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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힘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 끌레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힘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끌레마 / 2018년 12월 / 307쪽 / 16,000원





천재 시인 키츠가 시작한 소극적 수용력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영국의 천재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1795년에 런던에서 태어났는데, 향락을 좋아한 키츠의 어머니가 술을 즐겨 마셨기에 그는 태아성 알코올증후군을 앓았다. 키츠는 대도시 런던과 그 교외에 위치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803년에 동생 조지와 함께 레브런드 존 클라크라는 유명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804년 4월, 키츠의 아버지가 기숙사에 머물던 키츠와 조지를 만나러 말을 타고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낙마해 머리를 다쳤고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키츠의 어머니는 남편의 장례식이 끝난 지 두 달 만에 재혼했다. 키츠와 동생들은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으며, 고아 같은 처지가 되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특히 가깝게 지내던 인물이 교장의 아들인 찰스 카우던 클라크였다. 부모와도 연을 끊고 아이들을 버리고 재혼한 어머니는 이후 알코올의존증이 더욱 심해져 결국 남편과도 이혼했고, 1801년 3월 서른다섯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문학과 의사의 길: 키츠의 친구인 카우던 클라크는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키츠에게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를 영어로 번역해보라고 권했다. 안타깝게도 키츠가 번역한 원고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장대한 서사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가 시를 쓰는 기술을 익힌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열다섯 살이던 키츠는 조부모의 주치의인 토마스 해먼드의 집에 도제로 머물렀다. 도제 수업은 5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해먼드와 원만하게 지내지 못한 키츠는 4년 뒤에 스승의 곁을 떠났고, 1814년부터 1816년까지 성 토마스 병원과 가이 병원에서 수업을 받았다. 키츠는 바쁜 와중에도 클라크의 권유로 에드먼드 스펜서나 존 밀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을 접하기 시작했다.

1813년에 키츠는 클라크 앞에서 자작시를 낭독하기 시작했고, 이후 키츠는 시를 꾸준히 썼다. 그런데 1816년 4월 28일, 즐겨 읽던 《이그재미너》를 펼친 키츠는 작은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기사에는 “다음 호에는 JㆍK를 비롯한 다른 작품이 연재된다.”라고 예고되어 있었다. 예고대로 《이그재미너》의 다음 호에는 자신의 시 “고독”이 JㆍK라는 이니셜로 실려 있었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이다. 같은 해 7월, 키츠는 의사면허 시험 1단계에 합격하고 정식 레지던트 자격을 얻었다.

같은 해 10월 19일, 친구인 클라크의 소개로 학창시절부터 존경해온 시인 리 헌트의 생일에 그의 집으로 초대받았는데, 헌트는 이 자리에서 키츠를 만나 그의 재능을 인정했고, 키츠는 이 자리에서 헌트에게 소개받은 화가 벤자민 로버트 헤이든과 이후 친구가 되었다. 키츠는 이날을 계기로 점차 시를 쓰는 데 열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그재미너》에 키츠의 작품이 연이어 실리게 되었다.

한편 키츠는 헌트의 친구이자 《이그재미너》의 유력한 기고자였던 피시 비시 셸리와도 알게 되었는데, 셸리는 키츠에게 시집을 출간할 것을 권했다. 마침내 1817년 3월 초, 《모닝 클로니클》지에 셸리의 글과 키츠의 첫 시집 『시집』의 출간 예고가 실리고, 그 다음 주에 간행된 시집은 세간의 찬사를 받았다. 4월이 되자 키츠는 포츠머스의 남쪽에 위치한 와이트 섬으로 내려가 두 번째 장편 산문시 『엔디미온』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엔디미온』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가 1,000행으로 구성된 장대한 시다. 키츠는 이곳에서 열흘 동안 머물다 런던으로 돌아 왔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 ‘수동적 능력’을 제시하다: 이 무렵 키츠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시를 쓰기 위해 키츠가 이끌어낸 개념이 ‘수동적 능력(passive capacity)’이다. 키츠는 이를 공감적 혹은 ‘객관적’ 상상력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상력은 마치 ‘에테르 같은 화학물질’처럼 연금술적인 변용과 순화를 이끌어내어 개별성을 없애준다. 키츠는 이 ‘굴복의 능력’으로 개별성을 없애야만 시인이 대상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817년 11월 말까지 키츠는 『엔디미온』의 마지막 500행을 완성했다. 그가 스물두 살이 막 되었을 무렵이었다. 『엔디미온』을 읽다 보면 키츠가 존경했던 셰익스피어가 지닌 ‘무감각의 감각(the feel of not feel)’을 깨닫게 된다. 이는 작가가 대상에 동화되어 마치 작품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듯한 경지를 뜻한다. 이 같은 ‘무감각의 감각’이나 ‘수동적 능력’ 같은 개념이 결국 1817년 12월에 키츠가 동생 조지와 톰 앞으로 보낸 편지에 등장하는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

1818년, 자주 각혈하던 동생 톰을 보며 키츠는 결핵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린다. 키츠는 자신까지 전염된 몸으로 톰을 간호하는 한편 작품 『히페리온』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톰은 1818년 12월에 숨을 거두었다. 아끼던 동생 톰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햄스테드에 사는 브론 부인이 키츠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키츠는 브론 부인의 딸 페니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시기부터 키츠의 시는 더욱 풍부해졌다. 예전보다 다양한 기교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재산도 없고,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심지어 병까지 앓고 있는 키츠 자신의 상황이 페니와의 약혼을 가로막았다.

키츠는 병마 그리고 생활고와 싸우면서도 계속해서 시를 썼다. 페니 옆집에 살면서도 키츠는 페니를 만나러 가는 시간을 짧게 제한했다. 자신이 토해내는 숨 때문에 브론 일가에게 결핵이 옮을까 걱정되어서였다. 자연히 두 사람은 짧은 편지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키츠는 페니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를 계속 자신의 곁에 두는 것은 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키츠는 매일 그녀가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런 키츠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여준 것은 그의 세 번째 시집 『라미아』의 출간 소식이었다. 여러 매체가 그의 시집에 찬사를 보냈고, 키츠를 사무엘 콜리지, 초서, 단테, 스펜서와 이름을 나란히 할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했다.

이 무렵 키츠는 의사 제임스 클라크로부터 ‘쇠약해진 환자는 겨울을 로마에서 보내는 것이 좋다’라는 조언을 받아들여, 11월 14일 로마에 도착했다. 연말이 지나고 1821년이 되자 키츠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2월 23일 금요일 오후 4시 반, 키츠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키츠가 죽을 때까지 자신을 돌봐 준 세번에게 부탁한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사람이 잠들다.’ 이름을 물에 쓰면 곧바로 사라진다. 키츠는 자신의 이름이 후세까지 기억되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그리고 그가 발견한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개념은 역사에 새롭게, 영원히 기록되었다.



정신과 의사 윌프레드 비온이 재발견하다 / 알고자 하는 뇌



키츠가 자신의 짧은 생애와 맞바꾼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개념은 오랜 세월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키츠가 그 표현을 남긴 것은 단 한 번, 그것도 동생들에게 쓴 편지에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키츠가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용어를 남긴 지 170년이 지난 뒤, 같은 영국 태생의 정신과 의사 윌프레드 비온이 이를 새로 언급한 것은 내게 거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비온이 소극적 수용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시와 산문 같은 문학 분야나 예술 분야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정신분석 분야에 소극적 수용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비온은 소극적 수용력을 유지하면서 치료자와 환자의 만남을 이어나가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박하고 솔직한 교류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정신분석 분야만이 아니라 상담으로 환자의 고민을 줄여나가는 정신치료에도 반드시 소극적 수용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소극적 수용력이 지닌 유익함이 문학ㆍ예술의 영역을 뛰어넘어 정신의학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 비온은 소극적 수용력을 키우는 것은 ‘기억도 없고, 이해도 없고, 욕망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소극적 수용력은 어설프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하나의 의문으로서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허공에 떠 있는 상태를 견뎌내는 힘이다. 그 앞에는 틀림없이 더욱 심오한 이해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확신하며 그 상황을 끝까지 견디도록 힘을 내는 것이다.



소극적 수용력과 의료



의학교육에서는 가능한 한 빨리 환자의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신속히 해결하는 것이 지상 과제이다. 이러한 방법은 소극적 수용력의 반대인 적극적 수용력을 기르는 방식이라 말할 수 있다. 진료 차트도 SOAP에 맞추어 기록한다. S는 Subject로, 환자의 주관적인 언행이나 증상을 의미한다. O는 Object로, 주치의가 진찰이나 검사를 통해 얻은 객관적 정보를 말한다. A는 Assessment로, S와 O를 바탕으로 환자의 상태를 판단ㆍ평가하는 것이다. P는 Plan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과 치료방침을 가리킨다. 이러한 SOAP 방식은 환자의 증상을 토대로 신속히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이렇게 척척 구분할 수 없다.

원인을 찾지 못할 때도 있고,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도 있으며, 해결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해 말기 암 환자를 앞에 둔 담당 의사가 과연 SOAP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죽어가는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치료법은 한정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되면 적극적 수용력만 갖춘 담당 의사에게는 그 환자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 자체가 고통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차라리 병실을 찾아가지 않는 편이 낫겠지.’ 하지만 이래서야 그 환자를 담당한 의사라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정신과 의사는 육체적인 문제를 일반 의사에게 맡기고 정신적인 문제를 도맡기 때문에 수비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임종기 환자를 볼 때는 이런 수비 범위가 애매해지므로 마치 외야와 내야를 혼자서 커버해야 하는 처치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죽어가는 임종기 환자를 눈앞에 둔 정신과 의사는 기억도, 이해도, 욕망도 없는 상태에 놓인다. 그야말로 비온이 지적한 대로 소극적 수용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과 의사에게는 눈앞에 닥친 상황을 어설프게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즉 갓난아기의 마음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그 누구도 홀로 고통을 견뎌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나눠줄 누군가가 있으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다.



카운슬링과 소극적 수용력



앞에서는 소극적 수용력이 임종기 의료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사실 소극적 수용력은 통상적인 정신과 진료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내가 정신과 클리닉을 개설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클리닉을 개업하고 10년이 지나는 동안, 환자의 진료 차트가 4,500개가 넘었다. 그중에는 가족에 대해 상담하러 오거나 다른 의사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신상상담 중에는 해결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거나 손 쓸 방도가 없는 고민이 많다. 담당 의사인 나는 그런 상황에서 일을 바로 매듭짓지 않고 그런 불확실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을 견딜 때면, 지금 이렇게 견디는 능력이 바로 소극적 수용력이라며 나 자신을 다독인다. 그러면 조금 더 힘이 난다.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환자를 만났다면 나는 아마 한참 전에 도망갔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므로 나를 찾아와도 소용이 없다며 환자를 돌려보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을 견딜 때면 정신과 의사로서 내가 지닌 기억, 이해, 욕망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게 남겨진 것은 눈앞에 보이는 환자뿐이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녔으며, 환자를 둘러싼 환경 또한 저마다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와서 하는 말을 나는 매번 깊이 음미할 뿐이다. 그런 게 무슨 치료냐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괴로워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의 괴로움을 곁에서 함께 지켜보고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면 의외로 그러한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괴로움을 알아주는 담당 의사가 있으면 환자는 어떻게든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창조행위와 소극적 수용력



정신의학에서 발견하는 창조행위: 키츠가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시를 짓고 셰익스피어에 심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정한 창조행위에는 소극적 수용력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창조(라틴어로 Creatio)의 기원은 ‘(무無에서 이 세상에) 존재시킨다(to bring into being)’는 것이다. 즉 창조행위는 인간이 신의 위치에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능력이 아닌, 소극적 수용력이 끼어들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설가는 불확실한 상황을 견딘다: 소극적 수용력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경계는 정신분석학 이론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도, 현상학을 학문으로 정착시킨 후설도 제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후설이 말한 현상학적 환원은 관찰자가 자신의 편견이나 주관을 지우고 지극히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다.

반면 프로이트가 주장한 자유연상법에서는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잠시 유보해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을 전부 이야기하게 한다. 지금 떠오르는 일이 중요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룬다. 물론 치료자도 마찬가지로 환자의 자유연상법이 진행되는 동안 그 어떤 목적도 갖지 않고 연상이나 치료의 새로운 전개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시종일관 자유롭게 생각을 열어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후설이 외부로부터 세계를 유보했다고 한다면, 프로이트는 내부로부터 이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소설을 쓴다는 것은 손전등 하나만을 들고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별의 위치를 확인하면 나아갈 방향을 대략 짐작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가는 이 길이 곧게 뻗어 있는지, 아니면 굽어 있는지, 막다른 길은 없는지 짐작할 수 없다. 평탄한 길일지, 자갈밭일지 도중에 시내를 건너야 할지 그 또한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손전등이 불빛을 비추는 곳뿐이다. 10미터를 걸어가면 다시 새로운 10미터가 앞에 펼쳐진다. 100미터 앞까지 한눈에 볼 수는 없다. 단편 소설이든 장편 소설이든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소설을 집필할 때 마지막 결말까지 전부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작가는 미리 결말을 정해두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하면 독자들이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재미없는 소설이 될 것이다. 나는 소설을 쓸 때 400자 원고지 네 장 분량 이후의 내용을 어떻게 전개할지 미리 정해놓지 않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므로 전반적인 방향은 보인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현재 쓰고 있는 장과 그 전에 쓴 장 정도밖에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다.

글을 쓰다가 문득 처음 계획했던 것과 다른 길이 보이면 쾌재를 부르고 싶어지는데,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인물이 예상 밖의 발언을 하거나 머릿속에 이미 정해두었던 흐름과 다른 전개가 펼쳐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놔두어야 훨씬 흥미롭고 생생한 소설이 완성된다. 작가는 이처럼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며 작은 회중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걸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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