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
사이토 아키요시 지음 | 인물과사상사
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
사이토 아키요시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1월 / 256쪽 / 13,000원
성추행범은 누구인가?
성추행이라는 범죄
성추행(민폐방지조례 위반)은 어쩌다 같은 장소에 있게 된 생판 남인 가해자가 마음대로 하기 쉽다고 판단한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성추행을 “손 등 신체의 일부를 사용해 대상자의 신체에 의도적으로 접촉하거나 일방적으로 집요하게 밀착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여성은 거리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마침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끔찍한 일이다. 2015년 법무성 통계를 보면 강제 추행의 70퍼센트 이상이 모르는 사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추행이 대체로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예고 없이 이루어지는 폭력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추행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지하철 안이다. 일본 경찰청이 2016년 도쿄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를 정리한 내용을 보면 성추행 발생 장소는 지하철이 52.7퍼센트, 역 19.4퍼센트, 가게 안 11.5퍼센트, 거리 8.8퍼센트, 버스 0.5퍼센트, 기타 5.3퍼센트였다. 한눈에 보아도 지하철이 절반을 넘고, 버스와 비교하면 100배가량 차이가 난다.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려고 할 때, 역마다 역무원이 있는 지하철과 달리 버스 정류장에는 담당자가 없어서 신고하기 어렵다. 내가 만난 성추행 재범 방지 프로그램 참여자들도 약 50퍼센트가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사람들이었다.
성실한 그의 다른 얼굴
성범죄 관련 보도를 보면 가해자의 특수성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성욕이 왕성했는지,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한다. 그런 인물 묘사를 보면 성범죄자를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괴물 같은 존재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여성이라면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남성이라면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만난 성범죄자들은 어디에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남성들이었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범행이 발각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설마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고 말할 만한 인물들이다.
특히 성추행범은 대개 평범한 사람들이다. 부모의 축복 속에 태어나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를 졸업한 뒤 취직하고 결혼해 자녀를 둔 남성으로, 외모도 평범하다. 특히 약하고 섬세해 보이는 유형이 많아서 여성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도 많다. 아내, 부모, 자녀, 친구, 회사 동료 중 누구도 그가 성추행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이것이 성추행범의 특징이다. 지하철을 탔을 때 난폭해 보이는 남성은 경계하고 조심하지만, 평범한 남성은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경계심을 유발하지 않는 그 특징이 성추행 범에게는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대졸, 회사원, 유부남
성추행 재범 방지 프로그램 참여자의 학력을 조사해보았더니,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대졸이었다. 대학원 졸업자까지 합하면 고학력자의 비율은 54퍼센트에 달한다. 2010년 인구 통계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남성 중 대학교나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의 비율이 약 27퍼센트이니 성추행범의 학력은 평균을 훨씬 웃도는 셈이다. 직업으로는 회사원이 50퍼센트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성추행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지하철인데,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출퇴근길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지하철이기 때문이다. 성추행은 일상 중에 벌어지는 범죄이므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진입 장벽이 무척 낮고 일상 안에 스며들어 있어 상습적으로 저지르기도 쉽다.
2015년 통계를 보면, 일반 범죄자는 34.8퍼센트가 피고용인ㆍ노동자이고 실업자와 무직자는 31.2퍼센트였다. 그에 비해 강제 추행범은 58.4퍼센트가 피고용인ㆍ노동자, 14.6퍼센트가 실업자와 무직자였다. 성범죄의 경우 무직자보다 피고용인ㆍ노동자, 이른바 월급쟁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면담한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았더니 기혼 43퍼센트, 미혼 41퍼센트, 이혼 8퍼센트 순이었다. 성범죄자의 절반이 기혼자였다. 성범죄는 여성을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이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저지를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혼 성추행범의 부부 관계에 대해서도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부부생활과 성추행은 전혀 관계가 없다.
결혼한 성추행범 중에는 자녀를 둔 사람도 있다. 나는 자녀를 끔찍이 사랑하고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성추행범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딸을 둔 아버지도 있었다. 그들이 성추행한 여성도 누군가의 딸이고, 그녀에게도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그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성추행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공감 능력이 낮았다. 가해자에게 “만약 당신 딸이 그런 피해를 당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묻자 순간 강한 분노를 보였지만, 자기 딸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능력이나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마음은 느낄 수 없었다. 배우자나 자녀가 있어도 성추행을 반복하는 남성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종합해보았을 때, 성추행범의 특징을 추려볼 수 있다.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인 기혼 남성.’ 이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보통 남성들이다. 이는 평범한 남성도 계기가 생기면 성추행에 손을 뻗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성추행을 시작하는 계기는 무엇일까?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성추행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을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제2장 성추행범 심리 해부
성 의존증의 7가지 특징
나는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저지른 끝에 나를 찾아온 남성들을 ‘강제적 성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성 의존증 환자’라고 본다. ‘의존증’이란 악순환의 연속인 줄 알면서도 ‘이번 한 번만’이라며 끊지도 예전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술, 마약, 도박 등의 경우에서 보듯이 의존증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잃게 한다.
범죄화한 성 의존증, 즉 성기호 장애는 엄연히 타인에 대한 폭력이다. 그중 하나인 성추행 역시 타인의 신체적 안전을 침해하는 폭력 행위다. 성추행을 포함한 성기호 장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위험을 알면서 자신의 성적 욕구와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파탄을 겪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상태.” 여기서 위험이란 체포를 말한다. 성추행범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쳤다는 의식이 없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성추행에 따르는 위험이란 체포되어 범죄자가 되고, 그로 인해 가정과 직장을 잃는 것뿐이다. 의존증에는 7가지 특징이 있는데 성추행은 7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 강박성: 안하고는 못 산다는 심리 상태다. 성추행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는 못 배긴다. 성추행을 저지를 때뿐 아니라 온종일 성추행을 생각하며 강하게 집착한다. ▲ 반복성: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성추행을 수차례 반복한다. 여성이 저항하는 정도로는 멈출 수 없다. 체포된다 해도 벌금이나 합의금을 내고 풀려나면 다시 성추행을 반복한다. 처벌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재범 방지를 위한 치료가 필요하다.▲ 행동성: 옳고 그름을 구별하면서도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행동에 옮긴다. 그들은 “스위치가 켜졌다.”라고 표현한다. 스위치가 켜져서 성추행을 저질렀을 뿐,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스위치가 켜지면 본인의 충동을 멈출 수 없는 것으로 자각한다.▲ 탐욕성: 강한 자극을 추구한다. 성추행 경험은 강한 자극을 주므로 웬만한 장애에는 굴하지 않는다. 위험한 상황에 도전함으로써 더 강한 자극을 꾀하는 사람도 있다. ▲ 유해성: 성추행은 유해한 행위로 피해자의 입장은 둘째로 쳐도, 성추행하는 본인에게 미치는 사회적ㆍ경제적 손실이 크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범행을 저지른다.▲ 자아 친화성: 성추행은 유해한 행위기 때문에, 이득이 없으면 저지를 이유가 없다. 그 이득이란 상대방에 대한 지배욕과 정복욕을 채우거나 성취감을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가해자 관점에서 성추행 행위는 이득이 매우 큰 행위다. ▲ 행위의 악화성: 성추행을 하다 보면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처음에는 엉덩이에 손등을 대는 정도였다가 점점 대범하게 만지고 급기야 속옷 안에 손을 넣는다. 빈도도 잦아진다. 범행에 들이는 시간이 늘고 점점 위험한 상황에 도전하려 한다.
성욕이라는 핑계
성추행범은 성욕을 억누르지 못하는 사람 또는 성욕을 해결할 기회가 없는 인기 없는 남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는 성추행 행위에 이르는 동기를 성욕으로 보고, 그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성욕 해소라고 본 결과다. 그러나 성추행을 일으키는 요소는 성욕만이 아니다. 모든 성범죄의 동기를 성욕으로 환원하면 그 안에 담긴 폭력의 본질을 놓칠 수 있어 무척 위험하다. 내가 면담했던 성추행 가해자 200명을 대상으로 “성추행하는 동안 발기했는가?”라고 질문하자 응답자 중 절반이 성추행 행위 중 발기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발기는 남성의 성적 반응 중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발기하지 않았다면 성욕을 해결할 목적으로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추행 행위 중 발기한 사람이 일정 수 존재한다는 점에서 성욕 해소를 목적으로 한 성추행도 분명히 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을 한 뒤 화장실에서 자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들은 자위로 자신의 성추행 행위가 완결되었다고 느낀다고 한다.
괴롭지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모든 의존증은 내면에 있는 심적 고통, 불안감, 고독감을 일시적으로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나는 이를 ‘의존증의 자기 치료가설’이라고 부른다. 의존증 중에서도 약물 의존이나 알코올 의존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술이나 약물은 일종의 진통제로 몸과 마음을 마비시켜 잠깐이나마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의지가 약해서 의존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 의존증에 기댄다.
성추행은 도박과 마찬가지로 과정 의존이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열등감, 불안, 고독에 마음이 지배당했을 때 잠깐이라도 그것을 잊고 싶다는 마음에 도박이나 성추행에 빠진다. 성추행범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가해 행동을 하는데, 일본 남성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성추행으로 치닫거나 빈도가 높아져 상습범이 된다. “뭐라고 표현은 못 하겠는데, 괴로워 못 견디겠다”고 말하며 그런 상태를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어 한다. 드문 경우지만, 유소년기부터 앓았던 공황 발작을 진정시키려고 성추행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내가 상담한 한 남성은 고등학생 때부터 공황 발작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성추행을 반복했다. 수차례 신고당해 부모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성추행을 계속하다가 결국 직장인이 되어서 체포되었다. 정말 성추행으로 발작을 멈출 수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그러나 성추행을 하는 동안 발작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진실이었다. 발작으로 아무리 고통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여성에게 가해 행위를 해도 되는 명분이 되지는 못한다. 가해자가 처한 상황과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가 자신의 고통을 일찍 자각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아 다른 대처 행동을 배웠다면,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고 고통을 치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3장 인지 왜곡에도 이유가 있다
비뚤어진 여성관이 진짜 문제
성추행범들 사이에는 보편적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퍼져있다. ‘여자들도 처음에는 싫어하지만 결국 좋아하게 된다’, ‘살짝 만지는 정도는 괜찮다. 훨씬 나쁜 짓을 하는 놈들도 많다’, ‘지하철 안에서 틈을 보이거나 자는 여자는 대놓고 만지라는 게 아닌가?’, ‘조금 만졌다고 닳는 건 아니지 않은가’ 등등.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니다. 범죄의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며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본심이 드러난다. 나는 성추행범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인지 왜곡이라고 부른다. 성범죄자의 실태를 이해하려면 인지 왜곡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우연한 계기로 성추행을 시작한 사람이 많다. 이들 모두가 인지 왜곡을 겪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 식으로 말하면, 그저 표적이 나타나서 저질렀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들은 ‘들키지 않았다’, ‘의외로 쉬웠다’, ‘여자도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인지 왜곡이 시작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니 성추행을 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성추행을 하고 싶으니 계속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이를 위해 행위를 정당화하고 성추행을 지속하기 위한 논리를 자기도 모르게 쌓아간다. ‘성추행은 범죄고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악랄한 폭력 행위다’라는 생각의 한편에 ‘세상에는 만져주기를 바라는 여자도 있으니 만져준다’는 논리가 있다. 둘 중 어느 쪽 논리가 성추행범에게 편한지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해진다. 도덕적으로 옳든 옳지 않든 그들은 자신에게 편한 논리가 중요하다. 성추행을 계속하기 위해 그들은 인지를 왜곡하기 시작하고, 성추행을 거듭할 때마다 왜곡의 정도는 심해진다. 왜곡 된 인지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사회 속에서 인지가 왜곡된다.
그렇다면 왜곡된 인지를 바로잡으면 성추행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재범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성범죄 재범 방지 프로그램에서는 인지 왜곡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들이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바탕에는 반드시 인지 왜곡이 존재하므로 이를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지 왜곡을 본인의 힘만으로 깨닫기는 무척 어려울 뿐 아니라 바로잡기는 더욱 어렵다. 제삼자가 돕는다고 해도 쉽지 않다. 당사자에게는 왜곡된 인지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성추행에 빠져 있던 사람일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오랜 믿음을 부정당하는 것은 신체가 잘려나가는 것에 버금가는 고통이다. 왜곡된 인지도 마찬가지다.
나는 문제의 본질은 더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지 왜곡의 가장 안쪽에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갖고 있던 여성관이 있다. 자신이 만든 여성관도 있고, 부모님을 비롯해 다른 부부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학습하거나 앞세대에게서 배운 여성관도 있다. 그 안에는 우리 사회가 남녀를 대하는 방법, 기대하는 역할, 성차별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 사회에는 여전히 성차별과 남존여비식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으며, 이를 내면화한 사람이 많다. 가정ㆍ학교ㆍ사회에서 남성의 역할은 이것이고 여성의 역할은 저것이라는 전근대적 성 역할을 여전히 강요하고 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런 방식이 정말 옳은지에 대한 검증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암암리에 머릿속에 각인해 전제로 삼은 탓에 일본 사회에는 성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다.
일본은 ‘여성은 남성의 성을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사회 통념이 무척 뿌리 깊은 나라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 남성의 성적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서비스가 넘쳐난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도 허다하다. 이것이 가정에서는 가정 폭력의 형태로 표출된다. 남편은 피임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아내가 임신하면 낙태를 강요하고, 아내가 싫어하는데도 성관계를 요구한다. 부부라 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강간이다. 그런데도 부부간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남편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아내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남존여비식 여성관이 뿌리내린 사회에서는 인지 왜곡이 싹트기 쉽다. 사회 통념은 쉽게 의심받지 않는다. 당연하게 배워 머릿속에 새긴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인지 왜곡을 바꾸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