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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홍콩의 4분의 3

류커샹 지음 | 책비



우리가 몰랐던 홍콩의 4분의 3

류커샹 지음

책비 / 2018년 5월 / 328쪽 / 16,000원





란타우섬



치마완 - 바닷가 파도의 움직임

이른 아침,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췡차우 시장 앞에서 여객선을 타고 란타우섬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작은 섬에서 다시 또 다른 작은 섬으로 이어지는 홍콩 특유의 해상교통은 처음 경험하는 이에게는 늘 억누를 수 없는 흥분을 선사한다. 가려는 목적지가 인적이 드문 만(灣)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탄 이 여객선은 췡차우를 떠난 뒤 평상시처럼 곧바로 무이워로 향하지 않고 먼저 치마완을 돌았다.

느릿느릿 배를 견인하며 앞으로 나가던 여객선은 약 20분 정도 지나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헤이링차우를 지나 치마완에 닿았다. 홀로 외로이 툭 튀어나온 부두에 동남아시아에서 온 듯 보이는 한 외국인 노동자가 마대자루를 손에 들고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로 철조망 쳐진, 높게 솟은 거대한 회색빛 감옥이 보였고,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배에서 내린 사람은 노부인 한 분과 중년 남성 한 사람 그리고 나, 이렇게 딱 셋뿐이었다. 노부인은 작은 보따리를 손에 들고 있었고, 중년 남성은 손수레를 밀고 있었다. 부두 뒤에 자리한 감옥은 치마완 교도소로 여성 수감자들만 모아놓은 감옥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감옥 옆에 난 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며 호기심에 감옥의 왼편을 굽어보았다. 삼엄한 철조망 두 줄이 거리를 둔 채 층층이 나뉘어 설치되어 있었고, 안에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비어버린 성을 보는 듯했다.

왜 바닷가를 접한 이곳에서 트레킹을 하려고 했느냐?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지도를 보다가 이곳을 운항하는 여객선의 운항 횟수가 현저히 적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 순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한 상상이 한가득 펼쳐졌다. 둘째, 트레킹 지도를 보니 불분명한 점선 하나가 이곳부터 무이워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걸 보고 더욱 낙관적인 상상에 빠져들었다.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옛날에 현지 주민들이 오가던 옛길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곧장 앞에 가는 중년 남성을 쫓아가 정말 그러한지 물어보았다. 그는 검은색 수도관을 따라 걸어가기만 하면 무이워에 이를 수 있다고, 그런데 본인은 거의 가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방금 본 그 노부인이 이 중년 남성의 어머니임을 알게 되었다. 두 모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곧 삽롱 구촌에 도착했다. 마을 앞으로 보이는 탁 트인 작은 만과 평평한 마을 중심지, 고요한 풍경이 마치 전원 풍경을 그대로 담은 19세기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지도와 대조해보니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치마완이었다. 앞서 거쳐 온 부두는 그냥 곡선으로 굽어진 작은 물가에 불과했다. 예전에는 치마완에서 물소를 풀어놓고 키웠다는데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내려가기 전, 커다란 용수나무 옆에 자리한 작은 틴하우묘(바다의 수호 여신을 모시는 사원. 홍콩 곳곳에서 볼 수 있음)를 하나 보았다. 새로운 향촉과 대련이 붙어 있는 걸 보니 여전히 누군가 찾아오나 보다. 그 옆에 돌로 지은 집 한 채에서 노부인이 작은 개를 끌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노부인에게 인사말을 건네며 길을 물어보았다. 시험 삼아 간단한 광둥어로 무이워로 가는 방향을 여쭤보았다. 개가 나를 보고 사납게 짖어댔다. 영특한 개가 내 광둥어를 듣고 내가 바깥에서 찾아온 사람임을 알아챈 게 아닌가 싶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노부인은 손짓, 발짓해가며 치마완의 아스팔트 길을 따라 앞으로 가라고, 마을길로는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마을길이 길지 않다 보니 얼마 못 가 해안 끝에 다다랐다. 용안나무 아래에는 자전거 여러 대가 서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를 따라잡은 아까 그 중년 남성이 그중 한 대를 잡아끌었다. 알고 보니 그는 아침 일찍 여기까지 타고 온 자전거를 이곳에 대놓고 다시 배를 타고 췡차우에 가서 장을 본 뒤 어머님과 함께 돌아온 길이었다.

나는 왜 북쪽의 무이워에 가서 장을 보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거기는 좀 멀기도 하고 췡차우와 비교하면 과일과 채소가 다양하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무이워까지 가려면 산 넘고 고개도 건너가야 하니 못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고 말이다. 그에 비해 치마완에서 췡차우는 20분 거리다. 이들은 예부터 치마완의 오래된 가옥과 췡차우의 작은 소도시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살아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가서 장을 보면 생활하는 데 충분하다고 했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앞이 탁 트인 평탄한 초원 지대를 천천히 지나갔다. 따라오시던 어머님은 한참 뒤로 뒤처지셨는데, 나중에는 아예 기다란 벤치에 앉아 쉬며 멀리 바다풍경을 바라보셨다. 이곳을 오가며 이 바다를 얼마나 많이 보셨을까. 그러다 잠시 뒤, 다시 느릿느릿 길을 나섰다.

이곳이 바로 삽롱 신촌으로, 마을에는 학교도 마을회관도 없었다. 단층집 20~30여 채가 산비탈 중간 즈음에 자리한 숲속에 조용히 모여 있었다. 마을에 있던 학교는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커다란 용수나무 한 그루만이 외로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널따란 도로는 푸이오로 이어졌다. 치마완 반도에서 유일하게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였다. 한 젊은이가 해안가의 작은 집에서 머리를 내민 채, 걸어오는 우리를 보더니 중년 남성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중년 남성은 발걸음을 멈추고 어머니를 기다렸다. 나는 먼저 작별 인사를 고하고 갈 길을 재촉했다. 이제 탁 트인 길은 사라지고 내 앞에는 1미터 너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길이 펼쳐졌다. 홍콩의 작은 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산길 너비가 딱 이 정도다. 가는 도중 나무로 만든 정자가 한두 개가 서 있어 휴식처가 되어주었고, 그 옆에는 갑작스러운 산불에 대비하기 위한 진화 도구도 보였다. 몇 번이나 커브를 돌아 과일나무가 적잖이 자라고 있는 왕통에 닿았다. 작은 물줄기가 시작되는 산골짜기였다. 골짜기 사이사이에 인가가 두세 채 정도 있었는데 관리가 잘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플랜틴 바나나, 용안, 왐피 등도 적잖이 자라고 있었다. 아까 만난 모자가 오랫동안 살아온 이 마을은 세상과 동떨어진 채 다른 지역과도 별 왕래 없이 지내온 곳이었다. 집 앞에 난 작은 길에 모자가 세워둔 팻말이 보였다. 등산객들에게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달라고 전하는 말과 함께.

앞쪽으로 나 있는 흙 덮인 산길은 계속해서 마을길과 이어졌다. 마을길로 들어선 뒤, 곧바로 살구꽃이 가득 핀 어느 집과 마주쳤고, 여기저기 흩어진 낡은 집 세 채가 더 보였다. 비탈을 올라가니 시멘트 깔린 마을길이 사라지고 흙길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넓은 산골짜기, 응아우쿠완에 도착했다. 맑고 깨끗한 강물이 산골짜기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개울을 따라 난 마을길을 타고 올라가면 고개 정상을 지나 남산으로 갈 수 있다. 마을길은 구불구불 산을 향해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올라갔더니 얕은 접시 모양의 탁 트인 산골짜기가 나타나서 다시금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풍경에 빠져 먼 곳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개울가 저편에서 물소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이전에 본 소들은 하나같이 목과 가슴이 검은 황소들이었는데, 홍콩 시골에서 난생처음 물소를 만나니 더 반가웠다. 물소는 움푹 팬 곳에서 열심히 풀을 뜯어 먹었다. 방금 발길 닿는 대로 걸어오며 여기저기서 똥을 많이 봤는데, 아마도 녀석의 배설물이었나 보다. 몸을 일으켜 배낭을 정리하니 녀석이 멀리서 나를 응시했다. 뭔가 의심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경계하지도 않았다. 나 같은 등산객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탓이리라.

치마완의 물소가 아닐까? 경작할 밭이 없어진 농부가 산골짜기 습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도록 놔두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에 남아 있는 물소는 몇 마리나 될까? 통계 자료는 있을까? 최근 홍콩 정부의 관련 부서가 물소 한 마리를 습지 공원에 풀어놓기로 했다. 물소가 다른 동물들과 공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린 조치였다. 이런 공생공존의 개념이야말로 생태 환경 교재에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 아닐까.

사실 물소는 습지의 구성원일 뿐 아니라 농경문화의 살아 있는 유적이나 마찬가지다. 느릿느릿 풀을 뜯어 먹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통해 그 옛날 홍콩 어느 시골마을의 풍경이 이러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물소를 산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만날 수 있다니,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를 만난 듯 행복하구나! 나는 물소와 그렇게 한참을 함께하며 한가로운 산속의 한때를, 그리고 새소리만이 들려오는 산속의 고요함을 같이 나누었다.

계속해서 바닷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 이어진 길은 대부분 걷기 좋은 흙길이었고, 그 옆으로 나란히 자리한 검은색 수도관이 나와 이 길의 동무가 되어주었다. 큰 U자형 도로를 돌아 내가 지나온 길을 멀리 바라보았다. 속세를 뒤로한 듯 앉아 있는 치마완이 보이자 이국의 시골길을 홀로 걸으며 느낀 감동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가는 길 내내 산골짜기 움푹 팬 곳에서 자라는 플랜틴 바나나와 계속해서 마주쳤다. 플랜틴 바나나 농원은 크게 두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낡은 집들이 그 옆에 서서 동무 노릇을 해주고 있었다. 플랜틴 바나나가 이 지역의 중요한 농산물임이 분명했다. 전통적인 농경과 목축, 어업이 쇠퇴한 뒤 플랜틴 바나나가 바깥에 내다 팔 수 있는 농산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이곳의 흙이 그다지 비옥하지 않아, 플랜틴 바나나 외에는 달리 좋은 과일이 열리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수이쳉완에 도착해서 보니 주변이 수풀로 가득했는데, 면적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작은 고지대를 하나 넘으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L136이라고 표시된 이정표가 서 있는 이 길은 그 유명한 란타우 트레일로 이어졌다. 앞쪽으로 펼쳐진 만을 굽어보았다. 센트럴을 출발해 무이워에 도착한 여객선 한 척이 보였지만 다시 센트럴로 돌아가는 이 배의 출발 시각에 맞춰 도착하지는 못했다. 산길을 걸어 내려가서 보니 출구가 불분명한 작은 돌층계 길이 나타났고, 계속해서 가니 L139라고 표기된 이정표가 보였다. 홍콩의 산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흥미로운 것들 중 하나가 이렇게 여기저기 서서 등산객들에게 본인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이정표다. 산길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어도 그조차도 쉽지 않을 정도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여유가 있어, 센트럴로 돌아가는 여객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무이워의 시골 풍경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퉁무이 고도 -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고 좁은 길

요즘 세계 각지의 유명한 관광 명소를 보면, 대부분 교외 지역과 시골의 고도나 옛길을 보존해 여행객들이 도보 여행을 즐기고 이를 통해 현지의 문물과 역사, 풍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홍콩에는 적게 잡아도 30~40개의 고도가 있고, 모두 그런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고풍스러운 정취가 가득하다. 다만 대부분은 일상생활 중 이동 경로로 활용된 좁은 오솔길이고, 전쟁이나 이주 경로로 이용된 노선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탓인지 고도의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중요한 여행길로도 발전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홍콩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도시가 되면서 걷기 좋은 도보 여행길이 구획되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구획된 길들은 대부분 산의 능선을 타고 종주하는 시야가 탁 트인 노선들이다. 외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맥리호스 트레일, 윌슨 트레일, 란타우 트레일 등이 모두 이런 레저형 트레일이다. 퉁무이 고도는 오솔길에 속하는 대범한 풍모와는 거리가 먼 산길이다. 산 양쪽 기슭에 모두 와이췬이 있고, 이 좁고 작은 길이 간신히 마을들을 이어주고 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보이는 데다가 마을 사람들의 생활 경제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게다가 양쪽에 항만도 다 있으니 바다로 나가기도 편리하다.

퉁무이는 퉁충에서 무이워까지 이어진 옛길, 즉 이 양쪽 지역을 잇는 길이라는 의미로 생겨난 이름이다. 산 위에 오래된 마을 두세 개가 흩어져 있어서 길을 걷다 보면 반드시 마을을 지나치고 고개를 넘게 되는데, 고도가 실제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라 하겠다. 친구인 영왕퉁이 예전에 알려준 바에 따르면, 20여 년 전 홍콩으로 돌아와 농어업자연보호서에서 일하던 때 타이호강에서 어류 자원을 조사하던 중 바다에서 캐낸 바지락을 어깨에 메고 산을 넘어 무이워로 팔러 가는 타이호촌의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부근 마을들이 예전에 어떻게 생계를 꾸려갔는지 알려주는 일화다. 현지인들이 무이워와 퉁충을 오갈 때 가장 자주 이용한 길이 퉁무이 고도였음이 확실하다.

초여름 어느 날, 선셋 피크 북쪽에 난 이 고도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여객선을 타고 무이워에 도착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뇌우를 만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우산으로 비를 피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곧 그치며 햇볕이 나는가 하더니 타는 듯 뜨거운 날씨로 돌변해버리고 말았다. 우산으로 햇볕을 가리지 않았다면, 산꼭대기에서 그 무더위에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무이워 옛 마을을 지나 길을 따라 걸어갔다. 버려진 옛 마을 여러 곳을 지나는데, 높은 톤으로 지저귀는 두세 종류의 새소리가 들판 사이에서 끊임없이 바뀌며 들려왔다. 맑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가운데, 무이워의 소박한 시골 풍경이 짝을 이루어 대도시의 전원 소나타 악장이 완성되었다.

짙푸른 버터플라이 힐을 우회해서 돌아가니, 실버마인 폭포가 뇌우가 지나간 뒤라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운 좋게 만난 실버마인 폭포의 수세는 산에서 홍수가 났나 싶을 정도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실버마인 동굴이 있는데, 100년 전 홍콩에 살던 영국인들이 이곳에서 은 채굴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광맥이 그리 많지 않아 흐지부지되었고 채굴을 위해 판 굴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일로 실버마인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위로 올라가는 길 내내 홍콩 정부에서 서명한 ‘홍콩올림픽 트레일’ 표식들이 바닥에 쭉 서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 주최를 기념하여 세운 길임을 알려주는 표식들이었다. 시멘트 계단을 힘들게 하나하나 올라가 능선의 몽토아우에 오르니 햇볕과 비를 피하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여기서 본 무이워 풍경은 꽤 볼 만했고, 그 뒤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평탄한 산길이 쭉 이어졌다. 그런데 흙은 구경도 할 수 없는 길이라 뭔가 산길을 직접 밟는 맛이 좀 덜했다. 계속해서 발길을 옮기면서 고도에 있던 작은 마을 셋을 만났다. 순서상 타이호, 응아우쿠롱 그리고 팍몽 이렇게 세 마을인데, 이 셋을 합쳐서 삼휑이라고 부른다. 모두 2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산과 들에 조용히 숨어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타이호촌의 조상은 광둥에서 건너온 이들로, 마을이 가장 번성했을 당시에는 1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아포롱과 압 쿡렉 두 개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땅을 맨 먼저 개간했고, 나중에 지세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이 산간 평지로 이동해 왔다. 하지만 이제 사람은 사라지고 빈집만 남아,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타이호에서 응아우쿠롱 마을 사이에 자리한 습지는 타이호강의 자연 환경과 인접해 있다. 한때 이곳에 도로 설비 계획이 잡힌 적이 있다. 란타우섬의 남북을 가르는 도로가 이곳을 가로질러 무이워와 퉁충 두 지역을 잇게 할 계획이었는데, 나중에 부결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들리는 바에 따르면 주민들이 항의의 표시로 몰래 산림을 파괴했다고 한다.

응아우쿠롱에 가까워질 무렵, 람씨 집안의 사당 두 채가 보였다. 분명 람씨들이 많이 사는 마을일 테다. 원래 도둑을 막으려고 망루를 세웠는데 아쉽게도 1980년대에 무너져버렸다. 지금 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풍경은 바로 그 뒤, 즉 압쿡렉의 울창한 풍수림이다. 이곳에 이르면 산길도 널찍해져 작은 차 정도는 오갈 수 있고, 마을에도 인가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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