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이시하라 가즈코 지음 | 홍익출판사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이시하라 가즈코 지음
홍익출판사 / 2017년 12월 / 216쪽 / 13,800원
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쉬고 싶은 나, 부정하는 나
우리의 의식은 크게 ‘타자중심’과 ‘자기중심’으로 나뉜다. 타자중심은 의식의 눈이 다른 사람이나 주변 사물을 향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끊임없이 살피면서 그것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타자중심으로 살다 보면, 다시 말해 의식의 눈을 외부로 돌리면 자신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이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심할 경우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시하고 억압하다가 종국에는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반면에 자기중심은 의식의 눈이 오롯이 자신에게 향한다. 이는 의식이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한 것으로, 그 때문에 상황을 판단하거나 행동할 때는 제일 먼저 이렇게 확인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분명히 느끼고 생각하는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되도록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을 통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
자기의 감정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고민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 책에서 여러 차례 강조될 ‘자신의 마음과 마주한다’는 말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자기중심이 되어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는 습관이 들면 내 삶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도 분명히 파악하게 된다. 이렇게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내가 직면한 상황이 정말로 도망칠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쉬워진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인정도 못 받는 일에 애쓰고 싶지 않다’ 등의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과 마주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쉬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하지만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느낌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며 휴식을 원하는 마음을 묵살해버린다. ‘그럴 수 없어. 내가 게을러진 것이니 마음 다잡고 힘내자!’
나는 ‘노력한다는 것’은 노력하고 싶기 때문에 노력한다, 좋아하기 때문에 노력한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태도라고 본다. 그렇기에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억지로 노력하는 태도는 별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노력이 필요한 때는 굉장히 많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쉬고 싶다는 자신을 억누르면서까지 무리하게 노력하면 생각만큼 성과가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휴식이다. 일단 몸과 마음을 푹 쉬게 하면 집중력이 회복되고 효율성도 향상된다. 그러면 쉬지 않을 때와 비교해서 노동시간은 감소해도 휴식 과정에서 긍정적인 기분을 회복하게 되니 더 이득이다. 좋은 휴식이란 그냥 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쉬고 싶은 자신’을 마음으로부터 허락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쉬고 싶은 자신, 쉬고 있는 자신을 마음으로부터 허용하지 못하고 ‘정말 쉬어도 괜찮을까?’라면서 조바심을 내기 때문이다. 그냥 쉬는 것만으로는 육체적 피로가 풀릴지 모르지만, 기분 좋게 몸과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좋은 휴식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냥’이라는 말의 의미
“매일 하는 일이 조금 괴롭기는 해도 단지 그냥 고통스러울 뿐이지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게 힘들기는 해도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방패 삼아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그냥’이라는 말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어떤 작용을 가하지 않거나 상황의 변화 없이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별것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나는 이 말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별것 아니라고 여긴 피로감을 그냥 방치해두면 언젠가는 큰 질병으로 발전한다. 누군가를 대하면서 불쾌감이 느껴지는데도 그냥 쌓아두었다가는 언젠가는 분노가 되어 폭발할지도 모른다.
‘그냥’이 ‘엄청’이 되는 것이 순식간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사소한 문제도 미리미리 그 안에 도사린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신호로 생각해야 한다. 작은 시그널을 계속 무시하며 무감각하게 대응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의 실체를 알아차리기가 어렵게 된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걸핏하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도망치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뱉고 있다면, 이미 삶에 경고등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해결책은 더 이상 인내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무엇이 힘들고 무엇이 참기 어려운지, 언제 도망치고 싶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자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자. 이렇게 스스로에게 있는 그대로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 도망치고 싶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지름길이다. 당연히 거기서부터 해결책은 만들어진다.
인간관계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직장에 불편하고 싫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직장에서 불편한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직장인들 중에는 이런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같은 부서의 A와는 매사에 대화가 통하지 않고 껄끄럽다. B와는 업무 스타일이 달라서 매번 부딪친다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한 공간 안에서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해결책은 이것이다. “꼭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지 마세요.”
회사에서 자기 기분대로 쉽게 화를 내는 이, 내 상황은 묻지 않고 무작정 이 일 저 일을 떠맡기는 이, 무책임하게 말을 바꾸는 이, 말 한 마디를 해도 주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그런 사람과 억지로 사이좋게 지낼 필요가 있을까? 아니, 조직에서 만난 사람들과 모두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일부러 주위 사람들과 나쁜 관계를 이어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억지로 사이좋게 지내려 할수록 또 다른 부작용이 초래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만 매사에 나하고는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잘 지내려 하다가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처만 키울 뿐이고, 나 자신도 억지로 친한 척을 하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나는 회사라는 조직 문화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이보다 더 훌륭한 조언은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관계에 숨 쉴 틈이 없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억지로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지 말라는 충고에는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 때 가장 원만한 상태가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심리학에서 인간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비유가 있다. 바로 고슴도치의 관계학이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로에게 가까이 간다. 하지만 서로의 몸에 돋아난 가시 때문에 깜짝 놀라며 멀리 떨어진다. 그러다 또 추위를 느끼고 서로에게 다가가지만 다시 가시에 찔려 성큼 뒤로 물러난다. 이렇게 고슴도치는 추위와 아픔 사이를 왕복하다가 마침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회사라는 조직은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만난 동아리가 아니다. 기업의 이익이라는 목표를 위해 하나의 울타리 안에 모인 관계이므로 공동보조가 필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과 억지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것은 억지다. 불가근불가원이면 충분하다.
‘모두와 사이좋게’라는 생각이 문제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고민이나 트러블을 줄이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100퍼센트 아는 관계를 만들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상대방이 동료나 친구일 경우만이 아니라 부모나 애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누구와도 100퍼센트 서로를 잘 아는 관계가 된다는 생각을 포기하라고 말하면 친밀한 인간관계를 부정하는 말로 들리겠지만, 내 말의 진의는 이런 자세가 서로를 인정하는 최선의 방법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다른 개성과 특징이 있고, 자기만의 고유한 습관이 있다. 몇십 년이나 함께 살아온 부부라도 상대의 일부분밖에 모르는데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만난 사이끼리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와 마음이 하나가 되겠다, 온전히 이해받는 관계가 되겠다며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것이 상대와 나란한 삶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오히려 서로의 관계에 트러블의 원인이 된다.
서로 100퍼센트 이해하는 관계를 원해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맞추려고 한다면, 그건 진짜 당신다움을 버리는 일이 된다. 말 그대로 완전한 타자중심의 삶의 방식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내게 100퍼센트 맞춰서 이해해주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많을 테니 이 또한 타자중심의 삶이다.
더 심각한 일은 자기 마음대로 착각해서 100퍼센트 상대방을 안다고 믿는 경우다. 이런 착각이 심해지면 상대와 나의 경계가 흐려져서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게 되거나 상대의 배려에도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서로의 가슴에 서서히 불만이 쌓이면 둘 사이에 금이 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상대를 마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취급하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 그렇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대하는 태도다. 자식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되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벌어지는 가족 간의 비극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만큼 차고 넘친다. 아동심리학자들은 미성년을 자녀로 둔 젊은 부모들의 역할은 교통경찰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운전 기술을 가르친 다음에는 그냥 제 방향으로 가도록 안내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넘어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명령하고 심지어 핸들을 빼앗아 부모 마음대로 운전하면 언젠가는 행로를 이탈해버리는 비극이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낸다는 생각 자체가 타자중심의 의식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중심의 삶이 중요하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면서 언제나 나를 중심에 놓고 주위 사람들과 성의껏 소통해 나가는 일상에서 좋은 인간관계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기대를 받을 때의 2가지 심리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이 자기 능력 이상으로 많은 책임을 떠맡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능력이 있다. 그것은 자기계발과 경험을 통해 점차 향상되기는 하지만, 여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당신이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고 치자. 노력의 보상을 받았기에 만족하고 있는데, 상사가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잘해주었네. 앞으로도 기대하겠네.”
이런 말을 듣고 타자중심의 사람,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일수록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다행이라며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제부터 더 열심히 일해서 회사의 기대에 부응해야지’ 사실은 미래의 간부나 임원들은 젊은 시절에 이렇게 생각하고 열정을 다해 노력했던 사람들로, 회사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거둔 성공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번에는 특별히 열심히 했기 때문이고 운도 많이 따라준 덕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상사가 기대한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다음에도 똑같은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성과를 내야 한다고 작정한다면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지지 않겠는가?
문제는 상사의 기대에 부응할수록 책임의 한계는 점점 확대되고, 그러면서 주변의 기대감이 더욱 부담스러워진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부터 주변의 기대가 큰 무게로 어깨를 짓누르게 되고, 그로 인한 피로감이 쌓여 허덕거리다가 마침내 훌쩍 도망치고 싶어지는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가슴이 짓누르는 부담감에 시달리다 실패를 저질러서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썼지만 무의식 안에서는 실패해버리자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불일치가 내면세계에서 갈등하면서 급기야 정신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사실은 정신의학의 오래된 진리다. 우리는 남들의 기대를 저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의식으로는 어떻게든 기대에 부응하려고 해도 무의식은 기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자기 자신을 몰아가게 된다. 이것은 정신의학자들이 스트레스가 질병으로 치닫는다고 말하는 초기 단계의 증상이다.
결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100% 확신에 찬 결정은 없다
40대 초반의 남성이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두고 싶다’와 ‘그만두지 못하겠다’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한 지가 벌써 몇 년째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직장을 다니는 일이 힘들다는 마음도 변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된다는 그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갔다. 40대 초반이라는 시기는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커다란 그림자처럼 성큼 다가와 있는 시기다. 그러니 그의 방황이 이해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가 어둠이 짙게 깔린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정작 회사를 그만둔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막막합니다. 그냥 이대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할 일을 열심히 찾아보고 난 뒤에 회사를 그만두면 되지 않겠어요?” “설사 새로운 일을 찾는다 해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그나마 안정된 곳인데 그만둔다는 게 두렵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쩌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더라도 이런 생각을 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새로운 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제대로 못하고 낙오되면 어떻게 하지? 지금 다니는 직장보다 돈벌이가 형편없으면 어떻게 하지? 그나마 지금 직장이 나한테는 최선이 아닐까?’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타자중심적인 생각이 우뚝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인생을 이끌지 못하고 주변 상황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방황이 지속되면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람의 눈에는 다른 이들이 매사에 100퍼센트 정확한 결단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자신에게도 100퍼센트 확실한 보장만 있다면 회사를 당장 그만두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처음부터 어떤 형태의 보장을 원한 것일까. 월급? 지위? 명예? 안락한 삶? 인간관계? 하지만 이 중에 그 무엇을 분명하게 확정할 수 있을까?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우리 주변엔 위에 소개된 상담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직이나 전업을 해서 성공한 사례보다는 실패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아서, 그들이 들려주는 실패담이 발길을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날마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을 마주하는 것 역시 괴롭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망치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라
어떤 문제에 부딪혔는데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때는 머리로 아무리 깊게 생각을 해도 분명한 해답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자기 마음속 밑바닥에 흐르는 감정을 우선시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현재의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해서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움직인다. 그렇다고 이기주의적인 삶을 택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일에서 맨 앞자리에 자기 자신을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언제나 남을 의식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굴종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