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가장자리
레이첼 카슨 지음 | 에코리브르
바다의 가장자리
레이첼 카슨 지음
에코리브르 / 2018년 3월 / 368쪽 / 18,000원
가장자리 세계
바다의 가장자리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다. 여기는 지상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파도가 육지에 부딪치며 거세게 부서지는 왁자한 곳, 조수가 물을 향해 밀려들었다 물러나고 또다시 밀려드는 곳이다. 해안은 이틀 연속 정확하게 똑같은 경우가 없다. 밀물과 썰물은 자신의 영원한 리듬 속에서 밀려들었다 빠져나가기를 되풀이한다. 해수면 자체도 결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해수면은 빙하가 늘거나 녹으면서, 심해 분지의 바닥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또 대륙 가장자리를 따라 지각이 압력과 긴장에 적응하느라 위아래로 틀어지면서 오르내린다. 오늘은 바다가 좀 더 늘어났다가 내일은 육지가 좀 더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언제나 종잡을 수 없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영역으로 남아 있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변화하는 해안은 육지에 속했다 바다에 속했다를 반복하는 이중적 특색을 띤다. 썰물 때의 해안은 열기나 추위에, 바람에, 비와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속절없이 노출되어야 하는 육지 세계의 혹독함을 잘 알고 있다. 밀물 때의 해안은 짧으나마 상대적으로 안정된 망망대해에 잠기는 수중 세계다. 가장 강인하고 적응력 있는 생물만이 이 변화무쌍한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고조선과 저조선 사이 지대, 즉 조간대(간만의 차이로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지역-옮긴이)는 온갖 동식물의 보고다. 이 복잡한 해안 세계에서 생명체는 가능한 거의 모든 틈새에 비집고 들어앉아 엄청난 강인함과 생존력을 과시한다.
동물이 조간대 해안의 바위를 뒤덮거나, 갈라진 틈새와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반쯤 몸을 숨기거나, 큰 암석 아래와 축축하고 음침한 바다 동굴 속으로 숨어드는 광경은 누구라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심한 관찰자들이 아무런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다고 흘려버리는 곳에서조차 생명체는 어김없이 모래 속에, 구멍이나 관(tube)이나 통로 속에 깊이 들어앉아 있다. 이들은 딱딱한 암석에 터널을 뚫고, 토탄이나 점토에 구멍을 낸다. 또 바닷말, 부유하는 목재, 키틴질로 된 바닷가재에 달라붙어 피각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들은 암석 표면이나 부두의 말뚝을 뒤덮는 박테리아처럼, 반짝이며 해수면을 누비는 바늘구멍만 한 구형의 원생생물처럼, 그리고 모래 입자 사이의 어두운 웅덩이에서 유영하는 자그마한 동물처럼 극히 미세한 형태로 존재한다.
해안은 장구한 세계다. 육지와 바다가 존재해온 시기만큼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이곳 해안도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안은 끊임없는 창조와 끈질긴 삶의 본능에 관한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해안에 들어설 때마다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련성 속에서 생명이라는 복잡한 옷감을 직조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과 참다운 의미를 새삼스레 깨닫곤 한다. (중략)
바다로 들어서는 이 매혹적인 장소에서 내가 마주한 현실은 불과 1시간 전에 떠나온 육지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좀 상이한 방식이긴 하지만 뭔가 세상으로부터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비슷한 느낌이 조지아주 해안의 드넓은 해변에서 황혼녘에 1시간을 보낼 때도 찾아왔다. 막 해가 진 시각에 당도해 어슴푸레하게 빛을 내며 드넓게 펼쳐진 축축한 모래 해안을 따라 썰물 바로 가까이까지 걸어 내려갔다. 그때까지 걸어온 광막한 모래밭을 돌아보니 물이 흐르는 구불구불한 도랑이 가로지르고, 여기저기 조수가 남겨놓은 얕은 물웅덩이가 보였다. 순간 바다는 규칙적으로 잠깐씩 버려두는 이 조간대를 밀물이 되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썰물 때 바닷가에 서 있노라면 육지의 흔적을 담은 해변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오직 바람 소리, 바다 소리, 새소리뿐이다. 수면 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 한 바퀴 맴을 돌다가 모래 위로 미끄러지듯 부서지는 파도 소리……. 모래벌판은 새들로 활기를 띠었다. 도요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그중 한 마리가 바닷가에서 요란하고 다급하게 울어댔다. 위쪽 해변에서 응답이 들리자 그 새는 짝을 만나러 냉큼 날아갔다.
황혼이 내려앉은 모래벌판은 마지막 남은 저녁 빛이 군데군데 파인 물웅덩이와 도랑에 비쳐 신비로운 기운을 자아냈다. 이제 새들은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검은 물체로만 보였다. 세발가락도요가 작은 유령처럼 종종걸음 치며 해변을 누비고, 여기저기서 도요새의 검은 형상이 도드라져 보였다. 이따금 아주 가까이 다가가면, 녀석들은 인기척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곤 했다. 세발가락도요는 종종거리며 도망치고 도요새는 휘리릭 날아갔다.
검은제비갈매기아재비가 어슴푸레한 금속성 빛을 배경 삼아 바닷가를 날아다니거나, 어렴풋이 보이는 커다란 나방처럼 모래 위를 휙 스쳐갔다. 녀석들은 더러 표면에 작은 파문이 둥글게 퍼져나가 거기에 작은 물고기가 있음을 알려주는, 구불구불한 조수 도랑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skim)’(검은제비갈매기아재비의 영문명이 ‘black skimmer’이고 그 이름에 걸맞은 행동이라 저자가 따옴표 처리를 한 것임-옮긴이).
밤의 해안은 낮 동안의 온갖 소란을 잠재워주는 어둠 덕분에 본연의 모습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낮과는 판이한 세상이다. 언젠가 밤에 해안을 탐사하면서 손전등 불빛을 비춰 작은 달랑게 한 마리를 놀라게 한 일이 있다. 그 달랑게는 마치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를 기다리는 듯 자기가 파놓은 구멍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바다와 대기와 해변은 모두 밤의 어둠에 잠겼다. 그 어둠은 인류가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해온 유구한 것이다. 바다와 모래 위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 해안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처럼 태곳적부터 있었던, 모든 것을 감싸는 소리만이 들리는 세계……. 바다 가까이 자리 잡은 작은 달랑게 한 마리 말고 눈에 띄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곳에서도 달랑게를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그때 문득 본래 서식지에 사는 달랑게를 보긴 처음인 것 같은, 그리고 그 생명체의 본질을 비로소 이해한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추고 내가 속한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저 외계에서 온 구경꾼인 것만 같았다. 부서질 듯 연약해 보이지만 믿을 수 없으리만치 강인한 생명력으로 무생물계의 엄혹한 현실에 맞서 홀로 제자리를 지키는 그 작은 게만이 생명 자체를 상징적으로 웅변해주고 있었다.
생명의 ‘창조’ 하면 무엇보다 남부 해안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바로 바다와 맹그로브가 합세해 각기 만, 석호, 좁은 수로 같은 복잡한 유형으로 특징지어지는 플로리다주 남서부 해안의 수천 개 군도를 빚어낸 야생 지대 말이다. 어느 겨울날, 하늘은 푸르고 햇살이 가득했다. 바람 한 점 없었지만 수정처럼 차디찬 대기를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이들 섬 가운데 하나를 골라 파도가 부서지는 가장자리에 당도한 나는 풍파가 들이치지 않는 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거기엔 조수가 멀리 빠져나가 작은 만의 드넓은 개펄이 펼쳐져 있었다. 그 개펄 위로 비비 꼬인 가지, 빛나는 이파리, 아래로 내려와 진흙땅에 자리 잡은 긴 지주근(prop root)이 특징인 맹그로브의 숲이 차차 경계를 넓히며 뭍을 이루고 있었다.
개펄에는 섬세한 색조의 작은 연체동물 껍데기, 분홍색 장미 꽃잎을 뿌려놓은 듯한 꽃조개류 껍데기가 흩어져 있었다. 주변의 펄 표면 바로 아래 그들 군체가 묻혀 있음에 틀림없었다. 얼핏 눈에 띄는 생물이라고는 잿빛과 녹빛 깃털이 달린 작은 왜가리뿐이었다. 특유의 머뭇거리는 듯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개펄을 건너고 있는 붉은 새. 하지만 맹그로브 뿌리 주위에 갓 들고 난 듯한 구불구불한 발자취가 나 있는 것으로 보건대 다른 육지 동물도 거기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개껍데기 바깥쪽에 달린 고리로 맹그로브 지근에 매달린 굴을 잡아먹는 미국너구리의 흔적이었다. 세발가락도요인 듯한 해안 새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조금 따라가 보았다. 물가에 다다르자 발자국은 이내 물속으로 사라졌다. 조수가 그 자취를 완전히 지워버려 마치 애초부터 거기에 없었던 것만 같았다.
작은 만을 굽어보는 동안 나는 해안이라는 이 가장자리 세계에서 육지와 바다가 서로 소통하고 있으며, 바다 생명체와 육지 생명체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과거를, 그리고 그날 아침 바닷물이 새의 발자취를 말끔히 씻어낸 것처럼 전에 이뤄진 많은 것을 지우면서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어떤 순서로 흐르고 그 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맹그로브의 가지와 뿌리에 기어 다니는 수백 마리의 작은 달팽이, 즉 맹그로브총알고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들의 조상은 본시 바다에 살았고, 그래서 이들의 생명 활동 또한 모두 바다에 묶여 있었다. 그런데 수십억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다와의 연결 고리가 서서히 끊어지고 이들은 물에서 벗어난 생활에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들은 조수선에서 몇 미터쯤 떨어진 위쪽에 살며, 오직 가끔씩만 조간대로 돌아간다.
또 다른 고둥이 먹이를 찾아다니며 자그마한 나선형 껍데기로 진흙 위에 구불구불한 자취를 남긴다. 바로 다슬기인데, 이들을 본 순간 나는 한 세기도 더 전에 오듀본(John J. Audubon)이 목격한 광경을 나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향수 어린 바람을 품었다. 이 작은 다슬기는 한때 이곳 해안에서 떼 지어 살아가던 홍학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쯤 눈을 감았을 때, 참으로 장엄한 붉은 새 떼가 이 작은 만을 그들의 빛깔로 물들이며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마치 손에 잡힐 듯 그려볼 수 있었다. 이들이 그곳에 살았던 것은 지구의 장구한 삶에서 불과 어제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본시 시간과 공간은 지극히 상대적이라 이와 같은 마법적인 때와 장소가 불현듯 불러일으킨 통찰 속에서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광경과 기억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체가 등장하고 진화하고 소멸해가는 모든 다양한 징후 속에는 생명의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장엄한 아름다움의 바탕이 바로 생명의 의미와 중요성이다. 그런데 그 의미와 중요성을 알아내기가 지극히 까다롭기 때문에 우리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낑낑거리는 것이며, 그 수수께끼의 답이 숨어 있는 자연 세계로 거듭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바다의 가장자리에 서면 우리는 생명의 드라마가 지구에 관한 첫 장면을 내보내거나 그 서막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또한 우리가 생명체라고 알고 있는 존재가 출현한 이래 줄곧 그래왔듯 오늘날에도 역시 진화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우주적 실재에 맞서 가는 생명체들의 장엄한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안 동식물의 유형
바위에 새겨진 생명의 초기 역사는 지극히 불분명하고 단편적이라서 생명체가 처음 해안에 모여 살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 말하기 어려울뿐더러, 심지어 생명체가 출현한 게 정확히 언제인지도 알 길이 없다. 지구 역사의 전반기인 시생대 때 침전물이 쌓여서 생긴 암석은 그 뒤 수백 미터의 지층에 눌리거나 오랜 기간 동안 깊이 묻혀 있던 지역의 강한 열기를 받아 화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변화를 겪었다. 오직 캐나다 동부 같은 일부 지역에서만 그런 암석이 드러나 있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 암석에 생명에 관한 분명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오래전에 지워져버렸다.
그 후 원생대라고 알려진 수억 년 동안 생겨난 암석은 거의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이 시기에는 일부 바닷말과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철(iron) 퇴적물이 엄청나게 생성되었다. 그 밖의 것들, 이를테면 이상한 구형의 탄산칼슘 덩어리는 석회를 분비하는 바닷말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화석이라고 일컫는 것과 이들 고대 바위에 새겨진 흐릿한 흔적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 없는 말투로 해면이네, 해파리네, 혹은 껍질이 단단한 절지동물이네, 하고 식별하곤 했다. 하지만 좀 더 회의적이거나 보수적인 과학자들은 무기물 기원(inorganic origin)의 입장에서 이런 흔적을 바라본다.
암석에 개략적 기록만 남은 초기를 지나면 돌연 역사 전체가 완전히 파괴된 것처럼 보이는 단계에 접어든다. 장장 수백만 년에 이르는 전(前)캄브리아기의 역사를 상징하는 퇴적암은 침식 작용, 혹은 지표면이 급격한 변화를 겪어 오늘날의 심해저로 달라진 현상을 거치면서 영영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상실로 인해 생명의 역사에는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간극이 가로놓였다.
초기 암석에 화석 기록이 희박하고 퇴적암이 몽땅 소실된 현상은 초창기 바다 및 대기의 화학적 속성과 관련이 있다. 일부 전문가는 전캄브리아기 바다의 경우 칼슘이 부족하거나, 최소한 동물의 껍데기나 뼈가 칼슘을 쉽게 분비할 만한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믿는다. 이게 사실이라면 바다 동물이 대부분 연조직화해서 쉽게 화석화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지질학 이론에 따르면 탄산칼슘의 양이 대기 중에는 많은 데 비해 바다에는 부족해지면서 암석의 풍화 작용이 영향을 받았다. 전캄브라아기의 퇴적암이 계속 침식하고, 씻겨나가고 다시 퇴적하는 과정을 거친 결과 화석이 사라진 것이다.
약 5억 년 전인 캄브리아기의 암석에 다시 기록이 남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생물적 특징을 제대로 갖춘 주요 무척추동물(해안 동물 포함)이 다수 출현했다. 해면, 해파리, 온갖 종류의 갯지렁이, 고둥처럼 생긴 단순한 연체동물 몇 종 그리고 절지동물이다. 고등 식물은 거의 없었지만, 바닷말 역시 풍부했다. 그러나 오늘날 해안에서 살아가는 동식물군의 기본 틀은 캄브리아기의 바다에서 갖춰졌으며, 우리는 상당한 근거를 통해 5억 년 전의 조간대가 현재의 조간대와 대체로 유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적어도 지난 5억 년 동안 이런 무척추동물이 캄브리아기에 썩 잘 진화한 결과, 본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좀 더 고등한 형태로 발달했으리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아마도 현존하는 일부 종의 유생기는 그 조상과 비슷할 것이다. 그 조상의 유해가 지상에 보존되지 못한 채 종적을 감추기는 했어도 말이다. 캄브리아기가 시작된 이래 수억 년 동안 바다 생물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본래의 기본 집단에서 분기한 종이 출현하고, 새로운 종이 나타나고, 진화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더 적합한 종이 등장함에 따라 초기 형태가 숱하게 사라진 것이다. 캄브리아기의 원시 동물 가운데 초기 조상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도 더러 있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변화무쌍한 해안은 확실하고 완벽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야말로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시험대였다.
과거든 현재든 해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바로 이들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둘러싼 현실, 즉 바다 자체의 혹독한 물리적 현실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아울러 모든 생명체가 그들의 공동체와 맺고 있는 미묘한 관계에도 성공적으로 적응해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에 의해 탄생하고 만들어지는 생명 유형이 서로 얽히고 중첩되어 이들의 세계는 지극히 복잡한 양상을 띤다.
천해의 바닥이나 조간대가 바위 절벽과 암석으로 되어 있느냐, 넓은 모래벌판으로 되어 있느냐, 산호초로 되어 있느냐에 따라 생명체의 가시적 유형을 구별해볼 수 있다. 암석 해안에서는 대부분의 생물이 쇄파(surf, 해안 쪽으로 밀려들어 부서지는 파도-옮긴이)가 들이친다 해도 그 힘을 누그러뜨리는 암석이나 그 외 다른 구조물의 단단한 표면에 찰싹 달라붙는 식의 적응을 통해 살아간다. 이런 곳에는 융단처럼 암석을 수놓는 다채로운 해조, 따개비, 홍합, 고둥 같은 생명체들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도처에 널려 있다. 하지만 좀 더 연약한 동물은 갈라진 바위틈이나 구멍에 들어앉거나 큰 바위 밑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