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대
EBS <감정 시대> 제작팀 지음 | 윌북
감정 시대
EBS <감정 시대> 제작팀
윌북 / 2017년 9월 / 192쪽 / 13,500원
1부 불안의 시대
“대기업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대리 운전을 해요.”
기우 씨의 아버지 이민의 씨는 새해를 맞아 예순이 되었다. 그의 직업은 대리 운전기사다. 사람들이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에 그의 업무는 시작된다. 민의 씨는 언제 올지 모르는 콜을 기다리면서 매일 가로등 아래서 휴대폰의 잔여 배터리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광주의 밤거리를 서성인다. 콜 한 건당 대략 1만 원을 받고 수수료를 떼고 나면 7천 원 정도가 남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루에 많아야 6만 원 정도를 번다. 일이 끝나는 시간은 새벽 2시경, 하루에 대여섯 시간은 걸어야 하는 대리 운전 일이 이제는 힘에 부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민의 씨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휴대폰에 저장해둔 가족사진을 들여다본다. 그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1983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한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가정도 꾸렸다. 곧 아들 둘이 태어났고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직장을 다녔다. 성실하게 할 일만 하면 차곡차곡 승진하고 적당한 나이에 퇴직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좋았다. “필요하면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많이 하고 아무 걱정이 없었죠. 한번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직장이었으니까 미래를 의심해본 적이 없었어요.”
평범하지만 안정된 삶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처음 일이 터졌을 때는 전혀 몰랐죠.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힘든 상황이 됐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충격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 마흔에 실직을 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식료품 회사, 방문 판매, 택시 운전기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무너진 가족의 삶은 쉽게 복원되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만큼 착실하게 보상이 주어졌던 삶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폰 속 가족사진을 보는 동안에 불안한 마음을 잊어보려 해도 금세 ‘이대로 괜찮을까, 무엇이 부족한 걸까, 벌써 힘에 부치는 이 일을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이어진다. 대리 운전 손님으로 아들 또래를 만날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 변변히 뒷바라지도 못했는데 혼자 힘으로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학비 걱정 없이 공부에 몰두하며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뒷바라지하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기만 하다.
안 그래도 늦게 입학했는데 일까지 병행하느라 졸업이 늦어지고 있다. 어서 취업해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나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아들 기우 씨는 이런 말을 꺼낼 때마다 한발 뒤로 물러선다.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걸 똑같이 누리면서 행복하게 사는 거. 그거 외에는 없어. 돈은…… 돈은 차후 문제지.” 에둘러 이야기를 건네 보았지만 아들은 “좋은 사람이 생겼는데 돈이 없으면 그게 더 서럽죠.”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진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들을 만나러 학교에 갔을 때 사범대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던 다른 청년들이 생각났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가방이 낡았다고 말을 돌렸다. 아들은 그까짓 가방은 괜찮다며, 도리어 나이 든 아버지가 힘든 일을 그만두어야 할 텐데 제때 졸업도 못해서 자기 앞가림도 못한다고 미안해한다. 이렇게 실직은 가족이 탄 배를 난파시켰다. 가족 구성원 모두는 부서진 배의 조각들을 부표처럼 움켜쥔 채 이 사회의 불안 속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떠돈다.
너도 나도 불안한 현실, 희망은 있는가?
중산층은 몰락하고 불안은 확대 재생산된다: 압축 성장이라는 말로 요약될 만큼 대한민국은 초고속 성장을 했다. 서구권 국가들이 몇백 년에 걸쳐 이룬 성장을 불과 50년도 안 돼 이뤄냈다, 1988년에는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했고,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7~9%를 넘나드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1996년 10월에는 OECD에도 가입했다. 그동안 한국은 성장의 달콤함에 취해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1997년 1월 27일 당시 재계 14위였던 한보그룹의 부도를 시작으로 매시간 11개의 회사가 도산했다. 사회학자들은 한국이 겪어온 현대사의 숱한 사건 가운데 한국인의 삶에 가장 크고 깊은 영향을 남긴 것이 바로 IMF 외환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2001년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빌린 195억 달러를 모두 갚았다. 외환보유고, 성장률 등의 경제지표가 살아나면서 떠났던 외국 자본도 돌아왔다. IMF 체제로부터 공식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IMF 외환 위기는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 지 않았다. 직장을 잃었던 사람들은 원래 직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고, IMF 지원을 받기 위해 도입했던 노동법 개정안은 기업 구조 개선이라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보다 고용 유연화, 즉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중산층이 대량 실직으로 한꺼번에 몰락했다. 세상이 전혀 다른 형태로 재조직된 것이다. 그 한가운데 불확실성이 놓여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30여 년 전에 누릴 수 있었던 예측 가능한 삶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우리 사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70~80년대는 지속적이고 가시적인 발전이 개인의 기회와 가능성을 한없이 확대했다. 그러나 경제 위기로 더욱 개인화된 후기 자본주의는 우리의 삶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안정을 동기로 움직인다. 보통 인간이 움직이는 동기는 욕망과 안정, 이 두 가지다. 인간은 풍요롭고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는 호기심과 욕망에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이지만,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안정을 우선순위로 두고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
2017년 국가공무원 9급 선발 예정 인원은 4,910명, 접수 인원은 228,368명으로 경쟁률이 46.5대 1에 달했다. 이 수치는 안정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1997년에 이어 한국 사회는 취업 불안, 비정규직의 공포, 공동체의 붕괴, 살벌한 각자도생이 사회를 이루는 기본이 되었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불안감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아버지 세대의 경제적 몰락은 자녀 세대의 항구적인 상처와 불안으로 이어져 대물림된다.
2부 모멸의 시대
우리는 서로에게 모멸감을 준다
갑질 대한민국: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갑질’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갑질이란 권력을 갖고 상대보다 우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횡포를 일컫는 말이다. SNS나 인터넷에 올라온 CCTV 영상이나 사연 등을 통해 알려진 갑질의 전말은 사회 구성원들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이런 갑질은 더 이상 몇몇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기사화되지 않은 일상적인 갑질을 종종 목격하고 전해 들을 뿐 아니라, 갑질 속 주인공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갑질은 내남없이 벌어지는 대한민국의 살풍경이 되었다. 이른바 ‘갑질’ 대한민국이 도래한 것이다.
‘갑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감정은 모멸감이다. 모멸감은 모욕과 경멸이 합쳐진 말로, ‘나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으로,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다. 모멸감을 느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정신이 파괴되는 것은 모욕 자체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반해 굴종하고 굴복당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곧잘 공격성과 폭력으로 발현된다. 게다가 모멸감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당하는 일 때문에 느끼는 것만이 아니다.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 격차와 불안한 노동 시장 등은 사람들 사이에서 수많은 차별과 구분 짓기를 낳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 임대 아파트와 일반 아파트 사이에 놓인 담, 대학 입학 전형에 따른 서열화 등, 오로지 권력이나 돈으로 다른 사람을 열등하게 만들고 자신을 높이려는 사회 분위기는 상호 존중의 문화를 파괴했다.
이런 모멸감의 최전선에는 감정노동자들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여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제공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는 이제 더 이상 일부 직업군이 아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2010년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고용인구 1,600만 명 가운데 1,200만 명이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는 고용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수다. 이 가운데 감정노동자는 6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중 42% 정도가 비정규직이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기업의 유일한 규칙: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가 쓴 『감정노동』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책에서 혹실드는 서비스 부문의 기업이 피고용자들에게 서비스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을 요구하며, 기업의 목적에 따라 피고용자들의 감정을 통제하는 형태로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이윤을 얻기 위해 개인이 아닌 기업이 감정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는 곧 ‘회사는 당신들을 보호해줄 수 없으니 자기감정은 스스로 다스려라. 소비자는 왕이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하는 것을 뜻한다. 진상 고객을 상대하여 감정이 상해도 직원은 다음 손님을 응대해야 한다. 기업은 이들을 돕거나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손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굴종을 강요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 불합리한 처우에도 침묵해야 한다는 것, 자기 마음에서 일어난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 이런 현실에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좌절하고 무력감을 느낀다. 기업의 매뉴얼은 개인의 신체를 통제하는 것에서 나아가 감정까지 빈틈없이 통제할 것을 강요한다. 상업적 이윤을 위해 인간의 감정은 거대해진 서비스 산업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다.
3부 고립의 시대
우리는 모두 외롭다
책임감으로 홀로 앓는 가장: 어느새 인생의 반환점에 선 아저씨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다들 간절한 심정으로 없는 시간을 쪼개어 모인 자리지만 어색함을 감출 수 없다. 김철신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오랜 친구라도 남자들 사이에서는 쉽게 하지 않는 이야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누어야 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어색하죠.” 최우성 씨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치부 같은 것을 드러내야 하 는 건데 이런 걸 이야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박윤호 씨는 당장 상담을 받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이 한 말이 방송된 뒤 아내나 아이들이 보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모두에게 걱정과 후회가 밀려들던 그때, 노미선 상담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만남에서 저는 이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40대’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정리해봤는데요, 이 단어들 중에 눈에 꽂히는 단어가 있나요?” 다섯 명의 아저씨들은 조용히 종이를 응시하다가, 불안과 부담감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들이 고백한 첫 마음은 불안이었다. “늘 마음이 불안해요. 늙어가는 부모님 걱정에, 크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의 규모가 달라지니까 그것도 걱정이고, 30대 때 하던 걱정과 지금 40대에 하는 걱정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 무게감이 얼마나 차이가 큰 것 같냐고 묻자 상하 씨와 우성 씨는 한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 대답에 현중 씨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불안의 목록은 해가 갈수록 더 길어진다. 윤호 씨는 아이를 키우는 일의 어려움을 덧붙인다. 이 시대 아빠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자식이다. 윤호 씨의 고백에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함께 어두워진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왔음에도 아빠로서 해줘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 부담감을 토로한다.
불안 너머에 숨어 있던 부담감이 실체를 드러냈다. “부담감과 책임감이 큰데, 이걸 잘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니까 불안한 것 같아요.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우리 모두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드네요.” 누군가에게는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삶은 부담감과 책임감으로 위태롭게 쌓아올린 것이었다. 그렇게 아저씨가 되어 보니 ‘나’라는 사람은 없고 가장이라는 역할만 남았다.
노미선 상담사는 이 다섯 사람의 고민과 상태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가장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이 뭐냐고 생각하면 일단 돈도 벌어야 하고, 애들이 뭘 물어보면 대답도 척척 해줘야 하고, 태양처럼 모든 길을 다 비춰주고, 아내든 어머니든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가장이 된다는 것에 촘촘하게 들어가 있는 거죠. 이런 걸 ‘슈드비(should-be) 콤플렉스’라고 하는데,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런 상태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나는 가장이니까 절대 쓰러지면 안 돼.’ ‘우리 가족과 집을 보호해야 해.’ 막연하게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거죠. 보통 인생을 사다리에 비유하는데요. 사람들은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 일에만 집중하지만 발판을 딛고 한 칸 한 칸 올라가려면 사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주변 관계나 사회문화적인 메시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모두 객관적인 세상이 중요하고 그게 전부라고 말하셨지만,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삶, 그리고 그 속에서 느꼈던 자신의 감정이 있을 거예요. 이런 걸 들여다보는 것이 시작점이 될 겁니다.”
노미선 상담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니, 중년 남성들을 버티게 해준 것이 무엇인지 드러났다. 어머니와 누나, 혹은 자식과 아내. 도착한 장소에서 이들은 자신의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이제 그들은 거기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감정은 왜 타인의 영향을 받는지, 타인 때문에 힘든데도 왜 타인이 필요한지 등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혼밥 혼술족, 젊은이들은 외로움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아저씨들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와 언제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사회는 촘촘하게 고립된 개인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의 1인 가구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지만 가족 및 친척과의 접촉 빈도는 세계 평균의 절반 수준이며, OECD 34개국 가운데 공동체 생활로 위안을 얻고 정체성에 도움을 받는 공동체 지수가 33위로 거의 꼴찌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삶의 개별화가 이토록 빨리 이루어지는 데 반해 제대로 된 개인주의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매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민감하며 오로지 타인에 대한 역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즐거움보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에너지까지 아껴야 겨우 생존할 정도로 가혹한 환경도 고립을 거든다.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하지현 교수는 그가 쓴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에서 일단 내일을 위한 충전이 절실한 존재가 늘면서 혼자만의 삶, 밀실의 삶이 일상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관계보다 인터넷 등을 통해 익명성을 유지한 관계가 늘어나는 것. 또 여가를 즐기는 방식에서 혼밥이나 혼술이 일상화되는 것 모두 ‘1인분으로 살아가기에도 벅찬’ 현실에 적응한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이런 현상에 발맞춰 사회도 바뀌었다. 혼자 먹어도 어색하지 않은 식당이나 술집이 늘고, 함께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는 공간이었던 카페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혼자 놀거나 혼자 먹는 것을 병적이거나 유별난 행동으로 보지 않고 일상의 한 영역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조차 식사 시간에 따로 밥을 먹고 남는 시간을 혼자 산책 등을 하며 보내면서 인간관계에 드는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혼밥’, ‘혼술’이 일상화된 요즘 젊은이들의 일상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될지를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