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편견의 세계사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 생각의길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생각의길 / 2018년 1월 / 516쪽 / 22,000원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도
옛날 옛적 인류는 ‘무지’라는 골짜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영원의 산맥은 골짜기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지식의 작은 시냇물은 깊게 패인 계곡 사이로 느릿느릿 흘러 다녔다. 시냇물은 ‘과거’라는 산맥에서 흘러나와 ‘미래’라는 늪으로 사라져갔다. 시냇물은 강물처럼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마시기엔 충분했다. 사람들은 가축에게 물을 먹이고 나무통에 물을 채우면서. 시냇가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지혜로운 노인들은 낮이면 그늘진 구석에서 오래된 책의 신비로운 책장에 파묻혀 고심하다가 저녁이면 시냇가로 나왔다.
노인들은 어린 손자에게 낯선 말을 중얼거렸다. 그 말은 사라진 종족이 수천 년 전에 써놓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신령했다. 왜냐하면 무지의 골짜기에서는, 오래된 것은 무엇이든 존경받을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감히 조상의 지혜를 반대했다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평화를 지켰다. 늘 공포가 있었다. ‘동산의 소산물을 공평하게 나눌 때 나만 배제되면 어떡하나?’ 밤이면 사람들은 마을의 골목길에서 모호한 이야기를 속삭였다. 감히 의문을 제기했던 남자와 여자에 대한 모호한 이야기를. 그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몇몇은 태양이 지는 높은 암벽을 올라가려 했다. 절벽 아래로 그들의 하얀 뼈가 남겨졌다. 시간은 가고 세월은 흘렀다, 인류는 평화로운 무지의 골짜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암흑을 뚫고 한 사나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났다. 손톱은 부서져 있었고, 누더기로 감싼 발은 긴 행군으로 피에 젖어 있었다. 사나이는 발을 질질 끌며 가까운 오두막집에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촛불을 밝힌 주인장이 그를 오두막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침이 되자 마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가 돌아왔어.” 사람들은 오두막 주위에 둘러서서 고개를 내저었다. “빤한 일이었다. 이렇게 끝날 줄 몰랐단 말인가.”
감히 산기슭을 벗어나 돌아다닌 자에겐 패배와 항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한 구석에선 노인들이 고개를 저으며 노여움의 말을 수군대고 있었다. 잔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법은 법인 것이다. 사나이는 지혜로운 노인들의 소망을 저버리는 죄를 지은 것이다. 상처가 나으면 그를 재판장으로 보내야만 했다. 노인들은 관용을 베푼 셈이다. 노인들은 30여 년 전 사막에서 사라진 그 아버지의 비극을 떠올렸다. 하지만 법은 법이다. 법은 준수되어야만 한다. 지혜로운 노인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노인들이 방랑자 사나이를 데리고 장터로 갔다. 원로들은 사나이에게 앉으라고 청했다. 그는 거절했다. 원로들은 그에게 침묵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입을 열었다. 원로들을 등지고 나서, 사나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동료였던 사람들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시오.” 그는 외쳤다. “기뻐하시오. 나는 산맥 너머를 보고 돌아왔소. 내 발로 새 땅을 밟고 왔소. 내 손으로 다른 종족들을 만져보고 왔소. 내 눈으로 놀라운 광경을 보고 왔소. 태초부터 있던 산맥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소. 그들은 나를 바위산으로 데려가 신들에게 감히 저항했던 이들이 백골로 변한 모습을 보여주었소. 내가 ‘이건 거짓말이야! 신은 용감한 자를 사랑하오!’라고 소리치자, 지혜로운 이들이 내게 다가와 경전 구절을 읽어주었소. 율법이 하늘과 땅의 만물을 지었다고 설명해주었소. 골짜기는 우리가 소유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오. 동물과 꽃, 과일과 물고기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며, 우리가 주관하는 것이지만 산맥은 신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이오. 하지만 거짓말이오. 그들은 내게 거짓말을 했소. 당신들에게도 거짓말을 했소. 저 언덕 너머에는 풍요로운 초원이 펼쳐져 있었소. 그곳엔 우리와 똑같이 피와 살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있소. 또, 수천 년 노동의 영광으로 빛나는 도시가 있소. 나는 더 나은 본향으로 가는 길을 찾아냈소. 나는 더 복된 삶의 약속을 보았소. 나를 따르시오. 내가 여러분을 그곳으로 인도하겠소. 신들의 미소는 그곳이나 이곳이나 어느 곳이나 똑같이 있소.”
그가 말을 멈추자 노인들이 소리쳤다. “이단이오!” “신성모독이오! 죗값에 합당한 벌을 내릴 것이오! 어디 감히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법을 모독하는가. 이자는 죽어 마땅하오!” 노인들은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를 죽였다. 사나이의 몸은 절벽 아래로 버려졌다. 그리고 조상의 지혜를 의심하는 모든 이에게 경고가 되도록 그곳에 두어졌다.***
얼마 후 큰 가뭄이 들었다. 지식의 작은 개울은 금세 말라버렸다. 가축은 갈증으로 죽어갔다. 밭에서 곡식은 시들었고, 무지의 골짜기에는 기근이 들었다. 하지만 지혜로운 노인들은 낙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종국에는 올바르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예언했다. 왜냐하면 신령한 경전에 그렇게 쓰여 있었으므로. 그리고 겨울이 왔다. 마을은 황폐해졌다. 마을 사람의 절반이 죽어나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은 산맥을 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은 이를 금지했다. 당연히 법은 지켜져야만 했다.
어느 날 밤 폭동이 일어났다. 절망은 공포로 침묵하던 이들에게 오히려 용기를 주었다. 노인들이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무시되고 말았다. 노인들은 손자들의 불순종을 슬퍼했지만, 마지막 마차가 마을을 떠나려하자 자신들도 태워달라고 했다. 미지의 세상을 향한 여정이 시작됐다.
방랑자가 마을로 돌아온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난 후였기 때문에 그가 그려줬던 길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수천 명이 기근과 갈증으로 희생되고 난 후, 첫 번째 이정표가 나타났다. 거기서부터는 여정이 한결 수월했다. 사려 깊었던 사나이는 숲속이나 험준한 바위 사이를 헤매며 길을 찾을 때마다 선명하게 표시해두었다. 길은 점점 쉬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푸른 초장의 새 땅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가 결국 옳았어.” 사람들은 말했다. “노인들이 틀렸던 거야….” “그는 진실을 말했고 노인들은 거짓말을 했어….” “그의 뼈는 절벽 아래에서 썩고 있는데, 노인들은 마차에 앉아 경전 구절만 외고 있어….” “그는 우리를 구원했는데, 우리는 그를 살육했어….” “우리가 그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연히….” 사람들은 말과 황소의 고삐를 풀고 암소와 염소를 초장으로 몰았다. 그리고 집을 짓고 땅을 나누어 경작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몇 년 후, 지혜로운 노인들이 머물 전당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멋진 새 전당에 용감한 개척자를 묻자는 의견이 나왔다. 사람들은 경건한 순례 행렬을 지어 이제는 황폐해진 골짜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골짜기에 도착해보니,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굶주린 자칼이 동굴로 물고 가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작은 돌 하나를 오솔길(지금은 거대한 고속도로가 되어버린 길)에 세웠다. 그 돌에는 무지의 어두운 폭력에 처음으로 저항했던 사람, 민족을 새로운 자유로 인도하려 했던 사람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리고 후손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를 세웠노라고 쓰여 있었다. 태초에는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지금도 일어나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무지의 폭정
527년 플라비우스 아니시우스 유스티니아누스는 동로마제국의 통치자가 되었다. 이 세르비아 농장 일꾼은 ‘학교 교육’이라면 질색이었다. 그의 명령으로 고대 아테네 철학 학파는 핍박을 받았다.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사제들이 나일강 유역을 침략한 이후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았었던 이집트 신전을 폐쇄해버린 것도 그였다. 이제 제국의 황제로 알려진 농장 일꾼의 명령에 따라 신전과 부속학교는 국가 재산으로 몰수되었고, 조각과 그림은 콘스탄티노플 박물관으로 실려 갔으며, 성직자와 서화가들은 감옥으로 보내졌다. 이들이 배고픔과 무관심 속에 버려진 채 죽고 나자, 상형문자를 만드는 유서 깊은 작업도 사라진 기술이 되고 말았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손쉽게 약탈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낯선 이를 만나면 ‘야만인’이나 ‘미개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즐거운 만남은 아니었다. 가엾은 이교도는 백인들을 창과 화살로 맞이했고, 백인 방문객은 나팔총으로 이에 응수했다. 이후, 서로 편견 없이 생각을 나눌 기회는 거의 오지 않았다. 미개인은 악어와 죽은 나무를 숭배하고 더럽고 쓸모없는 게으름뱅이로 묘사됐다. 오늘날도 우리는 원시인을 연구할 때 아주 잘 길든 동물처럼 그들을 대하며 연구한다. 대체로 원시인이란 존재는 가축으로 길들여진 동물들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야만인은 우리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이게 된 우리 자신인 것이다. 또한 야만인을 철저하게 파악하면서, 우리 포유류가 지난 5,000년 동안 획득한 풍속과 관습의 얇은 표피 저 밑 깊숙이 숨겨진 많은 낯선 본능을 얼핏이라도 보게 된다. 물론 이러한 연구가 우리의 자만심을 부추기는 것만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빠져나온 과거의 조건을 깨달으면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많은 성취에 감사하면서 이제 당면한 과제를 해내자고 새롭게 용기를 내게 된다. 또한 변화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우리의 먼 친척들에게 좀 더 관대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관용’이라는 주제에 바쳐진 한 권의 책이다. ‘관용’을 통해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확실하고 명확하게 설명해보겠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관용’(라틴어 tolerare, 동사 ‘참다’에서 파생)을 ‘다른 사람에게 행위나 판단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 자신의 견해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 경로에 대한 반대를 편견 없이 끈기 있게 인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선 원시 사회 유형을 살펴보면서 관용이라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사람들은 여전히 원시 사회는 매우 단순했고 언어는 몇 안 되는 꿀꿀 소리로 이루어졌으며, 원시인은 세계가 ‘복잡’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모종의 자유를 누렸으리라 보편적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지난 50년 간 탐험가, 선교사, 의사들이 중앙아프리카와 극지방, 폴로네시아의 원주민을 만나 발견한 것을 보면 이와는 정반대다. 원시 사회는 고도로 분화되었으며, 원시 언어는 러시아어나 아랍어보다 더 많은 종류의 문형과 시제, 격변화를 갖고 있었다. 또한 원시인들은 현재의 노예일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노예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두려움 속에 살다가 공포 속에 죽는 비참하고 불쌍한 피조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기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읽었다. 그러나 거기엔 한 가지, 인간 생존의 기적이 빠져 있었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왜, 모든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방어력이 없는 인간이 세균, 그리고 추위와 더위에 저항하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고 마침내는 모든 창조물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간은 이 모든 것을 결코 혼자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종족을 잇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개별성을 부족이라는 복합적 특징 속에 묻어두어야만 했다.
따라서 원시 사회는 ‘생존을 향한 전면적이고 강력한 욕망’이라는 단 하나의 단일 사상으로 지배되었다. 결과적으로 여타의 다른 생각은 모두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요구 앞에 희생되었다.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공동체가 대체로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보기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보이는 세계에서 그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당시에 이 보이는 세계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영역이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원시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원시인은 인과법칙에 익숙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얽히고설킨 세계에서 살고 있다. 죽은 과거의 지도자들은 모두 신으로 부활하고 죽은 이웃들은 모두 영혼으로 부활해서 씨족의 보이지 않는 구성원으로 계속 존재하며, 어디를 가든 이 보이지 않는 구성원들은 보이는 구성원들 하나하나 와 동행하는 것이다. 죽은 이들은 산 자와 함께 먹고, 함께 자고, 문 앞에서 지켜준다. 죽은 이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 즉시 처벌을 받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영혼을 항상 기쁘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미개인은 신의 복수로 불행이 다가올까 봐 한없이 두려워하며 산다.
그러다 보니 미개인은 평소와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면 사건의 제1원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이 간섭한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독이 있는 담쟁이가 팔에 닿아 홍진이 일어나면, “빌어먹을 독풀 같으니라구!” 하는 대신에 “내가 신을 노하게 한 거야, 신께서 나를 벌하신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주술사를 찾아가서, 담쟁이 독을 해독해줄 약이 아니라 격노한 신이(담쟁이가 아니라) 그에게 내린 주문보다 더 강력한 ‘부적’을 받아온다.
정작 모든 고통의 제1원인인 담쟁이는 늘 자라던 그 자리에서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둔다. 만약 어떤 백인이 등유 한 통을 가져와서 그 관목을 태워버린다면, 미개인은 신을 노하게 했다고 백인을 저주할 것이다. 모든 일이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간섭의 결과로 일어나는 사회가 존속하려면, 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율법에 엄격하게 순종해야만 한다. 미개인은 율법으로 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조들은 그런 율법을 고안해서 물려주었다.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고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그들의 가장 성스러운 의무였다. 물론 우리가 보기엔 부조리하다. 오늘날 우리는 진보와 성장, 변함없고 지속적인 발전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
그러나 모든 미개발 사회의 전형적인 현상은 왜 굳이 지금도 좋은 세상을 다른 사회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회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율법이나 기존의 사회 형태가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일반적 치안 규칙을 신의 뜻으로 보지 않는 자들을 즉각 처벌함으로써, 쉽게 말해 불관용이라는 완고한 시스템을 통해서 변화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미개인이 살았던 환경 속에서 불관용은 차라리 그의 의무였다. 만약 그가 어떤 이에게 부족의 지속적인 안전과 평화가 달려 있는 규칙을 어겨도 된다고 허락했다면 부족의 삶은 위험에 처했을 것이며, 이는 모든 범죄 중에서 가장 큰 죄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었던 일부 지배층이 어떻게 그 복잡한 불문법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수백만 명의 군인과 경찰이 나서도 평이한 법률 서너 개조차 수호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미개인은 우리보다 훨씬 더 현명했다. 빈틈없이 계산해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고 ‘터부taboo’라는 개념을 발명했다. 터부라는 말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어로, 원시인들에게 터부란 극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나 물체가 나머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거룩’한 것이기에 토론되거나 건드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를 어기면, 즉각적인 죽음이나 영원한 고문이 뒤따랐다. 감히 조상 혼령의 뜻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거대한 질서에 따라 오직 고통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성직자가 먼저 터부를 만든 것인지, 터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직자 계층이 생겨난 것인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다. 전통이 종교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미루어, 터부도 마법사나 마녀 주술사가 세상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터부가 선사 시대에 무언가를 ‘금지’하는 기호가 된 것은 마법사의 역할이 크다. 마법사들은 처음부터 터부의 개념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탁월한 기교를 활용해 터부를 대표적인 ‘금지’ 기호로 만들었다.
고대 바빌론이나 이집트는 여전히 터부가 매우 중요한 나라였다. 바빌론이나 이집트의 터부는 하지 말아야 할 행위의 규칙으로 엄숙하게 변형된, 우리가 십계명의 여섯 조항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하지 말라!”라는 명령과 같은 것이었다. 그 시대에 그런 나라에서 관용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왕이든 사제든 다른 이들에게 ‘행위나 판단의 자유’를 행하도록 허락하려 한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이상이 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나 관점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편견 없이 끈기 있게 인내하는 것’의 흔적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관용을 향한 투쟁은 개인이 발견된 이후에 시작됐다. 그리고 현대의 모든 발견 중에서 가장 위대한 ‘개인의 발견’은 그리스인들의 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