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코치력
신정이 지음 | W미디어
엄마의 코치력
신정이 지음
W미디어 / 2018년 2월 / 280쪽 / 13,800원
코치력은 사춘기의 탁월한 처방전
엄마의 코치력이 아이에게 가져다줄 행운의 열쇠
문득 ‘내 아이가 사춘기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갈 때면 엄마의 마음은 당황스러워진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가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자라서 시크한 행동을 하는 아이를 보면 많이 컸구나 하는 든든함과 함께 섭섭한 마음도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차되는 감정들은 엄마도 아이 못지않게 성장의 시기를 맞이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때부터 엄마는 한동안 아이가 겪게 될 육체적 정 신적 불균형의 시기를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돕는 멋진 코치 엄마의 역할을 시작해야 한다. 코치가 된 엄마는 어른이 될 채비를 하는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여는 행운의 열쇠를 하나씩 장착시켜줄 수 있다. 과연 아이는 엄마로부터 어떤 행운의 열쇠를 받게 되는 것일까!
행운의 열쇠 하나_ 아이는 자기 존재감을 세우는 탄탄한 밑바탕을 닦는다: 사춘기 아이의 마음속에는 나는 무엇일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마음속을 헤집고 다닌다. 나만의 나를 찾아가려는 마음속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그동안 엄마가 세워준 기준과 안전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앞으로 계속 자기의 것으로 남겨둘 기준과 버릴 것은 어떤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신만의 기준과 생각들을 서서히 확립해나가게 되는데, 이것은 아이가 자기의 존재감을 세우는 탄탄한 밑바탕이 되어준다.
이 중요한 시기에 여전히 엄마가 세워놓은 기준을 강요하고, 엄마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만 있게 하려고 하는 것은 아이를 독립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엄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엄마가 아이의 사춘기를 이해하고,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만 아이도 엄마의 안정된 정서를 발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코치력을 갖춘 엄마는 아이가 다소 미흡해 보이는 활동을 하더라도 혼자 해낼 수 있다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뭔가를 스스로 이루어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이룰 수도 있고, 좌절감을 경험할 수도 있다. 시도한 것만으로도 빛나는 가치가 있기에 아이에게 충분한 박수를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코치 엄마는 아이의 작은 경험 하나가 성장의 단계로 넘어가는 작은 관문임을 안다. 그래서 어떤 결과에도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로써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첫 번째 행운의 열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행운의 열쇠 둘_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진다: 다음의 두 행동 중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싶은가? 첫째, 아이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을 알려주고 실수한 일을 처리해준다. 둘째,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곁에서 후원해준다. 당연히 당신은 두 번째를 선택할 것이다. 아니, 이미 두 번째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두 번째를 선택하는 것일까? 아이는 성장할수록 점점 스스로 선택할 일이 많아지며, 그 선택의 중요성은 커진다. 엄마는 아이 스스로 이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주도적으로 생활해나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실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대신 선택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습관이 10대에 접어든 시기에도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게. 너는 공부만 해라’ 하는 식으로 발전하게 되면 위험하다. 아이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천 의욕이 낮을 수밖에 없다. 또 성과가 나지 않거나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엄마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려 버리기 쉽다. 책을 한 권 고르는 일에도, 학원을 하루 쉬겠다는 것에도, 심지어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춘기는 그렇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보는 훈련을 하며 마음의 근육을 키워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선택하고 책임지게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아이에게 명령하고 지시하고 체크하던 양육 습관은 옷장 깊은 곳에 넣어 버리면 된다. 이제 엄마는 아이가 자라남과 함께 새로운 양육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 새로운 방법이 바로 코치력이다.
엄마의 코치력은 아이 스스로 ‘이것은 나의 선택이다’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책임질 수 있게 한다.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통하여 아이는 크고 작은 성취를 경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한계와 잠재력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물론 엄마에게는 많은 기다림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녹록지 않은 과정이다. 그러나 사춘기 시기에 내 아이가 반드시 경험하고 훈련해야 할 일임을 꼭 하면 좋겠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인생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행운의 열쇠 셋_ 아이는 감성능력의 틀을 마련하게 된다: 감성능력은 코치력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관계를 맺는 능력, 좌절을 이겨나가는 능력들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이러한 능력을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면 당장 아이에게 사주고 싶을 것이다. 그만큼 누구나 원하는 능력이다. 대니얼 골먼 박사는 “행복하면서도 성공한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높은 지능, 학업 성적, 부유한 환경이 아니라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이다.”라고 감성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엄마의 감성능력은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진지한 대화를 하게 한다. 이러한 엄마의 모습은 아이에게 좋은 거울이 되어주고, 아이에게 스펀지처럼 흡수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가장 믿고 존중하는 사람이 자기감정을 수용해준다고 느낄 때 자신이 사랑받고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마치 어릴 때부터 매일 감성의 샤워를 받으며 자라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경험은 사춘기 시기에 매우 중요하다. 아이는 늘 함께하는 엄마의 감성능력을 이미 그 능력의 틀을 갖추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행운의 열쇠 넷_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는 힘을 배운다: 사춘기 아이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의 마음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는 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엄마가 뭔가를 도와달라고 하면 정의의 사도처럼 열성적으로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마음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마음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한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기준을 강요하고 잔소리를 하게 되면 엄마로부터 벗어나려는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만다. 반면, 엄마가 자신을 인정해주고 들어주고 도움을 요청하면 뭐든 할 것처럼 날뛴다. 이러한 아이의 모순된 두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잘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힘이 바로 엄마의 코치력이다.
코치력을 가진 엄마는 아이에게 내재하고 있는 두 마음의 방향에 적절하게 동기부여를 한다. 그 마음을 잘 토닥여서 성취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 작은아이가 한창 팔뚝 근육을 보이며 힘자랑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할머니 댁에서 가지고 온 무거운 쌀을 집으로 옮겨준 것에 대해 엄청난 인정을 해주었다. 또 마트 장바구니를 들어주기를 부탁했고, 그것에 대해서 아낌없는 감사를 표현했다. 이제 그 두 가지 일에 대해서만은 작은아이가 도맡아 할 정도다. 아이에게 엄마를 도울 기회를 주고, 행동에 대해 아낌없는 인정을 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아이의 두 가지 마음 중에서 밝고 긍정적인 마음에 불을 지피면 사랑스러운 면모가 드러난다. 누군가를 돕고 인정받는 성취의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면서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는 힘을 배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행운의 열쇠 다섯_ 아이는 기름진 옥토에서 자란다: 작은 도토리를 보면서 숲속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작은 도토리 안에는 큰 상수리나무가 될 씨앗이 들어 있다. 그 작은 씨앗은 싹을 틔워 큰 나무로 성장해간다. 그리고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되어 다시 수많은 작은 도토리를 생산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자연의 숲은 빛과 양분을 제공하며 도토리가 싹을 틔우고 성장할 때까지 충분히 좋은 환경이 되어준다. 자연의 숲은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가 큰 상수리나무가 될 것임을 온전히 믿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역시 한 알의 완벽한 씨앗들이다. 아이들은 저만의 잠재력을 펼치며 성장해서 세상에 필요한 인재로 당당히 한몫을 하게 될 것이다. 코치력을 가진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잠재력을 온전히 믿는다. 자연의 숲처럼 엄마가 얼마나 그 믿음을 실천하고 충분히 좋은 환경이 되어주는가에 따라 그 잠재력을 발휘하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아무리 알차고 건강한 씨앗이라도 황무지에 던져 놓으면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한다. 적절한 태양과 물과 영양소를 공급받아야 튼튼하고 올곧게 자라나는 것이다.
코치력을 가진 엄마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를 어떤 아이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누구와도 다른 독특한 존재로서 아이를 존중하며, 아이의 잠재력이 화려하게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코치력을 가진 엄마는 아이라는 씨앗이 완벽하게 싹 틔울 수 있는 가장 기름진 옥토가 되어주는 것이다.
내 아이와 보내는 달달한 사춘기
나를 다루는 것이 내 아이를 다루는 것
이른 봄과 함께 찾아왔던 아이의 사춘기는 계절의 흐름과 보조라도 맞추듯 여름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 7월의 어느 아침, 큰아이는 학교에 갈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날부터 본격적인 사춘기의 폭풍우가 시작되었다. 내 마음도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얘가 진짜 왜 이러는 걸까? 정말 미쳐 버리겠다.’ 치솟아 오르는 분노와 깊은 슬픔을 다스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한편, 다른 마음은 이렇게 나를 다독거렸다. “내가 고함을 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두 마음이 번갈아 나를 집어삼킬 듯이 주거니 받거니 다투는 통에 내 마음의 주인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마음속 힘든 싸움을 하던 나는 아이에 게 아침밥이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큰아이가 참 고맙다. “아침밥 먹자”라고 했을 때, 그래도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에는 응해주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을 텐데, 내가 다그치면 방어할 태세를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나마 아이 얼굴을 보며 아침식사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의미 없게 다가왔고, 의욕도 소진되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일제히 얼굴을 바꿔버린 것 같았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렇게 잘 해내던 아이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에 나 혼자 덩그러니 갇혀 있는 것처럼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나를 어른 되게 하려고 온 아이: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에 나는 어느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내 얼굴에서 그늘을 느꼈는지 불쑥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한테 아이가 왜 있는 줄 알아?”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깊은 침묵이 흘렀다. “…….” 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아려왔다. 어르신은 몇 분 동안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네 아이는 너를 어른 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왔어. 귀한 아이란다.” 끝내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말았다. 그분을 만난 후 내 마음에 작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이의 작은 흔들림에도 맥없이 넘어지는 나약한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큰아이를 얼른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조급함에 몰입되어 오히려 내가 아이보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감정의 널을 뛰고 있었음에도 아이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이 불안하니 아이도 불안하게 보였다. 내 마음이 분노와 좌절의 절정에 있으니 아이 역시 절망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마음에 잠시 이슬비가 내렸는데, 내 마음에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결국 아이를 더 깊은 수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아이가 나를 어른 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고 한 어르신의 말씀이 계속 내 귓가를 맴돌았다. 그제야 아이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만 몰입되어 있는 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오직 내 삶의 잣대를 가지고 아이의 상황을 평가하고 있었고, 그래서 계속 아이를 설득하고 바꾸려고만 했던 것이다.
‘내 모습은 어떤가?’ ‘나는 어떤 말들을 많이 사용하지?’ ‘내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진정 어떤 엄마인가?’ 스스로에게 한 가지씩 질문을 던지면서 내 마음의 근본적인 것들부터 개선해나가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내면을 개선하기 전에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아이의 상황에 집중하는 것에서 조금 물러나서 나의 결핍과 가능성에 과감하게 마주하고 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잘 다루는 일이 아이를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깨달음에 더욱 힘이 새워준 것은 볼프강 펠처의 『부모가 된다는 것』에서 읽게 되었던 다음의 글이었다. 이 구절을 접하며 언젠가 어르신이 나에게 말씀해준 것처럼 아이는 내 몸을 빌어서 온 ‘귀한 아이’란 말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당신을 거쳐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온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당신의 삶을 쫓아 이 세상에 온 생명의 아들과 딸입니다.” - 칼릴 지브란
나를 다루는 진짜 공부를 시작하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 하기에 나는 코칭과정에 등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어른이 되는 길의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나를 다루는 진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인문학, 심리학, 철학 등의 깊이 있는 독서를 할 계기를 만났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마음의 힘을 키우는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코칭은 새로운 차원에서 나를 바라보는 지혜를 알려 주었기에 어쩌면 내 삶의 최고 전환점이 되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하니 자연히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마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이의 사춘기는 조금씩 깊어져 갔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끊임없이 유지해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가 무엇인지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에 따라 세상은 더함도 뺌도 없이 자신의 마음을 되돌려 보여준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안드레스 라라의 『천개의 거울』에는 각각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마리의 강아지 이야기가 나온다.
강아지들이 사는 작은 마을에는 천 개의 거울이 있는 집이 있었다. 항상 행복한 강아지는 그 집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진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천 개의 거울이 있는 집으로 가서 방문을 열었다. 그 방에 들어서니 놀랍게도 천 마리의 강아지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행복하고 즐겁게 웃어주었다. 늘 으르렁거리며 성난 얼굴을 하고 있는 강아지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행복한 세상이 있다는 그 집에 가보고 싶었다.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이럴 수가! 천 마리의 강아지가 일제히 불쾌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닌가! 성난 얼굴의 강아지는 다시는 이 무서운 곳에 오지 않겠다며 방을 나가버렸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얼굴은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나는 항상 웃는 강아지처럼 내 마음이 온전히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훈련했다. 그 에너지가 그대로 거울이 되어 아이에게 전해질 거라고 믿고 또 믿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믿음은 하나씩 현실이 되었다. 큰아이와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생겨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