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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

완웨이강 지음 | 애플북스



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

완웨이강 지음

애플북스 / 2018년 3월 / 478쪽 / 22,000원





세계관 각성



‘상식’으로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지 마라

물리학자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과학상식을 설명한다 해도 보통 사람들은 이에 대해 질문을 던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에 반해 사회학자가 동서양 고전에 등장하는 온갖 이론을 닥치는 대로 끌고 와 설명을 할 때 사람들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비난을 쏟아낸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대중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정치학과 같은 연성과학(Soft Science)에서 소위 ‘전문가’의 실용성이 ‘짝퉁 전문가’에 비해 크게 나을 것이 없음을 시사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과학에 가능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과학은 엄청난 도약을 준비 중이다. 컬럼비아대학교의 던컨 와츠는 자신의 책 『상식의 배반 : 뒤집어보고 의심하고 결별하라』에서 사회과학의 발전 방향이 경성과학(Hard Science, 물리학ㆍ화학ㆍ생물학 등을 포함)처럼 실험과 데이터에 의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통적인 전문가의 예측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직관적인 ‘상식’에 상당 부분 의존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아무리 케케묵은 통계모델이라고 해도 전문가의 예측보다는 정확하다는 것이 와츠의 주장이다.

수리적 방법을 사회과학 연구의 주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제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미 학계에서 실행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와츠의 주장은 식상하지만 그가 자신의 책에서 소개한 야후 연구센터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연구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은 살펴볼 만하다.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라고 하면 독자들은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티핑 포인트』를 떠올릴 것이다. 『티핑 포인트』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가 유행하려면 특정 영역에서 영향력을 가진 중요한 인물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요한 인물이란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교점, 즉 대중의 의견을 이끄는 리더를 가리킨다.

이 이론에 의하면 지명도를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셀럽(Celeb, Celebrity의 준말)을 통한 광고활동이다. 셀럽이 SNS에 올린 소감이나 사진 한 장이 보통 사람을 통한 ‘입소문’ 마케팅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셀럽 이론은 사람들의 상식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을 뒷받침해줄 만한 대규모 통계 실험은 아직까지 진행된 적이 없다. 현실 생활에서 영향력을 통계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유행하는 블로그, 트위터는 해당 예측에 대한 신뢰성을 제공한다.

트위터의 경우 특히 연구 활동에 유리하다는 특징을 지녔다. 공유하고자 하는 웹페이지가 있으면, 사용자는 그 웹페이지의 URL을 단축시켜 복사한 뒤 게재한다. 와츠와 그의 동료는 짧은 코드를 트래킹하는 방식으로 트위터가 어떻게 확산ㆍ전파되는지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가 올린 코드를 그의 ‘팔로워’가 리트윗했을 때 해당 행위를 관측 가능한 영향력으로 간주하는 방식이었다. 와츠와 동료는 2009년에 2개월 동안 160만 명에 달하는 사용자의 정보(7,400만 건)를 분석한 결과, 98퍼센트의 정보가 확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평소 자주 리트윗된다고 생각했던 정보가 실은 매우 특수한 사례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셀럽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와츠 등은 이를 알아내기 위해 통계모델을 사용했다. 첫 달의 데이터를 근거로 수많은 팔로워를 상대로 ‘핵심 인물’을 선발한 뒤 다음 달에 그들의 동향을 파악했다. 분석 결과, 예상과 달리 이들 핵심 인물이 두 번째 달에 트위터에서 크게 이슈를 일으킬 가능성은 ‘무작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셀럽’은 일반인보다 더 쉽게 정보를 확산시킬 수 있지만, 그 능력의 실제 효과가 무척 불안정하기 때문에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마케팅 전략은 큰돈을 들여 소수의 셀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을 대량 고용하는 쪽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대상에 생각지도 못한 대단한 매력이 존재한다거나 ‘스폰서’가 뒤에서 밀어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트위터 상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폰서는 그리 큰 힘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특정 서적이나 영화 또는 노래는 어떻게 해서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와츠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공의 주요 요인은 바로 ‘행운’이었다.

실험자들은 음악 사이트를 개설하고 실험 대상을 모집한 뒤, 수 주 동안 48곡의 노래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실험 대상자는 원하는 노래를 다운로드할 수 있었는데, 노래 제목만 보고 선택해야 하는 A그룹과 노래의 다운로드 횟수를 볼 수 있는 B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다운로드 횟수가 많을수록 좋은 노래라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평점이 사회적 영향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A그룹에서 독립적으로 높은 평점을 획득한 노래는 B그룹에서도 좋은 노래로 인정받았으며 A그룹에서보다 훨씬 크게 유행한다. 반면에 평점이 떨어지는 노래는 B그룹에서 더 큰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이처럼 청중이 서로의 선택에 따른 영향을 받게 되면, 유행할 만한 매력을 지닌 대상은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다. 이른바 ‘승자 독식’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실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결과는 차트에서 어떤 노래가 1위에 오를 것인지는 우연히 결정된다는 점이다. 실험 초기 순전히 운 좋게 다운로드 횟수가 높은 곡이 있다면, 후반에 실험에 참가하게 되는 대상자는 그 영향으로 해당 노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요컨대 최초의 운이 최후의 승자를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한편 상식은 사후의 사건을 ‘해석’하는 데만 유독 뛰어날 뿐이므로, 상식에 의한 해석을 진정한 의미의 이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로 누군가가 농촌 출신의 병사가 도시 출신보다 부대 생활에 더 빨리 적응한다고 말하면 독자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농촌의 여건이 아무래도 도시보다 열악하니 더 많이 고생했을 거야. 그러니 도시 출신보다도 더 빨리 군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사회학자인 폴 라자스펠드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군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사람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도시 출신의 병사가 질서, 협력, 명령, 엄격한 의복 규정 및 에티켓에 훨씬 더 익숙하기 때문에 부대 생활에 더 빨리 적응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측면의 상식 모두 저마다 일리는 있지만 아무런 통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것이 더 유의미한지 알 수가 없다.

복잡하고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최선의 방법은 자연과학처럼 대대적으로 반복 실험을 실시하는 것이다. 중국 여자 배구 팀이 한국 팀을 상대로 동일한 조건에서 100전 95승을 올린다면, 중국 팀이 한국 팀보다 강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최종 결과의 발생 확률이 높은지 낮은지 알 수 없으며, 그저 ‘상식’을 이용해서 그것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을 미래를 예측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데 사용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수만 명을 상대로 좋아하는 노래에 일일이 평점을 매기거나 방대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와 정보의 전파를 분석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사회과학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불분명한’ 연구 결과를 가져다준다. 이 때문에 사회학자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과학적인 연구에 돌입했지만, 각 분야 실용 전문가들은 여전히 과거의 이론에 사로잡혀 있다. 방법적 한계 때문에 더 많은 유용한 가치에 대한 판단을 제때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와츠의 주장처럼, 오늘날의 사회과학은 이미 자신만의 ‘천문망원경’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교재판이 기승을 부리던 17세기에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과학적 신념을 지키며 행성운동의 3대 법칙을 도출해냈던 ‘케플러’가 다시 나타나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 시대의 영웅



학교라는 등급 분류기

중국의 입시교육은 계속해서 나빠지는 공기 질과 같다. 모두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익숙해져서 ‘흠’이 아니라 ‘개성’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명문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더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기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중국 내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비슷한 경향을 보이지만 허베이 헝수이 고등학교는 정도에서 한참 벗어나고 말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헝수이 고등학교는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다. 주입식 교육, 학생에 대한 밀착관리 및 모니터링, 인성보다는 성공을 외치는 교칙 때문에 학생들은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도 단어장을 손에서 놓는 일이 없었다. 하물며 오락이나 여가활동은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

과연 헝수이 고등학교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과도한 입시교육이 원래부터 그다지 강한 편도 아니었던 중국인의 창의력을 더 훼손하지는 않을까? 남다른 창의력을 지닌 학생이 헝수이 고등학교에서 재능을 다 잃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해 답하기 전에 고등학교가 대체 무슨 용도를 지녔는지부터 알아보는 게 좋겠다. 교과서적인 뻔한 답변에 따르면, 고등학교는 국민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키우기 위해 고등수준의 지식을 전수받는 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직장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지식을 배운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미분, 적분 계산식이나 복잡한 분자식을 몰라도 전혀 지장 없이 살아간다

물론 고등학교에서 유용한 정보를 배울 수도 있지만, 입시시험은 일찌감치 ‘유용한’ 범주에서 벗어났다. 입시문제를 푸는 방법을 배우려면 고도의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훈련은 현실 세계에서의 유용성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고, 오로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늘날 고등학교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지식의 전수나 인재의 육성이 아니라, 인간을 등급별로 분류하는 데 있다. 일부 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대학교에 진학한 후 고액 연봉과 사회적 체면이 보장된 직장에 들어간다. 또 일부 학생은 그저 그런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머지 학생은 대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시시각각 사회에 의해 등급이 매겨지는데,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때 부여되는 등급이 거의 평생 유지된다. 이 점에서 고등학교는 일종의 ‘등급 분류기’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런 제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강하게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꼭 분류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인간의 재능은 계속해서 변화하지 않던가? 명문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위대한 성과를 올린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모두 맞다. 하지만 먼저 현대사회의 운용 방식을 짚어보자.

실업자는 왜 생기는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실업률 제로’ 사회다. 노동력이 시장의 공급 - 수요 관계에 의해 100퍼센트 결정된다면, 다른 사람보다 낮은 임금을 감수하는 한 당신은 언제든지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3D 업종에서만 목격된다. 예를 들어 중국의 농민공(農民工)을 살펴보자. 건설업 분야 농민공의 현실을 적은 업계 관계자의 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농민공이 권익을 보장받지 못하는 데는 그들의 수준 낮은 행태가 크게 작용한다. 농민공은 일단 일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부족하다. 그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며칠 동안 일하다가, 힘들거나 돈 몇 푼을 쥐고 나면 농사일이 바쁘다며 슬쩍 사라진다. 도급업자로서는 새로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하니 작업 진도나 품질을 전혀 보장할 수 없다.

이는 중국 농민공에게서만 발견되는 문제가 아니다. 100년 전, 미국의 포드자동차 역시 같은 문제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높은 업무 강도, 긴 업무시간, 낮은 임금 때문에 몇 달은커녕 며칠도 버티지 못하는 작업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나타나는 탓에 이직률이 높아지면서 업계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1914년, 고민 끝에 포드는 작업자의 일일 최저임금을 5달러로 인상하고(당시 평균 임금의 두 배 이상에 해당한다) 업무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했다.

그러자 직장에 처음으로 애착이 생긴 작업자들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고, 회사는 안정적으로 성장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에 형성되어 있던 것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 때문에 사람들은 포드사에서 일하고 싶다며 제 발로, 그것도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펼쳐지자 포드사는 작업자를 선발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했는데, 그 내용이 꽤나 황당하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은 아무리 봐도 업무 성과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선발 기준은 구직자를 탈락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에 불과했다.

한편 포드사의 전략은 현대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누구나’가 아니라 충성심과 단합력을 지닌 직원을 원한다. 특히,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하는 업무일수록 이러한 성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과거 중국에서는 의학에 대해 조금이라고 아는 사람은 ‘맨발의사’라고 부르며 의료 활동을 허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규 의료기관의 학위가 없으면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까다로운 조건과 높은 임금은 의사의 전문성과 사기를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올바른 방법이라 하겠다.

그래서 ‘문턱’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턱은 어떤 분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 중 일부를 걸러낸다. 그리고 이미 안으로 진입한 사람이 실제로 자신의 능력을 통해 지위를 얻었다고 느끼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도 공정하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어떤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많기 때문에 문턱이 제한된 정원수 외의 인원을 도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력은 가장 좋은 문턱이 된다.

경쟁게임: 대학교 입시에도 게임의 법칙이 작용한다. 희귀한 자원인 명문 대학교에 진학하려는 응시생 수가 신입생 모집 인원보다 많기 때문에 입시 경쟁은 치열하게 변한다. 대학교 입시 경쟁은 원래 치열한 편이지만 헝수이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좀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게임에 임했다. 그들은 게임의 난이도를 최고등급으로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입시교육이 중국의 미래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군비 경쟁과 같이 과열된 입시교육 탓에 모든 고등학생이 입시를 위해 공부하고, 그 때문에 경제 개혁의 힘을 잃는 것은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

국가는 교육을 통해 부강해지는가?: 우리는 상식적으로 교육이 강해야 국가가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해도 배움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이는 오해에 불과하다.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한 국가의 교육 수준은 그 국가의 경제가 발전한 시점부터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1960년대 대만의 식자율(Literacy Rate)은 필리핀보다 낮았고 1인당 소득 역시 필리핀의 절반에 불과했다. 교육이 경제성장을 결정한다면 당시 대만의 성장 잠재율은 필리핀에 못 미쳤을 테지만, 현재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필리핀의 열 배에 이른다. 한국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중국이 교육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사실 최근 중국 경제가 고속성장을 구가한 이후의 일이다.

즉 교육 수준이 경제성장을 결정한다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경제 성장으로 사회에 고소득 직업이 생겨나고, 그 자리에 대한 수요 때문에 보다 수준 높은 교육에 대한 요구가 생겨난다고 보는 편이 옳다. 요컨대 인재와 일자리는 사실 동시에 성장한다. 그리고 일자리 기회가 교육의 발전을 견인한다는 사실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학생들이 대학 입시 준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아닌지는 국가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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