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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의 기술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평온의 기술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8년 5월 / 308쪽 / 14,000원





제1장 평온한 삶을 위하여



욜로, 휘게, 소확행, 카르페 디엠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누구나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이다. 사는 게 팍팍해서 그런지 이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 말이 영어 약자로 둔갑해 한국에 수입된 이후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열풍 비슷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다. 캐나다의 래퍼인 드레이크가 2011년부터 유행시킨 말이다. 박문각에서 나온 『시사상식사전』은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라고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욜로족은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보다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 생활, 자기계발 등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이들의 소비는 단순히 물욕을 채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충동구매와 구별된다.”

그런데 어느 네티즌의 댓글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현재를 즐기는데 이상 실현이라는 거창한 말은 또 뭐냐. 박문각 선비 코스프레 역겹다. 사전 정의에 니들 가치관 집어넣지 말아라. 어디서 감히 개수작이야.” 욜로를 실천하더라도 그건 미래를 기약할 수 없어서 사실상 강요당한 것인데, 거기에 ‘이상 실현’이 웬 말이냐는 강한 반감이 읽힌다. 욜로의 정의에 대한 댓글들 중에는 이처럼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몇 개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괜히 중2병 걸려서 나중에 폐지 주음.”

“시집 장가 못 가는 만년 솔로들 좋게 포장한 단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단 뒈져요~ 욜로도 믿는 구석이 있어야 욜로지.”

“말은 인도 말 같아서 멋있는데, 포장만 돼 있지 실제는 경기 침체 속에 청년들이 돈이 안 벌리니까 욜로족이 돼서 더욱더 망가지는 건 아닌가요.”

이런 부정적인 댓글들은 우리 사회에 욜로에 대한 반감과 오해가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는 걸 말해준다. 특히,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가 스트레스로 홧김에 돈 쓰는 걸 가리켜 욜로족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욜로보다 덜 알려지긴 했지만, 욜로 이전에 덴마크산 ‘휘게(안락함)’가 있었다. 휘게의 핵심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과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단순하게 사는 기쁨’이어서 일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한국에선 영 쉽지 않다. 북유럽 이민을 알아보고 있다는 한 젊은이는 “휘게 라이프를 헬조선에서 억지로 찾아내는 데 지쳤다.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다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는데, 사실 평등하지 않은 사회와 휘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불평등과 서열에 익숙한 한국인들 중에 휘게의 하부 원칙이라 할 이른바 ‘얀테의 법칙(보통사람의 법칙)’을 실천할 뜻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말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믿거나 그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엔 일본이 원산지인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도 유행인데, 꽤 그럴듯하거니와 바람직해 보인다. “이 작은 마카롱 하나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소확행이지만, 커피나 디저트 시장 등 외식업계 트렌드로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소확행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마광수가 역설한 이런 행복론처럼 말이다. “행복은 지극히 가벼운 것에서부터 온다.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가 쏟아져 내릴 때 우리는 행복하고, 향기로운 커피 냄새를 음미할 때 우리는 행복하고, 땀으로 뒤범벅이 된 몸을 샤워의 물줄기로 시원하게 씻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욜로ㆍ휘게ㆍ소확행의 원조는 ‘카르페 디엠’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라틴어로 “Catch the day!”의 의미다. 지금, 여기의 순간을 잡아라. 즉, 현재를 소중히 하라는 뜻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오 찰나여, 멈추어다오, 너는 그토록 아름다우나니.”라고 노래했는데, 이게 바로 카르페 디엠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카르페 디엠을 외치는 사람들은 나름 성공한 유명 인사들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을 뒤로 미루는 ‘만족의 지연’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유명 인사가 될 수 있었다. 너무도 바빠 일에 치여 살아왔던 그들은 이젠 돈 좀 쓰면서 살아야 되는 게 아니냐는 자기 설득을 위해 카르페 디엠을 외쳐댄다.

비극은 그런 사정과 배경은 무시한 채 덩달아 카르페 디엠을 실천하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카르페 디엠을 오ㆍ남용하면서 만족의 지연을 불온시하는 것이다. 아니, 몰라서 그렇게 한다기보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세상 사는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노동시간이 많고 ‘일중독’이 보편화된 나라에선 만족의 지연보다는 카르페 디엠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우리가 카르페 디엠의 원리를 좋은 방향으로 따르고 그것이 문화로 정착된다면, 내가 보기엔 세 가지가 좋아진다.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속해 있는 우리 국민의 행복감이 높아질 것이고, 입시 전쟁이 완화될 것이고,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감소할 것이다. 특히, 세 번째 부정부패가 중요하다. 우리는 부정부패가 더러운 것처럼 말하지만,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는 사람들이다. 내 새끼 잘되게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만족의 지연을 넘어 자신 한 몸 버리는 것도 마다 않는 지극한 부성애나 모성애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카르페 디엠의 실천이 광범위하게 일어나진 않으리라는 걸 잘 안다. 우리 모두가 같이 그렇게 한다면 해볼 수도 있겠지만, 자신만 그렇게 했다간 큰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카르페 디엠을 긍정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상 외면하는 이중적 감정을 갖고 살아간다. 욜로도 마찬가지다. “욜로? 좋지! 팔자 좋은 너나 해라.”는 식으로 말이다.

욜로, 휘게, 소확행, 카르페 디엠, 또는 그 어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그 기본 바탕엔 평온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이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되는 장면을 지켜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저들이 평온을 눈곱만큼이라도 사랑했더라면!”



제2장 상처받지 않을 자유



남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심리학에 ‘조명 효과’라는 게 있다. 조명 효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배우처럼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외모와 행동을 주시하고 있어 사소한 변화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명 효과는 자기중심주의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자신은 물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한 순간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남들이 나에게 별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음에도 그러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하지만 그걸 잘 알면서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에티켓이다.

미국 유학 시절, 내가 존경했던 어느 노 교수는 반바지 차림으로 백팩을 메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학교에 오가며 공부에만 미쳐 있었다. 그런 실용주의적 차림새가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나는 내심 나중에 나도 그렇게 하겠노라고 결심했다. 나는 1989년 전북대학교에 오자마자 감히 반바지는 시도하지 못했지만 늘 백팩을 메고 걸어 다니는 학생 차림새를 유지했고 지금도 그런다. 그런 스타일이 공부 외에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는 데엔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교수는 반드시 정장 차림을 해야 하며 그게 학생들에 대한 에티켓이다.”라고 주장하는 원로 교수들이 있었다. 적어도 초기엔 내 나름으론 상당히 강심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내가 “에티켓은 쓸모없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화의 절묘한 예”라는 웨인 다이어의 주장에 내심 박수를 보낸 것은 그런 종류의 에티켓과는 거리가 먼 내 라이프스타일 때문일 게다. 다이어는 좋은 에티켓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들어 있음이 틀림없지만, 그중 90퍼센트는 의미 없는 규칙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올바르다고 정해져 있는 방식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내 결정이 나에게 온당하다. 그 결정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어려울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을 어떻게 소개하든 그건 내 마음대로다. 팁을 어떻게 주든, 무얼 입든, 어떤 식으로 말하든, 어떻게 먹든 철저하게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뭘 입어야 하지?’ 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의 덫에 빠질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에 대해 반항심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를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주도하는 삶으로 꾸려나가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속 시원한 말이긴 한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래도 그 방향으로 가도록 애는 좀 써보자. 조지프 캠벨은 “우리가 더없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미움 받을 용기』에 한국 사회가 뜨겁게 반응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아는 젊은 친구는 소년 시절에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머리를 빗는 습관이 있었다는군. 그러자 할머니께서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네. ‘네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너뿐이란다.’ 그날 이후로 그는 삶이 조금 편해졌다고 하더군.”

물론 그런 말 한마디로 조명 효과를 포기할 10대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10대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남보다 자기만족을 위해 별 관계도 없는 남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용모에 신경을 쓰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세상은 참 묘하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신경 쓸 만큼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걸 모른 채 살아가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니 말이다. 남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가 보다.



제3장 확신은 잔인하다



거절을 평온하게 하는 법



“나는 거절의 에티켓에 능숙하지 못하다. 멋지고 세련되게 거절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부득이하게 거절의 뜻을 표할 때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가장 큰 걱정은 상대방이 나에게 안 좋은 인상을 가질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섭섭해 하거나 나를 싫어할까봐 어떤 일을 덜컥 떠맡으면 그때부터 더 크나큰 마음고생이 시작된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말이다. 내심 “맞아, 맞아,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생각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내게도 거절은 영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른바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거절을 하면서 마음 편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절은 늘 주요 화두가 되어왔고, 거절을 주제로 다룬 국내외 책이 적잖이 나와 있다. 수많은 해법이 나와 있지만, 정여울의 생각이 모범답안인 것 같다.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나이가 들수록 진짜 중요한 것은 거절의 ‘태도’지 거절 자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잊지 말자. 우리는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지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거절하는 이에게는 ‘거절의 윤리와 에티켓’이, 거절당하는 이에게는 ‘거절을 지혜롭게 해석하는 능력과 거절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한 요즘이다.”

그럼에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거나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거절은 여전히 힘겨운 일일 게다. 그런 사람들은 일단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하는 극단적인 사고방식부터 넘어설 필요가 있다. 즉, 100퍼센트 착하지 않으면 나쁜 것이라는 과격한 믿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같은 이치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거나 호감을 얻겠다는 과욕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 과욕의 근거인 낮은 자존감은 자신에게 ‘착한 사람’이 되는 걸로 극복해야지 그렇게 퍼주기 방식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여전히 거절하는 게 어렵거나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에겐 김호의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할까』라는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김호는 “거절을 잘한다는 의미는 마음속에서 불편하게 느끼거나, 무리하다고 생각되는 요청에 대해서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내 마음속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거나 무리하다고 생각될 때, 이를 상대방에게 표현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반문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걸 조금이라도 쉽게 하기 위해서 ‘역지사지’를 시도해보 필요가 있다. 역지사지는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겪은 경험담을 통해 설명해보련다. 나는 영 내키지 않는 부탁을 마지못해 승낙했다가 그 일에 소극적으로 임해 부탁한 사람에게 불평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봉변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고마워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집요하게 부탁해서 사실상 반강제로 맡은 일인데, 이 정도면 됐지 뭘 어쩌란 거야?” 이게 내 심정이었지만, 부탁한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승낙을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그 사람의 생각이었다. 내가 내린 결론을 간단했다. 그 사람이 옳았다. 나는 애초에 그 일을 거절했어야 옳았다. 최선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는 것은 내 사정일 뿐, 그 사람의 사정은 아니다. 그 사람에겐 어떤 과정을 거쳤건 내가 승낙을 했다는 사실만 중요할 뿐이다.

그래도 이건 내가 스스로 이해했으므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도 많았다. 강연, 원고, 인터뷰 요청은 늘 거절의 예술을 요구하는 일이다. 마지못해 요청에 응했다가 몹시 불쾌했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상대가 다 내 맘 같겠거니 하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내키지 않는 요청을 받아들일 때 이유는 대개 세 가지다. 상대의 요청이 집요하고, 그 요청에 공적 의미가 있고, 그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내 나름으론 이런 배려에 의해 어떤 요청을 마지못해 수락했는데, 요청한 사람은 이후 자신이 내게 시혜를 베풀었다는 듯 무례하게 행동한다. 약속을 펑크 내고 사과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내키지 않는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을 때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키지 않는 요청엔 응하지 않는 나름의 확고한 원칙을 만들어 지금까지 실천해오고 있다.

미국에서 ‘100일간 거절당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 『거절당하기 연습: 100번을 거절당하니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는 책을 출간한 지아 장은 “거절은 의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지만, 거절하는 입장에서도 “거절은 의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거절이 한결 쉬워진다. 나는 의견을 제시하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

물론 거절하기로 결정한다고 해서 거절로 인해서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멀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런 종류의 걱정과 관련, 김호의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할까』에는 ‘과제의 분리’라는 말이 나온다.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에 나오는 개념을 김호가 재해석한 것인데,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되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타인의 과제라는 뜻이다. 김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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