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문화
조엘 모키르 지음 | 에코리브르
성장의 문화
조엘 모키르 지음
에코리브르 / 2018년 2월 / 648쪽 / 36,500원
진화, 문화 그리고 경제사
문화와 경제
오늘날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 1800년부터 지금까지 이룬 경제 성장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는 수많은 연구 결과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풍요로운 세계를 만든 경제 발전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또 이런 경제 성장이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일어났는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이런 경제 성장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에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운 주장을 하고자 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내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에 있지만, 문화라는 모호한 개념을 근거로 삼는 대부분의 주장과 달리 나는 문화를 신중하게 정의하고 그 정의가 내포하는 의미에 한정해 사용할 것이다. 위대한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는 경제적 성과와 경제 성장의 차이를 문화로 설명하는 시도는 “아마추어식 사회학이 될 것이다”고 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경제 성장의 역사를 제도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면, 문화가 그렇게 유용하지 않은 분석 방식일까?
내 접근 방식은 ‘대분기’ 같은 식의 주장과 관련한 두 가지(역사적과 경제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 첫째, 역사적 수수께끼는 신제도학파의 경제사 연구가 지닌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즉 경제학자나 역사학자가 경제성장과 삶의 질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제도를 통해 경제 성장을 설명하려 한 더글러스 노스의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들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올바른 제도로 경제 성장을 하려면 모든 사람이 존중하고 정교하게 설계한 재산권과 강제로라도 시행할 수 있는 계약법, 법치와 질서, 낮은 수준의 기회주의와 지대 추구, 정치적 의사 결정과 성장의 과실을 배분하는 과정에서의 높은 수준의 포용성, 부와 권력이 분리된 정치 조직으로 이뤄진 세계가 필요한데, 이런 제도는 과거에 경제 성장을 유도한다고 믿어져왔다. 이런 제도로는 더 효율적인 제품 및 요소 시장과 이로 인한 효율적인 분배, 국제 및 지역 간 무역, 자본 축적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더 나은 시장과 협조적인 행동, 더 효율적인 분배는 스스로 근대적 경제 성장을 일으키지 못한다. 특히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창의적인 기술 발전과 혁신을 설명하지 못한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첫 번째 수수께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문제를 더욱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 만약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 ‘유용한 지식’이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개선되는 것이 근대 경제 성장의 핵심이라면, 두 번째 수수께끼는 이런 것을 가능케 하는 동기 부여와 인센티브에 관한 것이다. 지식은 매우 중요한 공공재라는 점에서 특수한 상품이다. 지식을 사용함에 있어 다른 사람을 배제할 수 없거니와 지식 보유자가 그걸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 결과 지식 생산자는 그들이 쏟는 자원과 시간 그리고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적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지식이 만성적으로 과소 생산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이나 처방적 지식과 관련해서는 특허를 비롯해 발명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부분적인 해결책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자연철학과 명제적 지식은 특허로 등록할 수 없다. 이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형식적 과학과 비형식적 과학 간의 지속적 교류 없이 기술에 대한 지식이 축적된 것만을 갖고는 우리가 경험한 속도로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에서 과학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도 논의 중에 있지만, 성장이 가속화하면서 1830년 이후에 과학이 산업혁명의 지배적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책은 이런 역사적 및 경제적 수수께끼의 해답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근대 성장의 문화적 토대를 마련한 1500~1700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근대적 성장을 가능케 한 문화적 토대는 이 시기의 정치 및 제도의 발전과 문화적 변화 속에서 생겨났지만 경제 성장을 유도할 목적으로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제도와 경제 성장의 우연한 관계는 이 책에서 반복해서 다루는 주제다.
기술 진보와 궁극적인 경제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태도와 적성이다. 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변 환경과 세계를 이해하는 의지와 에너지를 준다. 적성은 이렇게 얻은 지식을 더 높은 수준의 생산성과 삶의 질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책에서 나는 태도에 대해 논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내 주장은 이런 태도로 인해 서양에서 폭발적 기술 진보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문화’는 자연 세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꿨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유용한 지식’의 축적과 확산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고 가꾸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기술에 영향을 끼쳤다.
최근 몇 년 사이 경제학자들은 ‘문화’라는 개념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지속적인 경제 변화를 분석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점차 받아들이고 있다.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왜 이런 변화가 중요한지도 말이다. 하지만 ‘문화’는 모호하고 감상적인 단어로, 이 책에서 사용하기에는 만족스럽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문화와 어떤 문화적 요소가 중요한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문화가 어떻게 변하고 왜 다른 사회는 각기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지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문화에 대한 내 정의는 이렇다. 요컨대 문화는 유전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전달되며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념, 가치, 선호의 집합체이다. 따라서 내 접근 방식은 몇몇 고고학자의 문화진화학에 대한 주장과 비슷하고 실제로 그런 주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아울러 ‘문화학’ 및 사회적 구성주의와는 다르다. 앞으로 나는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이 크게 고려하지 않은 문화적 신념의 한 가지 요소에 중점을 둘 것이다. 그 요소는 자연에 대한 태도와 인간의 물질적 필요에 맞춰 자연을 지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여부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마콤, 즉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와의 관계가 유용한 지식의 등장은 물론, 결국에는 기술에 의한 성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술은 자연 현상과 자연 규칙을 탐구하고, 조작하고, 개척하려는 인류의 의지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런 의지는 축적된 지식의 양이 계속해서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런 지식을 습득하고 확산하고 활용하려는 의지와 능력은 그 자체로 문화의 일부며, 따라서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 탐구, 그러한 지식 탐구의 목적, 연구를 진행하는 사회의 제도, 지식 습득 방식과 습득한 지식의 진위를 확인하는 절차, 그 지식을 유효한 지식으로 사회에 수용하는 전통, 그 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확산시키는 것을 결정한다. 바로 여기서 근대적 경제 성장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18세기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이전의 ‘초기 근대 유럽’, 즉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를 시작하고 아이작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발표할 때의 시기 말이다. 유럽의 문화와 제도는 이 시기에 형성되었고, 궁극적으로 이런 문화와 제도 덕분에 현대 경제학을 창출한 거대한 경제적 변화를 이끈 행위를 유발했다는 것이 이 책에서 펼치고자 하는 주장이다.
16~17세기 문화적 사업가와 경제 변화
문화적 사업가와 선택에 의한 문화적 진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은 문화적 선택을 할 때 다른 이들의 생각과 신념을 고려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예외가 있다. 로버트 훅이 말한 “코르테스 군단”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선택지에서 문화적 특성을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문화적 특성을 추가할 수도 있다. ‘문화적 사업가(cultural entrepreneurs)’라고 일컫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문화가 일대다로 전달되는 통로다. 문화적 사업가와 가장 비슷한 개념으로는 더글러스 노스가 제시한 “이념적 사업가”일 것이다. 이념적 사업가는 사람들의 세계관과 실제 경험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이런 차이를 이용해 새로운 이념이나 해석을 확산한다.
그리고 리처드 스웨드버그는 조지프 슘페터가 자신의 초기 작품에서 언급했듯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행동하는 사람”에서 “사회적 사업가” 개념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나오는 주장의 핵심은 조지 버나드 쇼의 『혁명가를 위한 격언』의 내용과 일치한다. 쇼는 이 책에서 “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맞추고, 비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발전은 비이성적인 사람이 만든 것이다”고 했다. 이처럼 문화적 사업가는 진화적 변화를 이끄는 예외적이고 특이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이들이 선택한 문화를 그냥 받아들이길 거부하며 의식적으로 문화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성공한 문화적 사업가는 지배 문화의 정당한 권위에 도전하고 전복에 성공해 새로운 문화적 변이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는 무함마드, 마르틴 루터,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그리고 찰스 다윈이 있다.
문화적 사업가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들은 영향력을 발휘해 많은 사람에게 더 풍부한 문화적 대안을 제시하고 동시에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이들이다. 설득의 대상은 제도와 대중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많아야 한다. 물론 그 수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케인스 같은 문화적 사업가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만 설득하면 되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많은 독일인을 설득해야 했다. 어떻게 이런 개인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통 존재하는 분산된 지식을 토대로 논리적인 명제나 신념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문화적 특성은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적 사업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고 볼 수 있다.
‘사업가’라는 단어는 시장 경제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따라서 선택에 의한 문화의 진화는 시장이라는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아이디어 시장”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아이디어 시장에서 사람들은 청중에게 자기 신념의 정당성과 가치의 우수함을 설득하고 정보를 전달하려 노력한다. 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 경제에서 예산 제약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아이디어 시장에는 예산 제약에 해당하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서 거래하는 아이디어 시장은 여전히 유용한 비유다. 문화적 사업가는 이 시장에서 매우 성공적인 판매자다.
다른 혁신적 기업가처럼 문화적 사업가는 타고난 통찰력으로 시장을 ‘읽고’ 문화적 선택지에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하면서 문화를 변화시키지만, 동시에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터무니없이 이질적인 문화적 요소를 도입하지는 않는다. 문화적 사업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회를 관통하는 문화와 새로운 사상 사이에 어느 정도의 단절이 있어야 한다. 이는 현재의 패러다임과 모순된 새로운 정보가 쌓이면서 과학혁명이 초래된다는 토머스 쿤의 인지 부조화나 “비정상의 인식”과 비슷하다. 따라서 15세기 유럽에서는 교회에 대한 환멸이 점차 쌓여가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새롭고 완전한 종교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쇄술로 무장한 루터와 칼뱅이 필요했다.
가장 성공한 문화적 사업가는 이전 세대에 살았던 거장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 마르크스는 당시 지배적인 사상이 더 이상 새로운 산업 현실과 도시 생활에 부합하지 않을 때 살았으며, 그는 전통적인 정치경제학,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헤겔식 역사주의를 포함해 다양한 요소를 혼합함으로써 유물론적 역사관을 발전시켰다. 경제학에서 가장 성공한 문화적 사업가 애덤 스미스 역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경제 이론을 종합하고 재구성해 성공을 거두었다. 문화적 사업가의 성공 여부는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수렴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아울러 그들은 좀 더 포괄적이고 탄탄한 문화적 요소를 제안해 대중이 신념과 선호를 바꾸려 한다. 그리고 효과적인 문화적 사업가는 자신의 청중과 공감할 수 있는 고유한 방식과 언어를 찾아야 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문화적 사업가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변형하거나 번역하는 제자와 조수, 후계자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문화적 사업가의 성공은 지적 혁신을 전도하는 환경에 달려있다. 모든 진화 체계와 마찬가지로 문화 체계도 변화에 저항한다. 보수적이고 순응적인 제도가 만약 혁신가를 신성 모독자이자 변절자라고 낙인찍어 억압한다면 문화적 사업가와 그 추종자는 더욱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고 성공 가능성 역시 줄어든다. 따라서 이런 제도는 문화적 사업가 정신을 억제한다. 저항의 주된 이유는 분명하다. 문화적 사업가가 제시한 새로운 사상은 기존의 사상을 대체한다. 아울러 기존의 사회적 규범에 투자해 사회적 및 경제적 지대(rent)를 가져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확고한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또는 새로운 사상을 불신하고 억압하기 위해 강압적인 방식을 동원할 강력한 인센티브가 있다.
만약 환경이 새로운 생각에 충분히 열려 있다면 기업가는 능력을 발휘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하고, 미래의 기업가를 성공으로 이끄는 피드백 효과를 만들 것이다. 문화적 사업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마르틴 루터와 애덤 스미스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를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역사적 서사의 수준을 훼손하고 그들과 그들의 능력을 무시하는 일이다. 이와 비슷하게 18세기의 계몽주의와 이로부터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끈 영향력 있는 지식인은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불러온 변화는 동시에 정치적 및 지적 변화를 초래해 환경을 바꾸기도 했다. 재능도 있고 운도 따르는 문화적 사업가와 적절한 환경의 상호 작용은 극적이고 혁명적이기까지 한 문화적 변화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화적 사업가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전통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혁신적 기업가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왜 어떤 환경은 성공한 사업가를 배출하고 어떤 환경은 그렇지 못한가에 있지 않고, 왜 어떤 문화적 사업가는 성공했는가에 있다. 그들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공은 개인의 성격, 새로운 사상을 널리 전파하는 헌신적인 추종자를 고무시키는 능력, 사상의 내용, 그리고 적절한 사상이 적절한 시기에 등장하는 행운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다.
문화가 진화하려면 많은 사람의 문화적 선택지를 급격하게 바꾼 사건이나 인물이 있어야 한다.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은 문화 영역에서 ‘희망찬 괴물’의 좋은 사례다. 1953년 DNA 구조를 발견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혁신은 절대로 무(無)의 상태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만약 이런 혁신이 당대의 지식과 크게 다르고 문화의 선택지에 등장하기 시작한다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16~17세기 유럽의 혁신, 경쟁 그리고 다원주의
16~17세기 문화 변화와 유용한 지식의 확산
산업혁명과 서양의 도약을 서양 과학의 발전과 경제 성장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콜럼버스가 신세계에 도착한 후 2세기에 걸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야 한다. 이때는 과학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놀랄 만큼의 과학 발전이 있었던 시기다. 당시의 문화적 변화는 유용한 지식을 대하는 유럽 엘리트의 태도와 그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고 분배하는지, 아울러 그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념을 바꾸었다. 이런 신념의 변화는 새로운 제도의 설립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다시 신념을 강화했다. 그 결과 18세기 중반에는 기술에 의한 물질적 발전을 바라보는 태도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산업혁명의 토대가 된 이런 현상을 나는 산업계몽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는 1500~1700년에 있었던 문화적 변화와 그로 인한 경제 발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시기에 종교적 신념은 큰 변화를 거치면서 어떤 면으로는 실험과학과 공존하거나, 심지어 이를 권장하기도 했다. 근대 초기 유럽의 기술 창의력이 성장하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중요한 문화적 요소는 외국의 사상을 흡수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개방성과 의지였다. 한편 발견의 항해와 과학 발전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항해가 어느 정도까지 과학 발전의 원인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