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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과학책

션 코널리 지음 | 생각의길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과학책

션 코널리 지음

생각의길 / 2017년 11월 / 314쪽 / 15,000원





850년 - 불로장생의 영약? 밤하늘의 불꽃놀이?



최초의 빅뱅이론

각종 치명적 무기의 재료로 쓰이는 화약이 불멸의 삶을 꿈꾸던 마술사들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하면 다들 놀랄 것이다. 한데 사실이다. 최초의 화약은 고대 중국의 과학자 겸 마술사들이 늙지 않는 영약을 제조하다가 우연히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과학자 겸 마술사를 연금술사라 불렀다. 연금술사는 구리, 납 등의 금속으로 금, 은 등의 귀금속을 제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 연금술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금 따위가 아니라 영원한 삶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들이 죽음을 피하는 법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갈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고 말았다.

중국 연금술사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불멸의 삶을 얻을 수만 있다면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들은 여러 가지 물질을 큰 항아리에 쏟아 넣고 섞은 뒤 최고 50년까지 묵혔다. 그리고 50년 뒤에 내용물의 효능을 시험했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불멸의 삶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원후 850년경 중국 연금술사들이 만들어둔 혼합물 중 하나가 매우 빨리 불이 붙으며 심지어 폭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혼합물은 오늘날 화약이라 불린다.

초기 화약은 지금보다 많이 약했다. 그러나 폭발할 때 섬광과 다양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점은 같았다. 중국 연금술사들은 이 특징에 착안하여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의 눈길을 단번에 끄는 발명품 하나를 내놓는다. 바로 폭죽이었다. 얼마 안 있어 과학자들은 폭죽 제조법을 발전시켜 로켓을 만들었다. 이제 알록달록한 폭죽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재앙이 도사리고 있었다. 로켓이 하늘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면 사람을 향해 날아가지 말란 법이 없었다. 첫 폭죽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대포가 등장했다. 불행히도 그때부터 폭탄은 점점 켜졌다.

알고 넘어가야 할 과학 지식: 화약을 발견한 중국 연금술사들이 과학이 아닌 마술을 다루기는 했지만 사용한 방법만은 과학적이었다.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은 실험을 찬찬히 관찰한 뒤 관찰 결과를 꼼꼼히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연금술사들은 ‘불멸의 삶’ 실험을 하나 진행할 때마다 재료를 일일이 기록했다. 대부분의 경우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수십 년을 관찰해도 혼합물은 어떤 변화도 발생하지 않았고 아무런 특징도 발견되지 않았다.

중국의 연금술사들은 원하는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세 가지 기본 재료를 조합하여 우연히 화학을 제조하면서 그 이상의 발견을 해낸 셈이다. 그 세 가지 재료 중 하나는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탄소다. 석탄이 탄소의 대표적 예다. 두 번째 재료는 중국 의사들에게 진작에 잘 알려진 재료였던 유황이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며, 이미 2,000년 전 중국 과학자들이 그 추출 방법을 알아냈다. 화약에서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재료는 초석이라고도 하는 질산칼륨이다. 유황과 마찬가지로 중국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며, 아주 오래전 중국 과학자들이 이를 이용하여 혼합물에서 귀금속을 추출하는 법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을 때 종종 먼저 잘 타는지, 얼마나 타는지 알아본다. 이를 연소라 하는데, 특정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여 열이나 빛을 낼 때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다. 물질이 타려면 산소와 결합해야만 한다. 물질과 산소가 결합해서 타게 되면 에너지를 빠르게 혹은 느리게 방출된다. 화약의 경우 에너지가 너무 빠르게 방출되어 폭발이 일어난다. 탄소, 유황, 초석 혼합물이 매우 빠른 속도로 산소와 섞이기 때문에 이때 발생하는 열에너지가 말 그대로 솟구치고 결국 혼합물에 불이 붙는다.



1616년 - 갈릴레이, 망원경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첫걸음을 떼다



물리학, 종교재판의 힘을 경험하다

때로는 사람 하나가 기존 세계의 법칙을 뒤흔들고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도 있고, 전 미국이 시민의 권리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든 로자 파크스가 그랬다. 과학도 그런 특별한 사람들 덕에 진화할 수 있었는데, 대표적 인물이 갈릴레오 길릴레이다. 현대 과학의 영웅 스티븐 호킹은 “현대 과학은 갈릴레이에 의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티브 호킹은 왜 갈릴레이를 지목했을까? 그가 오늘날 ‘과학적 방법론’이라 불리는 영역을 개척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탐구하면서 갈릴레이는 모호한 이론을 내세우는 대신 수많은 실험을 했다. 그 결과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결론에 이를 때까지 다양한 실험을 되풀이했다. 이를 통해 사물의 운동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힘에 대해 많은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 1608년 갈릴레이는 새로운 발명품(망원경)을 접하고 아직 원시적 수준에 머물렀던 이 도구를 직접 개량하기 시작했다. 1609년 그는 성능이 월등히 향상된 망원경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연구에 활용했다.

1610년 1월 7일,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해 달을 관찰하고 있었다. 잠을 자러 들어가기 전에 목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는데, 작은 별 세 개가 목성 옆에 나란히 줄지어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다음 날 밤에는 그 별들이 목성을 중심으로 반대쪽에 놓여 있었다. 세 번째로 관찰하던 날에는 세 별의 배열이 또 달라졌고 전에 보지 못했던 네 번째 별이 등장했다. 별들의 위치를 세밀히 기록하던 갈릴레이는 곧 그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도는 달처럼 목성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처럼 태양계 행성의 패턴을 관찰하던 갈릴레이는 지구도 무언가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추론하게 됐는데, 그 무언가는 바로 태양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당시 가톨릭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가톨릭에서는 세상만사가 성경에 적혀 있듯 ‘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특히 갈릴레이가 살던 이탈리아 본토에서 교회의 힘이 매우 강력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그의 확신은 가톨릭 교단의 근본을 위협했다.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이라고 알려진 이 생각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가톨릭교회의 성경 해석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갈릴레이의 발견을 통해 천동설이 틀렸다고 입증된다면 교회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었다. 교회로서는 갈릴레이를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1616년 교회는 먼저 갈릴레이에게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에 대한 글을 쓰지 말라고 경고를 보냈다. 갈릴레이는 재앙과 같은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16년간 이 학설을 더욱 발전시켜 1632년 논문을 펴냈다. 이듬해 그는 68세의 나이에 체포됐다. 고문을 가하겠다는 협박 앞에 갈릴레이는 자신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철회해야 했다. 처벌은 ‘가택연금’으로 수위가 낮아졌지만 갈릴레이는 이후 죽을 때까지 자유인 신분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여생을 피렌체에 있는 자택에서 갇혀 지내다 눈병에 걸려 장님이 됐고 1642년 세상을 떠났다.

알고 넘어가야 할 과학 지식: 갈릴레이가 남긴 업적은 과학적 관찰과 수학의 절묘한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는 사물을 던지거나 떨어뜨렸을 때 움직이는 방식을 관찰해 그 패턴을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사물의 운동이 질량과 무관하게 같은 비율로 가속되는 원리를 발견했고, 사물의 운동 경로에 중력이 미치는 영향을 관측했다.

결론에 이를 때까지 실험하고 관찰하고 또 실험한 그의 끈기 덕에 세상에 대한 인류의 지식이 발전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발견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재능도 있었다. 교회와 마찰을 빚은 이유도 그 능력이 너무 탁월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미흡한 수준이었던 발명품(스파이글래스)을 정교한 도구(망원경)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뛰어난 기술자이기도 했다.

갈릴레이는 다양한 렌즈를 사용해 실험하면서 망원경의 확대율이 앞렌즈와 뒷렌즈의 격차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확대율을 극대화하려면 눈에 대는 앞렌즈를 강한 오목렌즈로, 반대편 뒷렌즈를 약한 볼록렌즈로 끼워야 했다. 다만, 당시 안경 제작자들은 그런 렌즈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자 갈릴레이는 렌즈 가공법을 배워 자신에게 필요한 렌즈를 직접 만들었다.

갈릴레이는 이 망원경으로 4주 동안 목성을 관찰했다. 자신이 특수 제작한 렌즈를 통해 관찰한 광경을 매일 밤 그림으로 기록했다. 특히,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듯한 네 개의 별에 집중했고, 이 별들이 목성의 네 개의 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도 목성의 가장 밝은 위성 네 개는 그의 업적을 기려 ‘갈릴레이 위성’이라 부른다.



1665년 - 아이작 뉴턴의 떨어지는 사과



그러나 그 가치는 나날이 더 높아만 간다

아이작 뉴턴은 1665년 어느 오후 잉글랜드 울즈소프의 과수원에 앉아 있다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았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자 아이작은 생각했다. 무엇이 사과를 땅을 향해 끌어당겼을까? 사물과 사물이 서로 끌어당기도록 만드는 신비로운 힘이 있는 걸까? 어쩌면 이 힘이 태양이 행성을 끌어당기는 현상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뉴턴은 이 ‘힘’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계산이 곧 너무 복잡해져서 새로운 종류의 수학(미분학)을 고안해야 했다.

이 연구에 12년이나 걸렸지만 1687년 마침내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모든 사물에 작용하는 신비로운 힘, 흔히 ‘중력’이라고 알려져 있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담겼다. 이 책은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에 어떤 힘이 작용할 때 그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해주는 세 가지 중요한 운동 법칙을 정립했다. 이 세 가지 법칙은 훗날 과학자들이 멀리 떨어진 은하계의 위치를 파악하고, 잠수함을 만들고,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너무 작아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입자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데 기반이 되었다.

알고 넘어가야 할 과학 지식: 뉴턴의 업적은 무엇이었는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책을 몇 권이나 읽어도 모자라지만 핵심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세 가지 운동 법칙이다. 뉴턴은 우주 속 만물이 서로 중력으로 끌어당긴다고 말했다. 이 중력은 사물 간 거리 및 각 사물의 질량에 따라 달라진다. 중력은 사물 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지고 질량이 클수록 강해진다. 뉴턴은 평소 존경하던 갈릴레이의 연구를 바탕으로 운동 법칙을 발전시켰다. 갈릴레이는 행성과 각 행성의 위성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뉴턴은 이해하기 쉬운 명확한 언어로 그 움직임의 원인과 원리를 설명해냈다.



1752년 - 밴저민 프랭클린의 전기 연



번개 치는 밤하늘에 연을 날리고 벼락을 안 맞는 비결

거친 날씨는 사람들을 무모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도 일견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데 봄만 되면 즉각 하던 일을 팽개치고 차에 올라타 폭풍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토네이도로 변할지 모를 폭풍을 추적하러 다니는 것이다.

250년 전 미국의 한 정치인도 감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폭풍을 쫓았다. 번개의 비밀을 밝히려는 목적이었다. 위험도가 그야말로 무한대였던 셈이다. 사람이 30만 볼트짜리 번개에 맞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이런 엄청난 일을 벌였음에도 벤저민 프랭클린은 죽음도 불사하고 과학자보다는 금언가이자 고효율 난로와 복초점 안경 등의 기발한 물건을 만든 발명가, 그리고 대표적인 미국 독립운동가로 더 유명하다. 무엇보다 그는 주변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고, 끊임없이 샘솟는 갖가지 발상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활용했다.

1750년대에 이르러 그는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번개가 실상은 정전기이며 다만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정전기보다 수백만 배 강력한 수준이라는 학설에 동조하게 되었다. 번개가 높이 솟은 사물에 떨어진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프랭클린은 폭풍이 가까워질수록 정전기가 증가한다는 사실(구름은 음전하를 띠게 되고 구름 밑에 있는 모든 사물은 양전하를 띠게 된다), 또한 상극끼리 끌어당긴다는 원칙에 따라 전하는 음에서 양으로 흐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752년 6월 어느 오후 프랭클린은 아들 윌리엄과 함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던 필라델피아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프랭클린 부자가 제작한 특수 연이 사용되었다. 연의 끈 끝에 금속 열쇠를 달고 다시 금속 열쇠 끝에는 리본과 철사를 달았다. 리본은 프랭클린이 손으로 쥐었고 철사는 하전된 입자를 축적하는 라이덴병에 연결했다. 그리고 부자는 때가 오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다.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연에 매단 끈이 젖어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렇다면 전기가 통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아졌다(전하는 끈이 젖었을 때 훨씬 쉽게 이동한다). 그는 리본을 잡지 않은 손을 열쇠를 향해 뻗었다. 손이 열쇠에 닫기도 전에 섬광이 튀었다. 순간 깜짝 놀랐지만 감전이 되지는 않았다. 프랭클린은 빗물에 젖은 끈이 전기 도체가 되었고 라이덴병으로 이동하던 전하가 자신의 손으로 옮겨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정도 강도의 전하는 연으로부터 내려왔을 수밖에 없었다. 먹구름에서 발견되는 전하와 비슷한 강도였기 때문이다.

알고 넘어가야 할 과학 지식: 벤저민 프랭클린은 지적일 뿐만 아니라 영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저 유명한 실험은 과연 실제로 진행했을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구름 안에 몰린 음전하가 젖은 끈을 따라 라이덴병으로 이동하리라는 사실을 프랭클린이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절대 그처럼 심각한 감전의 위협을 무릅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 역사가들의 책을 뒤져가며 1752년 6월 오후 정말 그런 실험이 있었나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굳이 사료가 없어도 실험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프랭클린이 정전기가 모이고 증가하고 그렇게 모인 정전기가 가장 극적인 형태로 방출되는 과정, 즉 번개를 목격이라도 한 듯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전기라는 용어는 특정 사물에 모여 있던 음전하를 띤 입자가 급작스럽게 다른 사물의 양전하 입자로 이동하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면 방에 깔린 카펫을 밟고 지나갈 때 우리 몸으로 흡수된 전자 중 손가락 등에 남아 있던 전자가 쇠로 된 문손잡이의 양전하 입자로 이동하면서 정전기를 느끼게 된다. 번개는 규모만 훨씬 클 뿐 같은 과정을 거쳐 생성된다. 먹구름 속 얼음 결정이 맹렬하게 돌아다니다가 전하를 띤 입자를 교환한다. 양전하를 띠는 입자는 고도가 높은 구름에 몰리고 아래쪽에 있는 구름에 음전하를 띠는 입자가 몰린다. 음전하가 증가하면 양전하를 띠는 입자를 찾아 헤매게 되는데 주로 나무 꼭대기, 교회 첨탑처럼 높은 곳에서 찾게 된다. 프랭클린의 연도 높은 곳에 위치한 양전하 입자 중 하나였다.



1825년 -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개발하다



속도의 한계를 넘다

기차는 도시에서 도시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다. 대도시 간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은 나라에서는 비행기보다 기차가 오히려 더 빠른 경우가 있다. 프랑스와 일반의 고속철도는 시속이 무려 300킬로미터가 넘는다. 이런 기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과학자들조차 절대 타서는 안 될 위험한 물건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인체는 그렇게 빠른 속도를 견딜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초반 수많은 발명가들은 ‘증기’의 추진력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물을 끓이는 보일러는 당시 이미 널리 사용되었고, 고압력 증기를 안전하게 생산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따라서 발명가들은 증기를 활용하여 철도를 따라 차량을 이동시키는 법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1784년 윌리엄 머독이란 사람이 ‘강한 증기’ 법칙에 근거하여 세계 최초의 증기 수레 모형을 개발했다. 그의 이웃이었던 리처드 트레비식은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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