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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 육아법

최현정 지음 | 미다스북스



감정조절 육아법

최현정 지음

미다스북스 / 2018년 5월 / 336쪽 / 15,000원





엄마의 삶을 아이에게 바치지 마라



육아하는 동안 엄마의 삶은 ‘아웃 오브 안중’: “엄마도 좀 살자! 엄마가 살아야 너희도 살지!” 남편이 잠투정을 하는 아이들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해줘서 마음은 풀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착한 엄마 코스프레’를 잊지 않았다. “괜찮아! 엄마한테 와.” 매달리는 아이를 급하게 안았더니 어깨에 찌릿, 담이 와버렸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느껴지는 날카로운 근육통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꾸역꾸역 아이를 안고 토닥였다. 남편이 보내는 짠한 시선 너머로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는 희생의 아이콘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했다. ‘아웃 오브 안중’이라는 말을 아는가? 엄마가 된 후 나의 인생은 아웃 오브 안중이 됐다. 내 인생이 안중에도 없게 된 것이다. 첫째를 29살에 낳았다. 그래도 20대라고 체력이 받쳐줬다. 둘째는 첫째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셋째는 발로 키운다는 말이 있다.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손이 모자라서 발이라도 써서 키운다는 뜻이라는 걸 셋째를 낳고서 알았다. 딸 낳고 아들 육아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육아 선배들의 말에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른다.

셋째까지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계속 착한 엄마 코스프레에 빠져 살았고, 그동안 내 인생은 계속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물으면 ‘누구 엄마’라고 말했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도 누구 엄마가 많아졌다. 나를 부를 때도 내 이름이 아닌 내 아이들의 이름으로 불렸다. 어느새 내 나이조차 잊어버렸다. 아이들의 나이와 생일은 정확히 기억하면서 말이다. 내 삶이 곧 아이의 삶, 아이의 삶이 곧 내 삶이 되었다.

모든 걸 바쳐서 해내겠다는 욕심을 버려라: 결혼 전, 나는 공부에 한이 맺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회사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중간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1년 만에 임신을 했다. 임신 29주차에 조기진통이 찾아와 병원에 갔더니 자궁 문이 2cm나 열려 있다는 무서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서울대학병원에서는 입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병원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다. 엄마의 뇌출혈로 병원에서 오랜 간병 생활을 하면서 하루에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 입원은 나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남편을 설득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지내겠다는 약속을 한 뒤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채 37주까지 침대와 한몸으로 지냈다. 지독한 입덧 덕에 이온음료만 마시며 6개월을 버텼다. 임신 기간은 혹독한 훈련과 같았다. 37주 5일째, 양수가 터졌는데 아이는 내려올 생각을 안했다. 48시간 안에 아이를 낳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하루 반나절을 진통하고 제왕절개를 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 소리에 죽을힘을 다해 첫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품에 안고 나니 세상에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사랑의 설렘처럼 육아의 시작도 그러했다. 내 품에 처음 아이를 안은 느낌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감정이다. 임신 기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겪어냈기 때문일까? 아이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나는 안전 교육 전문가와 같은 신념으로 육아를 시작했다. 철저히 준비하면 무슨 일이든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성 본능의 충만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육아에는 변수가 많았다. 철저히 준비할수록 대비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는 것을 체감할 뿐이었다. 육아의 현실은 냉혹했고 처참했다. 출산을 하고 나면 한결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특히, 출산 후 50일까지는 나의 정신은 먼 우주로 날아가서 돌아올 생각을 못했다.

다른 엄마들은 잘해내는 것 같은데, 나는 기저귀 채우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완모(완전 모유수유, 모유 외에는 아무것도 먹이지 않는 모유수유)를 해내겠다는 욕심에 밤낮 지새우며 아이도, 나도 고생이었다. 새로운 육아법을 배워 아이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혼란스러움만 남았다. 집안일과 육아는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잘하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육아였다. 욕심을 낼수록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게 되었다. 욕심을 줄여야만 그나마 엄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듯이 육아도 다르지 않다.

내 삶은 나의 것,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느라 어느덧 나를 잊어가고 있었다. 삶의 방향과 에너지가 완전히 아이에게로 전환된 것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잘 자라줘야 나의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이러한 마음도 얼마되지 않아 무너지게 된다. 엄마 혼자 키워도 아이들은 엄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책임은 엄마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억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엄마가 되기 이전의 삶을 생각해보자. 사실 내 삶을 책임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엄마도 내 삶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세상 누구도 나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 내 삶은 나의 것,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성장시키면서 적절한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엄마는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가 살아야 한다. 그러니 나는 나대로 내 인생을 준비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 육아가 힘든 이유는 내가 아이의 상태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만 하고 있었지, 왜 그런지는 살피지 않았다. 왜? 힘드니까. 왜? 잘 모르니까.

잘 키워야 한다는 과중한 책임감은 아이에 대한 첫사랑을 잊게 만든다. 지금 아이의 마음은 행동 속에 숨겨져 있다. 엄마는 아이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내야 하는 술래인 셈이다. 육아는 술래잡기와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을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생생하게 자각하게 되었다.

아이의 인생을 엄마가 책임지려고 하지 마세요. 엄마의 인생을 바치기보다, 아이의 마음을 잘 찾아내면 육아는 한결 쉬워집니다. 육아는 아이의 천성과 가능성을 발견해가는 일입니다.



왜 감정조절이 중요한가?



감정조절은 육아에 필수이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책상이 지저분해서 대충 치우고 공부를 하려고 책을 폈다. 엄마가 퇴근을 하셨는지 목소리가 들렸다. ‘공부 좀 해! 방에서 게임 좀 그만하고!’ 갑자기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는데 글씨는 눈으로 들어와서 귀로 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공부할 마음이 싹 사라지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청소년 상담을 진행할 때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쓴 일기의 일부다. 처음에는 내가 쓴 일기인 줄 알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본 상황이지 않은가? 마음이 불편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나 역시 쉴 새 없는 잔소리 때문에 집에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전교 1등 성적표를 보여드려도 희망은 없었다. ‘여자는 기술 배워서 돈 버는 것이 최고야!’라고 말씀하셨다. 집에서 나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학원도 독서실도 다닐 돈이 없어서 내가 선택한 곳은 뒷산이었다.

쌍문동 언덕배기 북한산 어느 자락에서 나는 공부를 했다. 시험 기간에는 돗자리를 펴놓고 자연 속에서 공부했다. 도를 닦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보면 겁 없는 행동이었다. 새 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평온해지고 집중도 잘 되었다. 무엇보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나의 학습 방법이 얼마나 전략적이었는지 깨달았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 것이다. 학습과 감정은 깊은 연관이 있다. 나의 힘겨움을 극복하고자 목숨 걸고 책을 읽었을 때,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뇌 과학 권위자로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를 쓰신 이시형 박사님도, 『완벽한 공부법』의 저자들도 역시 감정은 공부의 안내자라고 했다. 육아에서도 감정조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어린 시절은 뇌가 가장 많이 발달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부모의 영향력도 크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육아를 할 때 감정조절이 가장 힘들다: “으앙~” 울음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번쩍 눈이 떠지고 내 아이의 울음소리임을 직감한 내 몸은 비몽사몽인데도 아이에게 향한다. 엄마를 깨우는 알람소리로 이만 한 것이 없다. 아이가 어리면 아침을 아이의 울음소리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유독 피곤한 날이면 아이의 울음소리는 짜증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가족 모두가 울음소리에 깨서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는 일을 종종 겪어야 했다. “엄마도 좀 자자!” 모성애보다 살아남기 위한 욕구가 먼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소리를 질러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이는 오히려 더 크게 울뿐이었다.

나는 내 감정을 가장 지키기 어려운 순간이 육아를 할 때라는 것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언제 감정이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잘 살펴보면 해답이 보인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고 조절해라: 내 경우에는 원래 잠을 편안하게 못자는 체질인 데다 수유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잠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수면부족에 감정조절을 힘들어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 밤, 침대에 걸터앉아 서럽게 울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친할머니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동생과 아버지를 챙기기 위해서 오신 것이었다. 할 일을 못하면 할머니께 혼났다. 마음이 상해서 말대꾸를 하면, 할머니는 아버지께 말하셨다. 아빠가 할머니가 전하는 말을 듣다가 화가 나면, 깊게 잠든 나를 발로 밟기도 했다. 어린 동생을 질투하면 장롱에 가두기도 했다. 문이 꽉 닫히면 호흡이 힘들었다. 어른이 돼서도 오랜 시간 폐소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아빠가 감정이 상해서 술이라도 먹는 날이면 자다가 머리채를 잡혀서 질질 끌려 다녔다. 원래도 예민한 성격이었는데 잠을 깊게 잘 수가 없으니 키 크는 것은 물론 살이 찔 틈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에 식탐이라도 부리면 “처먹는 것밖에 모르냐!”라고 대놓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아빠가 외출했다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아빠가 잠들 때까지 잘 수도 없었고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깼다. 깨어 있어야 위험에서 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수면 습관은 짧게 여러 번 자는 것이었다.

또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2배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자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니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이제는 쉬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세 아이를 키우려면 잠을 깊게 자서 체력을 보충하고 뇌에게 휴식을 줘야 했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밤에는 육아에 몰두하느라 깨닫지 못했던 감정이 드러났다. 유독 비몽사몽간에 욱하는 감정이 발산된 것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무의식이 ‘화’라는 감정을 통해 나를 지켜냈던 것이다.

나는 셋째 모유수유를 끝내고 제일 먼저 잠을 충분히 자기 시작했다. 바쁜 교육일정을 소화해내거나 집안일이 많은 날은 짜증이 나를 찾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이유를 알아차리고 조절한다. ‘아, 내가 잠이 부족해서 피곤하구나.’ 단 30분이라도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식을 취한다.

감정은 편견을 깨고 새로운 방법을 배우게 한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새로운 방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왔다는 뜻이다. 감정을 통해서 자신의 비합리적 신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 신념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비논리적 신념이다. “~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등과 같은 말로 드러나며, 경직되어서 융통성이 없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은 어떤 사건에서 특정 감정을 이끌어낸다. 심리학에서는 같은 사건에 대해서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이 ‘비합리적 신념’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음식을 집에서 먹지. 더럽게 밖에서 들고 다니면서 먹고 그래?”

남편이 길에서 어묵꼬치를 들고 먹는 큰딸에게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밖에서 먹는 게 더러운 거야? 우리 여행 가거나 시장 가면 길에서 많이 먹잖아. 그런 게 더러워?”“아니, 그런 건 아닌데 길에서 돌아다니면서 먹으면 더럽잖아.”

“나는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어렸을 때 학교 앞에서 떡볶이 같은 거 먹고 그랬잖아.” “아닌데. 나는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먹었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 부부가 자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손수 한 음식만 먹고 자랐다. 시댁에서는 길거리 음식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남편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부모의 비합리적 신념이 자녀에게 그대로 흡수될 수 있음을 알았다.

종교와 관련된 비합리적 신념이 자녀를 망치는 경우도 많다. 전통적인 방법인양 세습된 잘못된 육아관도 있다. 잘못된 건강 정보들도 가감 없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아이에게 전해서는 안 된다. “이건 더러운 거야. 먹으면 안 돼.” “이건 저기에 놓아야 해.” “이렇게 하면 엄마한테 혼나.”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나의 고정관념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생각을 1%의 의심 없이 흡수한다.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통해서 가정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교육 현장에 있을 때 엄마의 말투를 아이들을 통해서 간접 경험한다.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부모가 자신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서 깜짝 놀랄 것이다. 아이를 관찰하면 부모님과 아이들의 성향, 태도, 고정관념, 어투 등이 보인다. 반대로 엄마는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아이의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대화 방법을 살필 수 있다.

감정에 대한 답도 결국 아이들이 찾아야 한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개방적인 시선을 가지니 의외로 쉽게 답이 보였다.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정도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을 만날 때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 비합리적 신념을 새롭게 발견하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과 배우는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아이들의 삶을 부모가 살아줄 수 없다. 답도 결국 아이들이 찾아야 한다.

감정조절은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래 감정적인 동물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사람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자녀를 낳아서 위대한 감정도 느꼈다. 감정조절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안내해줄 수 있는 방향 지시등이다.

나는 예전의 삶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더 치열하게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육아를 하면서 깨달았다. 육아를 하다 보면 자녀에게 나의 감정을 너무 쉽게 발산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자녀가 어릴수록 나의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대한 방어의 힘이 없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엄마 역시 육아 자신감이 떨어진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감정의 무한 반복을 겪게 되는 이유이다.

육아에는 완벽한 공부법이나 절대적인 비법이 없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도 행복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게 바로 감정조절이다. 육아는 평생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자녀 간의 관계에서 기초를 쌓는 기간이다. 자녀와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감정조절의 중요성부터 깨달아야 한다. 육아는 감정조절의 중요성만 인지하고 있어도 반은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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