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컬러의 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 윌북



컬러의 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윌북 / 2018년 6월 / 316쪽 / 15,800원



언어의 색



언어가 색을 규정할까?

그리스 문학에서 색깔의 묘사가 엉망이라고 처음 알아차린 이는 엄한 표정의 영국 정치인이었다. 시인 호메로스의 추종자인 윌리엄 에워트 글래드스톤 말이다. 호메로스에 대해 완벽에 가까운 소논문을 준비하던 1859년, 글래드스톤은 일종의 환각적인 이상 현상을 경험했다. 눈썹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검정색일 수 있지만 꿀이 정말 녹색일까? 아니면 ‘진한 와인색’의 바다나 같은 색의 황소, 보라색의 양은? 그는 그리스 작가의 색 표현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멜라스(검정색)가 170회 언급되어 가장 많이 쓰였으며, 흰색도 100번가량 언급되었다. 다음으로는 빈도가 확 떨어지지만 에리토리스(빨간색)가 13회 등장했으며 노란색, 녹색, 자주색은 각각 10회 이하였다.

10년 전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헌학자인 라자루스 가이거는 다른 고대 언어의 조사에 착수했다. 그는 쿠란과 히브리어 원전 성경을 세세히 읽었고 고대 중국 우화와 아이슬란드의 전설도 연구했다. 모두 색의 표현이 혼란스러웠으며 인도의 베다 경전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을 예로 들었듯 똑같이 무엇인가 빠져 있었다.

1만 구절이 넘는 이 경전은 천국의 묘사로 넘쳐난다. 그보다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없다. 태양과 빨갛게 물드는 일출, 낮과 밤, 구름과 번개, 공기와 에테르, 이 모두가 인간 앞에 화려하고 생생하게 펼쳐지고 또 펼쳐진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어도 고대의 경전에서 절대 배울 수 없는 게 있으니, 그건 하늘이 파랗다는 사실이었다.

파란색을 일컫는 말이 사라진 뒤, 이전에 녹색 또는 더 흔히 쓰인 검정색을 일컫는 말이 진화했다. 가이거는 인류의 색 식별 능력을 언어의 진화로 추적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것이 빛과 어둠(또는 흰색과 검정색)을 가리키는 말에서 비롯되었고 곧 빨간색, 노란색, 녹색, 파란색이 등장했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브렌트 베를린과 폴 케이의 더 폭넓은 연구도 이를 검증했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첫째, 색의 범주는 선천적이다. 둘째, 색을 일컫는 언어가 없다면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1980년대의 조사를 통해 많은 예외가 드러났다. 언어가 정확하게 그런 식으로 ‘발달’되지 않으며 몇몇 언어는 색 공간을 완전히 다르게 분할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황록색과 녹색을 구분하는 분명한 단어가 있다. 러시아어에는 연하고 짙은 파란색을 일컫는 단어가 각각 따로 존재한다. 이후의 문학에서 읽을 수 있는 말과 색, 문화의 관계는 돌아버릴 지경으로 두서가 없다. 상대론자는 언어가 인식을 형성하거나 영향을 미치므로 지정하는 말이 없는 색은 별개라 인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베를린과 케이의 뒤를 잇는 보편론자는 기본색 범주는 보편적이며 생물학적 영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는다. 색의 언어가 까다롭다는 사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삼각형과 사각형을 구분할 수 있는 어린이가 분홍색과 빨간색 또는 오렌지색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양 계열



‘이렇게 감미롭고 명예롭고 숭고한 것들이 전부 거듭해서 흰색과 관련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색의 가장 깊은 관념 속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뭔가가 도사려서, 두려움을 자아내는 피의 붉은색보다 더 많은 공포를 영혼에 안겨준다.’ 허먼 멜빌의 작품 『모비 딕』의 한 구절이다. ‘고래의 흰색’이라는 제목을 붙인 장에서 그는 흰색의 골치 아프고 이분법적인 상징성에 대해 참된 훈계를 늘어놓는다. 빛과 얽힌 탓에 흰색은 인간의 심리에 주로 신성한 대상에 대한 이미지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니, 경외와 공포를 함께 불러일으킬 수 있다.

소설의 제목과 같은 백색증의 거대 바다 괴물 모비 딕이 보여주듯, 흰색은 타자성을 품는다. 사람을 위한 색깔이라면 숭앙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그다지 썩 인기가 없다. 너무 배타적이고 전제적이고 신경질적이다. 일단 빚어내기부터 어렵다. 다른 색깔의 물감을 섞어서 만들 수 없으니 특별한 흰색 염료를 써야 한다. 게다가 어떤 염료를 섞더라도 바뀌는 색깔이 오직 한 방향, 즉 검정색으로 나아갈 뿐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뇌가 빛을 처리하는 방식 탓이다. 염료가 더 많이 섞일수록 눈으로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의 양이 적어지므로 갈수록 어둡고 칙칙해 보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양한 연령대에서 좋아하는 물감을 섞어 자신만의 새로운 색깔을 자아내는 시도를 한다.

베이지

듀럭스는 가지각색의 물감을 파는 소매상이다. 베이지색을 사랑하는 이라면 두꺼운 색상 카드를 뒤척이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밧줄 돌리기’, ‘가족 사첼 가방’, ‘저녁의 보리’ 또는 ‘고대 유물’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면 ‘문지른 화석’, ‘트렌치코드’, ‘북유럽 항해’를 포함한 몇백 가지 색깔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고를 수 있다.

베이지는 1920년대 인테리어 디자인을 창시한 엘지 드 울프가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그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매료되어 ‘베이지색! 나의 색이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녀 말고도 베이지색을 좋아하는 이는 더 있었다. 20세기에는 많은 이가 베이지를 더 강렬한 색의 바탕색으로 썼다. 두 과학자가 200,000개의 은하계를 조사해,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일종의 베이지색임을 발견했다. 그래서 즉시 더 섹시한 호칭을 찾았고 ‘빅뱅 버프’나 ‘스카이 아이보리’ 같은 이름이 물망에 올랐지만 ‘코스믹 라테’로 타협했다.

그게 베이지색이 짊어진 평판 문제의 핵심이다. 나서지 않고 안전하지만 너무 칙칙하다. 베이지색으로 꾸민 임대 공간에 방문하면 금세 질린다. 몇 시간 만에 건물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 이를 악물고 일궈낸 무해함의 바다처럼 다가온다. 집을 파는 비결을 다루는 요즘의 책은 아예 베이지색을 쓰지 말라고도 못 박는다. 색깔에 대한 챕터는 부동산 시장에 만연한 색깔의 독재를 비판하며 시작된다. ‘어찌 된 영문인지 베이지색을 중립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사실 상황은 그보다 더 열악하다. 모두가 좋아하리라는 기대를 품지도 않고, 그저 누구의 기분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베이지색을 고르기 때문이다.

베이지색은 부르주아의 핵심 색깔이 될 수 있다. 통상적이고 독실한 척하며 물질적이다. 양에서 따온 색깔이 양처럼 소심한 이들에게 선택받는 색깔이 되었다는 사실은 신기하게도 적절해 보인다. 베이지만큼이나 고상하면서도 밍밍한 소비주의를 상징하는 색이 또 있을까?



노랑 계열



크롬 옐로

찌는 듯한 1888년의 여름은 반 고흐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그는 프랑스 남부 아를의 ‘노란 집’에서 영웅인 폴 고갱의 도착을 조바심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반 고흐는 아를에 둘이 함께 화가 공동체를 설립하기를 바랐고, 미래를 낙관했다.

그는 8월 21일 동생인 테오에게 편지를 써 고갱에게 ‘기회가 닿는 대로 내려갈 준비가 되었다’는 쪽지를 받았노라고 알렸고, 모든 것이 완벽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작업실 전체를 덮을 해바라기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한 테오에게 ‘마르세유 사람이 부이야베스를 먹는 기세’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거칠거나 깨진 노란색’과 ‘오렌지 납을 얇게 펴 바른 화폭 위에 가장 옅은 베로나 블루부터 진한 로얄 블루까지의 파란색’이 어우러지게 그릴 거라고 썼다. 이런 작업에 자연만이 유일한 걸림돌인 것 같았다. 그는 ‘꽃이 빠르게 시드는 탓에 한 번에 전체를 그려야 하므로’ 이른 아침에만 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오늘날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는 놀랍게도 채도가 높은 빨간색 및 파란색을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세 번째 원색인 노란색의 사정은 달랐다. 노란색 없이는 균형 잡힌 구성을 이끌어내기 어렵거나, 인상주의자들이 극적인 효과를 위해 쓰는 보색의 대비를 충분히 강렬하게 자아내기 어렵다고 믿었다. 예전부터 쓰였던 색이 아니다 보니 반 고흐도 크롬 옐로에 굉장히 의존했다.

크롬 옐로는 1762년 시베리아 안쪽의 베레소프 금광에서 발견된 진홍색의 수정에서 비롯되었다. 홍연광 또는 향신료 사프란을 일컫는 그리스어 크로코스로 불리는 이 광물은 과학자가 발견해 프랑스에 의해 플롬 루즈 드 시베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롬 옐로가 애초부터 안료로 쓰인 건 아니다. 공급이 너무 불규칙하고 가격 또한 너무 높았다. 하지만 프랑스 화학자 니콜라스 루이 보클랭이 홍연석을 연구해 이내 새로운 요소를 함유하고 있는 오렌지색 광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색깔’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착안해 이 금속에 크롬 또는 크로미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크롬염은 정말 빼어난 수준으로 다양한 색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화가와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슬프게도, 크롬 옐로는 시간이 지나며 갈색으로 변하는 단점이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수년간 연구한 학자들은 햇볕에 노출된 꽃잎의 크롬 옐로가 심각할 정도로 진하게 변색되었음을 밝혔다. 그래서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실제 꽃이 그렇듯 시드는 것처럼 보인다.



오렌지 계열



누드

정치적 상황에 처한 여성의 의상 선택은 때로 물의를 빚지만, 2010년 5월 한 의상을 둘러싼 시비는 평소보다 더 거셌다. 인도의 대통령을 환대하는 국가 정찬의 자리에서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나임 칸이 디자인한 따뜻한 크림과 은색의 가운을 입었다. 칸이 뭄바이 태생이었으므로, 가운은 의복을 통한 외교적 시도였다. 하지만 소식이 보도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연합 통신은 드레스를 ‘살색’이라고 묘사한 반면, 다른 매체에서는 디자이너인 칸의 말을 빌려 ‘은색 반짝 구슬이 달린, 추상적인 꽃무늬의 끈 없는 누드 가운’이라 표현했다. 반응이 즉각 불거져 나왔다. 《제제벨》의 저널리스트 도다이 스튜어트의 말을 빌리자면, ‘누드라니? 누구의 누드인가?’라는 식이었다.

특정한 연한 색을 가리키는 용어 ‘누드’ 또는 ‘살색’, 아니면 그보다 덜 쓰는 ‘볕에 그을린’, 또는 ‘벌거벗은’은 코카서스 백인의 피부 색조를 지칭하는 문제다. 세계 패션 시장에서 고통스럽게 배제되었지만 여전히 흥미로울 정도로 완고하다. 누드 하이힐은 붙박이로 신는 구두다. 또한 매일 몇백만 명이 누드 립스틱을 입술에 바른다. 의복에 쓴다면 모래, 샴페인, 비스킷, 복숭아, 베이지 등의 대안이 무수히 많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쓰인다.

누드는 코르셋, 거들, 팬티스타킹, 브라렛 등의 여성 속옷 색깔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등장했다. 곧 헐벗은 살과 비단처럼 고운 속옷의 관계가 성적인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디자이너는 이 경향에 계속 이끌렸고,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기 ‘겉옷 같은 속옷’의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

하늘하늘한 옷감 밑에 받쳐 입어도 비쳐 보이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누드’ 속옷이 등장했을 것이다. 물론 현대의 누드 속옷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누드 속옷 또한 백인 여성 가운데서도 극소수의 피부색과 일치했다. 피부색의 다양함은 압도적이며 신기하도록 감동적이다. ‘누드’가 특정 피부색을 지칭하는 색깔의 이름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색이나 단어 자체가 아니다.

‘누드’라는 단어 뒤에 도사리고 있는 자민족중심주의다. “누드보다 피부색이 짙은 우리는 반창고부터 팬티스타킹, 브래지어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우리의 색의 측면에서 배제되어왔는지 깨닫는다.”고 스튜어트는 2010년에 쓴 바 있다. 물론 변화도 생겨나고 있다. 옅은 모래색 파운데이션 한 가지만을 내놓고 ‘모든 피부색에 맞는다’고 우기는 화장품 회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2013년, 크리스찬 루부탱은 연한 색부터 짙은 색까지 다른 피부색에 맞는 다섯 종류의 펌프스를 출시했다. 이제 우리는 ‘누드’가 색상이 아닌 색의 범위임을 안다. 그리고 세상도 이를 반영할 때가 되었음을 안다.



핑크 계열



핑크는 소녀, 파랑은 소년을 위한 색이라고 한다. 그 증거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2005년에 시작된 ‘핑크 앤 블루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사진가 윤정미는 어린이들의 물건을 사진에 담았다. 여자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똑같은 핑크색 바다에 표류한 듯 앉아 있다. 놀랍게도 소녀는 핑크, 소년은 파랑이라는 엄격한 분리의 역사는 고작 20세기 중반에 비롯되었다. 몇 세대 전만 해도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아기 옷에 대한 《뉴욕 타임즈》의 1893년 기사는 ‘언제나 남자애에게 핑크색, 여자애에게 파란색의 옷을 입혀야 한다’고 언급한다. 저자는 물론 인터뷰를 한 점원도 이유는 확실히 헤아리지 못했지만 그는 농담 섞인 가설을 내세운다. ‘아마도 남자아이의 얼굴이 언제나 더 빨개서, 베이비 블루의 옷이라도 입히지 않으면 여자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핑크라는 단어도 상대적으로 어리다. 17세기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옅은 빨간색을 묘사하는 단어가 최초로 쓰였다. 그 전에 핑크는 일종의 안료를 가리켰다. 핑크 안료는 갈매나무 열매나 양골담초의 추출액 같은 유기질 색료를 백악 같은 무기질 재료에 더해서 만들었다. 핑크색도 조금씩 달라서 그린 핑크, 로즈 핑크, 브라운 핑크 등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노란색이 섞인 핑크다.

핑크색은 꽃이나 공주의 드레스만을 위한 색이 아니다. 18세기에는 프랑수아 부셰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같은 로코코 화가가 연어색 비단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화폭에 담았다. 페미니즘의 상징 같은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매력을 완전히 장악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림의 주인공은 프랑스 루이 15세 국왕의 정부이자 밝은 핑크색의 세브르 도자기의 인기에 한몫한 퐁파두르 부인이다. 대담하고 풍성한 핑크색이 강하고 개성 있는 여성과 만났다.

잡지 편집자인 다이아나 브리랜드는 핑크색을 ‘인도의 네이비 블루’라 말하며 선호했다.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인 엘사 스키아파렐리, 상속자녀이자 잡지 편집자인 데이지 펠로우스, 설명이 필요 없는 메릴린 먼로가 모두 주목을 끌고 싶은 20세기 여성의 색깔로 ‘쇼킹 핑크’를 선택했다.

현재 핑크색이 겪는 문제의 일부는 패션의 묵은 성차별주의에 대항하는 페미니즘에서 비롯됐다. 미성숙한 색일 뿐만 아니라, 몇몇 화가들이 여성의 알몸을 그리는 과정에서 코치널, 오커, 흰색을 섞으면서 성적 대상화의 색이 되어버렸다. 나체화는 여전히 압도적일 정도로 여성의 비율이 높다. 핑크색이 성적 대상화의 색으로 쓰이는 경향이 1970년 한 색의 놀라운 발견(베이커 밀러 핑크)으로 인해 더 심해졌다.

요즘은 옷부터 자전거 헬멧, 요실금 패드까지 여성을 위한 제품이 남성이나 소년을 위한 것과 똑같은데도 더 비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4년 11월 프랑스의 여성부 장관인 파스칼 부아스타르는 ‘핑크색이 사치의 색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트에서 핑크색 일회용 면도기가 1개에 1.93달러인 데 반해 파란색 일회용 면도기는 10개에 1.85달러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이제는 ‘핑크 세금(pink tax)’라고 일컫는다.

베이커 밀러 핑크

1970년대에 미국 도시는 약물의 유행과 치솟는 범죄율로 고초를 겪었다. 그래서 1979년, 한 교수가 시민의 공격성을 덜어낼 방법을 찾았다고 발표하자 온 나라가 귀를 기울였다. 비밀은 알렉산더 G. 샤우스가 <보완대체 정신의학>에서 발표한, 구역질나게 밝은 핑크였다. 이후 샤우스는 많은 실험을 거쳤다. 먼저 젊은 남자 153명의 체력을 측정한 뒤 절반에게는 진한 파란색, 나머지 절반에게는 핑크색의 판지를 1분 동안 쳐다보라고 지시했다. 후자의 무리에서 두 명을 제외한 이들이 평균보다 체력이 약해졌다.

1979년 3월 1일, 미국 시애틀 소재 해군 형무소의 두 교도관인 진 베이커와 론 밀러가 감옥에 핑크색을 칠하고 효과를 살폈다. 1갤런의 순백색 수지 물감에 빨간색의 마감용 페인트 1파인트를 정확하게 섞어 위장약 펩토 비스몰과 똑같은 색깔을 만든 뒤 감방의 벽, 천장, 철창에 칠했다. 베이커의 말에 따르면, 교도소 내 폭력은 ‘엄청난 문제’였지만 핑크색을 칠하고 156일 동안 단 한 건의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