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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델핀 미누이 지음 | 더숲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델핀 미누이 지음

더숲 / 2018년 6월 / 242쪽 / 14,000원





아흐마드 이야기



2015년 10월 15일

내가 처음 아흐마드와 스카이프로 연락이 닿은 날은 2015년 10월 15일이었다. 아흐마드가 다라야에서 외부로 나오지 못한 지 거의 3년이 되던 때였다. 다마스쿠스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다라야는 정권에 포위된 채 기근에 시달리며, 마치 관 속과 같은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아흐마드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1만 2,000명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아흐마드의 말을 해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열에 들뜬 그의 말소리가 웅얼거리듯 들리다가, 탕탕 총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컴퓨터 화면에는 아흐마드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내전 초기에 임시방편으로 복구한 작은 위성들의 변덕스러운 연결 상태 때문이었다. 픽셀이 다시 맞추어지면 나는 그의 입술을 읽어내려고 애썼다.

아흐마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아흐마드, 23세, 다라야 출신으로 형제가 여덟 명이나 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아흐마드는 다마스쿠스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기자가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친구에게 무심코 건넨 한마디로 12개월간 감옥살이한 아버지는 아들이 그 꿈을 단념하게 했다. 참고로 법원에서 판결한 아버지의 죄목은 ‘정권 모독’이었는데, 그것은 2003년에 일어났고, 그때 아흐마드의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그로부터 수년 뒤 혁명이 일어났다.

2011년 3월 시리아가 잠에서 깨어날 무렵, 아흐마드는 19살로 반항의 시기였다. 여전히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아들이 절대 거리로 나가지 못하도록 말렸다. 그래서 아흐마드는 다라야에서 일어난 첫 번째 시위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어느새 두 번째 집회의 대열에 서 있었고, 외쳤다. “국민과 시리아는 하나다.” 혁명가의 기질이 있던 아흐마드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처음 느끼는 자유의 전율이었다. 몇 주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시위도 계속되었다. 정부군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하지만 아흐마드와 친구들은 더 힘껏 소리쳤다. “자유를 달라! 자유를!”

그사이 다른 반군 세력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무기를 들었다. 모든 사람을 감옥에 넣을 수는 없었던 다마스쿠스 국가원수는 마을을 봉쇄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다. 그때가 2012년 11월 8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흐마드의 가족도 짐을 꾸려 이웃 마을로 피신하면서 아흐마드에게도 함께 가자고 간곡히 권했다. 하지만 아흐마드는 따르지 않았다. 이미 시위는 아흐마드 자신의 혁명이자 그가 속한 세대의 혁명이었다. 카메라를 마련한 아흐마드는 포화 속에서 마침내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 바로 진실을 알리는 일이다. 그는 다라야의 황폐한 거리를 누비고 다니면 산산이 부서진 집들, 부상자로 가득 찬 병원, 희생자들의 장례 행렬 등 해외 언론이 접근할 수 없는 탓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되어버린 현장의 상세한 흔적을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그날 밤, 인터넷에 자신의 영상을 올렸다.

희망과 불안 사이를 오가다 보니 폭력으로 점철된 1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3년이 저물어가던 어느 날, 친구들은 아흐마드를 지원부대로 불렀다. 그리고는 어느 허물어진 집터에서,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책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전쟁 한복판에서 책이라니, 사람 목숨도 구해내지 못하는 마당에 책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람? 아흐마드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마지못해 친구들을 따라나선 아흐마드는 무너진 담장을 넘어 건물로 들어갔다. 허물어진 그 건물은 마을을 떠난 어느 학교 교장의 소유였다. 마루의 잔해 사이로 책이 흩어져 있었다.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아흐마드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목은 영어였는데, 자기 인식에 관한 심리학 책인 것 같았다. 아흐마드는 첫 번째 페이지를 넘겨, 서툰 외국어 실력이지만, 몇 가지 익숙한 단어들을 읽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책의 주제가 아니었다. 아흐마드의 몸이 떨려왔다. 그의 가슴속 모든 것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식의 문이 열리는 전율이었다. 익숙한 대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나라의 자료를 조금이라도 지켜내는 것. 그는 미지의 세계로 도망치듯,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아흐마드는 천천히 책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온몸이 떨려왔다. “내가 처음 시위에 나섰을 때와 같은 해방의 전율이었어요.” 아흐마드의 말소리가 끊어졌다. 한 차례 포성이 인터넷 연결을 끊어놓았다. 나는 화면을 새로 고치며,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다. 크게 심호흡한 뒤,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 잔해 속에서 찾아낸 또 다른 책들의 목록을 말해주었다. 아랍어와 외국어로 된 문학책, 철학책, 신학책, 과학책, 지식의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후로도 폐허에서 책 수집은 계속되었고, 아흐마드는 어느새 그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자원봉사자, 학생, 저항가 등 모두 약 마흔 명이 일주일 동안 구해낸 책은 6,000여 점이었다. 한 달 뒤에는 수집한 책이 1만 5,000여 권에 달했다. 이제부터는 이 책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다. 보복에 대한 우려로, 이 책 박물관은 계속 비밀에 부쳐질 것이다. 이름을 붙이지도, 어떤 표시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튼 부단한 탐색 끝에, 이 친구들은 어느 건물의 지하를 어렵사리 찾아냈다.

개관하기 전, 해야 할 마지막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수집한 책 하나하나에 상세하게 번호를 붙이고, 첫 번째 면에 소유주의 이름을 써넣는 일이었다. 아흐마드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도둑도, 약탈자도 아니니까요. 이 책은 다라야 주민의 소유입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세상을 떠났죠. 어떤 사람은 이곳을 떠났고, 또 어떤 이는 아직 체포된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이 각자 자기 책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후 도서관은 이 포위된 마을에서 순식간에 단골 장소가 되었다. 금요일과 휴무일을 제외하고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문을 여는 도서관은 매일 평균 스물다섯 명의 독자가 찾아왔다. 주로 남자가 많았다. 다라야에서 여성과 아이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집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아흐마드가 덧붙였다. 대체로 이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폭격이 무서워, 집에서 아버지나 남편이 가져다주는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아흐마드는 “지난달에는 마을에 거의 600차례의 폭격이 있었어요.” 라고 말했다. 도서관의 공동 책임자였던 아흐마드의 친구 아부 엘에즈도 폭격으로 피해를 보았고, 임시로 마련한 병원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15년 10월 20일, 이스탄불

컴퓨터에서 스카이프 로고가 반짝거리며 알림 소리가 이어졌다. 이윽고 아흐마드의 프로필 사진이 나타났다. 아흐마드는 나에게 알려줄 반가운 소식이 있다고 했다. 다라야 도서관의 책임자인 아부 엘에즈가 옆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부가 몸이 나은 것이다. 아부 엘에즈도 역시 스물세 살이었다. 아흐마드처럼 아부 또한 공학을 공부하다 중단한 상태였고, 예전에는 책벌레가 아니었다고 했다. 나는 아부에게 특히 어떤 분야의 책이 영향을 주었는지 물었다. 아부는 사실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 이 도서관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아부 엘에즈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초반에는 각자 자기 기준을 세워 책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입소문 덕분에 어떤 책은 다른 책들보다 매우 빠르게 대출되었습니다. 도서관을 방문한 사람들 상당수가『연금술사』를 읽은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만일 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그토록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면 그것은 그 책이 이들에게 익숙한 개념, 즉 자아의 시련을 단순한 언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1960년대 초부터 세력을 잡은 바스 당의 폐쇄적 독재 권력만을 경험한 아부 엘에즈의 세대는 변화를 향한 갈망이 남달랐다. 그가 말했다. “대부분 독자가 저와 같아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특별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죠. 하지만 지금 다라야의 젊은이들은 무엇이든 배워야 해요.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죠. 도서관에 있으면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자주 물어봅니다.”

서가의 잘 보이는 곳에 꽂힌 또 다른 한 권의 책도 특히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이븐 할둔이 쓴 『역사 서설』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 독자들이 전부 어느 순간에 이 두꺼운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어요. 14세기 튀니지 역사학자가 개인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아랍 왕조가 부침이 있었던 원인을 전단하는 과정을 쓴 책입니다.” 아부를 보내기 전, 나는 그에게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 일할 생각인지 물었더니 “물론이죠!”라고 말했다. 그에게 도서관은 단지 치유의 장이 아니라 휴식의 장이기도 했다. 시리아의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는 한 장면이었다.



도서관 규칙



2015년 10월 말

며칠이 흐른 뒤, 메일함에서 아흐마드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도서관 규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메일을 읽어 내려갔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① 모든 도서는 대출하려면 사서에게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② 반드시 정해진 기한 내에 도서를 반납해주세요. ③ 대출 도서를 지나치게 오래 연체한 회원은 다른 도서의 대출이 금지됩니다. ④ 다른 사람들이 조용하게 독서할 수 있게 소음을 내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⑤ 열람실을 깨끗하게 이용하도록 주의해주세요. ⑥ 이용하신 도서는 원래 있던 제자리에 놓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으로, 아흐마드는 이 규칙을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도록 지하 입구의 기둥에 붙여 놓았다고 설명해주었다.

이 청년들은 아주 근사했다.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도서관은 국경이 없는 영토였다. 더욱 뜻밖의 일은 자유시리아군 병사들도 자주 도서관을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제일 성실한 독자는 반군의 한 병사였어요. 정말 책벌레예요. 우리는 그에게 ‘이븐 할둔’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어요. 그만큼 튀니지의 유명한 역사학자가 쓴 책에 코를 박고 보내는 시간이 길었죠.” 아흐마드가 웃으며 말했다. 한 손에는 자동소총, 다른 한 손에는 책



다음 날, 아흐마드가 나에게 오마르 아부 아나스, 일명 이븐 할둔이라 불리는 청년을 소개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오마르가 내게 인사했다. 나는 오마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마르 역시 엔지니어가 될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혁명 이전의 일이었다. 오마르가 말했다. “정부군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시위 참가자들을 보호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업을 중단하고 항전에 참여하기를 자원했습니다. 그때 처음 무기를 잡아보았죠.”

스물네 살 때 오마르는 리와 슈하다 알이슬람의 반역자에 소속된다. 그것은 아즈나드 알삼과 함께, 자유시리아군 남부 전선의 두 부대 가운데 하나였다. 리와 슈하다 알이슬람을 해석하면 ‘이슬람 순교자 여단’이라는 뜻이다. 혼란스러운 지점이었다. “당신은 스스로 지하디스트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일부러 오마르를 자극했다.

오마르는 긴 침묵으로 있다가 이윽고 심호흡하더니 침착하게 설명했다. “만일 제가 체제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은 저의 고향을 지키고 싶어서입니다. 내 조국, 내 자유권, 전쟁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필연적이었어요.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것이었죠. 친구들이 그저 변화를 요구하는 팻말을 흔들다가 당신의 눈앞에서 쓰러진다면, 다른 시위 참가자들을 보호하려는 마음 말고 더 무엇이 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여기에서 모든 일이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정부군의 폭격 아래에서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마르의 말은 지하디스트가 흔히 사용하던 습관적인 이데올로기 용어나 선동적인 말을 배제한, 투명하고 순수한 것이었다. 한 번도 ‘위대한 알라’나 ‘이슬람의 복수전’ 혹은 ‘십자군의 음모’ 등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마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를 광신도로 보이게 함으로써 우리 이미지를 손상하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다만 이슬람교도일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 문화예요. 하지만 우리는 종교를 사칭한 모든 것에 반박합니다.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알누스라 전선이든 다에시든 누구든 말입니다. 이 저항은 정의를 호소하고, 이슬람이 아닌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어느 순간에 책이 오마르의 인생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기 시작했는지 물었더니, “그건 전쟁이 몇 년이고 계속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어요. 우리가 의지할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책은 다닐 수 없게 된 대학을 대신하게 되었다. 오마르는 스스로를 교육해야 했다. 광신도들이 퇴보적인 사상을 강요할 기회를 주지 않도록 공백을 메워야 했다.

그때부터 오마르는 전쟁과 문학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했다. 한 손에는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말이다. 오마르는 병참선에 자신의 ‘작은 도서관’도 만들었다. 모래주머니 뒤로 틈을 메워 완벽하게 정렬한 10여 권의 책으로 꾸민 도서관이었다. 이 콘셉트는 다른 아사드 반군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폭탄이 잠잠해지면 이들은 책을 돌려가며 읽고, 독서에 대해서 서로 조언했다. 그는 말했다. “전쟁은 역효과를 낳았어요. 사람들을 변하게 하고, 감정과 슬픔, 두려움을 죽였어요. 전쟁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봅니다. 독서는 이러한 기분 대신 살아갈 힘을 줍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것이에요.”



거기 있어요?



2015년 12월 7일

아흐마드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도서관이 공격을 받았어요.” 허둥지둥 아흐마드에게 전화했으나, 그의 전화벨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다. 나는 스카이프를 열었다. 아흐마드는 역시나 오프라인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아요?” 하지만 답이 없었다. 그의 침묵 앞에서, 나는 몇 시간 뒤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거기 있어요?” 한없이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아흐마드의 대답이 도착했다. 그렇다. 거기, 겨우 연결된 전화선 너머, 불안정한 접속의 끝에, 접근할 수 없는 이 상처 입은 세상의 끝에 아흐마드가 있었다.

아흐마드는 화가 나 있었다. 대낮에 드럼통 폭탄이 도서관이 있는 건물을 덮쳐, 두 개 층이 무너지고, 건물 입구는 산더미 같은 잔해로 변해버렸다. 책은 폭발로 말미암아 흐트러지고 접히고 구겨진 채, 석고 가루나 유리 조각과 뒤섞여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제 또다시, 책과, 판지로 만든 독서카드 등을 선별하고 부러진 선반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다 잘될 거라고 아흐마드가 말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사상자도, 부상자도 없다고 한다. 기적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벌써 책을 제자리에 꽂고, 찢어진 책을 붙이는 등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그렇게 삶은 이어진다.

나는 다마스쿠스가 일부러 도서관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생각하는지 아흐마드에게 물었다. 아흐마드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내게 말했다. “고의든 아니든 이 공격은 바샤르 알 아사드가 우리의 목숨을 노린다는 증거이죠. 우리를 생매장할 수 있다면, 하라고 해요!” 이번에는 내가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나는 소설 『화씨 451』을 떠올렸다. 책에 불을 지른 미친 소방수들. 1953년 출간된 레이 브래드버리의 이 소설에서 책 읽기는 금지된 일이었다. 이를 위반한 자들을 벌하고자 거리를 누비고 다니던 특별부대를 생각했다. 그중에서 비티 대장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올랐다. ‘책은 옆집에 장전된 무기다. 불태우자. 무장을 해제하자. 인간의 정신에 포격을 가하자. 누가 교양 있는 인간의 목표가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책은 독재자를 두려워하게 하는 대중 교육의 무기다. 언젠가 아흐마드와 20세기의 이 소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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