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클래식 수업
나웅준 지음 | 페이스메이커
퇴근길 클래식 수업
나웅준 지음
페이스메이커 / 2018년 12월 / 300쪽 / 16,000원
이야기로 즐기는 클래식 음악사
음악의 세종대왕과 새로운 대중음악
음악의 세종대왕, 귀도 다레초: 어떠한 물건이 만들어지고 정확하게 활용되기 위해선 하나의 규격이 필요하다. 음악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 찾을 수 있지만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또한 어디까지가 음악이고 어디까지가 소리인지에 대한 구분도 나누기 애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음악의 쓰임새를 확실히 규정할 수 있고, 또 어떻게 해야 음악이란 도구를 지속시킬 수 있을까? 바로 규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 그 규격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고 통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이어지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천 년 전인 1025년경에 그러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하나의 음악적 규격이 탄생했다. 바로 음계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누구나 다 아는 계이름이다. 음악의 언어이자 전 세계적으로 쓰는 음악의 공통어인 계이름은 이탈리아 음악 이론가 귀도 다레초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음악계에서 귀도 다레초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 비교할 수 있겠다. 물론 세종대왕이 더 후대의 인물이지만 그가 한글을 창시했듯 귀도 다레초도 음악의 언어인 계이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면 유사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계이름의 시초가 되는 ‘도’부터 ‘라’까지 ‘6음계(Hexachord System)’를 만들어 냈다.
당시 교회에서 사용되는 노래를 제대로 부르려면 약 10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성경을 바탕으로 찬양하는 노래이므로 정확하고 올바르게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마땅한 기준이 없으니 익히는 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교회에서 사용되는 음악, 즉 성가의 교육을 위한 각자만의 방식과 체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 방식들은 통일돼 있지 않았으며, 보통 구전으로 교육하고 따라 부르면서 습득해야 했다.
그러던 중 귀도 다레초가 하나의 패턴을 찾아냈다. 우리가 아는 삼행시와 같은 원리였는데, 문맥의 첫 글자들에서 패턴을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에 나오는 음계를 주제로 한 노래를 떠올리면 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음계는 시대가 흐르면서 수정되고 보안된 것이라 달라졌지만 초기의 틀은 귀도 다레초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계이름이 발명된 후에는 약 10년 가까이 걸리던 음악 교육 기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귀도 다레초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바로 악보 기보법이다. 순차적인 음들을 선 위, 그리고 선과 선 사이에 그려가며 표기하는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 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약 14세기경부터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5줄로 된 기보법이 자리 잡았다. 귀도 다레초가 음계를 발견한 계기가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종교음악에서 시작된 것처럼 중세 시대의 음악은 주로 종교적인 도구로 사용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 지도자들이 메시지를 명확하고 성스럽게 보이도록 전달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사실 중세 시대에도 종교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이 존재했다. 사랑을 주제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길 때 사용하는 음악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음악을 활용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겨진 대부분의 음악은 종교음악이 주를 이룬다. 왜냐하면 중세 시대는 교회가 사회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교회 건물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사용되는 교회음악과 교회 밖에서 사용되는 대중음악(음악사에선 주로 종교음악과 차이를 두기 위해 세속음악이라 칭하지만 이 책에선 대중음악으로 표기한다)은 은연중에 서로의 영향을 받아가며 발전하지만 몇 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음악 의 활용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방법이 나눠졌다는 점이다.
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차이점: 먼저 종교음악은 말 그대로 예배를 위한 음악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엄격하고 제약이 많았다.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했기에 그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노래, 즉 성악곡이 주로 이용됐고 악기의 연주는 금지됐다. 악기 연주가 금지된 이유는 간단하다. 아름다운 악기 소리에 사람들이 정신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또한 악기로는 가사를 표현할 수 없었다. 16세기 이후에 악기가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종교개혁 이후의 일이다. 당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서만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는 논리로 굉장히 통제적이고 엄격한 규칙을 요구했고, 여기에서 음악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따라서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은 지극히 완벽해야 했으며, 그 완벽에 대한 기준은 수학적 접근을 통해 측정됐다.
완벽에 대한 수학적인 기준은 음정을 수적 비율로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수적 비율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을 지나가면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 한다. 피타고라스가 지나갈 때 대장간에서 망치로 철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중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들을 찾아 망치의 무게를 측정했는데, 우리가 유리잔에 다른 양의 물을 채우고 두드리면 서로 다른 음정을 만들어 내며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연주했던 실로폰을 생각해보자. 각각 길이가 다른 쇠막대를 스틱으로 치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했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이 쇠막대 비율에 비밀이 있다.
피타고라스는 서로 다른 두 음의 경우 길이의 비가 만일 2:1이면 8도, 3:2이면 5도, 4:3이면 4도의 음정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간단한 정수의 비로 표현될수록 더 잘 어울리는 소리가 나고 복잡할수록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역시 발견했다. 그래서 실로폰의 쇠막대 길이 역시 이러한 비율을 따른다. 길이의 비율이 정수가 아니면 소리 또한 잘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에 1도, 4도, 5도, 8도만 ‘완전’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이는 것이다. 이처럼 완벽한 비율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정이 성스러운 음악이란 생각이 기저가 됐고, 이 이론이 중세 시대에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반대로 대중음악에서는 노래보다 악기 연주의 활용도가 더 높았다. 주로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한 음악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게 춤곡이다. 춤곡에 오히려 가사가 들어가면 자유롭게 즐기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시 교회의 상징과 권위를 봤을 때 밖에서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가볍게 사용되는 기악음악을 예배에 쓰는 것은 철저히 지양했을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종교음악은 교육과 예배의 지속성을 위해 음계가 계발되고 교육이 체계화되고 있었지만 대중음악은 즉흥연주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즉흥연주는 상황에 맞는 음악을 즉석에서 만들어내며 연주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음악이란 게 원래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아야만 살아남는 장르여서 아마도 그 시대 연주자들은 굉장히 전문적인 음악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사람이 먼저다, 르네상스 시대
새롭게 다시 태어난 클래식: 르네상스를 계기로 음악의 활용성이 커지면서 표현하고 즐기는 방식이 더 다양해졌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당연히 시장도 더 커졌고, 배고팠던 음악가들도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교회음악도 이런 영향을 받게 되면서 대중음악과 교회음악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물론 음악이 사용되는 목적에 따라 색깔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어느 한쪽의 음악만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예술이었던 과거 중세 시대와 비교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음악 자체가 하나의 문화와 예술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음악이 새롭게 다시 태어나 전성기를 맞이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다시 태어났다는 걸까? 우선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들의 인식 전환이 첫 번째 변화였다. 종교적인 도구에서 일상생활의 도구로 클래식의 용도가 전환되면서 극적이고 웅장했던 결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가사 그리기(Word Painting)’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기도 이때부터다. 예를 들어 가사에 ‘올라간다’라는 내용이 있으면 실제로 음이 순차적으로 올라가고, ‘내려간다’라는 내용이 있으면 실제로 순차적으로 하행하는 음계를 사용했다. 이렇게 가사와 음계가 조화를 이루니 조금 더 사실감이 높아졌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한 표현방법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완벽한 음악을 만들겠다는 논리로 수학적 접근을 추구했던 작곡가들도 이 무렵부터는 감각적 접근을 추구했다. 작곡가의 주관적인 생각이 음악에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대중음악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의 표현법들은 대체로 르네상스 시대에서 비롯됐다. 음악적 표현법과 동시에 노래방법도 정착됐는데 라틴어로 ‘합창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카펠라(A Cappela)’가 대표적이다. 현재 합창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인 4성부(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이때부터 정착됐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교회뿐만 아니라 유럽의 지방 귀족들까지 연주자와 음악가를 자신의 집에 상주시키고 후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다양한 음악이 안정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대표적인 지역이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인데, 부르고뉴의 상주 음악가들이 16세기 초까지 유럽의 음악을 선도했다고 한다. 그럼 왜 귀족들은 많은 예술가를 자신의 집에 상주시키고 후원까지 했을까? 그 이유는 음악이 권력을 상징하는 하나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귀족들이 ‘음악은 즐기는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은 일부의 놀이문화였지만 이러한 인식의 변화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 때부터 음악이 더 다양해졌고, 점차 하나의 산업이 되기 시작한다. 인식이 바뀌면서 르네상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수업이 일종의 인문학 교육으로 여겨졌다.
오늘부터 삐뚤어질 거야, 바로크 시대
더 화려하게, 더 빠르게: 바로크 시대는 중세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에서 보기 힘든 어떤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등장한 시기이다. 먼저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해 표현 자체에 중점을 두거나 사물을 묘사하게 됐다. 이전 종교음악처럼 종교적 메시지를 돋보이게 하거나 춤의 반주를 위한 목적이 아닌,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한 것이다. 그림으로 예를 들면 교회 모습과 인물화만 그리다가 이제 자연 등을 마음대로 그린 그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악기를 사용한 기악 음악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 이유는 한정된 사람의 목소리보다 악기가 더 많은 묘사와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래는 가사 전달력 때문에 음악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멜로디를 들어도 사람의 감정에 따라 슬프게 들릴 수도 있고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가사가 들어가면 가사가 제시해주는 내용대로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럼 바로크 시대에는 악기로 음악을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했을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음악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에 사람의 성장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처음 표현하거나 묘사할 때 굉장히 서툴다. 마치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통제받던 어떤 표현이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처음에는 과격하게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 표현이 그랬다. 우리가 잘 아는 ‘크레센도(점점 크게)’, ‘디크레센도(점점 작게)’는 지양한 채 음이 갑자기 커지거나 갑자기 작아졌다. 즉, 대비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음악의 빠르기도 대비적으로 달라졌다. 갑자기 빨라지거나 갑자기 느려지는 등 음악의 속도와 스타일이 급변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쉽게 비유하자면 가수가 빠른 댄스곡을 신나게 부르다가 갑자기 중간에 서정적인 멜로디로 분위기를 바꿔주고, 그리고 다시 갑자기 이전처럼 빠르게 부르는 것과 같다. 후대 학자들도 다양한 대비를 이용한 표현방법에 주목해 이 시기를 바로크 시대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고, 급변하는 음을 이 시기의 가장 큰 음악적 특징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표현이 부드러워지고 유해지면서 지금의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음악적 현상은 인간의 감정표현과 비슷한 점이 많다.
또 다른 변화는 바로 음악이 화려해졌다는 점이다. 이제 음악도 화장을 하듯 꾸미기 시작했다. 이러한 꾸밈의 대표적인 방식이 2개의 음을 빠르게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트릴(Trill)’이다. 이때는 주로 음악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화려하고 크게 끝나야 한다는 생각이 주를 이뤘는데, 트릴은 마지막 부분을 꾸밀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음악을 화려하게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이는 바로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음악도 당연히 작곡가와 같이 생산자가 있고 음악을 상황에 맞게 필요로 하는 소비자가 있는데, 그 소비자들의 요구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먼저 르네상스 후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인해 절대적이었던 교회의 권력이 분산되면서 왕권과 지방 군주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영국의 성공회와 이탈리아의 가톨릭, 독일의 루터교와 같이 각 나라에서 선택한 종교가 다양해지면서 독자적인 종교음악이 필요해졌다. 따라서 각 종교의 개성에 맞추기 위해 기존에 사용됐던 엄격한 규칙을 배제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독립적인 종교음악이 만들어진다.
클래식 히어로즈의 등장, 고전주의 시대
‘고전’이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일컫는 단어다. 고전의 외래어 표기법은 ‘클래식(Classic)’인데, 후대 학자들은 왜 바로크 시대 다음의 시기를 고전이라고 칭했을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클래식 음악사상 영향력이 가장 큰 3명의 스타 작곡가들이 이 시기에 같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3명의 음악가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그 작곡가들이 바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다. 이를 두고 때로는 ‘빈 고전주의’라고도 이야기한다. 필자는 따로 ‘클래식 히어로즈의 등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가 영화 속의 히어로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주로 지구를 지키거나 사회를 어지럽히는 악당에 맞서 싸워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선의의 행동이어서 열광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소수를 위한 음악보다 다수를 위한 음악, 즉 보편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발전시킨 음악가들이기 때문에 히어로즈라 명명했다. 물론 여전히 궁정음악가가 당시에는 최고의 자리였지만, 고전주의 시대 클래식의 흐름은 모두 보편적인 음악을 기준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다수를 위한 음악을 추구하다: 물론 이들이 다수를 위한 보편적인 음악을 추구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유럽에 계몽주의 사상이 성행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이 보편성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시민의 계급이 높아지면서 기존 궁정과 교회뿐만 아니라 중산층에서도 점차 음악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직접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당시 음악가들은 대중을 위한 음악 활동도 같이 병행하게 됐다. 대표 격인 것이 음악회였다.
다수의 서양음악사 문헌에는 고전주의 시대에 시작된 음악회를 ‘공공음악회’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고전주의 시대 이전 시기의 다른 음악회와 그 목적을 달리 설명하기 위해서인데, 이전까지 열린 음악회는 일반 시민도 관람할 수 있었으나 교회나 궁정에서 열리는 소수를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금 우리 시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을 공공음악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귀족이나 왕족, 교회를 위한 연주회가 아닌 일반 시민을 위한 음악회 말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티켓 판매에 의한 수익이 창출되기 시작했으며 수익을 높이기 위한 홍보도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