수 있음을 뜻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채 3년도 되지 않아 아시아ㆍ아프리카ㆍ유럽ㆍ남아메리카의 역학자들은 30개가 넘는 국가에서 동물ㆍ환경ㆍ사람을 조사한 결과 그 내성 부여 유전자를 확인했다.
그 국가들에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MCR이라 불리는 콜리스틴 내성 유전자가 처음 발견된 것은 펜실베이니아 주에 사는 모 여성에게서였다. 그녀는 그 유전자를 저도 모르게 지니고 있었다. MCR은 뉴욕 주와 뉴저지 주에 거주하는 남성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그들 역시 스스로가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코네티컷 주의 유아 등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가운데 누구도 콜리스틴 내성 감염에 걸려서 앓지는 않았다. 그 몹쓸 유전자를 보유한 이들은 대개 다 마찬가지였다. 콜리스틴 내성 감염은 의료계에서 콜리스틴 처방 사례가 극히 드물었으므로 잠정 유보되어 있기는 했지만 점화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전염병이었다.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간 콜리스틴 내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농업계가 그 항생제를 사용함으로써 빚어내고 확산한 결과였다.
그리고 2013년 가을 미국 정부가 농장에서 쓰이는 항생제를 연방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해 조치에 나섰다. FDA는 2013년 12월 새로운 정책을 시행했는데, 3년의 말미를 주면서 농업계가 성장 촉진제를 포기하고 기타 항생제 사용에 대한 통제권을 수의사에게 넘기도록 한 것이다. 이 개선안의 기한은 2017년 1월 1일에 만료되지만, 그 조치가 얼마나 효율적일지는 몇 년 새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2013년 가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살모넬라균에 의한 대규모 발병, 콜리스틴 내성에 대한 인지, 늦게나마 농장에서 항생제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거의 70년 동안 진행되어온 사태에서 일대 분수령이 되어주었다.
농업에 쓰인 항생제의 긍정적 효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부정적 영향을 드러내고 있는 역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가금류다. 닭은 성장 촉진제라 불리게 되는 약물이 쓰인 첫 번째 동물이다. 또 과학자들이 날마다 일정량의 항생제를 투여하면 밀집 사육으로 인해 걸리기 쉬운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음을 실제로 증명해 보인 최초의 대상도 바로 닭이다. 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계인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책무에 힘입어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동물이기도 하다. 오늘날 육용 닭고기의 도살 체중은 70년 전에 비해 배로 불어났으며, 같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시간은 절반으로 줄었다. 또 지난 70년 동안 닭고기의 위상은 특별한 날에만 내놓는 귀하고 비싼 요리에서 미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육류이자 세계인이 소비하는 육류 가운데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육류로 달라졌다. 최근까지만 해도 닭고기의 이러한 변신은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2013년 이후 닭고기의 역사는 변곡점을 맞았다. 그 업계 최대의 생산 기업들 가운데 몇몇이 항생제 사용을 그만둔 것이다. 미국 최대의 식품 소매업체 가운데 일부가 상시적 약물 사용 없이 키운 가금만 취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병원, 대학 캠퍼스, 학교, 레스토랑 체인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업계는 완강하게 버텼지만 가금업계는 총대를 메고 대열의 선봉에 섰다.
한편 복잡한 농업 항생제 도입의 경위, 닭의 부상과 변신은 주로 자기 과신, 혁신에 대한 낭만적 기대감, 수익을 향한 유혹, 의도치 않은 결과에 대한 예견 실패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다른 한편 우리는 이를 계기로 어떻게 하면 가금 업계가 스스로의 어두운 과거를 평가하고 청산할지 제시함으로써 세계 나머지 국가는 식품 생산 시 실러 같은 환자가 다수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이나 유럽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닭은 어쩌다 위험해졌나
교배종의 개가: 1948년 토머스 주크스가 실험을 수행하기 전, 미국에 농장이 600만 개가 넘었다. 농장들은 대부분 영세했으며, 여러 가지 작물 재배와 동물 사육을 겸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농장에서는 닭을 길렀다. 어떤 유형의 닭을 기를 것이냐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선택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농장에서 키우는 닭의 무리는 소규모로 몇 마리에서 200마리 정도였고, 대다수는 닭을 키우는 목적이 달걀을 얻기 위해서였다. 닭을 육류용으로 파는 것은 오직 암탉이 퇴계가 되었거나 수컷 병아리로 부화한 경우뿐이었다.
얼마나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닭 품종을 선택한 것은 대공황의 궁핍과 제2차 세계대전의 구속 아래에서는 현명한 전략이었다. 닭 자체를 잡아먹지 않고도 그 닭으로부터 최대한의 단백질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배급하던 상황에서 벗어나자 달걀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으며, 맛있는 근육이 부족한 산란 암탉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대안이었다. 사람들은 전쟁을 지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꺼이 고기 섭취를 참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고기를 원 없이 좀 먹고 싶었다. 똑똑한 소매업자가 그에 주목했다.
A&P 푸드스토어스라는 슈퍼마켓 체인에서 가금 연구를 책임지고 있던 하워드 C. 피어스였다. 그는 1944년 11월 캐나다에서 열린 한 가금 회의에 참가해, 누군가가 나서서 호화로운 닭, 즉 칠면조처럼 보드라운 가슴살이 붙은 닭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듬해 여름 그의 바람은 희한한 방식으로 구현될 기회를 맞았다. 다름 아니라 개선된 닭 품종을 개발하려는 취지에서 농무부가 주최하고 미국의 주요 가금 및 달걀 생산업체들과 A&P 푸드스토어스가 후원하는 ‘미래의 닭’ 경연대회가 열린 것이다. 1946년 주 경연대회로 막을 연 ‘미래의 닭’은 1947년 지역 심사를 거쳐 1948년 마침내 델라웨어 대학 농업시험장에서 개최된 전국 결승전으로 마무리되었다.
경합을 벌이고 싶은 사람(소농에서 대기업을 대표하는 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모두에게 그 경연대회가 바라는 육질이 풍부하고 튼튼한 닭 품종을 고안하고 육종하는 데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들은 그 목표에 도달한 다음 자신들이 얻은 품종이 재생산 가능하다는 것을, 즉 3개년에 걸친 최종 미계(美鷄) 선발대회까지 이어질 만큼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충분한 개체를 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의미심장한 도전이었다. 더 나은 품종을 개발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의 숙원사업이었지만, 믿을 만한 교배종을 얻어내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연대회의 최종단계에서는 참가자 40명 가운데 오직 8명만이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품종들을 상호교배해 얻은 닭을 출품했다.
1948년 6월 24일,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차점자는 코네티컷 주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 농부의 10대 아들 헨리 새글리오였다. 그는 자기 가족의 순종 백색플리머스록을 육질이 풍부하고 근육이 발달한 닭 품종으로 길러냈다. 대회 우승자는 캘리포니아 주의 찰스 반트레스였다. 그는 인기 있는 육계인 뉴햄프셔종과 캘리포니아 주의 코니시종을 교배해 깃털이 붉은 잡종을 얻어냈다. 3년 뒤 열린 이 경연대회의 후속판은 그 시대를 성큼 더 앞당겨주었다. 또 다른 교배종을 출품함으로써 다시금 순종 닭을 밀어낸 반트레스가 한 번 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959년 반트레스의 교배종이 미국 육계 시장에서 종계의 60퍼센트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미래의 닭’ 경연대회의 우승자들은 닭을 달라지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닭 산업을 되살려놓기까지 했다. 교배종을 얻기 위한 초기 시도들은 두 품종 간의 단교배에 그쳤다. 한 품종의 암컷과 다른 품종의 수컷 간에 이루어진 교배 말이다. 하지만 육종가들은 자신들이 사업적으로 원하는 특성을 재생산하기 위해 다중교배를 시도했다. 따라서 그들이 구축한 가계도의 복잡함은 그 닭을 교배한 기업 말고는 똑같은 닭을 재생할 재간이 없도록 보장해주었다. 새로 작물 농사를 지을 때마다 종자 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것과 같은 처지에 놓인 것이다.
1960년 이후 ‘미래의 닭’ 참가자가 아닌 기업은 하나도 그 사업에 진출하지 못했다(기업들의 통합ㆍ합병을 가속화했다). 2013년에 3대 기업 코브-반트레스, 아버에이커스를 흡수한 아비아젠, 유럽의 그루프그리모가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수십억 마리 육계 대부분의 유전적 특징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단 기업만 통합ㆍ합병되는 것도 아니었다. ‘미래의 닭’ 경연대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그 대회 이전에 존재하던 닭의 다양성마저 덩달아 줄어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