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간 나오토 지음 | 에코리브르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간 나오토 지음
에코리브르 / 2018년 3월 / 196쪽 / 13,000원
각오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3월 11일부터 일주일, 나는 총리 집무실에 있는 응접실 소파에서 방재복을 입은 채 선잠을 잤다. 잠이라고 해도 몸을 뻗고 쉬는 정도고, 머릿속으로는 ‘지진, 쓰나미 대처, 그리고 원전 사고가 어디까지 커질까, 어떻게 하면 확대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
지진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자동긴급정지장치가 작동해 모든 원전이 정지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안심했다. 그러나 그 뒤 쓰나미의 습격과 함께 전원이 끊겼고 냉각 기능이 정지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원전은 정지한 뒤에도 계속 냉각을 하지 않으면 멜트다운(meltdown)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의 악화
지진, 쓰나미 대책은 재난 발생 직후부터 마쓰모토 류 방재담당대신이 위기관리센터에 속해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대신과 경찰을 담당하는 나카노 간세이 국무대신, 소방을 담당하는 가타야마 요시히로 총무대신과 연계를 맺고 곧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한편 원전 사고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지진 재해와 원전 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본부 설립 등 총리의 역할을 하면서 나는 원전 사고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고는 나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원래 송전선에서 전기가 끊어져도 긴급용 대형 비상디젤발전기로 전기를 보내게 되어 있지만, 쓰나미 때문에 비상디젤발전기도 정지하고 모든 전원이 상실되었던 것이다. 도쿄전력으로부터 요청받아 전원차를 수배했지만 도착한 차량은 플러그가 맞지 않는 등 결국 도움이 되지 않았다.
초기 대응
나는 원전 사고의 초동 대책이 원활하지 않아 초조해졌다. 원자력 사고 대응의 중심이 되어야 할 행정조직은 원자력안전보안원인데, 이번 원전 사고 때 최초로 보고한 원자력안전보안원 원장은 원자력 전문가가 아니라서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사고 발생 뒤 초기 단계에 총리보좌관과 총리비서관을 중심으로 관저에 정보 수집을 위한 체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타지 않는 원자력발전소
원전은 제어봉을 삽입해 핵분열 반응을 정지시켜도 핵연료의 자기붕괴열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냉각을 유지하지 않으면 원자로의 물이 증발해 용융물 상태가 되고 이윽고 멜트다운한다. 그래서 긴급 정지한 뒤에도 계속 냉각시켜야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우 냉각장치를 움직이려 해도 모든 전원이 끊어져 냉각 기능을 잃은 심각한 사태가 되었다. 제어할 수 없게 된 원자로를 방치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는 악화된다. 연료는 타지 않고 방사성물질을 계속 방출한다.
그리고 방사성물질은 바람을 타고 확산된다. 더욱 골치 아픈 일은 방사능의 독성은 장기간에 걸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만 4000년이다. 일단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나와 버리면 사고를 처리한다 해도 사람이 접근할 수 없고 전혀 통제할 수 없다. 즉, 일단 철수해서 태세를 갖추고 다시 수습한다는 것은 한층 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 알려졌듯 사고 발생 나흘째인 14일 밤부터 15일 새벽까지 도쿄전력이 현장에서 철수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10기의 원전과 11개의 사용후핵연료 풀을 방치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일본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최악의 시나리오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일주일은 악몽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사고 발생 첫날인 3월 11일 20시경, 1호기에서는 이미 멜트다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는 아직 연료가 물에 잠겨 있다는 보고도 받았지만 수위계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날 12일 오후에 1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13일에는 3호기가 멜트다운, 14일에는 3호기에서 수소 폭발, 그리고 15일 6시경, 2호기에서 충격음이 발생했다는 보고와 거의 동시에 4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나는 최악의 경우 사고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예측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의 시나리오
호소노 고시 보좌관을 통해 원자력위원회 곤도 슌스케 위원장에게 사고가 확대되어 최악의 사태가 거듭되면 어느 정도의 범위가 피난 구역이 될지 계산을 의뢰했다. 이것이 언론에서 부르는 “관저가 만든 ‘최악의 시나리오’”로 3월 25일 곤도 위원장에게 받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예측 불가 사태 시나리오에 관한 설명〉이라는 문서다.
이는 최악의 가설에 근거해 만든 지극히 기술적인 예측이며 “수소 폭발이 일어나 1호기 원자로의 격납 용기가 파괴되어 방사선량이 상승해 작업원이 모두 철수한다고 가정하고, 물이 공급되지 않아 냉각이 불가능해진 2호기, 3호기의 원자로 및 1호기부터 4호기까지의 사용후핵연료 풀에서 방사성물질이 방출되는 경우, 강제 이전 구역은 반경 170킬로미터 이상, 희망자의 이전을 인정하는 구역은 도쿄도를 포함한 반경 250킬로미터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것이 전문가에 의해 과학적으로 입증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해가 없도록 말하자면 이 ‘최악의 시나리오’의 숫자, 반경 250킬로미터의 피난은 즉시 피해야 하는 구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도쿄에서 대피해야 하는 시점까지는 몇 주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침몰』이 현실로
그렇다고 해도 반경 250킬로미터라면 아오모리현을 제외한 도호쿠 지방과 니가타현 거의 전부, 나가노현 일부 그리고 수도권을 포함한 간토 지방 대부분이 포함되고, 이 지역에는 약 5,000만 명이 살고 있다. 즉, 5,000만 명이 대피해야 한다. 곤도 위원장의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인간이 방사능을 피해 피난 갔다가 살던 곳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생존에 필요한 대피 기간은 방사능의 자연 감쇄 시간을 고려해 수십 년이 걸린다고 한다.
‘5,000만 명의 수십 년에 걸친 피난’이라면 고마쓰 사쿄 씨의 SF 소설 『일본 침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확실히 ‘최악의 사니라오’는 비공식적으로 작성되었기도 하지만, 정치가나 관료에게도 이 추정에 근거한 피난 계획 입안은 지시하지 않았다. 어떻게 피난할 것인가에 대한 시나리오까지는 만들지 않았다. 즉, ‘5,000만 명 피난 계획’ 시나리오는 내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시뮬레이션이었다.
머릿속 ‘피난 시뮬레이션’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몇 주 안에 5,000만 명을 대피시키기 위한 작전이다. “대피하세요”라고 지시를 내리는 동시에 계획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주세요”라고 한다. 지시를 내리는 동시에 계획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현재 일본에 계엄령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에 가까운 강권을 발동하는 방법 말고는 질서 정연한 피난은 무리일 것이다. 철도와 도로, 공항은 정부가 완전히 관리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거나 입원 중인 사람, 요양 시설에 있는 고령자는 어디로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 임산부와 아이들만이라도 먼저 대피시키는 것이 좋은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수없이 많다.
황실이 어느 단계에서 대피할지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로서는 국민의 피난과 병행해서 국가기관의 이동도 생각해야만 한다. 사실상 환도나 다름없다. 중앙성청, 국회, 최고재판소 이전이 필요하다.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인의 침착한 행동은 국제적으로 평가받았지만 몇 주 사이에 5,000만 명이 피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옥일 것이다. 5,000만 명의 인생이 파괴되어버린다. 『일본 침몰』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계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
만약 어떻게든 5,000만 명이 피난할 수 있다고 해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끝나지 않는다. 250킬로미터 권역이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자. 그 지역에서 농업, 목축업, 어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사는 곳뿐 아니라 직업도 잃는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대기업이라면 국외를 포함해 다른 곳으로 배치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시내에 있는 작은 공장은 그대로 도산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개인이 운영하는 상점도 마찬가지다. 철도, 전력, 가스, 통신 등 지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동일본에서는 일자리가 없어진다. 250킬로미터 권내에 있던 지방자치단체의 직원은 어떻게 될까. ○○현이나 △△촌은 개념으로는 그대로지만 주민이 뿔뿔이 흩어져버리면 자치제의 기능은 사라진다.
피난한 사람들의 주택수당도 필요하다. 1,000만 세대 이상의 가설 주택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1,000만 명 이상의 실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교는 어떻게 될까. 피난 구역 안에 있던 사립학교는 경영을 할 수 없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경제 혼란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주식거래도 정지할 수밖에 없다. 엔화도 크게 하락할 것이다. 일본 경제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도쿄의 땅값은 폭락할지 모른다. 한편으로 오사카와 나고야의 땅값은 급등할 수 있다. 토지 매매 정지도 필요해진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 사유재산의 개념도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해외로 이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국가는 얼마를 지출해야 할까. 그 재원은 어디 있는가. 더욱이 250킬로미터 권내에서 피난하는 사태는 동시에 대기와 바다를 통해서 세계에 방사능을 뿌리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국제적 비난과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일본은 국가로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민간 기업인 도쿄전력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고, 애당초 도쿄전력이 대응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시뮬레이션이었다.
도쿄전력 철수 문제와 통합본부
3월 15일 오전 3시, 비서관이 “경제산업대신이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왔습니다”라고 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대신은 도쿄전력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이 철수하고 싶다고 했다는 보고를 했다. 나는 ‘철수하면 일본은 붕괴한다. 철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도쿄전력뿐 아니라 자위대와 소방, 경찰에 대해서도 같은 기분이었다. 평상시라면 민간 기업인 도쿄전력 직원들에게 거기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이고 후쿠시마 원전 원자로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도쿄전력 기술자밖에 없다. 그런 만큼, 설령 생명의 위험이 있다고 해도 철수하게 둘 수는 없다.
나는 시미즈 사장을 관저로 불러 “철수는 없다”고 알리고, 또 “통합대책본부를 도쿄전력 본사에 설치하겠다”고 제안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통합대책본부를 가동하기 위해 3월 15일 오전 5시 35분에 도쿄전력 본사로 갔다. ‘철수’는 시미즈 사장만이 아니라 당연히 회장 등 다른 간부의 판단도 들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도쿄전력 간부들에게 철수를 단념하도록 설득하려고 혼신의 힘을 쏟았다.
반전 공세
방사능에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던 원전 사고에서 반전 공세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통합대책본부가 들어선 다음 날, 자위대가 물을 주입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띄운 3월 16일부터다. 16일은 상공의 방사선량이 높았기 때문에 미뤘지만, 17일에는 결사적으로 물 주입을 실시했다. 이를 계기로 자위대를 비롯해 소방대원, 경찰들이 목숨 걸고 일본을 구하겠다고 하는 등 사기가 올라갔다. 더욱이 벤트(vent) 때문인지 구멍이 뚫려서인지 원인이 분명하지 않았지만 원자로 안의 압력이 낮아져 물 주입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원자로를 냉각할 수 있게 되고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 원전이 안정되어갔다.
신의 가호
만약 벤트가 늦어진 격납 용기가 고무풍선 터지듯이 전체가 붕괴하는 폭발이 일어났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없었다. 파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의 노력도 컸지만 마지막에는 우연히 행운이 겹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4호기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 풀에 물이 있었던 것도 행운 중 하나다. 공사가 늦어져 사고 당시 4호기 원자로는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충격 등의 이유로 그 물이 핵연료 풀로 흘러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핵연료 풀에 물이 비등해서 없었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없었다. 정말 신의 가호가 있었던 것이다.
원전 문제는 철학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뒤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발전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원전을 둘러싼 논의 가운데 생각나는 바는 2011년 제1회 부흥구상회의 모두 발언으로,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 씨가 이번 원전 사고는 ‘문명재(文明災)’라고 간파한 것이다. 원전 사고는 잘못된 문명의 선택으로 야기된 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더 탈원전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국민의 의사다.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나 자신도 3ㆍ11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인간이 핵반응을 이용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고, 핵에너지는 인간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축적되지만, 인간 개개인의 능력은 이에 비례해서 진화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발생하는 간격 탓에 과학기술은 제어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핵무기 개발은 쥐가 쥐덫을 만드는 것과 같은 자기모순이다. 인간이 과학기술을 취사선택하는 뛰어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 이는 젊은 시절부터 나의 과제였다. 내가 정치에 뛰어든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공계인 도쿄 공업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학생운동을 하고, 졸업한 뒤 시민운동을 시작한 것도, 정치가가 된 것도, 과학기술이 가진 모순을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탕이었다.
인간과의 공존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지구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핵에너지 발생 장치, 핵무기와 원전은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인류가 멸망한다면 핵이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불합리가 여기에 있다. 나는 어떻게든 탈원전만은 실현시키고 싶다. 그것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총리로서 경험한 정치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탈원전과 퇴진
방향 전환
내가 1980년에 첫 당선한 당시, 소속 정당인 사민련은 ‘원자력은 과도적 에너지’라고 평가했고, 나도 그 관점에서 시찰하거나 국회에 계속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원전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3월 11일 이전에는 안전을 확인해서 원전을 활용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3월 11일 사고를 경계로 생각이 바뀌었다. 발생 확률이 100년에 1회인 사고가 있다고 하자. 그것이 교통사고라면 차는 상당히 안전한 이동 수단이다. 그러나 만약 사고가 ‘한 번이라도 나서 지구가 붕괴한다’면 100년에 한 번이든 1,000년에 한 번이라도 누구라도 그러한 위험은 감당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러한 위험이었다. 3월 말부터 서서히 나는 공적인 장소에서 탈원전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정책 재검토의 표명
3월 30일, 사민당 후쿠시마 당수와의 회담에서 “자연에너지 비율이 낮으니 늘리도록 고무하는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3월 31일에는 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과 회담하고 후쿠시마 제1원전은 1호기부터 6호기까지 모두 폐로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으며, 나아가 2010년 6월에 내각회의에서 결정된 에너지기본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까지 표명했다. 참고로 2010년 에너지기본계획은 원전을 일본의 중심 에너지원으로 두고, 2030년까지 적어도 14기 이상 증설하는 것이었다.
하마오카 원전 정지 요청 / 에너지 정책의 전환
5월 6일, 나는 기자회견을 열어 쥬부전력에 하마오카 원전 정지를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참고로 내각에는 쥬부전력에 가동하는 원전을 멈추라고 명령할 권한은 없었다. 그래서 ‘정지 요청’이라는 형태를 취했지만, 인허가 사업자인 전력 회사가 요청을 거부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쥬부전력은 하마오카 원전 정지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