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국에서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레이첼 백 지음 | 원더박스
꼭 한국에서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레이첼 백 지음
원더박스 / 2017년 11월 / 312쪽 / 15,000원
Are you ready?
해보자, 재미있겠다, 할 수 있다!
두 개의 프로필: 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해외 취업 4회 성공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2개월에서 3년 동안 살아본 도시는 모스크바, 시드니, 밴쿠버,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이며 현재까지 35개국 정도를 여행했다. 나는 인생 자체를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늘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2015년 초까지 캐나다에서 가장 큰 대기업 유통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회사에 다니면서 캐나다 전역으로 유통되는 제품들을 구매하고 마케팅하고 홍보하는 식품 바이어로 일했다. 주요 경력은 무역, 구매, 제품 개발, 홍보, 마케팅이었다. 최종 학력은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전공한 국제경영이다. 그리고 세계한인무역협회 밴쿠버 지회 무역스쿨에서 4년 연속 무역실무 강의,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대학과 정부 기관 그리고 블로그 이웃들에게 강연과 강의를 틈틈이 해오고 있는 인기 강사다. 여기까지는 나의 홍보형 프로필이다.
그렇다면 나의 평범한 프로필은 어떠한가? 내 정규 교육은 모두 한국에서 받은 것이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지방대학교, 4년제 지방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영어 공부란 것을 처음 시작했던 대학교 3학년 때 나의 토익 점수는 400점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고 영어를 한 문장 혹은 한 마디도 구사 못 할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었다.
한국에서 3년 정도 직장을 다녔는데 무늬 좋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3개월도 못 버티고 나와 마을버스도 잘 안 다니는 시골 동네에 위치한 직원 10명이 안 되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무역과 유통 일을 했다. 나의 평범한 프로필을 보면 한국에서 말하는 스펙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아니, 평범한 프로필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하게 자격증도, 높은 토익 점수도 없었고, 편입한 지방 대학 졸업장만 있는 평범 이하였다.
그렇다고 열심히 살아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실업계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교과목을 공부할 때도, 뚜렷한 미래 없이 지방대에 다닐 때도,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전혀 모른 채 영어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을 배울 때도 나는 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마도 무슨 일이든 열심히 끈기 있게 하는 것은 나의 근성인 것 같다. 그 근성은 순발력이 없고 머리가 좋지 않은 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존형 장점이기도 하다.
항상 꿈이 또렷하여 그것을 목표로 달려온 것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경험들을 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면서 하고 싶고, 보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점점 더 많아졌던 것이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얻고 싶은 것이 조금씩 명확해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기본기를 갖추기 위한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한국, 호주, 미국, 캐나다에서 일하며 기본기를 다지고 지금의 글로벌 커리어를 갖추게 된 것이다.
최고의 선택이 아니면 최선을 선택하면 된다
지구는 둥글다
잡초로 클 수 있어 다행이다: 3학년이 되어 해외로 영어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그 대신 방학 한 달 동안 여행을 계획했다. 러시아에 이은 두 번째 해외 경험을 생각하니 신이 났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캐나다를 여행할 계획으로 밴쿠버로 떠났다. 한국인들이 하우스 셰어를 하는 곳에서 머물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일자리만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래서 애초 한 달 여행 계획을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어학연수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영문학과 3학년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일식당에서 첫 일을 구하게 되었을 때는 혹시라도 나의 영어 실력이 들통날까 걱정했다. 그래서 주 고객인 현지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레스토랑 표현들을 찾아가면서 모조리 외웠다. 그곳은 손님이 많지 않아 여러 가지로 영어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일식당으로 옮겼을 때는 큰 무리 없이 서빙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돈을 벌면서 해외에서 생활하기로 한 나의 선택은 온실 속의 화초를 거부하고 들판의 잡초가 되겠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세상은 더욱 소중했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은 더욱 가치 있었다. 어학연수 온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풀타임으로 어학연수 과정을 듣는다. 그런데 나는 시간과 돈 모두 부족하여 파트타임으로만 수강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힘든 조건이 레스토랑에서도 집에서도 영어를 활용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간절하면 다 방법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회사를 면접 보라
나의 인터뷰를 통과한 회사: 나는 회사가 나를 면접 볼 때 나도 그 회사를 면접 보았다. 회사의 방향, 미션, 분위기, 열정 그리고 사장님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좋았다. 최소한 나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주었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질문들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과 생각들을 스스로 알 수 있게도 해주었다. 작지만 신뢰가 갔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큰 확신과 기대감이 생겼다.
회사는 나를 선택했고 나도 그 회사를 선택했으며 그곳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늘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며 사장이라고 생각하며 업무에 임했다. 항상 진정성을 가지고 따뜻한 마음과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일에 몰두했던 시간이었다. 주중에는 실무를 배우고 주말에는 한국 무역협회 무역 아카데미를 다녔으며 틈틈이 무역 실무와 관련한 책들도 읽었다. 그렇게 실무와 이론을 병행하며 무역 실무와 관련한 책들도 읽었다. 그렇게 실무와 이론을 병행하며 무역 실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 구매, 협상, 사고 처리 능력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무역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대기업 무역부 출신인 사장님은 이렇게 다양하고도 폭넓게 일을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장점이라며, 이렇게 배워두면 나무만을 보는 것이 아닌 큰 산을 보며 일을 할 수 있어 더욱 재미있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이 맞았다. 그 당시 나에게 일을 한다는 것은 취미이며, 친구이며, 공부이며, 밥벌이였다. 취미생활을 하듯 늘 흥미로웠고, 친구를 만나듯 재미있었고, 공부하듯 늘 배울 것이 많았으며, 무엇보다 돈을 벌면서 그런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기에 더욱 좋았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한다
해외 취업을 위한 스펙 그 이상의 실력: 한국에서 경력을 쌓고 해외로 나오려는 사람들에게 나의 직장 무역회사에서의 경험을 강조하고 싶다. 외국에 나오면 한국에서 말하는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사람이 진정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이 그 회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얼마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업무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어떤 실력을 갖추고 회사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보다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같은 분야로 해외 취업을 하기에 조금 더 수월할 수 있다.
한국에서 요구하는 스펙, 해외에서는 멋지게 무시해도 좋다. 서울대를 나왔거나 지방대를 나왔거나 외국인이 볼 때는 한국에 있는 대학 중 한 곳일 뿐이다. 토익 점수도 필요 없다. 영어로 실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된다. 그 영어 실력은 전화 인터뷰와 면접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토익 만점을 받은 사람도 전화 인터뷰 때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2년 정도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무역 전문가가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한 파트를 깊이 있게 알지 못하더라도 폭넓게 배울 수 있었다. 일단 폭넓게 전 과정을 배우고 나니, 더 깊이 알고자 할 때는 그것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산을 보는 것이다. 무역에서는 물류 흐름을 보는 것이고 구매에서는 long term win win business(장기적인 상생 비즈니스)를 생각하며 일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회사에 다녔느냐보다 내가 어떤 일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느냐가 진짜 실력이다.
사회생활에서 배운 것들 : 당시 나는 수출상을 찾는 일부터 송금 후 사후 관리까지 모든 절차를 주도적으로 처리했으며 거래처와 좋은 관계 유지, 가격 협상, 유통 경비 절감, 은행 수수료 낮추기, 통관 수수료 줄이기, 해상 운임 협상 등 그 회사에서 내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폭넓게 일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했던 주 업무는 무역, 구매, 유통이었다. 물건을 구매해서 수입 절차를 거쳐 국내에 유통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협상이었다. 내가 말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상대를 이해하고 이해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내 안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에 열정과 추진력이 보태지니 언젠가는 멋진 비즈니스 우먼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언젠가는 나의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꿈일 뿐이었지만 20대 말에 나의 첫 사업인 유학원을 경영하게 되었으니, 꿈을 꾸는 것은 막연하더라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대기업에 입사해서 어떤 업무를 깊이 있게 배우는 것도 좋고 중소기업에 입사해서 폭넓게 도전적으로 일을 배워나가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의 방향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현재 하고 있는 실무와 경력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실무로 탄탄하게 다져진 실력이 있다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일을 할 수 있다. 단순하게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회사에 이익을 발생시켜주는 인재가 되는 것은 실력이 바탕이 된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욕심을 조금 줄이고 눈높이를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업무에서 플랜 A와 플랜 B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두 가지 이상을 놓고 최상의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니 인생에서 내가 짜놓은 플랜 A가 안 되면 플랜 B로 넘어가는 것이 그 시점에서는 최상이 아니더라도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취업 준비생이 A회사, B회사에 모두 떨어졌다면 Contingency Plan을 꺼내듯이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가장 최선의 선택을 이어가면서 최상의 기회를 준비해나가야 한다.
고등학교 때 이만큼 공부했더라면: 2년 넘게 무역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일은 익숙해졌다. 무역 업무 사무 보조로 입사했지만 그동안 많은 성과도 냈고, 나름 그 분야에서도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데 나의 한계를 느낀 것은 아주 다른 상황에서였다. 무역을 하며 해외 출장도 가고 한국으로 출장을 오는 해외 수출회사 직원들도 만나게 되면서 어려움을 느꼈다. 일과 관련된 주제 이외에 오가는 대화 주제는 문화, 경제, 정치 등 매우 다양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내 영어의 부족함을 느낌과 동시에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대화의 흐름이 끊기거나 대화에 끼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아직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면서 동시에 체계적인 배움이 가능한 곳이 어딜까 하는 생각 끝에 찾아낸 곳이 바로 국제대학원이었다. 고등학생 때보다는 대학생 때 공부를 더 많이 했고 대학생 때보다는 대학원 다닐 때 공부를 더 많이 했다. 대학원 다닐 때는 조금 더 자세히 내가 원하는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을 알고 선택한 진로였기에 소중한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며 궁금했던 것들 그리고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경험도 하면서 대학원에 입학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대학원 진학은 나를 위한 현명한 투자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노마드, 레이첼의 심플 라이프
나는 언젠가는 해외에서 살 사람이야
뜻밖에 찾아온 기회: 나는 언젠가는 해외에 나가서 살 것 같았다. 나가서 살고 싶었다. 자유스러움과 사람 향을 일찍 맡았던 것 같다. 하늘도, 공기도, 사람들도 모두 여유가 있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눈치 볼 일 없는 자유스러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안정적인 복지혜택까지 캐나다는 나에게 매력적인 나라였다. 그래서 캐나다 경험 이후 나는 당연하게 해외에 나가서 사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방향이 설정되니 그다음은 어떻게 나갈 것이냐에 대한 질문과 실행만이 남았다. 꼭 한국에서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정해서 살아보는 거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나는 뜻밖에 해외로 나갈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 캐나다가 아닌 호주였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고 더욱이 K move(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왕복 항공권, 최소 생활비, 해외 인턴십 회사 알선까지 전액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졸업 예정자인 대학원생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만약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계속했었다면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지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회는 예상치 않게 찾아오기도 한다.
해외 취업을 꿈꾸다: 호주 도착 후 첫 3개월은 회사, 호주 발음, 날씨와 나라 문화 등에 적응을 하느라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부서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사수와도 친해져서 일도 배우고, 영어도 배웠다. 훗날 내가 해외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모습을 조금 더 또렷하게 상상해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동료 중에 해외 인턴십으로 일을 시작해서 그 회사 정직원이 된 케이스가 있었다. 그 친구는 모국어가 이탈리어였다. 그를 보며 나도 열심히 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회사에서 일한 지 4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직장상사에게 이런 의사를 내비쳤다.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다행히 나는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았고 일도 많이 배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2주 후에, 직장상사가 “지금 회사가 합병되다 보니 앞으로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람이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라며 정직원이 되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뉴욕! 내가 간다
미국에서 인턴십 구하기, 생각보다 쉽다: 호주에서 돌아와서 내 생애 첫 사업을 시작했다. 내가 처음 도전한 사업은 캐나다로 유학 가는 학생을 돕는 유학원이었다. 목적은 내가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한국 본사에서 학생을 보내면 나는 그곳에서 거주하며 학생들을 관리하고, 캐나다 밴쿠버 지사를 운영하면서 한국을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적이었다.
유학원 원장으로 학생들을 유학 보내며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나의 꿈이 계속 떠올랐다. 그것은 ‘외국에서 풀타임으로 어학원 다니기’였다. 대학생 때 캐나다에서 파트타임으로 5개월 어학원을 다니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집에서 도움을 받아 풀타임으로 학원만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나는 학원이 끝나면 알바를 가야 했고 풀타임 학원비는 비쌌다. 어학원에 연락을 해서 내가 직접 어학연수를 받고 싶다고 말하니 유학원 원장님은 수업료를 공짜로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또 다른 한 곳은 하와이 그렇게 내 나이 30세에 미국으로 영어 어학연수를 떠났다.
유학원은 약 2년 정도 운영했다.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평생 한국에서 일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대신해서 한국 사무실을 운영하며 상담을 잘할 수 있을 만한 해외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 사업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미국 취업에 뛰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