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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전기. 2

마르크스 레닌주의연구소 지음 | 노마드



마르크스 전기 2

마르크스ㆍ레닌주의연구소 지음

노마드 / 2018년 5월 / 512쪽 / 25,000원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형성, 그 결정적 단계



1857년 경제공황에 관한 평론들

1850~1860년 사이에 세계시장의 교역량은 거의 두 배로 증가했으며, 신용 및 은행업의 성장은 예측을 불허할 정도였고, 주식시장도 활기에 차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신문이 자본주의 제도를 찬양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발전에 관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은 주기적인 과잉생산공황의 새로운 출현을 내다보게 했고, 그것은 실제로 산업 및 무역의 벼락경기에 뒤이어 나타났다. 이 예측은 정확히 입증되었다. 1857년에 공황이 발발했고 그것은 생산량의 격감, 대대적인 상품가격의 하락, 대량실업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마르크스는《뉴욕 데일리 트리뷴》지에 기고한 각종 평론에서 정기적으로 유럽의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를 개진했는데, 이들 중 다수는 1857년 공황의 조건ㆍ원인ㆍ징후 및 특성들을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는 1857년에 일어난 경제공황이 (그 징후와 표현이 어떠하든) 결코 상업 및 금융부문의 우연적인 둔화나 침체가 아니라 전형적인 주기적 과잉생산공황이었고, 그 자체는 하나의 구조적인 현상으로써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귀결이므로 어떤 정부도 이를 모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857~1858년 경제학 초고」 저술 작업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반동의 득세가 단명으로 끝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1857년 공황을 딛고 일어난 자본주의 세계의 호황이 정치적 변화와 더불어 또 다른 혁명을 초래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 아래서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에게 사회 발전의 법칙(경제법칙)에 관한 지식을 제공해주는 정치경제학 분야의 저술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다. 그는 이러한 작업이 프롤레타리아 투사들에게 혁명적 과업을 자각하도록 도와주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과 단결을 촉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황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 그가 지금까지 해온 경제학 연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각 권마다 다른 주제를 담은 총 6권의 책을 쓰기 위한 일련의 계획에 따라「1857~1858년 경제학 초고」를 집필했다.

「1857~58년 경제학 초고」의 서설

「초고」는 서설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뛰어난 이론적 표본 중 하나이다. 서설은 사회적 생산의 개별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변증법적 상호작용과 그것의 역할에 관련된 핵심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무언가를 생산할 때면 필요에 따라 자연의 산물을 이용한다. 또 분배는 생산된 재화의 소비비율을 확정하며, 교환은 개인에게 그 자신이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소유하기를 원하는 생산물을 공급한다. 그리고 소비하는 생산물은 개별적 취득의 대상물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볼 때 시작은 생산이고 그 끝은 소비이다. 그리고 이 생산과 소비 사이를 매개하는 요소로 중간에 교환과 분배가 있다. 마르크스는 분배에 대한 생산의 우위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경우에서 분배양식이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경제학의 방법론을 다룬 부분에서는 특히 정치경제학에서 과학적 추상이 사용되어야 할 영역에 관해 상세히 논하고 있으며, 정확한 과학적 분석과 해석을 위한 기본원리를 해설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의식의 한 형태인 예술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했다. 그는 인류 문화의 훌륭한 산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힘입어 1840년대 초에 새로운 유물론적 미학의 토대를 구성하는 많은 결론들을 정식화했다. 이 서설과 그 외 다른 저작 및 편지들을 통해 제시된 마르크스의 일반론은 그가 내세운 미학사상의 명실상부한 보고로서, 문학과 예술에 관한 과학적 이론과 역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1857~1858년 경제학 초고」의 본문

「1857~1858년 경제학 초고」의 대부분은 마르크스가 1857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연구주제로 설정했던 ‘자본’의 장에 할애되어 있다. 여기서는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잉여가치론이 처음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마르크스의 위대한 과학적 성과는 잉여가치의 특수형태(이윤, 이자, 지대)를 뛰어넘어 이를 분석했다는 데 있었다. 과학적 분석의 수준과 논의된 문제들의 범위를 고려한다면,「1857~58년 경제학 초고」는 마르크스가 20여 년에 걸쳐 각고의 노력 끝에 내놓은 저작의 첫 번째 초안, 즉 『자본론』의 초판으로 여길 만하다.

새로운 경제학 저작 출판 준비 작업 / 『정치경제학 비판』 제1부

1858년 8월 초부터 11월 중순 사이에 그는 「초고」를 토대로 삼아 『정치경제학 비판』의 원고를 집필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859년 6월 11일 마침내 초판 1,000부가 출간되었다. 마르크스의 가장 뛰어난 저작 중 하나인 『정치경제학 비판』은 「서문」으로 시작한다. 「서문」에 이은 『정치경제학 비판』 제1부는 「상품」과 제2장 「화폐 또는 단순 유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경제학 비판』은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하나의 진정한 혁명이었다. 책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으며,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읽혔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성공에 용기를 얻어 즉시 제2부 집필에 착수했다.



민주주의 운동과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고양



세계적인 경제공황은 혁명으로 귀결되지는 못했으나, 1850년대 말과 1860년대 초에 있었던 유럽과 미국의 혁명적 고양에 하나의 촉진제로 작용했다. 당시 노동계급의 정치적 활동이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과 결별하면서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 운동의 절실한 요구에 부응하여 프롤레타리아 당 건설을 위한 투쟁의 실질적인 측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새로운 국제적 갈등과 전쟁, 각국의 혁명적 사건에 직면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을 위해 전술원칙을 정식화하는 데 특별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859년 초에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와 국제적 연대를 확대ㆍ강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인터내셔널’로 가는 길

1850년대 말과 1860년대 초의 새로운 혁명적 고양은 국제적 노동계급 운동의 괄목할 만한 성공을 가능케 했고, 노동계급 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국제 프롤레타리아 세력의 단결이 긴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노동자들에게는 국제적 연대를 이루려는 본능적인 충동이 있었다. 그리하여 국제 노동대중 조직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면서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이 조직 결성에서 실제적인 추진력이 되었던 것은 1863년 7월 22일 런던에서 열린 폴란드 봉기세력과 연대한 집회였다. 뒤이어 독일과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혁명적인 국제 프롤레타리아와 대중조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단결을 향한 노동자들의 본능적 욕구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노동자 세력의 결집을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있어야 하며, 이는 각국 노동자 계급의 기본적 이해를 과학적으로 표현해내는 혁명이론을 통해서만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이 이론이 바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교의였다. 마르크스 이론은 노동자들에게, 부르주아와 프티부르주아지의 영향력 및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혼란, 노동계급의 분파적 고립성 및 민족적 배타성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었다. 마르크스의 실제적 활동 또한 만국 노동자의 국제적 결집을 촉구했다. 그는 1860년대 초에 런던의 ‘독일노동자교육협회’에 참여했고, 블랑키를 옹호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폴란드의 민족해방운동과 미국의 반(反)흑인노예제 투쟁에 대한 결속의 표시로 영국 노동자들이 조직한 집회를 지지했다. 또한 그는 ‘전독일노동자협회’의 선진적 혁명가들과도 접촉을 가졌다. 마르크스와 각국 노동계급 운동 대표자들의 접촉은 노동자들의 국제적 투쟁을 위한 결집을 촉진시켰다. 마르크스와 그의 동료들의 이론적ㆍ실천적 활동, 과학적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사상을 전파하려는 노력, 프롤레타리아 당을 창설하려는 집념, 이 모든 것들은 ‘국제노동자협회(인터내셔널)’에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부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본론』 - 마르크스의 대표작



1861~1863년의 경제학 초고

마르크스는 1861년 8월에서 1863년 9월에 걸쳐 노트 23권에 달하는, 그리고 거의 인쇄용 전지 200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정치경제학 비판』 제2부 초고를 썼다. 이것은 제1부에 이어지는 내용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상 이것은 1857~1858년의 경제학 초고 이후의 『자본론』 전체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이었다. 초고는 자본의 생산과 관련된 일반적인 문제들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 절대적 잉여가치, 상대적 잉여가치, 노동의 자본에 대한 형식적ㆍ실제적 종속, 협업, 분업, 기계와 그것의 자본주의적 이용의 결과, 잉여가치의 자본으로의 재전화(자본축적), 자본의 본원적 축적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이 초고는 장차 『자본론』 제1권에서 다뤄질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었다.

초고 중 몇 권의 노트는 자본주의적 재생산과정에서의 화폐 운동, 재생산(주로 단순재생산), 잉여가치와 이윤, 이윤의 평균이윤율로의 전화, 대부자본과 상업자본, 상업이윤, 자본주의적 생산발전에 따른 이윤율 저하 경향 등과 같이 『자본론』 제2권 및 제3권에 연관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한편 마르크스는 초고를 저술하면서 계획 전반을 재구성했다. 1862년 말경 그는 『정치경제학 비판』(1859년 출판) 제1부를 직접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부제를 붙여 『자본론』이라는 제목의 독립된 저작으로 제2부를 출판하려는 개괄적인 틀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초고를 정서하고 다듬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료를 덧붙여 분량을 늘렸다. 초고의 분량이 늘어나면서, 마르크스는 완성된 듯 보였던 이 저작을 실은 3권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1863~1865년의 경제학 초고

1863년 8월부터 마르크스는, 1861~1863년의 경제학 초고에서는 충분히 깊이 있게 체계화하지 못했던 부분, 즉 자본의 유통이나 잉여가치의 형태 변환에 관한 연구 등을 보완하는 데 집중했다. 장차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에서 다룰 문제들에 주의를 집중했던 것이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확고한 결심 덕분에 『자본론』의 전체 초고는 1865년 12월 말에 완성될 수 있었다.

『자본론』 제1권의 출판 /『자본론』 제1권의 러시아어판 /『자본론』 제1권의 독일어 제2판 /『자본론』 제1권의 프랑스어판1867년 9월 14일 『자본론』 초판 1,000부가 발간되었다. 전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부르주아》지는 『자본론』 제1권을 침묵으로 묵살하려 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와 그의 동료들은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저작은 러시아의 지도적인 과학적 인텔리겐치아 서클에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또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노동계급 언론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1868년 ‘인터내셔널’ 브뤼셀 회의에서 독일 대표단의 발의로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은 『자본론』을 학습해야 하며, 따라서 『자본론』이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결의문이 통과되었다. 그리하여 1872년 3월 27일 러시아어판 3,000부가 발간되었다. 한편 1871년 가을 무렵 이미 『자본론』 제1권의 독일어 초판이 매진되고 이 책의 수요가 날로 증가하자, 출판업자 오토 마이스너는 마르크스에게 가능한 한 빨리 제2판을 출판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제2판은 처음에는 9개 부분으로 나누어 1872년 그 첫 부분이 출판된 이래 1873년까지 연속 출판되었다. 아울러 제1권의 프랑스어판은 1872년부터 1875년에 걸쳐 몇 부분으로 나누어 출판되었다.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의 저술

1867년 초 마르크스는 1865년 말에 써놓았던 초고의 잔여분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자본론』 제2권과 3권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1870년 11월부터 1878년 7월에 걸쳐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2권 제1장 「화폐자본의 순환」의 출판 준비에 몰두했다. 이어 1880년에는 제3분책 제3편 「이윤율 저하경향 법칙」을 새로이 집필했으며, 제2권과 제3권의 나머지 부분도 저술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2권은 1885년에 출간되었고, 제3권은 1894년에 출간되었다. 제2권의 서문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제2분책과 제3분책을 부인인 예니에게 헌정하려 했다는 것을 밝혔다. 엥겔스는 또한 저작의 역사비판 부분(「잉여가치학설사」)을 『자본론』 제4권이자 마지막 권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이 계획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과정

『자본론』 제1권의 본문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적인 생산관계, 즉 자본에 의한 임노동의 착취를 분석하고 있다. 상품생산이 발전함에 따라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되며, 단순 상품경제는 임노동의 착취에 기초한 자본주의 상품경제로 전화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비밀을 간파하고 진실로 과학적인 잉여가치론을 주장했는데, 엥겔스는 이것이 청천벽력과 같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판매하고 자본가가 구매하는 상품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듯이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력’ 또는 ‘노동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자본주의적 착취구조를 이해하는 열쇠로, 리카도학파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해주었다.

자본의 유통과정 /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

마르크스는 제2분책, 즉 『자본론』 제2권에서 계속하여 산업자본의 운동을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1권처럼 생산과정을 추적하는 대신, 유통부문에서 산업자본의 신진대사와 형태 변환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자본론』 제3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전반에 관한 이론적 분석을 완성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제3권에서 『자본론』 제1권과 제2권을 토대로 어떻게 해서 자본의 구체적인 형태와 유형이 자본주의 사회의 표면에 나타나 가시적으로 활동하고 끊임없이 출현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자본과 자본가들의 여러 유형 및 형태, 생산과 유통의 광대한 영역, 따라서 그 모든 것의 복합체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할과 발전 전망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명료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이 책에서 개진한 것처럼, 자본의 여러 형태들은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고 상호경쟁하면서 스스로 생산의 집행자라는 점을 일상적으로 의식하는 가운데, 자본이 사회의 표면에서 나타나는 바로 그 형태에 점점 접근해간다.”

『자본론』에서 공산주의 문제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전체로써, 역사적으로 규정되고 결과적으로 조만간 다른 체제, 즉 공산주의 체제에 의해 대체될 운명에 처해 있는 사회 발전의 역사적 이해 단계로 고찰하고 있다.

『자본론』의 방법론과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중요성

『자본론』은 인간의 지성이 낳은 위대한 업적이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신념, 즉 자본주의는 영원불멸할 것이라는 신념을 이론적으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국제 노동계급에게 임금노예 착취제도에 대항하는 투쟁의 목적을 명확히 제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앞길에 승리의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제1인터내셔널의 창설자와 지도자



성 마틴 홀의 국제회의

1864년 9월 28일 런던의 성 마틴 홀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자들과 망명 프롤레타리아 민주운동 조직 회원들이 참석한 대규모 회의가 열렸는데, 이 홀이 사상 최초의 국제 프롤레타리아 대중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 약칭 ‘인터내셔널’이 창설되는 현장을 지켜보게 되었다. ‘인터내셔널’은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서 결성되었고, 선출된 위원회는 규약 초안을 작성해 1865년 브뤼셀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 국제노동자대회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도록 하는 권한을 위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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