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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각

이헌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사



한 생각

이헌영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9월 / 470쪽 / 15,000원





비밀편지



의원님! 이 편지의 목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두 가지의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의원님께서 다음 대선 때 의원님의 공약으로 채택하셔서 출마하신다면, 저는 여당에 입당한 후 여당 후보로 나섰다가 적절한 시기에 의원님을 지지하며 후보직을 사퇴하려고 합니다. 놀라셨지요? 의문도 드시고요? 그러나 조금 더 읽어 가시다 보면 의문들이 점점 풀려갈 것입니다.

제가 기업을 떠나 정치에 입문을 한 이유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이 나라에 실현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치에 입문한 지 7년이 된 지금은 아이디어가 하나 더 생겨서 이젠 두 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정치풍토에서는 제가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대신 대통령이 되어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됐는데, 의원님께서 적임자로 낙점되었습니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현재의 우리나라가 처한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저는 생각했고, ‘한 생각’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하면서 국민 모두를 답답하게 했던 여러 정치적인 문제들을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데, 자연스럽게 ‘한 생각 2’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제 ‘한 생각’과 ‘한 생각 2’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먼저 ‘한 생각’으로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사회적 문제들을 나열해보겠습니다. ① 경제적 양극화가 너무 심하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② 지역 간, 계층 간 갈등이 심하다. ③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다. ④ 자살률이 전 세계에서 1위다. ⑤ 국내 경기가 지금도 심각한 불황인데 앞으로는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⑥ 국민의 복지 욕구는 분출하고, 정부도 복지정책을 하고 싶지만 재원이 없다. ⑦ 중산층은 얇아지고 빈곤층은 늘어나고 있다. ⑧ 통일 비용을 생각하면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⑨ 교육 불평등문제, 일자리문제, 국민연금 고갈문제 등

앞에 언급된 대부분의 문제들을 국가의 재정을 사용하지 않고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한 생각’입니다. 부유층과 중산층만 있고 빈곤층은 없는 나라를 만드는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편지에는 ‘한 생각’을 풀지 않겠습니다. 이 첫 번째 편지에 모든 것을 풀어놓기에는 내용이 간단치 않으므로 의원님과 직접 만나서 제가 ‘한 생각’을 풀어놓으면, 의원님이 질문하시고 제가 답변하고, 또 질문하시고 또 답변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이제 ‘한 생각 2’로 넘어가겠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실 수 있으신지요? 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효율적도 아닙니다. 좋은 결과를 얻지도 못합니다. 이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의 문제점들을 나열해보겠습니다. ① 영호남 지역 갈등이 심하다. ② 온 국민을 두 패, 세 패로 나누어 싸우게 한다. ③ 터무니없는 공약을 양산하여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④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들추어서 만신창이가 되게 하고 고소ㆍ고발이 난무한다. 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싸움은 지속되고 다음 선거, 그다음 선거로 이어지고 그칠 날이 없다. ⑥ 국민이 모든 일에 불신하게 되고, 불신은 불신을 낳고, 그 원인은 선거에 있다. ⑦ 국력을 싸움질로 낭비하고 있다. ⑧ 승자 측의 모든 역량은 정권연장에 우선하고 패자 측은 정권탈환에 역량을 집중한다.

‘한 생각 2’는 위에 나열한 문제들을 완전히 해소하거나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이 아이디어도 편지에 밝혀드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의원님께 바통을 넘깁니다. 느닷없고 황당한 내용에 놀라셨겠지만, 차분히 몇 번 읽어보시면 무언가가 그려지실 것입니다. 이렇게 황당한 내용을 전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부디 내치지 마시고 부족한 글이지만 여러 번 읽으셔서 행간의 진정성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의원님 사무실을 방문했듯이 의원님도 제 사무실을 자연스럽게 방문하셔서 답장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정관영 드림

장훈은 편지를 침대에 내려놓고 잠옷 속의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보았다. 심장 뛰는 울림이 느껴진다. 편지를 다시 읽었다. 천천히 그림을 그리듯이 읽었다. 편지에 제시해놓은 문제들의 그림들이 하나씩 떠오르다 이내 사라져 갔다. ‘정말 그런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을까?’



허장훈



허장훈은 괴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명문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2년간 ROTC 군 복무를 마치고, 다음 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바로 ‘법무법인 으뜸’에 스카우트 되어 2년 반 정도 변호사로서 활동하다가 곧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4년 정도 법률을 공부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한국 ‘법무법인 으뜸’을 설득해 미국지사를 설립하고 맹활약하게 됐는데, 그중 가장 유명했던 사건은 한국의 중견기업이 글로벌투자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키코’라는 파생상품에 대한 소송사건을 맡아 1,000여 명의 변호사를 거느린 공룡로펌과의 전쟁에서 끈질긴 싸움 끝에 승소한 사건이다.

장훈은 딸이 6살이 되던 해 가을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그리고 ‘법무법인 으뜸’에서 마련해주겠다는 강남의 아파트를 사양하고, 고향 괴산읍내에서 가까운 정용리라는 마을에 자리를 잡았고, 그 곳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임기 마지막 해 3월에는 야당인 민주당에 입당했고, 다음 해 치러진 선거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됐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 후 장훈은 SBS의 인기 토크쇼에 출연하였고, 사회자가 “허 의원님! 이번 선거에 공약도 없이 출마를 하셨다고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공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지난번 고향에서의 선거 때도 지역구를 위한 공약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본분은 출신 지역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지역 대표로 중앙정치를 하는 겁니다. 더구나 지방도 아닌 종로구에서 제가 특별히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종로구는 국회의원 차원에서 특별히 할 순 없고요. 정부나 서울시 차원에서 하는 곳이니 제 공약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당선시켜주잖아요. 하하하!” 라고 대답했다. 방청객들이 공감하며 크게 소리 내어 웃었고 사회자도 웃었다.

이후 장훈은 인기 연예인보다 더 인기 있는 정치인이 되었고, 당에서도 그의 인기를 인정하여 당 대변인으로 임명해주었다. 4년 후, 장훈이 종로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3선 의원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그때부터 당 안팎에서 대선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장훈이 다시 4선 의원이 됐을 때, 그의 나이 52세가 되었다. 장훈은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야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때마다 무소속의원인 정관영 의원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정관영 의원은 기업인일 때부터 대선후보로 거론됐었던 인물로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무소속임에도 장훈보다 멀찌감치 앞서있었다. 그는 장훈보다 3살이 더 많은 55세였다. 그런데 그 정관영 의원이 어제 오후에 예고도 없이 그의 사무실을 찾아와 안주머니에서 문제의 그 편지봉투를 꺼내 탁자 밑에 넣으며 재빨리 속삭이듯,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비밀 편지입니다!”



대모산



그로부터 한 달쯤 뜸을 더 들인 후, 장훈이 정관영 의원의 서초동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장훈이 안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내밀 때, 정관영 의원도 안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내밀어, 서로 주고받아 각자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종로 사무실로 돌아온 장훈은 안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읽으면서 또 한 번 놀랐다. 제목도 없고 서론도 없이 만날 장소와 시간을 나열한 메모였다. 자그마치 5안까지 있었다. 정관영 의원은 자신의 제안에 장훈이 동의하리라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다음 순서로 진행하자는 내용이다. ‘하긴 내가 쓴 편지엔 일단 만나서 들어보겠으니 일정을 잡아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그렇지, 1안부터 5안 중에 고르라니 참! 그리고 밤중에 산 정상이라니!’

5월 14일, 두 사람은 대모산 정상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먼저 관영이 서류봉투를 꺼내 내밀며 말했다. “‘한 생각’과 ‘한 생각 2’를 정리해서 설명해놓은 겁니다. 원래는 오늘 ‘한 생각’을 설명하기 전에 이것을 먼저 읽으셔야 되는 건데, 그러고도 저와 여러 번 더 만나셔서 말씀을 나누어야 할 겁니다. 저 혼자 만들다시피 했으니 보완도 많이 해야 할 거구요. 그래서 오늘은 전체적인 개요만 설명하는 시간으로 하십시다.” “잘 읽어 보겠습니다.” “우선 ‘한 생각’을 바로 설명을 할게요. 우리나라의 국민 전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적 문제들, 즉 제가 편지에 나열했던 그 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깊이 파고들어가 찾아보았더니 그 많은 문제들의 원인은 단 하나 ‘경제 양극화’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경제양극화만 해결하면 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부유층이 가진 재산의 일부를 빈곤층으로 옮겨서 빈곤층이 중산층이 되게 하는 겁니다. 그것도 부유층이 직접 빈곤층을 돕는 형식인데, 여러 난관이 있겠지요? 그 난관을 큰 무리 없이 해결하는 것이 이 아이디어의 요체입니다.”

관영은 말을 끊고 잠시 기다렸다. 장훈은 고개를 끄덕임으로 다음 설명을 재촉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백분율로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전체 가구를 100가구라고 치고요. 각 가구의 총재산을 조사해서 등위를 매겨 1등부터 100등까지 정한 다음, 1등부터 30등까지는 부유층, 31등부터 70등까지는 중산층, 71등부터 100등까지는 빈곤층으로 가정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핵심입니다. 1등이 100등을 도와서 70등이 되도록 해주고, 2등이 99등을 도와서 70등이 되도록 해주고, 3등이 98등을 70등이 되도록 해주고, 4등이 97등을 70등이 되도록 해주고…. 이런 식으로 쭉 진행되어 30등이 71등을 70등이 되도록 해주면, 1등부터 69등까지는 1가구씩이지만 70등은 공동 31가구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부유층 30%에 중산층은 70%가 되고 빈곤층은 아예 없는 나라가 됩니다.”

관영이 말을 끊고 장훈의 표정을 살피다 말을 이어갔다. “부유층이 빈곤층을 이유 없이 그냥 도와줄 턱이 없잖으냐 하고 묻고 싶죠?” “그렇습니다.” “첫째, 부유층이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 둘째, 피하고 싶은 것이나 무서워하는 것들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의원님! 제가 열거해볼게요. 명예에 관한 것, 건강에 관한 것, 상속에 관한 것. 대학 기부입학에 관한 것. 군 면제에 관한 것. 감옥살이 감면에 관한 것. 그리고 세무조사와 세금감면에 관한 것들이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거기에다 특별히 이런 것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부권’ 발행과 그 기부권을 사고파는 ‘기부권거래소’라는 것을 고안해놨습니다. 이 기부권에 대한 설명은 아까 드린 서류를 먼저 검토해보시고 다시 얘기를 나누도록 하십시다.” 잠시 후, 관영이 고개를 돌려 다시 이어갔다. “제가 편지에 제기했던 그 많은 문제들이 이런 방법으로 양극화 해결을 하면 그것 하나로 몽땅 해결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어떻게 생각하시게 된 겁니까?” “자살문제를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의원님! 우리나라에서 매일 평균 43명씩 자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대부분 가난 때문입니다. 저는 이해는 다 못했지만 무한한 죄책감을 느꼈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이게 나라인가?” “그런데, 왜 이 ‘한 생각’을 의원님이 하면 안 되고, 이 허장훈이 하면 된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슬픈 정치 현실 때문입니다. 다음에 자세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제 여론지지율이 그때까지도 1위를 유지할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렇다고 가정하고, 일단 제가 여당에 입당한다고 해보자고요. 그래서 제가 여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의원님은 야당 후보가 되는 구도가 그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선거 참모들이 만들어주는 공약, 즉 뻥이 잔뜩 들어간 공약을 걸고 출마를 하고, 의원님은 후보등록은 하되 공약은 최대한 뒤로 미루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참모들이 만들어준 공약을 채택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만든 공약, 즉 ‘한 생각 1, 2’만 공약으로 하겠다고 국민에게 직접발표를 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저는 두문불출합니다. 그리고 약 1주일 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폭탄선언을 합니다. 나의 선거공약의 허구성을 고백하고, 허장훈 후보의 공약을 지지하며 그 공약을 지켜드리기 위해 후보를 사퇴한다고 발표를 하는 겁니다. …난리가 나겠지만 그때부터 몇몇 유력 인사들의 ‘한 생각’ 지지성명이 잇따르게 되면, 상황은 급격히 바뀌게 될 겁니다. 아, 물론 저도 지속적으로 나서서 지원할 거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도 해결하지 못한 경제양극화문제를 최초로 해결한 나라, 그것도 정부의 재원을 사용치 않고 해결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었다. “의원님! 시간이 오래됐으니 제가 꼭 알아야 하는 것만 마무리하고, 다음에 또 만나도록 하면 어떻겠어요?” “그럽시다! 제일 궁금한 게 그거 아닙니까? 단점은 무엇이며 대책은 무엇인지, 그리고 ‘한 생각 2’의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장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점은 딱 하나 도덕적 해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한 생각’에 그것조차 해결하기 위해 근로의무와 납세의무를 연계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 모든 사람은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면 소득이 생길 것이고, 소득이 생기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세금 면제율이 45%를 넘고 있는데, 이제는 아무리 소득이 적더라도 단 1% 또는 0.1%라도 내야 되고, 납세증명이 되어야만 ‘한 생각’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제 ‘한 생각 2’의 요점을 설명하고, 아까 제가 드린 것을 읽어보시고, 또 만나기로 하십시다. 자! ‘한 생각 2’입니다! 지금의 대통령 선거 단점은 편지에 적은 대로 너무 치열합니다. 그래도 국민들은 내 손으로 직접 뽑는 것을 원합니다. ‘한 생각 2’는 국민들의 직접 참여 욕구도 충족시키고, 선거 자체를 축제가 되도록 결합시킨 선거방법입니다. 방법은 우선 국민의 직접투표로 1명이 아닌 2명을 선출합니다. 그리고 그 2명을 놓고 7주에 걸쳐서 7번의 추첨쇼를 벌리는 겁니다. 즉, 결선은 투표가 아닌 추첨으로 뽑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편지에 적었던 모든 정치적 문제들이 깨끗이 해결됩니다. 집에 가셔서 각 문제점들과 일일이 대비시켜 보십시오.” “아아! 그래요. 결선추첨이라!” “오늘 제가 드린 서류의 내용은 ‘한 생각 1, 2’의 자체 내용뿐이고요. 실현시키는 방법은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실현시키는 방법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은 ‘한 생각 1, 2’의 내용과 실현방법에 대하여 토론도 하고, 연구도 해서 보다 완벽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러 번 만나야 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래야겠지요? 앞으로는 어떻게 만나야 하죠?” “대포폰입니다. 앞으로는 이거로 서로 연락합시다. 여기에 제 번호를 입력해놨으니까요. 제 것도 대포폰입니다. 그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정관영 / 5층 백화점 / 한 생각



관영은 경기도 포천의 평범한 가정에서 6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관영의 아버지가 농지를 모두 팔아 서울로 올라갔을 때, 나이 38세였고 관영이 8세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3년 만에 모든 재산을 잃고 빈 털털이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년이 채 못 돼서 그의 아버지는 심장 마비로 죽었다. 관영의 어머니는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무지한 사람이었지만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었다. 농사철에는 품삯 일도 하고 십 리도 더 되는 읍내에 가서 식당일이나 청소 세차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했다. 두 형은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관영도 어렵게 진학한 중학교를 졸업도 못 하고 3학년을 시작할 무렵 중퇴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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