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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미술 이야기

안용태 지음 | 생각의길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미술 이야기



안용태 지음

생각의길 / 2018년 9월 / 344쪽 / 16,500원





아르카이크 (기원전 3,000년경 ~ 기원전 400년경) -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그리스인들의 삶의 터전은 더할 나위 없이 살기 좋은 곳이다. 지중해성 기후라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아무리 더워도 30도를 넘지 않는다. 또 수많은 과일과 올리브 등 농작물이 많이 생산되었고 해산물도 풍부하다. 이런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나누고 예술을 즐긴다. 그리스의 신들이 그토록 인간적인 이유는 어쩌면 환경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들은 행복했고 인간적이었으며, 빛과 평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술이나 미신 같은 것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인간적이면서 환경에 순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싹텄으며, 이는 그리스 예술 전반을 지배한다.

아르카이크 예술: 그리스의 아르카이크 시대는 기원전 750년경부터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난 기원전 429년까지의 시기를 말하며, 이 시대의 예술을 아르카이크 예술(Archaic art)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인들의 예술은 크게 보아 아르카이크 양식, 고전주의 양식, 헬레니즘 양식으로 나뉜다. 아르카이크는 태고를 뜻하는 아르케(Arche)에서 유래하는 말인데,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아르카이크 예술은 그리스 예술 전반의 바탕이자 원형이라 볼 수 있고, 기하학 양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였지만, 그 속에 조금씩 깃든 자연주의적인 요소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스 예술의 발전 방향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나비소스의 쿠로스〉이다. 이 작품은 환조의 형태를 보여 준다. 더불어 완벽한 좌우대칭도 눈에 띈다. 아직 고전주의 양식만큼의 조화를 보여 주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대칭성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데, 이러한 변화에서 피타고라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또 양발이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형태의 미묘한 운동성도 눈에 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무려 2,0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민주주의 / 그리스 고전주의 (기원전 492년 ~ 기원전 430년) - 플라톤과 고전주의의 완성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 역사에서 대단히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기원전 491년 다리우스 1세는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에 사절을 보내 복종의 증표로 흙과 물을 바치라고 요구하고, 대부분의 도시국가는 곧바로 바쳤다.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거부한다. 아테네는 사자를 참수하고, 스파르타는 사자를 우물에 던져 버린다. 이렇게 시작된 페르시아 전쟁은 2차에 걸쳐 진행된다.

페르시아 전쟁이 불러온 두 가지 변화: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는 크게 두 가지 변화를 불러온다. 첫째는 아테네의 전성기이다. 전쟁의 승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아테네는 그리스 세계의 주도 세력이 된다. 페르시아 패잔군으로부터 얻어낸 전리품과 동맹국이 보내오는 공여금으로 엄청난 부가 아테네로 쏟아지기 시작하고, 아테네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국으로 나아간다.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자신들의 강한 힘을 문화적 우월성으로 과시한다. 그래서 당시 거대한 건축물이나 석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파르테논 신전이다. 이는 페르시아가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수호여신 아테네를 위해 새롭게 건축한 신전으로 도리스(Doris) 양식 건축의 극치를 보여준다.

둘째는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 세계가 완전히 지워질 수 있었던 위기였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오직 자신들의 지혜와 협동심만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당시 함대에서 노 젓는 병사로 근무한 사람은 대부분 노동계급 출신이었는데, 이들마저도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불러오고 민주주의 발전은 다시 인간 중심적 생각을 퍼트리는 데 일조한다. 이렇듯 그리스의 문화가 만개하는 시기를 그리스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고전주의의 완성: 소피스트들에 따르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기준은 항상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면 플라톤에 따르면 모든 아름다운 현상 이면에는 아름다움의 본질인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존재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아름다운 것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한편 플라톤은 수학적 비례와 조화야말로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데, 플라톤이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수학적 비례와 조화로서의 아름다움은 그리스 예술에 하나의 규범이 되어 예술 전반을 지배한다. 〈아르테미시온의 포세이돈〉을 보면 운동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완벽한 대칭성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인들이 보여 준 조화와 비례의 원칙이다. 그리스의 건축물 역시 수학적 비례에 충실하였다. 파르테논 신전 같은 경우는 엄격한 황금비(1:1.618)에 입각한 건축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밀로의 비너스〉역시 인체의 완벽한 황금비에 따라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그리스 고전주의란 절반의 자연주의와 나머지 절반의 기하학이 절묘하게 융합된 균형 잡힌 예술로 볼 수 있다.

헬레니즘 (기원전 338년경 ~ 기원전 31년) - 알렉산더 대왕의 유산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그리스의 새로운 패자가 된 스파르타의 패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기원전 381년 스파르타는 테베와의 전쟁에 패하면서 병력의 대부분을 잃어버린다. 다시 분열된 그리스 세계의 빈자리는 마케도니아가 차지한다. 기원전 338년경 마케도니아의 왕인 필리포스 2세는 스파르타를 제외한 그리스 전체를 지배하게 되고, 기원전 337년 필리포스는 코린토스 동맹을 만들어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개전 초에 암살당하고 그의 아들인 알렉산더가 왕권을 이어받는다.

알렉산더는 20세의 젊은 나이로 대왕의 자리에 오르고, 2년 후 기원전 334년 4월 페르시아 원정을 떠난다. 그리고 기원전 333년 이소스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 맞서 승리를 거두고 곧바로 이집트를 정복한다. 한편 다리우스 3세는 부하의 손에 죽고,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알렉산더는 천재적인 전략으로 인더스 강 유역까지 진출하였다가 말머리를 돌리고 회군하는 도중 바빌론에서 사망한다. 그때 그의 나이 33세였다. 알렉산더는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제국은 부하들에 의해 네 개의 왕국으로 분할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유산: 알렉산더의 등장으로 그리스 세계는 크게 변화한다.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세계를 압도할 만한 영향력을 보여 준 것이다. 그는 그리스의 문화와 각국의 문화를 융합시킨다. 그것이 바로 동서양의 융합, 헬레니즘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예술은 특정한 양식으로 규정짓기가 어렵다. 예술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양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을 딱 한 가지만 말해 보라면 간다라 미술을 들 수 있다. 간다라는 동서양이 만나 등장한 독특한 형태의 석상이다. 분명히 부처 조각상을 보는데 그리스 조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복장이나 인물의 생김새가 많은 부분에서 서구적이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예술: 헬레니즘 예술은 사실성을 강조하여 자연주의 양식으로 많이 치우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인간만이 가지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너스를 유혹하는 판과 에로스〉는 판이 비너스를 유혹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조각상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마치 손댈 수 없는 이상적 인간을 묘사한 느낌이라면, 이 작품의 비너스는 가슴이나 허리, 골반의 표현이 육감적이고 관능적이다.

헬레니즘의 사실주의가 절정에 달한 작품은 〈라오콘 군상〉이다. 이 작품은 트로이의 제사장이었던 라오콘과 두 아들이 죽어가는 순간을 담고 있다. 죽음의 공포에 빠져 버린 표정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체의 묘사는 당시의 예술이 경이로운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특히 얼굴 표정의 묘사는 실로 놀랍다. 죽음을 직면한 순간의 감정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단순한 고통을 넘어 두려움, 공포 그리고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슬픔까지. 이 모든 감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얼굴의 주름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표현한다. 헬레니즘 시대의 예술가는 단순히 격정적인 순간을 담으려고 애썼다기보다는 그 순간에 담길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끼고 그것을 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헬레니즘이 보여준 사실주의의 위대함이다.

로마의 황혼 (200년경 ~ 600년경) - 빛의 예술이 시작되다



로마의 콜론나 광장에 가면 로마의 5현제 중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기념한 탑이 서 있다. 이는 게르만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을 기념하는 전승기념탑으로 위대한 황제의 업적을 잘 표현한다. 하지만 위대한 황제의 죽음과 함께 로마는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만다. 아우렐리우스 아들 코모두스는 12년 만에 교살당하고 로마는 내전으로 들어가고, 이어 페스트가 창궐하여 엄청난 사람들이 죽는다. 로마는 노예를 통해 경제가 유지되는 형태이다. 그런데 노예 수급이 안 되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인력 부족으로 경제가 무너져 버린다. 실로 대혼란의 시대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대혼란의 시대에 시작되기 마련이다. 새로운 변화는 기독교의 공인에서 시작된다.

교회에 종속된 예술: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대규모의 교회가 건립된다. 초기에 지붕은 목재로 만들어졌고 천정은 평평하게 제작되었다. 건물을 만들었으면 다음은 무엇을 할까? 교회 내부를 장식해야 할 것이다. 신의 권위를 장엄하게 표현해야 할 것이고 글을 못 읽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 예술에 민중을 위한 교육적 측면이 가미된다.

빛으로 신을 찬양하다: 어떻게 신의 영광을 표현할 수 있을까? 기독교 미술은 빛과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아무래도 빛은 형태가 없다 보니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기 쉽고 화려한 효과를 극적으로 꾸미기 좋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빛을 통해 신을 표현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교회 예술은 먼저 모자이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창문으로 빛이 비치면 성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자이크가 빛을 반사하며 아름답고 영롱한 느낌을 자아낸다. 당시에 모자이크를 가장 잘 활용한 성당은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537년에 재건한 성당으로 거대한 중앙의 돔은 지름이 32.6미터이고 높이는 55미터에 달한다. 중앙 돔은 다시 작은 돔으로 나뉘고 그 밑으로 나열된 40여 개의 창으로 빛이 흩뿌려진다. 돔의 안쪽에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장면을 보자.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와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자아낸다.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표현 기법을 완전히 무시하였기에 생긴 현상이다. 주변은 황금색 모자이크로 가득하다. 돔 안쪽의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면 황금색 모자이크가 찬란하게 빛나며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영광으로 가득 찬다. 저런 장면을 보고 어느 누가 의심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눈부신 빛의 예술이다.

르네상스 (1450년경 ~ 1600년경) - 피렌체의 선구자들



르네상스(Renaissance)는 학문과 예술의 재생과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과거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문화를 이상향으로 여긴 채, 고대 문화를 부흥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려는 운동이다. 13세기 이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왜 하필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었을까? 아마도 로마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라 로마의 문화와 친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는 동서 교류의 중심지로서 교역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난 곳이다. 특히 이슬람의 문화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이슬람 문화에 남아 있던 그리스 철학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과거 중세 시대에는 교회가 예술품의 절대적인 수요자였다. 하지만 13세기에 이르러 예술품에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새로운 수요가 발생한다. 바로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공업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예술품을 주문하였고, 예술가들도 더는 교회의 요구에 억눌릴 필요가 없었다. 기독교 주제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하여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공업자 중 가장 유명한 집안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학문과 예술에 많은 후원을 하여 메세나(Mecenat)를 일으킨다. 피렌체가 초기 르네상스의 중심이 된 것은 바로 메디치 가문 때문이다.

피렌체의 선구자들: 이탈리아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치마부에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표현한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가면 치마부에의 그림 〈십자가의 예수〉가 걸려 있다. 과거 중세에 그려진 작품이라면 의연하고 근엄한 무표정으로 표현되었지만 치마부에는 고통스러워하는 예수의 표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것이 바로 치마부에가 추구한 예술의 사실성이다.

치마부에의 혁신성은 제자인 조토 디 본도네에게로 이어진다. 이탈리아 스크로베니 예배당 내부에는 예수의 생애를 주제로 조토의 그림이 사방에 채워져 있다. 그 중 〈그리스도의 죽음〉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마리아가 끌어안고 있으며, 마리아의 뒤쪽에는 요한이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두 팔을 벌린 채로 슬퍼하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공간의 창조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의 회화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좁은 공간 안에 사람들을 억지로 집어넣어 버린다. 그래서 상당히 비현실적인 공간이 연출된다. 반면 조토의 공간 연출은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현실적이다. 사람들을 겹쳐서 그려 놓아도 각자만의 공간을 확실히 확보하고 있다.

건축과 조각: 피렌체 최고의 조각가로는 도나텔로를 꼽을 수 있다. 그는 피렌체 대성당과 오르산미켈레 성당을 위한 조각 장식에 참여하면서 명성을 날린다. 오르산미켈레 성당의 조각품은 성당 내부가 아닌 외부 바깥벽에 놓여 있다. 그중 조각상 〈성 게오르기우스〉가 유명한데, 그 이유는 조각상의 하단부 때문이다.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과 싸우는 모습을 자연 풍경과 함께 부조로 새겨 놓았다.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배경은 먼 곳에 있기에 부조를 얕게 만들고 용과 싸움을 하는 모습은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부조를 깊고 선명하게 만든다. 마치 회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조각 방식이다. 이를 릴리보 스키아치아토라고 부른다. 사실주의가 돋보이는 독특한 조각 양식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목제 조각상 〈막달라 마리아〉로 세상에 큰 충격을 준다. 너무 험하고 추하게 조각하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막달라 마리아를 표현할 때 성스럽고 고귀한 여성의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도나텔로의 생각은 달랐다. 예수 승천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30년간 참회의 고행을 한다. 고통스러운 고행 끝에 그녀의 몸은 다 망가지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모습이 예쁘고 고귀할까? 도나텔로가 표현한 막달라 마리아의 추한 모습 이면에는 정신의 숭고함이 담겨 있다.

르네상스 (1450년경 ~ 1600년경) - 다시 인간을 향하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이다. 르네상스는 그리스의 부활이자 인간성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내려 주었고 자신의 운명에 책임지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삶을 개척하고 행복하게 살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당대의 사상가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금기시했던 다양한 가치들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오직 자신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로 재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가 바라본 인간의 존엄성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자연주의 양식이 발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예술은 중세의 기하학에서 좀 더 자연주의 쪽으로 중심을 옮기게 되고 그 속에서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싹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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