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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

프리먼 다이슨 지음 | 메디치미디어



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

프리먼 다이슨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8년 2월 / 381쪽 / 18,000원





생명공학이 가져올 미래



21세기 과학에 대한 전망에는 흥미로운 질문이 따른다. 물리학 기술이 개인용 컴퓨터와 GPS 수신기,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기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눈부신 발전상을 체험하게 해준 것처럼 생물학 기술들도 곧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렇다”다. 향후 50년 동안 생명공학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컴퓨터 산업은 폰 노이만이 편협한 시각으로 예측한 대규모화된 중앙집중식 시설이 아니라, 집집마다 보급될 만큼 소형화되는 추세로 발전했다.

생명공학이 이 추세를 따르기 위해 거쳐야 할 첫 단계는 유전자 조작을 거친 화려한 색깔의 신종 열대어들이 애완동물 상점에 등장했을 때 이미 통과한 셈이다. 생명공학이 가정에 보급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사용자 친화적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꽃 박람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이는 전 세계 각지에서 온 꽃 육종가들이 노력의 결과물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마추어 또는 전문가 할 것 없이, 육종 산업에 자신의 삶을 몽땅 바치고 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유전공학 도구들을 손에 넣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새로운 품종의 장미와 난초를 재배하고 싶은 원예가를 겨냥한 유전공학 DIY(do-it-yourself) 키트가 출시될 것이다. 또 생명공학이 보급화되어 주부와 아이들 손에 쥐어진다면, 대기업이 선호하는 단일 작물 재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새롭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폭발하듯 늘어날 것이다.

생명공학 보급화의 마지막 단계는 지금의 컴퓨터 게임처럼 어린이에서 유아들까지 즐길 수 있는 생명공학 게임이다. 물론 이 게임에서는 실제 알과 씨앗을 다룬다. 생명공학 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은 자기들이 키우는 생물에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가시가 가장 많은 선인장을 키운 아이, 또는 가장 귀여운 공룡을 부화시킨 아이가 게임에서 승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게임들은 혼란을 야기하거나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려면, 원칙과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명공학의 위험들은 실질적이고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생명공학의 보급화가 불가피한 미래의 흐름이라면 지금 우리는 다음의 다섯 가지 중요한 문제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생명공학의 보급화라는 흐름을 멈출 수 있을까? 둘째, 그 흐름을 멈추어야만 할까? 셋째, 그 흐름을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면 우리 사회가 그 흐름에 강제해야 하는 적절한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넷째, 그 경계는 어떻게 결정할까? 다섯째, 그 경계란 것을 어떻게 강제해야 할까? 국가나 국제적 차원에서 강제해야 할까? 그런데 나는 지금 당장 위의 문제들에 답할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 답은 우리의 아이들과 손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30억 년에 걸친 다원주의의 막간극

칼 우즈는 최근에 상당히 도발적이면서도 명쾌한 논문 두 편을 발표했다.「새로운 세기를 위한 새로운 생물학」과 「차세대 생물학 혁명」(나이젤 골든펠드와 공동으로 발표)이 바로 그것이다. 논문에서 우즈는 환원주의 생물학의 쇠퇴를 주제로 다루는데, 환원주의 생물학이란 유전자와 분자 연구를 통해 모든 생물학적 과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지난 10여 년간 생물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풍조를 말한다. 그는 환원주의 생물학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 유기체에게서 나타나는 패턴들에 바탕을 둔 통합적 생물학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우즈는 다윈이 주장한 ‘진화’의 시작을 파고든다. 그가 ‘다윈주의 진화’라고 한정한 진화는 이종교배를 하지 않는 종들 사이의 생존 경쟁에 기반을 둔 진화를 의미하는데, 약 1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이 생물권을 인지하고 지배할 즈음에 종들 간의 경쟁에 바탕을 둔 다윈주의 진화 시대는 끝났다. 그때부터 변화의 주요한 추동 인자는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문화적 진화였고, 이는 다윈주의 진화보다 1,000배 이상 빨랐고, 이른바 세계화라고 일컫는 문화적 상호의존의 시대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현재, 새로운 생명공학을 길들이기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는 미생물에서 식물과 동물에게로 유전자를 옮기거나 종들 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 다윈주의 진화 시대 이전의 수평적 유전자 이동을 재가동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가 지금 빠르게 앞당기고 있는 후기 다윈주의 시대에는 우리 인간 종을 제외한 ‘종’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며, 소프트웨어 교환에 국한되었던 오픈소스 공유 원칙이 유전자 교환으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한편 20세기의 환원주의 물리학과 환원주의 분자생물학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중요할 테지만, 지배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 입자들과 분자로 환원하는 것으로는 큰 질문들에 하나의 총체로서 우주의 진화, 생명의 기원, 인간 의식의 본질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

부의 이동 - 농촌에서 도시로, 그리고 다시 농촌으로

농촌 빈곤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인구 과잉의 도시로 이주하는 현상도 일자리와 경제 활동의 기회가 부족한 농촌의 현실이 원인이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은 하나의 기술에서 또 다른 기술로의 전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편의상 이 두 기술을 녹색 기술과 회색 기술로 부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녹색 기술은 생물학에 기반을 두며, 회색 기술은 물리학과 화학에 기반을 둔다.

1만 년 인류 문명의 역사 초반 5000년 동안 부와 권력은 녹색 기술을 보유한 농촌에 있었고, 후반 5000년 동안에는 회색 기술을 보유한 도시에 편중되었다. 그리고 약 500년 전부터 바람과 물, 증기와 전기에서 동력을 이끌어내는 설비들이 제작되면서 회색 기술은 더욱 지배적인 기술이 되었고, 최근 100년 동안 회색 기술이 질주하듯 발전함에 따라 부와 권력의 도시 편중 현상은 더욱 가속되었다. 이렇게 지난 1만 년의 인류 역사를 축약해보면, 농촌의 빈곤 문제가 새로운 시각으로 보인다. 농촌 빈곤이 도시에 편중된 회색 기술의 불균형적인 성장의 결과라면, 그 무게 중심을 회색에서 녹색 쪽으로 다시 옮기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나의 꿈이다. 1만 년 전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 새로운 녹색 기술을 이용해 새롭고 다양한 품종의 동물과 식물들을 번식시키고 재배할 수 있다. 참고로 녹색 기술은 현존하는 화학 산업을 대부분 대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광산업과 제조업의 상당 부분도 대체하게 될 것이다. 또 녹색 기술을 바탕에 둔 경제 체계에서는 화석 연료 대신 햇빛을 주요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하게 되므로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에 한층 더 다가설 수도 있을 것이다.

<분노의 편지> 나의 위 글은 수많은 독자를 격분케 했다. 분노한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뉴욕 리뷰』는 나의 답신과 함께 다음의 편지를 공개했다.

‘편집자에게: 과학이 가치 있고 널리 인정받는 까닭은 타당한 의심을 초월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능력, 엄격하고 정밀한 방법론들 그리고 증거 존중의 정신 덕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프리먼 다이슨 선생과 같은 저명한 과학자가 자신의 특권과 과학이라는 명목으로 만병통치약 같은 또 다른 기술의 출현을 예언하는 일이 실로 당혹스럽습니다. ‘생명공학이 가져올 미래’에서 다이슨 선생은 첨단 기술을 “개인용 컴퓨터와 GPS 수신기,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기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눈부신 발전상을 직접 체험하게 해준” 것으로 보고, 생명공학의 “보급화”가 실현되면 “주부와 아이들이” 생명공학을 놀이도구나 예술의 한 형태로 즐길 것이며 그로 인해 “대기업들이 선호하는 단일 작물이 아닌, 새롭고 다양한 생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뿐 아니라 “농촌 빈곤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다이슨 같은 예언자들은 필요한 물질적ㆍ문화적 자원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희망사항들을 본질적으로 경비가 들지 않는 이득이라든가 줄어들지 않는 자산으로 호도해왔습니다. 이런 예언들은 상품에 대한 책임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물건 팔기에 여념 없는 장사꾼의 감언이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생명공학 게임이 위험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다이슨 선생도 솔직하셨습니다. “생명공학의 위험은 실질적이고도 심각하다”고 하셨죠. 그리고 다이슨 선생은 “대답이 요구되는” 몇 개의 질문을 제시합니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심각한 질문들입니다. 아무래도 가장 무책임한 부분이라면 자신이 던진 질문을 거리낌 없이 회피한다는 점일 겁니다. “지금 당장 이 문제들에 답할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 답은 우리의 아이들과 손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엄청난 양의 핵무기와 독성 화학물질을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준다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다이슨 선생이 생각하듯, 도시 빈곤은 농촌의 빈곤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농촌에서 뽑아낸 부는 기업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지요. “농촌에 유치한” 기업들은 그 지역의 부를 뽑아냅니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농촌에 들어오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녹색 기술”이라고 예외일까요? 다이슨 선생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가난한 농촌 사람들이 생명공학의 힘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변종이나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에 대해서 알고는 계신 겁니까? 다이슨 선생의 예언처럼 만약 누구나 쉽게, 심지어 어린이들도 당연히 저렴하게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도 그 기술을 활용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거기서 어떤 경제적 이득이 창출될까요? 다시 말해 그 기술의 ‘이용’이 어떤 식으로 빈곤을 퇴출시킬까요? 여기에 대해 다이슨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 웬델 베리(Wendel Berry) 포트 로열, 켄터키’

웬델 베리 씨에 대한 나의 답장을 싣는다. ‘프리먼 다이슨의 답장: 우선 웬델 베리 씨의 날카로운 논평에 감사를 전합니다. 베리 씨의 편지가 제게 특히 더 소중한 까닭은 발신지가 켄터키 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켄터키 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파이 베타 카파 단체(미국 엘리트 학생들의 친목 단체)에 감사로 초대받고 댄빌에 있는 센터 칼리지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댄빌에서 저는 제가 갖고 있던 미래상과 일치하는 세 가지 일을 경험했습니다. 지역 합창단이 공연한 세계 최고 수준의 베르디 〈레퀴엠〉과 책을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 그리고 농촌 사회 한복판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는 총명한 학생들입니다. 물론 댄빌이 켄터키 전체를 대변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켄터키 주의 많은 지역들이 지역경제ㆍ문화사업 활성화라는 은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댄빌을 미래 농촌 사회의 훌륭한 모델로 생각하는 까닭은 그곳에서 생계형 농사라는 부담을 벗어버린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술적인 만병통치약’을 예언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과학이 우리에게 새로운 도구를 선물해줄 수 있으며, 그 도구가 저렴하게 널리 보급되면 농촌에 부와 자유를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새로운 도구를 열렬히 환영할지, 아니면 혐오할지는 ‘취향’의 문제입니다. 하나 분명한 게 있다면, 이 새로운 도구를 혐오하는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손주들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기도 하거니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는 것입니다. - 프리먼 다이슨’



지구온난화의 경제학



매년 매달 달라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보여주는 유명한 그래프가 하나 있다. 킬링 그래프로 널리 알려진 이 그래프에는 캘리포니아 라호야 스크립스 해양과학연구소의 찰스 데이비드 킬링 교수가 평생 동안 이룬 업적이 집약되어 있다. 그래프에서는 뚜렷한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1958년 315ppm에서 2008년 385ppm까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들쭉날쭉한 요동이 보여주듯 이산화탄소 농도가 1년을 주기로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반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봄에 가장 높고 가을에 가장 낮다. 북위 20도의 마우나로아에서 관측을 시작한 이래 킬링 교수는 위도가 다른 여덟 개의 지역으로 관측 지점을 확대했는데, 모든 지점들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는 동일하게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연간 주기 요동은 위도에 따라 편차가 크다.

그렇다면 연간 주기 요동과 위도에 따른 요동 편차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북위도 지역과 남위도 지역의 평균 기온에서 서식하는 초목, 특히 낙엽성 수목의 계절별 성장과 부패를 꼽을 수 있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요동이 비대칭인 까닭은 북반구는 대부분이 육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육지 삼림의 대부분을 낙엽성 수목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간 주기 요동을 분석하면 매년 여름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성장하는 수목이 대기로부터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매년 겨울 죽고 부패하는 수목이 대기로 반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알 수 있다.

지구 전체의 식물 분포와 연간 주기 요동의 증거들을 조합하면, 매년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8퍼센트 가량이 식물에 흡수되고 다시 대기로 반환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대기 중 이산화탄소 분자가 식물에 흡수되었다가 반환되기 전까지 평균적으로 약 12년을 대기 안에 머문다는 의미다. 대기와 식물 사이에서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급속히 일어난다는 사실은, 현재보다 온난화가 지속된 후 먼 미래의 지구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영향은 뚜렷히 나타날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경제학

『손익계산서: 지구온난화 정책들의 이득과 손실』은 윌리엄 노드하우스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지구온난화를 설명한 책인데, 이 책은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그런데 노드하우스는 친절하게도 첫째 장에서 바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투표권을 통해 정치인을 선택할 수 있는 시민을 위해 자신이 얻은 결과와 거기서 파생되는 실질적 효과들을 명쾌하게 요약해놓았다. 그는 기후 변화 해결에 동원되는 정책들이 고려해야 할 가장 큰 주안점으로 제일 효율적인 ‘탄소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꼽았다. 또한 탄소 가격을 “화석 연료를 사용하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야기하는 사람이나 기업에 부과하는 시장 가격 혹은 벌금”으로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어떤 사람이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는 탄소 가격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유창한 언변으로 지구온난화의 여러 위험을 열거하고, 기후 변화를 늦추기 위해 국가가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대개 자동차 연비를 규제하고, 고효율 전구를 권장하고, 에탄올로 구동되는 자동차나 태양 발전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만약 그 주장 어디에도 탄소 가격에 대한 언급이 없다면, 그는 기후 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거나 혹은 기후 변화를 늦추는 방법에 내재된 경제적 의미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탄소 가격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노드하우스는 다섯 가지 지구온난화 정책들에 대해 여러 차례 DICE 모델(기후와 경제의 역학적 통합 모델)을 구동하여 각각의 효율성을 비교했다. 첫 번째 정책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지 않는 ‘무규제 정책’인데, 노드하우스의 평가에 의하면, 이 정책이 환경에 미치는 위험 비용은 2100년까지 현재 시세로 23조 달러에 이른다. 두 번째 정책은 노드하우스가 판단하기로 가장 비용 효율적인 정책인데, 정책의 이름은 이른바 ‘최적의 정책’이다. 이 정책은 DICE의 계산에 의거해 매년 탄소 배출량에 비례하여 전 세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이다. 세 번째는 175개 국가가 참여하여 발효된 ‘교토의정서’인데, 이는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들에 한해서 탄소 배출에 일정한 제약을 부과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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