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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서, 조선을 말하다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병서, 조선을 말하다



최형국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8년 4월 / 357쪽 / 16,000원





새로운 나라를 위한 새로운 병서



조선군의 표준 전술이 완성되다 『오위진법』



문종, 짧은 생이 안타까운 군주: 문종은 ‘조선을 조선답게’ 완성하고자 했던 군주로,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병으로 쓰러졌고, 12세의 어린 세자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단종이다. 문종은 죽기 직전 김종서를 우의정에 앉히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에게 어린 임금을 잘 보필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런데 무인 기질이 특출했던 수양대군이 거사를 단행했다. 단종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삼정승과 안평대군이 역모를 꾸민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진압을 명목으로 그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마침내 1455년 6월 10일, 단종은 억지로 상황에 봉해졌고, 수양대군은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되었다.

집현전을 부수고 불심으로 위안을 삼다: 세조의 왕위 강탈 이후 조선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세조는 군사력을 강화하고 최측근을 요직에 앉혀 국정을 안정시키려 했는데, 그 중심에 『오위진법』이 있다. 『오위진법』은 문종의 즉위와 동시에 시작된 병서 간행 사업의 핵심이다. 2군 6위의 고려 중앙군 편성 방식을 태조 대부터 변화시켜 문종 대에 의흥사ㆍ충좌사ㆍ충무사ㆍ용양사ㆍ호분사의 5사로 개편한 것을 전술 편제에 적용하기 위한 병서다. 1457년(세조 3)에 명칭이 사(司)에서 위(衛)로 개칭되면서 본격적인 오위 시대가 열렸다. 서문을 보면 “우리 주상(문종)께서는 선왕들이 환란에 대비하신 뜻을 잘 계승하여 진법을 개정하였다”라며 문종의 업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 서문을 쓴 사람이 바로 세조다. 세조가 문종 대에도 군에 관한 여러 일을 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후 세조가 등극한 후 병서를 다듬고 주석과 그림을 추가해 개정판 『오위진법』이 완성되었다.

왕 중심의 조선군 표준 전술: 『오위진법』은 임진왜란까지 조선군의 핵심적인 전략 전술서로 활용되었다. 1책 52장, 서문ㆍ본문ㆍ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 만들어진 『진법』이나 『진도지법』, 『계축진설』은 변화한 조선군의 편제ㆍ명칭과 맞지 않았고, 대부분 소규모 부대 운영이 중심이라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위진법』을 간행한 것이다. 『오위진법』에서 통일한 조선군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주장인 대장 아래 5위(우두머리는 위장)가 있고, 각 위에는 5부(우두머리는 부장)를 둔다. 그리고 5부 아래는 4통(우두머리는 통장)이 있고, 통 밑에는 차례로 여수(125명의 지휘관), 대정(25인의 지휘관), 오장(5인의 지휘관)이 있었다. 작은 단위부터 살펴보면 오(伍)ㆍ대(隊)ㆍ여(旅)ㆍ통(統)ㆍ부(部)ㆍ위(衛)로, 요즘으로 보면 분대ㆍ소대ㆍ중대ㆍ대대ㆍ연대ㆍ사단ㆍ군단과 유사하다. 여기에 보병과 기병이라는 기준으로 부대를 나누어 배치하고, 주력 전투는 기병으로 전개했다.

『오위진법』에서 가장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은 주통(駐統)과 전통(戰統)과 유군의 관계성이다. 실제 전술을 전개할 때는 통 단위로 움직이는데, 1개 대(25명)를 통으로 설정할 경우, 오위의 군사는 모두 2,500명이 된다. 규모를 키워 1개 여(125명)를 통으로 설정하면 오위의 병력은 1만 2,500명이 된다. 적과 대치할 때, 진을 치고 대기하다가 공격의 시점을 살펴 교전한다. 이때 진형을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 공격하는 부대가 전통이고, 남아서 주장을 보호하는 부대가 주통이다. 이후 전통이 힘에 부치거나 손상을 입으면 주통이 전통과 자리를 바꾼다. 다수의 병력으로 적을 압박해야 할 경우에는 주통과 전통이 함께 출동할 수도 있으며, 이는 지휘관의 판단에 맡겼다. 그런데 이렇게 주통과 전통만이 전투를 진행하면 상대에게 전술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전술 변화와 임기응변을 위해 유군이라는 특수 병력을 배치한다. 유군은 말 그대로 유사시 대응 자원으로, 총병력의 10분의 3을 유군으로 삼았다.

한편 『오위진법』은 오행 사상을 반영해 방진ㆍ원진ㆍ곡진ㆍ직진ㆍ예진 등 5가지 진형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오행진의 정중앙에는 전투를 지휘하는 주장이 있고, 주장을 여러 겹으로 보호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그리고 방위에 따라 주통과 전통이 한 쌍으로 배치된다. 유군은 주장의 지근거리에 배치되어 명령에 따라 빠르게 공방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깃발과 악기로 군사를 통제하다: ‘형명(形名)’은 군사 명령 체계로 형(形)은 깃발 같은 시각적 신호 체계, 명(名)은 징이나 북 같은 청각적 신호 체계다. 군사들은 자신이 소속된 부대의 깃발을 보고 공격과 방어 등 다양한 전술 행동을 했다. 조선 전기 군사용 깃발 중 가장 독특한 것은 휘(麾)로 일반적인 깃발에 연 꼬리 같은 긴 천을 1~3개 붙여 사용했다. 휘는 대장과 위장이 사용했다. 지금도 ‘누구의 휘하에 있다’라는 표현이 남아 있듯이, 대장과 위장은 휘를 사용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둑이라는 독특한 깃발도 있다. 중앙에 날카로운 창날을 세우고 그 아래에 소 꼬리털로 장식한 것으로, 군대가 출정할 때는 모든 장수가 이 아래서 둑제를 지냈다.

청각적 군사 신호 체계인 명은 재질에 따라 금속류와 가죽류로 구분할 수 있다. 금속으로 만든 징과 꽹과리는 멈춤과 후퇴를, 가죽으로 만든 북은 전진과 공격을 의미했다. 공격과 후퇴의 속도는 악기를 치는 속도에 맞추어 정밀하게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진군을 의미하는 북은 크게 진고ㆍ전고ㆍ서고ㆍ질고로 구분했다. 진고는 지휘관이 지휘를 시작할 때 주위를 환기하려고 치는 것이다. 전고는 전각을 불며 전투 개시를 알릴 때 친다. 서고는 공격의 호흡을 가다듬을 때 천천히 치는 것이며, 질고는 전진과 동시 공격의 기세를 높일 때 빠르게 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결진이라고 해서 진을 치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했다. 기본적인 배치는 진을 지키는 보병 주통이 외곽을 방위하고, 그 안쪽으로 차례로 보병 전통, 기병 전통, 기병 주통이 선다. 보병은 맨 바깥쪽에 팽배(방패수)가 서고 총통수ㆍ창수ㆍ검수ㆍ궁수 차례로 배치한다. 방패수 다음에 개인 화약 무기를 든 총통수를 배치해 지근거리의 적을 먼저 공격하게 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에는 화약 무기가 지속적으로 개량되었다. 함선에는 여러 가지 장군전을 쏠 수 있는 총통류 화포가 배치되었고, 개인화기로도 세총통이라는 아주 작은 총통이 보편화되었다.

군사들은 오행진을 기본으로, 병력의 규모에 따라 단독으로 진을 구축하는 독진이나 연진ㆍ합진처럼 단독 진 여러 개를 묶어 진형을 구축했다. 또한 오행진을 기본으로 하되 병력의 규모와 지형지물을 활용해 일렬로 늘어서는 장사진, 날개를 펼쳐 적을 감싸 안는 학익진, 학익진과는 반대로 전열을 뾰족하게 해서 적을 뚫고 나가는 어린진, 당시 주적이었던 여진족의 장기인 빠른 이합집산에 대비하기 위해 병력을 분산 배치하는 조운진 등 다양한 진형을 수록했다.

진형을 설명한 후에는 용병(用兵)이라는 다양한 군사용 깃발을 이용한 명령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어 군령을 담았는데, 내용이 몹시 엄격하다. 다음은 그중 눈에 띄는 대목이다.

‘대장을 잃으면 그 위장을 참하고, 위장을 잃으면 그 부장을 참하고, 통장을 잃으면 그 여수를 참하고, 여수를 잃으면 그 대정을 참하고, 대정을 잃으면 그 오장을 참하고, 오장을 잃으면 그 오졸을 참한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병졸이 구원하지 않았으면 역시 참한다.’

전투 개시 후 지휘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휘관이 없으면 명령 체계가 붕괴되어 아군이 몰살될 수 있기에 엄중하게 군법으로 적시한 것이다. 군령 뒤에는 군사들의 인식표인 표장에 관한 설명과 군사들을 교련하고 검열하는 대열의를 수록했고, 마지막에는 모의 전투 훈련과 같은 전투 교전법을 용겁 제1~3형과 승패 제1~3형의 전술 교안으로 설명했다. 『오위진법』은 세조와 성종을 거치면서 각종 주석과 그림이 추가되었다. 『오위진법』은 말 그대로 조선의 전술 교범서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잿더미에서 일어서다



임진왜란으로 깨달은 전략 『무예제보』



조선군의 괴멸적 패배: 1592년(선조 25) 4월 13일, 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부산 가덕도 응봉 봉수대에서 적선의 출현을 알리는 최초의 봉수가 오르며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당시에 보고된 내용은 “약 90여 척의 왜선이 가덕도 남쪽에서 부산포를 향해 항해 중이다”라는 것이었다. 조선은 삼포왜란을 비롯해 왜구의 잦은 출몰을 겪어왔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국지전으로 파악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개전 하루 만에 부산진의 정발이 패전하고 이튿날 동래성이 함락되었다. 당시 조선군은 보병에 북방 세력 견제를 위해 훈련된 기병 중심으로 짜인 오위 편제가 중심이었고, 여기에 활과 총통 등 원거리 무기 약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16세기 중엽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조총을 개인 무기로 보급했다. 창검으로 구성된 기존의 단병접전(短兵接戰) 기법에 조총을 더해 한층 복합적인 전술을 운용했던 것이다.

부산을 점령한 일본군과 조선군 주력부대가 맞붙은 탄금대 전투를 보면 양군이 구사하던 전술의 차이가 드러난다. 이 전투에 관한 일본 측 사료로는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남긴 기록이 가장 자세하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일본군은 깃발과 병력 대부분을 숨기고 기만전술을 활용해 조선군을 끌어들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조선군 기병이 달 모양의 전투대형으로 일본군 진영을 돌파하고 포위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여기서 말하는 달 모양의 전투대형은 조선 전기 기병 전투대형 중 언월진으로 U자 모양으로 적을 포위해 섬멸하는 대형이다. 이러한 조선군 기병이 돌격 전술에 맞서 일본군은 깃발 부대로 기만전술을 펼치며 조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한 후 큰 칼과 장창으로 조선군을 격퇴했다.

일본군의 새로운 전법에 무력했던 조선군: 당시 일본군의 핵심 전술은 아직 조선에 보급되지 않은 조총 부대를 선두에 세우고 선제 사격을 가한 뒤, 창과 검을 든 살수들이 달려들어 단병접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본군의 전술은 조선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명나라 조승훈의 기병 부대 역시 이러한 전술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투에서 패배해 하루 만에 본국으로 패퇴했다. 탄금대 전투 이후 도성이 함락되고 명나라의 1차 원군이 패퇴한 뒤 최초로 전술적 한계를 극복한 것은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탈환 전투였다. 조승훈이 이끈 명의 1차 원군이 활용한 전술은 기병 위주였기에 일본군에 패배했으나, 2차 원군으로 온 이여송은 근접전에 능한 절강보병을 동원해 일본군의 전술을 극복했다.

하지만 적과 교전에서 칼날에 맞아 죽은 자가 1,000명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왜검은 명군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선은 일본과 명나라의 단병 무예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항왜에게 검술 교관 자리를 맡겨 조선군에게 왜검법을 직접 가르치도록 했다. 특히 선조는 검술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적극적으로 왜검 익히기를 강조하며 일본 기술 포용책을 구사했다. 그러나 선조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왜검법을 직접 전수받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선조는 이에 우리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비굴하게 여긴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조는 명군 무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국의 이순신, 척계광: 명나라의 절강병법(浙江兵法)을 익히기 위해 1598년 훈련도감 낭청 한교를 중심으로 명나라의 병법서인 『기효신서』에 수록된 무예 중 근접 거리에서 교전을 펼칠 수 있는 6가지를 정리해 『무예제보』를 편찬했다. 당시 절강병의 전술은 조선군이 접해보지 못한 전법이었으며 무기 역시 낯설었기 때문에 이를 배우기 위해 『기효신서』의 무예를 도입하게 되었는데, 『기효신서』는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쓴 병서로, 왜구에 우세했던 절강병법의 요체가 담긴 군사 서적이다.

척계광은 우리나라의 이순신에 비견될 정도로 중국에서 추앙받는 명장이다. 당시 명나라는 해안을 중심으로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지자, 전술이 뛰어난 장수 척계광을 저장(절강)으로 발령해 참장 직위로 닝보ㆍ사오싱ㆍ타이저우의 군무를 관할하게 했다. 척계광이 부임한 후 군대의 상태를 점검하니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군사들은 기본 전술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오합지졸이었고, 왜구의 계속된 침입으로 세수가 부족해져 무기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척계광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용은 최저로, 효율은 최고로 높이는 ‘가성비 전술’을 고민했고, 주변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무기를 만들고, 인근 농민을 규합해 새로운 형태의 군대를 조직했다. 이것이 바로 척가군이다.

저장 지역은 평지는 대부분 논이고, 산에는 등나무와 대나무가 잘 자랐다. 척계광은 인근 산에서 등나무를 채취해서 다듬은 후, 여러 번 찌고 말린 뒤 표면에 기름을 발라 칼날에 쉽게 베이지 않는 방패를 만들어 등패라 불렀다. 또 대나무는 가지를 모두 떼어내고 날카로운 창날을 붙여 긴 죽창 형태로 만들었고, 가지가 튼실한 대나무는 가지를 그대로 두고 가지 끝에 작은 철 조각 여러 개를 달고 독을 묻혀 일종의 휴대용 철조망을 만들었다. 이는 낭선이라고 한다. 또한 농민들이 풀 더미나 두엄을 옮길 때 사용하는 가지가 3개 달린 농기구를 전투에 활용할 수 있게 발전시켜 당파를 만들었다.

척계광은 이렇게 큰 비용 없이 무기를 확충하고 농민군의 특성을 살린 소규모 부대 단위 전술을 만들었다. 저장 지역은 논이 많아서 말이 빠르게 달릴 수 없을뿐더러, 전투마를 관리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기에 군사 전원을 보병으로 편성했다. 같은 마을에 살던 친숙한 농민 12명씩 조를 이루어 전투에 임하게 했는데, 군사들 사이에 끈끈한 정이 있으면 전투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척계광의 소규모 부대 진형을 원앙진법이라고 한다. 부대원 12명이 한 쌍의 원앙처럼 서로 의지하며 전투 시 공조 체제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군이 활용한 현장 중심 전술: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명군이 사용한 당파나 낭선을 보고 의심을 넘어 비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 일본군을 제압하는 것을 보고 명군의 무예를 인정하게 되었다. 『무예제보』에 실린 6가지 무예는 곤방ㆍ등패ㆍ낭선ㆍ장창ㆍ당파ㆍ장도로, 일본군의 단병접전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데 효과적인 무예들이다. 이 6가지 무예가 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병학지남연의』에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장창과 당파 두 종류는 적을 죽이는 기구고, 방패와 낭선 두 종류는 적을 방어하는 기구며, 창과 낭선은 단병 중에 장병(長兵)이고, 방패(防牌)와 당파는 단병 중에 단병이다. 이 진영은 하나는 긴 병기를 사용하고 하나는 짧은 병기를 사용하며, 하나는 적을 죽이는 병기를 사용하고 하나는 적을 방어하는 병기를 사용하며, 여러 가지 병기를 혼합 운용함으로써 승리를 거둔다.’

즉 낭선은 등패와, 당파는 장창과 짝을 이루어 신속히 공격과 방어를 펼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이와 같이 긴 무기와 짧은 무기를 적절히 배치해 장이위단(긴 무기로 짧은 것을 지킨다), 단이구장(짧은 무기로 긴 것을 구한다)을 이루었다. 이렇게 장단이 조화롭게 배치된 소규모 부대를 배치한 것이 원앙진법이다.



조선의 부활을 꿈꾸다



동양 삼국 무예의 집대성 『무예도보통지』



개혁의 시대를 준비하다: 정조 시대의 국정 운영의 방향은 ‘문치규장무설장영(文置奎章武設壯營)’이라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은 규장각을 중심으로 초계문신제를 도입해 성리학을 바로잡으며, 무는 친위 군영인 장용영으로 왕권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앙 군영 장악은 국정 장악에 반드시 필요했기에 가장 중요한 개혁의 대상이었다.

정조의 무에 대한 특별한 인식은 장용영 설치와 함께 다양한 병서의 편찬으로 구체화되었다. 그중 병서의 지속적인 편찬은 중앙 군영뿐만 아니라, 지방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 병서 편찬은 단순히 새로운 병서를 보급해 군사훈련이나 무예를 변화시키는 1차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병서의 제작 준비부터 새로운 인재의 등용과 배치가 이루어졌고, 병서가 간행되면 군제의 변화도 일어났기 때문에 군무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적 사업이었다. 정조 대는 조선 최대의 병서 편찬 시기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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