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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품격, 국가의 품격

이충호 지음 | 벗나래



시민의 품격, 국가의 품격

이충호 지음

벗나래 / 2017년 7월 / 301쪽 / 15,000원





리더답게



‘비행착각’이 국가를 추락시킨다

필립피데스는 왕(리시마코스)의 친구였다. 왕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선정을 베푼 것도 바로 필립피데스 때문이었다. 왕은 친구의 얼굴만 보아도 기분이 좋을 정도였다. 한번은 왕이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에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여,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자네와 나누면 좋겠는가?” “왕이시여, 다 좋으니 나라의 비밀만은 저와 나누지 말아주십시오.” 무대에 서는 필립피데스는 연단에 서는 스트라토클레스와 이처럼 비교가 된다. - 데메트리오스 12절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왕은 서른셋의 나이에 죽음을 맞았고 체제가 정비되지 않은 광대한 제국만 남겨놓았다. 당연히 실권을 쥐고 있었던 마케도니아의 장군들 사이에서는 후계자의 자리를 놓고 경쟁이 벌어졌다. 이 일화의 주인공인 리시마코스도 다른 경쟁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연단에 서는 정치가인 스트라토클레스는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신들의 모습에 견주며 아첨하고, 전쟁에서 패배한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 아테네 시민들에게 승리했다는 거짓 뉴스를 뿌리기도 했다. 며칠 후 아테네의 패배를 알게 된 시민들이 분노하며 달려들어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지난 이틀간 여러분은 즐겁지 않았습니까?” 그는 그렇게 뻔뻔스러웠다.

반면 희극작가이자 시인인 필립피데스의 절제와 현명함은 2,3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빛난다. 왕의 우문에 대한 필립피데스의 현답은 얼마나 통렬한가! 왕으로부터 부당한 특권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의 시민정신은 이를 반칙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의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 앞에서 선량한 시민의 역할을 방관하지 않았고,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신하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자의 자질은 더욱 중요하다. 맹자는 말한다. “임금이라도 인(仁)을 거스르면 도적이 되고, 의(義)를 거스르면 악당으로 임금의 신분에서 일개 사내나 아녀자가 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리시마코스는 군주의 자질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의를 결여한 지도자에 해당한다. 그의 질문이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미덕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시대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다. 강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성골’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보호받아야 할 권력도 없어야 하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국민도 자격이 없다. 대통령도, 시민도 혼용무도(昏庸無道)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권력자와 실세들이 벌인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전투기 조종사 사이에서 자주 나타난다는 ‘비행착각(vertigo)’ 현상을 떠올렸다. 그들은 지평선과 수평선 사이를 오가며 세상이 빙빙 돌 정도로 즐기다 공간지각 능력을 상실하고 어지러움을 느끼며 추락한다. 고도계가 있는데도 소용이 없는 이유는, 사람은 눈에 들어오는 것에 가장 빨리 반응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년 전 언론과 야당의 경고라는 고도계가 있었지만,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보고 자신들의 안위를 판단했고 언론 탄압으로 대응했다. 그들이 탄 비행기는 하강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거꾸로 비행하는 상태인지도 모른 채 기수를 들어 올리려다 추락했다. 그들의 추락은 실로 순식간에 끝났고, 지상에는 잔해만 남았다.

권력을 쥔 자가 덕이 없고 세계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그는 국가와 국민의 숨결마저 조여들어오는 악마나 다름없다. 권력은 항상 자신을 중심으로 일치하기를 원하고 갈등과 대립을 적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은 선의로 경쟁을 하기도 하고, 그 안에는 생산적 갈등도 존재한다. 세계에 대한 인식, 철학이 없는 지도자의 권력은 그래서 허망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인 줄 모르고, ‘이의 있음’이 반대가 아니라, 토대를 강화하는 것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 의무이다

펠로피다스가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따라오더니 제발 목숨을 잃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 말은 보통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에요. 나처럼 지휘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다른 병사들의 목숨을 지켜달라고 말해야 하는 거예요.” - 펠로피다스 20절

펠로피다스는 명문 집안 출신으로 용맹스럽고 근면했으며 도량이 컸다. 젊은 나이에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그는 “나는 재물의 주인이지 돈의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재산으로 선량하고 유능한 사람들을 도왔다. 많은 이들이 펠로피다스의 도움을 받고 고마워했으나 그의 친구 에파메이논다스만은 그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펠로피다스는 친구의 가난을 나눠 가지기로 했다. 그는 기꺼이 평범한 옷을 입고 소식하면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고, 병사로서 성실하게 복무했다. 반면, 가난을 물려받았던 에파메이논다스는 철학을 통해 가난을 더욱 가볍고 우습게 여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1808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로 ‘부나 권력 또는 명예를 갖고 있는 사회 지도층이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출생 혹은 행운 덕택에 남들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부를 누렸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돕거나 이끄는 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은 개인의 미덕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쩌면 인류가 집단을 이루며 생활하던 시절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정통성이라는 지도자의 정신적 권위를 얻는 것은 그 방법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2,400년 전의 펠로피다스 역시 솔선수범해서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그 덕분에 자신이 지휘한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경제잡지 《포브스》는 찰스 F. 피니에게 자선 활동계의 제임스 본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2016년 12월 그는 학생들의 지역사회 봉사 후원금으로 써달라면서 7백만 달러를 코넬대에 기부하며 여생을 위한 2백만 달러만 남겨놓고 공식적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모두 비웠다고 한다. 그가 35년 동안 약 9조 원을 익명으로 기부해온 데 이은 마지막 자선활동이었다. 피니의 기부금은 5개 대륙 1,000여 개 기관에 전달됐지만, 이 중 벽이나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올라온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피니의 기부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바지 두 벌을 입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존 라빈스는 독특한 유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믿는 공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장밋빛 미래’를 포기했다. ‘31’이라는 숫자로 익숙한 베스킨라빈스의 상속인이었던 그는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인간의 행복은 그가 필요로 하는 물건의 개수에 반비례한다.”는 생각을 믿은 결과였다. 그는 집안의 지원을 받지 않고 대학을 졸업한 후, 아내와 함께 외진 곳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존은 아들이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캘리포니아로 옮겨 와 채식주의자와 환경주의자의 삶을 이어갔다. 나는 먼 나라 ‘존’의 상속과 관련해 우리나라 최대 기업 삼성의 후계자를 생각하고, 구속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생각하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숨어 있던 대통령의 권력을 생각한다.

2,400년 전 그 아득한 옛날, 펠로피다스와 같은 리더는 양심의 고동소리를 북소리처럼 울리며 바리케이드를 넘어 지도자의 표상이 되는 삶 속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21세기의 어느 멀쩡한 공화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치자가 국민을 믿지 못해 장벽을 쳤고, 시민은 장벽 너머의 권력을 당연시하며 절망했다. 그 사이 시간의 세례를 받은 쓰레기가 여기저기서 희망처럼 솟아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상류가 아니라 하류를 맴돌고, 우리는 숲에서 베어져 아궁이 옆에 땔감으로 놓여 있었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 한 사람이 손가락질하면서 그는/ 도둑이 되었고 / 한 사람이 집적거리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 창녀가 되었다 / 몇 사람이 따라서 부르는 노래로 하여 그는 / 유명한 가수가 되었고 / 몇 사람이 좋아하는 시로 하여 그는 / 위대한 시인이 되었다 / 마찬가지다 / 한 사람이 쓰레기를 던지기 시작하면서 / 그 나라는 쓰레기 공화국이 되어버렸다 / 그 나라 사람들 누구도 애국심이 없었다 /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 더욱 그러했다 /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나태주의 눈물(‘이유가 없었다’)이 멈추고, 솔로몬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하늘에 우리의 희망을 걸어보자. “그의 시대에 정의가, 큰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시편 727)

진정한 리더 리쿠르고스의 선택

리쿠르고스의 무대는 기원전 8세기, 스파르타였다. 그는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임신 중이던 형수가 아들을 출산하면 왕위를 그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단지 보호자로서 국정을 돌보겠다고 선포했다. 그렇게 그는 고작 여덟 달 동안 왕위를 지켰을 뿐이다. 또 자신의 애매한 지위로 인해 시기와 분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이집트와 크레타, 아시아 등지를 유람하면서 각국의 정치제도들을 살펴보았다. 스파르타 시민들은 그를 그리워했고 여러 번 사람을 보내 돌아올 것을 종용했다. 그는 결국 돌아와 기존의 질서를 바꾸고 체제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그는 법의 일부만 바꾸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의 기본 틀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기풍과 습관, 생각까지도 바꾸는 등 국가를 정교하게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리쿠르고스의 첫 번째 정책은 토지의 재분배와 화폐개혁이었다. 스파르타의 전체 토지를 시민들의 수로 나누어 모든 시민들에게 똑같이 분배해 한 가족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을 수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는 권리를 인정받는 사회 구성원인 전체 시민에게 아무런 차별이나 조건 없이 기초생활비를 지급하는 이 제도를 시장의 논리를 존중하면서도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도덕경제라고 믿었다. 이는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공유경제’나 ‘기본소득’의 개념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는 또 하나의 경제개혁으로 금과 은이 화폐로 사용되는 것을 금지하고 철로 된 화폐만 사용하게 했다. 화폐를 무겁고, 크고, 쉽게 부러지도록 만들어 집안에 쌓아두거나 불법으로 유통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새로운 화폐가 통용되면서 외국에서 물건이나 여타 장식품을 사 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처럼 부의 특권을 차례로 없애자 사치는 저절로 소멸되었다. 재산이 많아도 가난한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어진 것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범죄가 사라지고, 쓸데없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술자들이 침대, 의자, 식탁과 같은 생활필수품을 훌륭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한편 그는 사치에 대한 시민들의 욕망과 허영심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공동 식사를 고안해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한데 모여 밥을 먹고, 사회가 아이들을 내남없이 공동으로 보살피기 위해서였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같이 밥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고 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공동체 정신을 배우고 시민의식을 몸에 익혔다. 그들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절제와 용기였다. 그 결과 시민들의 여가는 풍부해졌으며 부를 축적하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어졌다.

부가 그 어떤 부러움이나 명예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모두가 동일하게 잘 사는 삶, 소박한 욕구를 채우는 편안한 삶이 자리 잡았다. 그는 나라에 큰 위험을 끼치는 것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너무 가난해서 원한이 생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구상한 주요 제도를 굳건하게 확립하고 시민들의 관습 속에 자리 잡게 도왔다.

이제 리쿠르고스는 자신이 정해놓은 길 하나만 걸어가면 되었다. 바로 델포이 신전이었다. 신전으로 향할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담담한 얼굴로 왕과 의원들을 만나고 시민들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체제를 지속하고 지키겠다는 맹세를 그들로부터 받아냈다. 신전에 도착한 그는 아폴론에게 제를 올리고 자신이 만든 법이 좋은 법인지, 나라의 번영과 도덕성을 높이기에 충분한지를 물었다. 리쿠르고스는 신탁을 받아 스파르타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또다시 제를 올린 후, 친구들과 아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시민들이 그에게 한 맹세를 뒤집지 못하게 하기 위해 델포이 신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제 그는 국가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내려놓아도 될 때라고 판단했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고귀한 업적을 달성한 뒤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일체의 음식을 끊고 죽음 속으로 태연히 들어갔다. 마지막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그는 평온했다.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서 그 후로 스파르타는 열네 명의 왕을 거치는 동안에도 그가 확립한 체제를 5백 년간 이어갔고, 고대 그리스 지역의 패권을 유지했다.



시민답게



부정부패를 부르는 어둠의 선물, 뇌물

마케도니아의 통치자 안티파트로스가 부적절한 부탁을 했을 때 포키온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한꺼번에 그대의 친구도 되고 아첨꾼도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안티파트로스는 고백했다. “나는 아테네에 친구가 둘 있네. 포키온과 데마데스. 한 친구는 아무리 주려 해도 받으려 하지 않고, 한 친구는 아무리 주어도 만족하지 않지.” - 포키온 29절

포키온은 솔론 등의 정책을 부활시켜 군사와 정치 모든 방면에서 이름을 떨치고자 했다. 그러나 그때 나랏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정치와 군사에 관한 일을 제멋대로 나누어 가지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으며, 전쟁이나 지휘권을 이용해 출세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화로울 때에는 정치가들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곤 했던 아테네 시민들이, 나라에 중대한 일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자신들의 일시적인 충동을 꺾어버리는 현명한 포키온을 지도자로 임명했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드로스가 포키온에게 100달란트의 돈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포키온이 물었다. “아테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 돈을 가져왔소?” “알렉산드로스 왕께서는 장군만을 명예롭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내가 계속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치고 이 돈을 도로 가져가시오. 내가 만일 이 돈을 받고도 안 쓰면 아무 소용없고, 내가 이 돈을 쓰게 된다면 그것은 나와 알렉산드로스 왕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반면 데마데스는 장군들의 무능으로 인해 그리스 군대가 해산되고 마케도니아 군대가 아테네에 주둔하는 상황에서 마케도니아에 유익한 정책을 펴고, 권세를 이용하여 아테네를 제멋대로 요리했다. 아테네의 전통과 영광을 손상시키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그는 오로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키를 잡은 것일 뿐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한마디로 그는 매국노였고, 마케도니아를 도운 부역자였다.

포키온과 데마데스의 서로 다른 가치관처럼 인간은 뇌물 앞에서 둘로 나뉜다. 탐욕과 자기절제가 그 둘을 가르기 때문이다. 뇌물은 이미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 시대 때부터 사회의 골칫거리였다. 당시 이집트 왕조는 뇌물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하는 선물’로 규정하고,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선물을 주는 행위를 단속했다. 고대인들의 규정에서 보듯이 뇌물 연구는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이 구분 자체가 어렵다. 그나마 영국의 기업윤리연구소가 제시한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는 기준은 상식선에서 동의할 만하다. 첫째, 받고 나서 잠을 잘 수 있으면 선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뇌물이다. 둘째, 외부에 공개되었을 때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선물이고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뇌물이다. 셋째, 자리를 바꾸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고 자리를 바꾸면 못 받는 게 뇌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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