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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노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영미 지음 | 인물과사상사



광장의 노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영미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8년 5월 / 248쪽 / 13,000원





광장에 촛불이 타오르다



<아리랑 목동>이 촛불로 부활하다

2017년 봄, 광화문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던 12월보다 무려 7개월이나 이른 5월, 이른바 ‘장미 대선’으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에서 집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분주히 일이 돌아갔고 곧 ‘광화문 1번가’를 설치해 국민들에게서 정책 제안을 받았다. 광화문 광장 전체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안이 검토되었고,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한 서울역사문화벨트 조성 사업도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광화문은 시쳇말로 가장 ‘핫한’ 공간이 되었다.

광화문 광장이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이란 말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추운 겨울을 뜨겁게 달군 광화문 광장의 촛불혁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지 더는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하지만 광화문 일대가 이렇게 중요한 공간이 된 것은 그 역사적 뿌리가 그리 짧지 않다. 하필 광화문 광장이 촛불혁명의 장소가 된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공간뿐 아니라 모든 문화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결과다. 역사적 두께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2017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불린 노래 한 곡만 들춰보아도 금방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후렴) 하야 하야하야 하야하야 하야해

1. 순실이를 옆에 끼고 말아먹은 박근혜야 / 거짓사과 오리발로 제아무리 버텨도 / 동네방네 일어서는 국민들을 이길소냐 / 내려와라 당장 / 하야하라 당장 /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려나 주세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농단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광화문 광장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탄핵 절차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민들의 요구는 ‘하야’였다)를 외쳤던 사람들이 가장 빠르게 익히고 즐겨 불렀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하야가’라 통칭되는 여러 노래 중에서 가장 사랑받은 노래가 바로 <아리랑 목동> 개사곡이다. 개사곡이란 글자 그대로 가사를 바꾼 노래다.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의 줄임말)’라고 하기도 한다. 대개의 개사곡은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일종의 구전 가요이며, 그래서 광화문 광장에서 불린 <아리랑 목동> 개사곡도 꽤 여러 버전이 있다. 이 가사는 그중 하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이 노래가 애창되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원곡의 가사를 절묘하게 이용해 개사한 솜씨다. 원곡의 가사는 이러하다.

(후렴)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 야야야

1. 꽃가지 꺾어들고 소 멕이는 아가씨야 /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 몽매 간에 생각 사(思) 자(字) 내 사랑만 하오리까 / 아리아리 동동 / 스리스리 동동 / 아리랑 콧노래를 불러나 주소

이 곡이 발표될 때의 원래 가사는 이러하지만,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면서 ‘꽃가지 꺾어들고 소 멕이는 아가씨야’가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로 바뀌었다. 또 예스러운 표현인 ‘몽매 간에 생각 사 자’는 비슷한 발음인 ‘동네방네 생각나는’으로 다소 우습게 바뀌어 불린 지 꽤 되었다. 음반을 확인해보면 1960년대 가수인 이미자와 은방울자매까지는 원래 가사를 제대로 부르고 있지만, 1970년대 가수인 하춘화 이후의 가수들은 모두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동네방네 생각나는’으로 부르고 있다. 이렇게 와전된 가사를 놓고 보면, <하야가>의 개사는 그야말로 절묘하다.

우선 첫 부분 ‘야야 야야야야’를 ‘하야 하야하야’로 바꿔 부르는 대목에서부터 ‘빵’ 터진다. 여기에 ‘꽃바구니 옆에 끼고’를 ‘순실이를 옆에 끼고’로, ‘동네방네 생각나는’을 ‘동네방네 일어서는’으로 바꾸었으니, 이 노래를 알던 사람들이라면 그저 한 번만 들어도 바로 기억된다. 아마 <하야가>를 불러본 사람이라면 노래가 어쩌면 이렇게 입에 착착 붙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원곡의 가사가 입에 착착 붙도록 만들어졌는데, 원래 가사를 충분히 살려 입에 착착 붙는 재미를 유지한 것이다.

노래는 왜 대중을 뜨겁게 하는가?

여기에 나 같은 대중예술 연구자는 한 가지 생각을 더 할 수밖에 없다. 패러디란 원작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발휘된다. 그런데 <아리랑 목동>은 1950년대에 발표된 옛날 옛적 노래다. 이런 노래가 2016년까지 살아남아 광화문 광장에까지 나오게 된 것은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니다. 이 촛불혁명에 불려나온 노래가 왜 하필 <아리랑 목동>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는 게 당연하다.

이 노래의 원곡 <아리랑 목동>은 1956년 가수 박단마가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다. <감격시대>, <굳세어라 금순아>의 작사가 강사랑이 가사를 쓰고 26세의 새파란 작곡가이던 박춘석이 작곡했다. 박춘석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대를 거친 당시 대중가요계에서는 보기 드문 젊고 학력 높은 작곡가였다. 비슷한 또래인 길옥윤과 이봉조 등의 작곡가가 모두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히트곡을 내놓기 시작한 것에 비해, 박춘석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쇼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1950년대 중반부터 히트곡을 내놓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이면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가왕인 남인수가 <청춘 고백> 같은 트로트로 대박 히트를 기록하고, 해방 후 등장한 가수들도 <굳세어라 금순아>, <비 내리는 고모령>(현인), <울고 넘는 박달재>(박재홍) 같은 트로트로 인기가수가 되던 때였다. 그러니 미국식 대중음악을 구사하고 싶어 하던 젊은 박춘석도 <비 내리는 호남선>(손인호)으로 인기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1970년대까지 그의 작품 경향을 살펴보면, 이미자, 남진, 문주란 등의 수많은 트로트 히트곡을 작곡한 동시에, 안다성의 <사랑이 메아리친다>, 패티김의 출세작 <초우> 등 스탠더드팝 경향의 노래까지 폭넓게 작곡했다.

<아리랑 목동>은 1950년대의 ‘핫한’ 트렌드, 즉 한국 민요의 선율이나 소재에 스윙재즈나 라틴음악을 섞은 1950년대 스타일의 신민요다. 김정애의 <오동동 타령>이나 <닐니리 맘보> 등의 노래가 여기에 속한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미국 대중음악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1950년대는 아프로아메리칸 음악(스윙재즈, 블루스 등), 아프로쿠반 음악(흔히 라틴음악이라 부르는 차차차, 맘보, 룸바 등)이 크게 인기를 모았던 시기였다. <아리랑 목동>은 전라도 민요의 선율에 스윙재즈를 결합한 노래다. 무려 60여 년 전의 작품이다.

이 노래는 1960년대 이후 체육경기의 응원가로 널리 불렸다. 연세대학교의 대표 응원가가 된 것이다. 연고전이 끝난 날에 두 학교 응원단은 서울운동장(이후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은 그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세워졌다)에서 열을 지어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뛰어 명동에서 합류했다. 명동을 헤집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던 학생들은 그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광화문 부근 술집까지 진출해 고래고래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소양강 처녀>, <아파트>, <남행열차> 같은 불후의 응원가들이 속속 합류했지만, 역전노장 급인 <아리랑 목동>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급기야 이 노래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2002년 월드컵 응원까지 달구었다. 2006년 월드컵 때에는 코요테가, 2008년 올림픽 때에는 노브레인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취입할 정도로 이 노래는 몇 년에 한 번씩 광화문 광장에서 불렸다. 그러니 <아리랑 목동>과 광화문 광장은 이미 여러 번 뜨겁게 만나본 셈이다. 응원가였던 이 노래가 2016년과 2017년에 ‘하야가’로 재탄생한 것은 큰 반전이긴 하지만,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집단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필요해질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사적 경험 속에서 적절한 노래를 호출해 새롭게 가공해서 부르기 마련이다. 찬송가의 태반은 이미 존재하던 익숙한 음악을 가져와 가사만 바꾼 것들이고,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은 일본 군가까지 가져다가 가사를 바꾸어 불렀으며, 1980년대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전선을 간다> 같은 군가의 가사를 바꿔 불렀다.

세계적으로 좌파들이 시위 때 즐겨 부르는 <붉은 깃발>(일명 <적기가>)이란 노래는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으로 시작하는 독일 노래 <오, 전나무>의 가사를 바꾼 것이다. 그러니 이미 대중의 입에 익숙하게 오르내렸던 대중가요가 함께 부르는 응원가가 되고, 다시 시위용 노래가 되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래 하나의 역사가 보여주는 켜가 이렇게 층층이 두꺼울진대, 광화문과 세종로라는 공간의 역사적 의미는 얼마나 엄청나겠는가.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뀔 때마다 광화문 앞 세종로는 늘 뜨거워졌고,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이미 몇백 년 전부터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대통령 찬가에서 독립행진곡까지



박목월의 ‘이승만 찬가’

해방 후에 대중가요에서 잠깐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보여주었던 세종로와 삼각산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다시 작품에서 사라졌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은 미군정청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의 위풍당당한 중앙청이 되었지만, 바로 그 위풍당당함이야말로 대중을 주눅 들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세종로 앞길에서 감격과 착잡함을 한껏 드러냈던 <울어라 은방울> 같은 대중가요는 더는 나오지 않았다. 6ㆍ25전쟁으로 중앙청 건물에 붉은 기와 김일성ㆍ스탈린의 얼굴이 걸렸고, 몇 달 후 그것이 내려지고 또 몇 달 후에 올라가고 내려왔다. 이곳에서 불렸던 노래도 몇 달 간격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불렸다가 얼마 후 ‘장백산 줄기줄기 피 어린 자국……’(<김일성 장군의 노래>)이 불렸을 테고, 또 세상이 뒤집혀 <애국가>가 불렸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바라본 세종로가 해방 때만큼 감격스러웠을지는 의문이다. 말은 ‘서울 수복’이지만 상처투성이였고 폭격 맞은 서울은 폐허더미였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한운사의 동명의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화했다. 신상옥 감독, 1960)에는 잔해만 남은 집터에서 주인공 여자가 막막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이 아주 인상 깊었다. 다른 장면이야 세트를 만들어 촬영할 수 있었겠지만, 폭격으로 집들이 허물어진 폐허는 영화를 위해 일부러 만든 게 아닌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1960년인데도 아직 이런 장면을 생생하게 찍을 장소가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거의 10년이 되도록 다 복구되지 못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는 의미다.

이로부터 10여 년 후 그곳은 대중이 부르는 노랫소리로 역사가 뒤집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다름 아닌 1960년 4ㆍ19혁명이다. 그때 학생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며 스크럼을 짜고 행진했을까?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로부터 5년 전 권력의 중심지인 경무대(현재 청와대)에서 불렸을 노래 한 곡을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이 노래는 동영상을 곁들여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다. 유튜브에서 ‘우리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찬가’라고 검색하면 흑백필름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1. 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 위해 / 여든 평생 한결같이 몸 바쳐 오신 /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 2. 오늘은 이 대통령 탄생하신 날 / 꽃 피고 새 노래하는 좋은 시절 / 우리들의 이 대통령 만수무강을 / 온 겨레가 다 같이 비옵나이다 3. 우리들은 이 대통령 뜻을 받들어 / 자유 평화 올 때까지 멸공전선에 / 몸과 마음 바치어 용진할 것을 / 다시 한 번 굳세게 맹세합시다 - <우리 대통령>(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 1955)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불린 이 노래는 SP음반(78회전 음반) 시대 끄트머리였던 1950년대 음반으로는 아주 드물게 LP음반으로까지 제작되었다. 강의 때 이 노래를 그저 가사만 소개해도 ‘북한 같아요’라는 반응이 나온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영상까지 보여주면 경악과 실소가 함께 터져나온다. 작사자와 작곡가 이름까지 소개하면 수강생들은 놀랍고 허탈하다는 한숨을 터뜨린다. 중고교 교과서에 수록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같은 유명한 시, ‘가시밭에 한 송이 핀 백합화’ 같은 유명한 노래를 지었던 유명 예술가들이 이런 노래를 지었다는 게 정말 놀랍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한 유명 예술인은 이분만이 아니라 매우 많다.

예술가가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정말 정치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해 지지했다면야 소신에 따른 일이고, 그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저 정권을 쥔 권력에 ‘부역’하는 일이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게다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찬양 노래를 짓는 일이란, 특정 정치인의 지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이 아닌가. <우리 대통령>을 지은 박목월과 김성태는 흥미롭게도 8년 뒤인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또 <대통령 찬가>를 지었다. 이들의 행동이 정치적 소신의 산물이 아니라 권력에 부역하는 일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대통령 찬가>는 전두환 대통령 시대까지 국가 행사의 대통령 입장 때 늘 연주되었다.

4ㆍ19혁명에서 왜 <삼일절 노래>를 불렀을까?

4ㆍ19혁명 때 <삼일절 노래>(정인보 작사, 박태준 작곡), <광복절 노래>(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를 불렀다는 것은 지금 감각으로는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들 노래는 1960년대 중반 한일수교 반대운동까지도 많이 불렸다. 196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시위 중에 <삼일절 노래>를 부르면 절정부인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대목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느껴졌다고 한다.

<전우야 잘 자라>, <6ㆍ25 노래>가 불린 것도 꽤나 흥미롭다. 전쟁을 거치며 반공주의는 대학생들에게도 의심하기 힘든 것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수많은 반공적인 노래 중 하필 이 노래가 선택된 것은 왜일까? 두 곡 모두 ‘피 흘리는 싸움의 비장함’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전우야 잘 자라>의 작사, 작곡자인 유호와 박시춘은 당대 최고의 인기 창작자였다. 둘은 이미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 <신라의 달밤> 등을 함께 지어 대박 히트를 기록했고, <전우야 잘 자라> 이후에도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전쟁의 모습을 담은 절창들을 남겼다. <전우야 잘 자라>는 9ㆍ28 수복 직후에 우연히 명동에서 만난 유호와 박시춘이 바로 그날 의기투합해 밤새워 만든 노래였다. 낙동강 전선에서 추풍령, 한강 백사장, 삼팔선으로 이어지는 전선의 이동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이 땅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는지 가슴 저리게 노래한다.

1.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구를 무찌르고서 /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2.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3.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는 /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4.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 떠오른다 네 모습이 꽃같이 별같이 - 현인, <전우야 잘 자라>(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1950)



이 노래 속 죽음의 형상화는 이데올로기를 압도한다. 슬픔의 표현이 얼마나 절절한지 퇴각하는 시기에는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노래를 금지했을 정도다. 그러니 총구 앞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어깨를 걸었던 4ㆍ19혁명 시위대에게도 이 노래는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6ㆍ25 노래>(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에서도 ‘맨주먹 붉은 피로 적들을 막아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이라는 대목이, 맨주먹으로 경찰과 맞서 있던 4ㆍ19혁명의 시위 현장에서 충분히 전율을 느끼게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악곡은 박시춘의 <전우야 잘 자라>와 비교할 수 없이 격한데, 느낌이 풍부한 선율을 큰 스케일로 기막히게 뽑아내는 작곡가 김동진의 능력이 이 노래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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