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초협력사회

피터 터친 지음 | 생각의힘



초협력사회

피터 터친 지음

생각의힘 / 2018년 10월 / 375쪽 / 18,000원





초사회성의 퍼즐 - 괴베클리 테페부터 국제우주정거장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인류가 아주 최근에야 터득한 기술의 놀라운 결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입증해보인 것 중 가장 의아한 것은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규모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넓은 의미에서 ISS는 여러분과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탠 결과물이다. 그러면 ISS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을까?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대충은 계산할 수 있다. 우주정거장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략 1,500억 달러라고 하자. 1,500억 달러를 미국 노동자 연봉의 중간값인 5만 달러로 나누면 우주정거장을 건조하고 운영하는 데 300만 인년(people-years)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러시아의 임금은 미국에 비해 크게 낮기 때문에 실제로 수치는 이보다 높을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 ISS를 만든 사람들은 300만이 아니라 400만, 500만 명을 훨씬 넘길 것이다.

ISS 우주인 론 가란은 이렇게 썼다.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는 지구라는 이 우주선에 함께 탄 채 우주를 달리고 있다고. 우리는 모두 하나라고.” 물론 너무 낙관적이다. 여기 아래쪽 현실은 훨씬 냉혹하다. 시리아 사태에서 보듯 아직도 수천 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전쟁이 엄연히 존재한다. 어떻게 하면 전쟁을 멈추고 빈곤과 고통을 퇴치할 수 있을까? 가란은 이렇게 제안한다. “지금 이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우리 각자가 그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문제다. 즉 인류가 인격 대 인격의 기반 위에서 어느 정도까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가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제안은 효력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개인의 힘만으로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폭력과 빈곤을 퇴치하는 유일한 방법은 함께 그 일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해답은 협력이다.

이 책의 주제는 초사회성(ultrasociality)이다. 초사회성은 마을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아니 그 이상 큰 무리를 지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 ISS는 그런 협력 능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국제적 협력 사례다. 다른 사례도 많다. 전쟁을 끝내려면 대규모 협력이 필요하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다. 평화는 적극적인 관리를 요구하는 일이다. 불가피하게 국가 간에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인명을 희생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평화다. 폭력을 동원하여 목표를 이루려는 불량국가의 도발을 억제해야 하며 그래도 도발을 멈추지 않으면 힘으로 눌러야 하지만, 전쟁을 피하려면 나라가 다르고 교리가 다르고 정치 신념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선사시대의 수렵채집인과 초기 농부들이 어떻게 오늘날의 거대한 초사회로 진화했는지, 그리고 지난 1만 년 동안 수백 명 정도에 그쳤던 인간의 협력 규모가 어떻게 수억 명까지 확대되어 우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개미나 흰개미를 간단히 제압했는지를 설명하는 놀라운 이야기다. 그러나 고대 부락과 부족에서 근대의 국민국가로 나아가는 길은 일직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진화 여정의 초기에 우리는 알파 메일(alpha males)을 제거했고, 놀라울 정도로 협력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발전시켰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추종자들에게 명령할 수 없고 대신 설득과 솔선수범으로 이끌었다. 그러다 약 1만 년 전부터 평등했던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알파 메일은 신을 자처하며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우리를 피에 굶주린 신들의 제단에 제물로 바쳤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 있는 신이라고 주장하며 경배를 강요했다. 다행히 신왕(神王, 신을 자처한 왕)들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대전환, 대역전이 뒤를 이었다. 노예제도는 불법화되고 귀족들은 특권을 박탈당했다. 인간사회는 잃어버린 입지를 대부분 되찾았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수렵채집인들만큼 평등하지 못하다. 지금 이 사회에는 가난한 사람과 억만장자가 공존한다. 하지만 신왕 시절보다는 한결 살기가 좋아졌다.

인간사회의 진화는 급선회를 반복하며 놀랍고 심지어 기괴한 궤적을 이어갔다. 왜 그랬을까? 철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은 많은 설명을 제시하지만 아직 수긍이 가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문화진화론이라는 새로운 학문 덕택에 우리는 그 답의 윤곽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답은 놀랍다. 작은 수렵채집 무리에서 거대한 국민국가로 바뀌게 만든 동력은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갈등이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처음에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고대국가를 만든 것도 전쟁이고, 그것을 무너뜨려 더 좋고 더 평등한 사회로 대치한 것도 전쟁이었다. 전쟁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창조한다.

슘페터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힘이다. 사실 이 말은 강조가 잘못되었다. 전쟁은 파괴적 창조(destructive creation)의 힘으로, 놀라운 목적을 위한 가공할 수단이다. 그리고 그 힘이 스스로를 파괴하여 전쟁이 없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파괴적 창조 - 문화진화는 어떻게 크고 평화롭고 부유한 초협력사회를 만들어냈을까

문화진화론은 우리가 어떻게 규모가 작고 친밀한 사회에서 거대하지만 대체로 낯선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로 이행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 나의 문화진화론적 분석에서 협력과 전쟁은, 소규모 사회에서 대규모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협력과 전쟁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결합되어야 했다. 협력과 전쟁은 사회적 진화의 음과 양으로 겉으로는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상호의존적인 힘이다.

진정한 사회와 단순한 개인의 집합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협력이다. 그런데 협력의 중요한 특성은 구성원 모두에게 공공재의 혜택이 분배되는 반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작은 사회는 집단행동을 하기가 아주 쉽다. 각 공동체가 갖고 있는 그들만의 협력 방식은 모두에게 익숙하여 목적과 그에 필요한 노력을 아주 간단히 조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마을과 도시가 수천 개 있는 사회에서는 공동 사업을 기획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을 수백만 명씩 동원하여 넓은 영역으로 확대 실시하는 것이 어렵다. 그런 사회는 협력의 응집력이 매우 허약하기 때문에 쉽게 와해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규모 사회가 위태로운 것이라 해도 인간의 사회적 진화는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용케 극복했다.

“신은 대군의 편이다.” 프랑스 군대의 격언이다. 병력이 많을수록 이길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전쟁은 큰 사회로 이행하도록 몰고 가는 원동력일까? 전쟁은 멋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발상은 역설적이다. 사람들은 죽거나 불구가 되고 마을과 논밭은 불에 타고 도시는 약탈당한다. 그러나 전쟁은 파괴와 참상만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창조적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경작하고 정착하면서 부족 간의 전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전쟁에서 지면 경작지를 잃게 되고 이는 곧 아사로 이어졌다. 때문에 사회는 생존경쟁을 더 잘 치를 수 있도록 진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았다. 이는 더 좋은 무기와 갑옷을 발명하고 사회를 더욱 견고하게 결집시키고 더 나은 전술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더 큰 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싸움터에 대부대를 이끌고 나갈 수 있다. 이런 냉혹한 진화론적 논리 때문에 마을들은 더 큰 규모의 사회로 결합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결합은 느슨한 형태의 동맹관계 또는 보다 끈끈한 동맹국이나 중앙집권적이고 위계적인 군장사회로 이어졌다. 같은 진화적 논리에 의해 군장사회는 더 큰 사회, 즉 복합적인 ‘군장사회들의 군장사회’로 결합되었다. 이런 군장사회는 규모를 더욱 키워 초기 국가나 제국으로 발전했고 결국 근대 국민국가가 되었다.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규모가 큰 쪽은 그렇지 않은 쪽에 대해 군사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규모가 증가하면 동시에 조정하고 협력하는 문제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진화는 봉합된 부분이 도로 풀어지지 않고 대규모 사회가 합리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해줄 문화적 메커니즘을 찾아야 했다. 대규모 사회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힘만으로는 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킬 수 없다. 결속을 단단히 유지시켜주는 근본적인 접착제는 협력이다.

그런데 협력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마을이나 소도시의 형태를 벗어나 사회가 커질수록 갈등을 해결하고 집단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협력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규모 사회는 여전히 매우 취약하다. 우리는 기능이 원활한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북아메리카나 서구 유럽에서도 협력은 한순간에 와해될 수 있다. 1970년대의 북아일랜드를 생각해보라. 그래서 사회진화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 실패한 국가를 바로잡을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협동심을 기르고 실패한 국가가 되지 않도록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사회집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합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가장 힘겨우면서 동시에 가장 흔한 방법은 전쟁이었다. 경제에서의 경쟁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도태시키는 것처럼, 역사에서 군사적 경쟁은 협력 능력이 떨어지는 사회를 제거했다. 경제 쪽에서 벌어지는 파괴적 창조는 상당한 비용을 치른다. 그렇다고 해도 비참한 정도를 전쟁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야만적이고 잔학한 힘도 역시 창조적일 수 있다. 승리한 세력은 조정이나 협력이 안 되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국가를 제거함으로써, 보다 협력이 잘 되고 보다 평화롭고 보다 풍요한 국가를 만들어낸다.



경쟁하려면 협력하라 - 팀 스포츠에서 배우는 협력의 비밀

조직경제학자들이 팀 스포츠를 연구한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그 첫 번째 교훈은 경쟁의 형태가 다르면 협력에서도 아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팀에 있는 개인 간의 경쟁이든 팀 간의 경쟁이든 협력은 전적으로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이 다수준 선택론에서 얻은 지혜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즉, 집단 내부의 경쟁은 협력하는 분위기를 파괴하지만 집단들끼리의 경쟁은 협력정신을 높인다. 팀 스포츠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개인과 개인의 경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개인은 또한 팀의 일원으로 다른 팀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준 선택은 용기나 일반 신뢰나 협력 같은 특성이 어떻게 인간에게서 진화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강력하고 정교한 이론적 도구이며, 또 다수준 선택은 단단한 수학적 기반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과학적 의미에서 진정한 이론이다. 그리고 그 수학적 기반은 프라이스 방정식인데, 협력적 특성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진화(빈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집단 간의 분산 / 집단 내의 분산) > (개인에게 가해지는 선택의 강도 / 집단에 가해지는 선택의 강도)’

한편 우리 조상에게서 일어나는 문화 역량의 진화는 문화진화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다수준 문화선택’에 의해 문화적으로 전달된 특성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는데, ‘다수준 선택’은 유전자보다 문화적 변이체에서 훨씬 더 쉽게 작동한다. 인간은 모방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우리의 행동을 바꾼다. 그리고 모방은 같은 집단 구성원들을 서로 좀 더 비슷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 모방은 집단 내의 변이를 파괴한다. 동시에 다른 집단은 전혀 다른 유형의 행동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있어, 집단 간의 변이가 증가한다. 집단에서 집단으로 사람들이 이동하는 현상은 신참자나 그 자녀들이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새로운 집단에서 통하는 공통의 행동을 택하기 때문에 집단 간의 문화적 변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런 문화 전달의 특수성은 문화적 집단선택을 유전적 집단선택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만든다.

한편 지금 중요한 논점은 협력적 진화가 집단 간의 경쟁에 의해 추진된다는 사실이다. 그 집단은 팀일 수도, 연합체일 수도 있고, 어떤 분명한 경계가 없는 집합이나 사회 전체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집단이든 협력을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결합적 규모에서의 경쟁이다. 우리는 경쟁하기 위해 협력한다. 이로부터 나오는 또 하나의 부수적 명제는 팀 간의 경쟁은 협력하도록 만들지만, 팀 안에서 선수들 간의 경쟁은 협력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공하기 위해 협력하는 집단은 내부의 경쟁을 억제해야 한다. 따라서 집단의 행동은 집단의 단결과 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단결과 협력은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집단의 역량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프라이스 방정식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추론은 집단 차원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갖는 중요성이다. 진화의 원료는 변이다. 서로 다른 팀이나 기업이나 민족이나 사회 전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보도록 허락하거나 심지어 그렇게 하도록 조정해보면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 금방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관행을 찾아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 방법을 채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하는 순간 진화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진화가 중단되면 바로 코앞에 해결책이 있어도 모르거나 전혀 대비가 안 된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한다.



인간의 전쟁 방식 - 파괴적 창조의 힘으로서의 전쟁

이언 모리스는 『전쟁의 역설』에서 ‘생산적인’ 전쟁과 ‘비생산적인’ 전쟁을 구분한다. 생산적인 전쟁은 더 크고 안전하고 보다 번창하는 사회를 낳는다. 비생산적인 전쟁은 그런 사회를 파괴한다. 이런 모리스의 구분은 전쟁을 고려함에 있어 좋은 방법론을 제시한다. 나도 여기서 그의 방법론을 채택했다. 그렇다면 살상을 유발하는 집단 간의 갈등이 어떤 조건에서 창조적이 되고, 또는 파괴적이 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다수준 선택론에 눈을 돌려야 한다. 집단 간의 경쟁이 협력을 조장하고 집단 내의 경쟁이 협력을 파괴하는 것처럼, 사회 간에 벌어지는 외부 전쟁은 파괴적 창조의 힘이 되는 경향이 있고,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내부 전쟁은 단순히 파괴적이거나 비생산적인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전쟁이 외적인가 내적인가 하는 점은 그것이 생산적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첫 단계일 뿐이다. 집단 간의 전쟁은 많은 군인과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유혈사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쟁의 성격이 불분명하다면 그것은 문화적 집단선택의 힘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즉, 전쟁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문화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으로 인해 다른 문화보다 더 뛰어난 문화적 특성이 나타날 때에만 전쟁은 창조적 진화의 힘이 된다.

문화적 집단선택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작동할 수 있는데, 극단적인 선택은 단순한 종족말살이다. 패한 집단은 학살당한다. 그 결과 패한 집단의 두뇌에 존재하던 문화적 특성은 제거된다. 동시에 그들의 집합적 제도도 사라진다. 승리한 집단의 문화적 특성은 패자의 희생을 토대로 확산된다. 한편 문화의 진화는 보다 온건한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바로 문화말살이다. 이것은 패한 집단이 물리적으로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승자의 문화에 강제로 동화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다른 종교로 개종하고 정복자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사회 규범과 제도를 채택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다. 그래서 많은 집단선택이 자신의 문화를 포기하기보다 차라리 싸우다 죽는 쪽을 택하곤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온건한 형태의 문화말살도 있다. 실제로 정복자가 된 제국이 패자에 대해 문화적 파괴정책을 시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보다는 패자가 승자의 문화에 점진적으로 동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동화는 대부분 자발적이다. 수준 높은 문학이나 예술 등 제국의 권위 있는 문화 때문에, 그리고 어떤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복속된 백성들은 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그 과정에서 정복당한 쪽은 승자에게 흡수되고, 시간이 갈수록 그들과 완전히 동화될 수도 있다. 로마시대의 갈리아 지방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