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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다식한 경제학자의 프랑스 탐방기

홍춘욱 지음 | 에이지21



잡학다식한 경제학자의 프랑스 탐방기

홍춘욱 지음

에이지21 / 2018년 6월 / 240쪽 / 16,000원





나는 왜 아들과 단둘이 프랑스로 떠났나?

저는 경력 25년 차 이코노미스트입니다. 이코노미스트란 경제를 분석한 다음 금리나 환율 같은 핵심적인 금융시장의 지표를 예측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금융연구원을 거쳐 금융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국민연금으로 옮겼습니다. 제가 국민연금에 지원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계적인 연금에서 자금을 배분하고 투자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었고, 다른 하나의 개인 시간을 갖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2009년 둘째 아들 우진이가 태어나 귀여운 짓을 하는데, 일 때문에 얼굴 볼 틈이 없었거든요. 국민연금으로 옮긴 뒤에는 생활에 여유가 생겨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상사가 새로 바뀌면서 근무 환경이 180도 바뀌었거든요. 휴일 출근이 잦아졌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일 먼저 유럽행 항공권 2장을 예매했습니다. 오래전부터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을 돌아보고도 싶었고, 그동안 사춘기를 맞이한 큰아들 채훈이와의 사이가 서먹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6박 18일 일정으로 큰아들과 둘만의 프랑스 여행을 통해 관계 복원(?)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여행지로 프랑스를 결정한 이유는 친구들이 두루 살고 있기도 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곳에서 ‘그랜드 투어’를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랜드 투어란 18세기 유럽에서 청년들이 교육의 일환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던 관행을 말합니다. 종교분쟁과 내전이 진정되어 사회가 안정되자 영국의 상류층은 자식을 유럽 대륙,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보내 세련된 취향과 외국어를 배워 오게 했습니다. 이러한 유행은 곧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귀족뿐 아니라 토머스 홉스, 애덤 스미스, 볼테르, 괴테 등 많은 지성인이 동참하면서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처럼 여겨졌죠.

왜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그 먼 유럽으로 몰려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까요? 아마도 17세기 영국인이 그랜드 투어에 몰두했던 것처럼 우리보다 앞선 문화 선진국을 통해 배우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마음 편하게 가면 되지 여행 가서 공부까지 할 게 뭐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교수의 말처럼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고 가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올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그 나라의 환경과 문화, 경제 특징을 이해하고 가면 더 오래 기억도 나고, 또 아이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파리에서 시작해 남쪽의 모나코까지 다양한 지역을 볼 수 있도록 일정을 짰습니다. 물론 주된 포인트는 박물관과 미술관, 역사 유적지였습니다. 파리에서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랑주리 미술관 등이, 아비뇽에서는 프랑스 교황청 유적과 아비뇽 다리,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아름다운 성곽 도시를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매일 2만 보 이상 걸으며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구석구석을 관찰했던 것. 그리고 채훈이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한 것, 파리와 모나코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 유럽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깨우친 것은 큰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겠습니다.



파리의 집값은 왜 그렇게 비싼가요?

파리에서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는 길은 꽤 멉니다. 일반 지하철이 아닌 파리와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3개의 광역전철 중에서 C라인을 타고 가야 합니다. 전철 안에서 채훈이가 질문합니다. “파리 인구가 19세기 말 이후 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산업혁명 이후 프랑스 인구도 계속 늘어나지 않았나요? 그 많은 사람은 다 어디에 살죠?” 의표를 찌르는 질문입니다. 파리의 인구는 1801년 55만 명에서 1901년 270만 명으로 급증했다가 2010년에는 220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왜 파리 인구는 계속 늘어나지 않고 줄어들었을까요? 하버드 대학교의 에드워드 글레이처 교수는 그 원인을 ‘주택 공급 부족’에서 찾았습니다. 19세기 나폴레옹 3세 시절에 결정된 고도 제한으로 주택 공급이 늘지 않았고, 이 결과 파리는 점점 일부 사람만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파리 중심부에 신규 주택이 부족해지면서 소형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 100만 달러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고, 파리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는 데 500달러 이상이 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파리와 런던 등 서유럽의 대도시들의 집값이 비싼 편입니다. 물론 세계의 부자들이 몰려드는 모나코 집값이 가장 비싸기는 합니다. 보고서를 쓴 하이버 박사 등은 런던 집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유로 지역계획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들고 있습니다. 하이버 박사 팀은 ‘만약 런던 및 남동부에 적용되는 주택 건설 규제가 완화되면 2015년 현재 주택 가격은 30% 이상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달리 말하면 공급 부족으로 인해 주택 가격이 30% 이상 상승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국이 유로존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다음, 런던을 비롯한 영국의 주택 가격 하락을 예측한 사람이 많았지만 2017년 1~10월 동안 영국의 집값은 5.2%나 뛰어올랐습니다. 파운드 가치가 하락하자 주요 통화 대비 런던의 집값이 떨어져 세계의 부자들이 런던의 주택을 매수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파리 집값은 런던 집값의 절반 수준일까요? 이유는 철도망의 차이에 있습니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카트리나 크놀 교수 등은 미국 경제지에 실린 논문 「No Price Like Home: Global House Prices 1870~2012」에서 14개 주요 나라의 실질 주택 가격을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실질’ 가격이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주택 가격이란 뜻입니다. 크놀 교수 팀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실질 부동산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았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상승했다고 합니다. 기간 단위로 끊어서 계산하면 1913년부터 1960년까지 주요국 실질 부동산 가격은 연평균 0.8% 상승했지만, 1961년부터 2016년까지는 연평균 2.1%씩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0.8% 상승이나 2.1% 상승이나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소해 보이는 차이라도 오랜 기간 누적되면 그 영향력은 만만치 않습니다.

세계 1차 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1913년을 100이라고 가정하면, 1960년대 실질 부동산 가격은 148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 326, 2000년 427, 2016년에는 무려 512까지 상승했습니다. 한마디로 1960년까지 세계 부동산 시장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지루하고 심심한 시장이었다면, 이후에는 상승률도 가파르며 매우 역동적인 시장으로 탈바꿈한 셈입니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깁니다. 왜 부동산 가격은 1960년대부터 오르기 시작했을까요? 이에 대해 크놀 교수 팀은 철도망의 축소에 주목합니다. 지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선진국은 철도 건설에 열을 올렸습니다. 예를 들어 1900년의 철도 총연장이 100이라면 1950년대에는 245, 50년 만에 철도의 총연장 규모가 2배 반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활발한 철도 건설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죠. 자동차가 교통의 주역으로 부각되면서 철도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도로를 만드는 일이 일반화된 겁니다. 우리나라도 서울 시내를 다니던 전철이 없어진 대신 종로나 마포대로는 큰 자동차 도로로 탈바꿈했지요.

사실 ‘철도 건설’은 일종의 택지 공급의 측면을 띠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철도망이 건설되어 일자리가 많은 대도시로의 통근이 편해지면, 이는 도시 면적이 확대된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와 주택가격이 싸지지 않겠습니까? 프랑스, 특히 파리의 주택 가격이 런던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이유가 베르사유를 비롯한 주변 도시로 이어진 거미줄 같은 광역철도망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주요국의 철도 총연장은 이후 60년 넘게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철도망의 축소는 곧 주택 가격의 상승으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프랑스 사람들도 파리에 집을 지으려는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880년대 서민 주택 임대료 상승으로 주택 위기가 발생했을 때 파리 시의회는 많은 논의를 했고, 이후 1894년에 최초의 사회주택 관련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건설되는 사회주택은 많지 않았습니다. 왜 파리에 사회주택 건설이 힘들었을까요? 최근 실린 《르몽드》 지의 칼럼은 파리 사람들이 주택 공급을 늘리고 싶지 않은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파리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박물관입니다. 그래서 불평불만이 나오기도 합니다. 반면 파리의 영원한 라이벌인 런던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천 년 역사의 심장부에 십여 개의 마천루 건설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파리의 주택난과 비싼 주거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의 신도시 건설을 주장하는 쪽도 있지만, 《르몽드》 지 칼럼니스트는 정반대의 입장입니다. “파리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박물관입니다.”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파리의 자긍심을 감안하면 대대적인 주택 건설은 힘들어 보입니다.

이제 채훈이의 질문에 답할 수 있겠네요. 파리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광역철도망 덕분에 파리의 집값이 런던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것은 사실이지만, 파리 시내에 새집을 짓기 어렵기에 자산을 모으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도 파리에 집을 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나요?

왜 유럽에서 그렇게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지 설명하자, 채훈이가 바로 질문을 던집니다. “중국에서 화약이 처음 발명되고, 고려의 최무선 장군이 이끄는 함대가 진포에서 왜구를 쳐부술 때도 엄청난 성과를 올렸잖아요. 그런데 왜 대포의 성능 향상이나 산업혁명은 유럽에서 이뤄졌어요?” 채훈이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세 가지 원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① 먼저 지리적 환경의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바로 통일과 경쟁의 관계 때문입니다. 유럽이 발전한 이유는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경쟁했기 때문인 데 반해 중국은 통일 국가의 출현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중국을 중심으로 몽고 초원부터 중국 북부의 황허 유역까지 특별한 지리적 장애물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황허와 양쯔강 주변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양쯔강은 한마디로 건너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의 바다입니다.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병에게 양쯔강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천연의 방벽이었습니다.

그러나 북방 민족이 양쯔강 이남 지역을 침입할 통로가 딱 한 곳 있었습니다. 바로 양양을 비롯한 양쯔강 중류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그나마 강을 쉽게 건널 수 있어 양양성을 장악하면 강을 따라 상하이로 일사천리로 진격할 수 있습니다. 중국 북부는 평지라 유목 민족의 침략이 잦다 보니 중국은 해양 진출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 어려웠습니다. 역설적으로 북방의 이민족에게 황허 유역의 영토를 잃었던 송나라 때가 가장 강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당시가 국제 교역의 황금기였습니다. 송나라 때 형성된 해군력을 이어받은 명나라 영락제는 정화에게 대원정의 명을 내렸고 정화의 대원정은 중국 해군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405년 난징에서 스리랑카로 항해한 정화 제독의 함대는 300척에 달하는 배와 2만 7천 명의 선원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배의 크기나 방수 구획실, 정교한 신호 장치 등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1492년 콜럼버스의 함대는 3척의 배에 선원도 90명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그가 이끈 가장 큰 배도 정화가 이끈 배의 배수량의 3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락제의 손자인 선덕제가 정화의 원정을 중지시키는 한편 남경에 있는 조선소를 폐쇄하며 대원정의 막이 내립니다. 같은 시기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는 탐험을 지속적으로 후원하여 1420년 마데이라 제도를 발견한 데 이어 1482년 콩고 강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중국이 대원정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포르투갈의 함대가 그토록 쉽게 인도양을 제패하고, 나아가 인도와 말라카 해협 등 핵심 지역에 군사 기지를 마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 왜 선덕제는 해양 원정을 중단했을까요? 미국의 역사학자 에릭 밀란츠는 끊임없는 북방 민족의 위협 때문에 더 이상 대원정에 쓸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정화의 대원정이 중단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중국이 인도양까지 머나먼 항해를 했지만 경제적으로 큰 이익이 없었습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중국보다 발전된 사회도 없고, 중국인이 좋아하는 상품도 없었습니다. 경제적 이익이 없으니 자연히 막대한 비용이 부담이 되었던 것이죠. 둘째는 북방 유목민과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433년 정화의 마지막 7차 원정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449년 몽골 계통의 오이라트족과의 전투 중 명나라의 정통제가 포로로 사로잡히는 이른바 ‘토목보의 변’이 발생했습니다. 황제가 포로가 될 정도로 당시 유목 민족의 세력이 강성했습니다.

결국 명나라는 서양의 인도양 진출을 충분히 견제할 능력이 있었지만 북방 민족의 계속되는 침입에 대비하느라 발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반면 유럽은 러시아 대평원을 거쳐 훈족이나 마자르족 같은 기마 민족이 침략해왔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구릉지에서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13세기 바투가 이끄는 몽고군의 침입 때도 독일과 폴란드 기사단이 참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몽고에게 복속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죠.

② 지리적 환경 이외에 유럽, 특히 영국의 세계 제패를 이끈 두 번째 요인은 바로 제도입니다. 여기서 제도는 주로 ‘재산권’과 관련된 사회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제도와 경제 성장에 대한 인상적인 연구 한 편을 소개합니다. 198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와 배리 웨인게스트는 경제사 저널에 실은 논문을 통해 명예혁명(1688년)이 국왕의 자의적인 재산권 강탈을 막아 영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명예혁명 이전 영국 왕실은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올린다거나 돈을 받고 특허권이나 귀족 작위를 남발하고 심지어 은행가들에게 돈을 빌려놓고 갚지 않는 일을 반복합니다.

청교도혁명은 사실상 왕실의 자의적인 재산권 침해에 대한 대응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정복고 이후 새로 들어온 왕조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더욱 심하게 재산권을 침해합니다. 결국 명예혁명으로 두 번째로 왕을 내쫓은 뒤 영국 의회는 네덜란드에서 왕을 ‘수입’합니다. 그리고 ‘권리장전’을 통해 왕에게서 더 이상 재산권을 자의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결국 두 번에 걸친 혁명을 통해 영국 왕실은 국민의 재산권을 위협할 경우 의회가 왕을 내쫓을 수 있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왕실이 더 이상 의회의 동의 없이 국민의 재산권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투자의 영역에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적인 변화가 명예혁명 이후 영국 국채 이자율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입니다. 왕이 돈을 빌려놓고 갚지 않을 위험이 사라졌으므로 그만큼 리스크 프리미엄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리스크 프리미엄’이란 기업이나 나라가 빚을 갚지 않을 것에 대비해 추가로 받으려는 이자를 말합니다. 영국이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금융’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재산권 보호에 기반을 둔 좋은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전반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 수익률은 3.05%까지 떨어졌고,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에도 3.2% 수준에서 안정되어 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1341년 영국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에 충당하기 위해 빌린 돈의 금리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지급 불능을 선언했던 것을 돌아보면,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영국의 승리는 ‘저금리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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