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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8 덕목

이창호 외 지음 | 벗나래



인성 8 덕목

이창호 외 지음

벗나래 / 2018년 5월 / 312쪽 / 17,000원





인성, 사람 됨됨이를 다시 묻다 - 이창호



인성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

인성은 전 인격을 갖춘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며 보다 풍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덕목이며, 인성교육은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하고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인성을 말하는 이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요즘 아이들은 폭군이다. 부모에게 반항하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스승에게 대든다.”라고 한탄했었다. 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갈등양상인데 고대 그리스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던 듯하다. 우리나라도 광복 이후 지난 70여 년간 인성교육을 공교육의 목표로 삼지 않은 때가 없었다. 인성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 왜 인성교육은 현장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못했으며, 우리들 그리고 아이들의 인성은 날로 각박해지며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과연 우리 아이들만 탓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처한 일상을 보면 인성이 뒷전으로 밀려난 현실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인성’보다 ‘성적’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학교 교육은 입시에만 중점을 둔 지식 위주 암기, 주입식 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인성교육에는 소홀했다. 물론 학교에서 인성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성을 교실에서 책으로만 가르치고 있다. 인성 덕목을 입으로만, 지식으로만 가르치고,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며 몸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데는 소홀하다.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도 ‘품성’보다 ‘성적’으로 아이들을 평가했으며, 자녀들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라.”보다 “공부만 잘해라.”라는 말을 더 많이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인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인성교육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인간은 가장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 부모, 형제 등 주변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고, 결국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성교육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 현실과 잘 융합된 인성은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며 순수함과 성실함을 전제한 관계는 타인과 자신을 이롭게 한다. 자신의 환경, 사회적 맥락, 주어진 과업의 특징 등에 기반한 인성교육은 필수적인 핵심가치이다.

인성교육은 왜 필요한가?

바람직한 인성교육 방법: 교육부가 제안하는 인성의 핵심 덕목인 정직, 절제, 자율, 책임, 성실성, 배려 및 소통, 예의, 정의, 시민성, 인류애, 지식 및 지혜와 긍정 심리학에서 말하는 지성, 용기, 인애(仁愛), 정의, 절제, 초월, 에니어그램의 9가지 미덕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비, 선행, 충성, 온유, 절제는 다양한 측면에서 인성의 핵심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 이 요소들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적능력으로서 독서와 글쓰기, 감정적ㆍ의지적 능력으로 감사와 칭찬, 초월적 능력으로 영성, 시민성 향상을 위해 의사소통,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나갈 수 있도록 진로 탐색 역량을 길러 민주시민으로서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화로운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 이제 인성의 각 덕목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일상이 주는 선물, 배려 - 박복임



세상에 대한 지극한 관심

사전에서는 배려(配慮)의 의미를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으로 정의한다.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생각이나 걱정(慮)을 고루 나누어 분배(配)한다는 뜻이니, 세상살이에 가장 적합한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려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성덕목이며, 나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향한 지극한 관심의 출발점이자 존중과 애정의 표현이다.

배려는 연대감을 표현하는 사회적 언어이다

배려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공동체와 공동체를 잇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유형 중 언어폭력이 신체적 폭력을 앞서고 있다. 언어폭력은 핸드폰을 통해 개인 메시지로 전달되거나 SNS를 통해 폭력이 행사되기도 하는 등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고통의 정도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이렇게 변화하는 양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가해자 처벌보다는 교육을 통한 각성이 필요한데, 자존감 회복을 통해 자기비하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감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절되지 못하는 자기 분노와 자기 비하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이는 언어적 표현으로 쉽게 표출되다가 정도가 심해지면서 신체적 폭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자기비하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배려감성을 키우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수학 문제 풀이보다 더 중요하다.

배려 교육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배려감성은 생활 감수성, 대인 감수성 중에 으뜸으로 꼽힌다.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고 그 상황에 놓여 보는 배려는 감정 전환, 동화 과정이 수반된다. 그런데 이 배려 감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전반에서 꾸준히 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천부적인 심성에 의존하다 보면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데 있어 힘이 부족하게 되고 꾸준한 실천이 어려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배려는 나의 현재 상황, 나의 선택과 생각을 인정하고 똑같이 타인의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자기수용과 자아존중이 필요하다. 자기수용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다. 부족한 부분은 부족한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자신을 용서하고 고쳐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타인에 대해 혹독해지게 된다.

배려감성의 확대

배려감성은 배우고 익혀야 하는 감성이며 실천되어야 할 덕목이다. 배려를 배우는 첫 배움터는 역시 가정이다. 가정 내에서 구성원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며 배려하는 분위기를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익혔다면 배려감성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일상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지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몸에 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의 실천으로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가정을 벗어나 공동체, 학교 등 공적인 공간에서 배려가 일상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배려와 상호 책임

공생의 가치는 배려를 통해 실천되는데, 사회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와 도덕성을 가늠할 수 있다. 배려가 물처럼 흐르지 못하는 사회는 곪게 마련이다. 갑질 사태 역시, 우리 사회가 배려의 가치를 실천하지 못한 채 얼마나 을을 짓누르고 약자를 무시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배려는 또 다른 배려를 부른다. 배려는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생의 가치이다. 배려는 우리를 숨 쉬게 한다.



꽉 막힌 불통을 치유하는 소통 - 박복임



변화하는 세상, 소통하며 살자

사람살이의 대부분은 삶의 터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온라인상에서 맺은 관계까지 더해져 우리는 더 조밀해진 관계망 속에 살고 있다. 무수한 관계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소통이다. 소통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며,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막히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맞바람 치며 시원하게 통하듯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감정이 교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해가 없다는 것은 뒷감정이 남지 않고 깔끔하게 교섭한다는 뜻이다. 결국 소통이라는 것은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나 또한 상대방 입장에 기꺼이 서 보는 흔쾌하고 짜릿한 교류이다.

소통과 인성

인간의 사고와 행동, 도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서 및 감정이며, 정서반응은 소통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심리표현이다. 한편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정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불안정한 정서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체계적으로 행해지고 제대로 교육받았다면 정서반응이 불안정하다고 해서 인성 형성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정서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아무튼 정서반응을 결정짓는 요인은 올바른 인성이며 소통은 인성을 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식탁 위에 놓인 빵을 보며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게 뭐지?”라고 물었다. 아이는 신경질적으로 “빵!”이라고 대답한다. 다 알면서 왜 묻느냐는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어머니는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빵을 매개로 말을 걸었지만, 아이는 알면서도 그 질문이 순간적으로 의아했을 수도 있고, 별로 말을 나누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을 수도 있다. 엄마와 아이 두 사람 모두 자기 상황이나 기분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달리하며, 평소에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다면 대화를 시작도 못한 채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예는 어른들에게서도 일어난다. 학교 폭력 문제, 직장에서의 따돌림 등 일방적인 소통 방식 혹은 소통의 차단은 서로에게 심리적 폭력이 된다.

배려 없는 일방적 감정 강요, 약자를 밟고 올라서려는 잘못된 우월감 등은 소통을 차단하는 벽이 되며, 이는 인성 부재에서 비롯된다. 특히 청소년기에 배려, 소통, 예절, 존중, 정직, 책임, 효, 협동의 인성 8대 덕목 교육을 통한 건강한 사고방식 형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청소년기에 입시만을 위해 일상을 채우고,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균형 잡힌 정서 함양, 분노를 적절하게 다룰 줄 아는 성숙한 태도 등은 배울 겨를이 없다. 제대로 된 미래가 우리 아이들에게 오기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 전달에 치중한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법, 친구와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소통은 인성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영혼의 교류이다. 그 사람 마음 언저리에서라도 서성거려보겠다는 생각이야말로 소통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정직 - 현인순



정직에 목마른 사회

우리는 어릴 때부터 거짓말은 잘못된 것이며 나쁜 것이라고 교육받아 왔다. 지금의 아이들도 그렇게 교육받으며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정작 “우리 사회는 배운 대로 정직한가?”라고 묻고 싶다. 우리가 교육받아 온 정직은 주변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 있는 행동 등 주로 개인의 품행이나 행동 교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정직이 개인에게만 강요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들을 길러낼 수 없다. 정직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한 세상에서 누가 정직경험을 떠올리고 그 가치를 지키려 하겠는가. 따라서 도덕적이어야 성공한다는 함의가 자리 잡아야 하고, 그 믿음이 실천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이 정비되어야 한다.

정직을 실천하기 위한 덕목들

용기와 당당함: 생활 속에서 정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용기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함이 있어야 한다.

진실함: 철학자 칸트는 진실성에 반하는 것은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보았다. 칸트는 자기 생각에 반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전달하는 것, 즉 자기 인격성을 포기하는 기만적인 인간현상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리고 거짓말은 정직성, 진실성, 진정성, 솔직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거짓말은 때로는 선한 의도에서 행해질 수도 있지만 대개 경솔하게 행해진다고 말했다.

정직이라는 징검다리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

정직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나의 정직함이 징검돌이 되어 다른 사람을 건네주고, 다른 사람의 정직함이 만든 징검돌을 딛고 나 역시 물을 건넌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은 이어져 있고, 세상과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바로 정직이고 신뢰인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아름다운 무지개, 예절 - 강지원



예절의 의미

예절이란 예의범절의 줄임말이며, 여기서 예는 예의, 예법 등을 의미한다. 예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합의된 관념이나 전통 등을 일컫는다면, 예절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면, 예의의 실천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 예의와 예절의 뜻에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은 동일한 의미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양의 에티켓, 매너 등이 우리의 예의나 예절에 해당하는 말인데, 프랑스어인 에티켓은 특정 사회나 구성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예의로 정의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예절 수업은 생활관 같은 곳이나 예절학교에 들어가 합숙을 하면서 한복 입는 법, 큰절하는 법, 한식 상차림을 배우며 차 마시는 법까지 다양하게 익히고 오는 과정을 떠올린다. 그렇게 합숙 교육이 끝나면 수료증을 받고 통과의례처럼 느껴지는 예절교육을 마쳤다. 그러나 요즘 중요하게 여겨지는 예절은 초등생 시절 잠깐 배우고 만 전통예절 보다 공공예절, 사내직원을 대상으로 한 직장예절, 인터넷 예절을 일컫는 넷티켓 등이다. 한편 현대사회에서 예절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실천할 덕목일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의 공통된 합의 속에서 실천해야 할 공공예절도 포함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방식, 새로운 형태와 형식의 예절이 필요해진 것이다.

변화하는 세대를 반영하듯 현대인들의 예절문화 역시 바뀌고 있다. 따라서 나이로 서열화하여 일방적으로 예의를 갖출 것을 강요하던 낡은 방식 대신, 나이와 세대를 초월해 서로 간에 섬김의 정서, 예의의 표현이라는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비대면 예절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우리 문화권을 벗어나 초국적, 초경계를 지향하는 글로벌 에티켓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온라인상에서도 일상적인 예의들이 알맞은 형식과 표현으로 지켜져야 한다. 넷티켓(netizen과 etiquette의 합성어)은 현대인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필수 예절이 되어가고 있다. 예절은 결코 어렵거나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예절, 예의는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그 사람이 영위하는 일상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속한 문화권에서 배운 예절과는 상반된다 할지라도 특정 공동체의 오랜 전통과 문화, 생활 방식이나 습성을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



존중의 가치와 미덕 - 강경원



존중의 가치 - 새 시대의 존중 패러다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함께 손 잡고 나아가자”는 말이 공허한 꼬드김이나 빈말의 공익 캠페인이 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가치와 패러다임이 정립되고 일상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고유한 성정과 독특한 개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 존중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리할 수 있고, 참된 교류와 소통이 가능해진다.

21세기는 인간이 먼저인 시대, 인간 존중이 일상적으로 실천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유행어처럼 번져가 어느덧 일상어가 된 소통과 배려의 바탕에는 인간 존중이라는 철학이 있다. 간혹 소통과 배려라는 가치에 피로감을 느끼고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든든한 존중에 바탕하지 않은 채 표면적인 행동과 실천에만 방점을 찍은 채 강요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치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다시 돌아볼 때가 되었다. 그 돌아봄, 성찰의 중심에는 인간 존중이 있다. 존중의 철학은 나라는 거대한 우주에서 시작하며, ‘나’라는 우주에서는 인간 존중이라는 큰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나무를 키우는 뿌리는 바로 자존감이다. 이 뿌리가 튼튼해야만 상호 공감을 통한 존중감 표현이라는 달고 보기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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