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지성만이 무기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 비즈니스북스



지성만이 무기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7년 9월 / 264쪽 / 14,000원





‘읽기’에서 시작하는 공부 - 생각하고 이해하고 의심하는 기술



‘생각하는 것’은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읽는다는 것은 적극적인 행위다: 혼자 공부하거나 연구할 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읽는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간단한 일 같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생각할 재료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재료 중 하나가 책이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읽고, 읽어서 알게 된 것으로부터 자극을 받아야 한다. 자극 없이 자발적으로 생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8세기의 대표적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만 해도 ‘생각하는 방식에는 인간 특유의 버릇이 있다’고 주장한 흄의 회의주의 철학서와 영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갈 수 있다고 주장한 스베덴보리의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아 자신의 대표 저서인 『순수이성비판』을 썼다. 읽기를 수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읽기는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적극적인 행위다. 물론 오락이나 실용서가 아닌 책을 읽는 경우에만 해당되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인가를 알아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안이하게 세상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는 연습도 할 수 없다. 생각도 하지 않게 되고 일상적인 판단이나 태도로 기존의 습관을 반복하거나 누군가를 모방하는 생활 방식을 취한다. 의외로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면서 한편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매뉴얼이나 실용적인 기술로 대처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매뉴얼이나 실용적인 기술은 기계를 다루는 데는 유효할지 몰라도 인간이 관여된 일에는 통용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당연히 독서에도 실용적인 기술 같은 요령은 통하지 않는다.

이게 최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 읽기 기술은 당연히 있을 수 없지만, 타인의 독서 방식이 참고가 될 수는 있다. 즉,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 숙달된 사람의 방식이 자신을 더욱 숙련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방식을 안다고 해서 자신의 독서 의욕이 배가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책을 읽을지 말지는 오로지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책에서 무엇을 찾아낼 것인가: 독서는 생존 욕구 자체는 아니지만 뇌의 굶주림을 채워 준다는 의미에서 생존 욕구에 가까울 수 있다. 뇌의 일부는 생각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뇌가 태어나면서부터 논리적인 문법을 갖추고 있는 이유가 말이나 문장을 음미하기 위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지금처럼 책이 없었다. 고대에는 구전과 전승에 의해 부족의 역사가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귀에서 몸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기를 통해 계승되어 온 내용은 단순히 과거나 조상의 사례뿐만 아니라 윤리나 생활 방식을 포함한 종합적인 서적 같은 것이었다. 고대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그런 구전이 현대에 이르러 책이라는 집약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고대인들은 선조로부터 이어 온 이야기를 그저 재미로만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역사가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뭔가를 간파했을 것이다. 간파는 멍하니 듣기만 하는 태도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말이나 문장 속에서 어떤 의미를 캐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 행하는 적극적인 작업이며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독서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작업인 이유는 반드시 뇌의 작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간파한다는 것은 더욱 고도한 작업이다. 독서가 인간의 머리를 활발하게 만드는 것은 이 간파라는 형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무의식적으로 간파를 행할 수 있다. 타인의 일상적인 언어 구사 방식, 태도, 표정, 행동에서도 그 안에 숨어 있을 법한 뭔가를 간파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책과 마주했을 때는 거기에 적혀 있는 주제나 정보, 지식만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일이 책을 읽는 게 귀찮아진다. 시간을 두고 책을 읽기보다 재빨리 인터넷으로 찾은 정보로 요점을 간추리고자 한다. 이는 자신의 주변 세계를 조잡하고 작은 가상세계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세계를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오타쿠는 그러한 작은 가상세계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읽는 것’이 무기가 된다 -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떤 ‘지(知)’도 시대의 틀 안에 있다: 우리는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교사의 가르침을 받을 뿐, 인생이나 지금 몸 담고 있는 사회 혹은 인간에 대해 배우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즉 관찰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학교라는 곳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과 깨달음이 관찰을 통해 쌓인다. 그렇게 해서 인생이란 무엇인지, 사회란 어떤 것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자신의 내부에서 확립시켜 간다.

때문에 작은 지역사회에서 살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의해 자신의 지식이 형성된다. 물론 그 지식은 그 지역사회에서는 충분히 통용된다. 하지만 그 지역사회의 밖에 있는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지식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지방의 협소한 사회에 사는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보고 촌뜨기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의 작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보다 도시에는 훨씬 넓은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지식에 동반되는 넓은 가능성을 동경하고 지금도 시골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온다. 그렇다고 도시의 지식이 가장 넓고 뛰어난 것은 아니다. 도시의 지식 역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사고, 즉 도시의 문화 전반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은 넓이밖에 갖지 못한다. 도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식은 늘 시대의 틀 안에 있다. 그 나라, 그 문화가 만든 그 시대의 가치관, 윤리관, 지향성 등에 걸맞은 넓이를 지닌다. 덧붙여 『지의 고고학』을 쓴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런 지식을 그리스어로 에피스테메라고 부른다. 번역한다면 ‘시대의 공통지(共通知)’이다.

‘돈벌이가 안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니힐리즘: 라틴어로 ‘무(無)’를 의미하는 니힐에서 파생한 니힐리즘은 ‘허무주의’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지만, 단순히 모든 가치에 대해 허무함을 느끼는 것을 니힐리즘이라 말하지 않는다. 니힐리즘은 사상가에 따라 개념에서 상당히 큰 폭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개념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는 많은 사안에 대해 가치를 도출해 내지 못하는 상태를 넓은 의미에서 니힐리즘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어째서 시대의 지식은 우리를 니힐리즘에 빠트리기 쉬운 것일까? 이를테면 현대의 자본주의적인 지식에서는 경제적 유용성에 합당하다면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긴다. 다음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 유용성이다. 가치의 히에라르키(피라미드 꼴의 계급 지배 제도)에서는 경제성이 늘 우선시된다. 이처럼 가치에 등급을 매기는 상황은 간단히 니힐리즘을 만든다. 이 경우로 말하자면 경제성과 관계없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에서는 가치를 찾아낼 수 없다. 현실 앞에서 돈벌이로 연결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강한 주의나 주장이 그 시대나 장소를 석권해 버릴 만한 상황이라면 혹은 어떤 사상이 대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면 그것을 계기로 니힐리즘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지식이나 권위적인 주의, 주장의 내용물은 무이며, 그 근거도 덧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강력한 지식이 아니라 항간에 유행이 될 만한 지식도 마찬가지로 알맹이는 무에 가깝다. 이를테면 현대 일본에서 통용되는 오래 사는 것이 좋다는 주장도 텅 빈 껍데기일 수밖에 없다. 단명하든 장수하든 애당초 의미가 없다. 의미나 가치는 누군가가 부여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거기에서 의미나 가치를 찾아내지 않으면 주변에서 아무리 좋다 한들 그 어떤 의미와 가치도 갖지 못한다. 어떤 장소든 자신이 살면 도시가 되는 것이고, 자신이 애착하는 동물, 물건이나 기억이 나 자신에게 의미와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면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이 무기가 된다: 자기 자신이 의미와 가치를 찾지 않아 생기는 니힐리즘은 전 세계에서, 각 가정의 구성구석에도 있다. 일본에서도 정부가 도덕이나 개인의 생활 방식까지 간섭한다면 니힐리즘에 빠지는 사람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니힐리즘을 타개할 방법은 있다.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에 쓰여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글 속에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헤아리는 적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책을 읽는다 해도 각자의 환경이나 생활방식에 따라 의미를 추출하는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적어도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또한 동서고금의 온갖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지식과 가치관을 접하고 현재 상황을 타개할 실마리로 삼을 수 있다. 폭넓은 독서를 통해 어떤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자신에게 중요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일상에서 자유롭게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곧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빛나는 고전 문학의 힘

마음의 신비함을 응시하는 것은 모든 지성에 필요한 인간 이해의 기초: 아마도 자본주의 세계에 있는 우리는 자신이라는 존재로 온전히 갈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가짜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은 추상적이고 부분적이며 기술적이다.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만 마음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상대의 역할과 지위, 역량에 걸맞은 흥정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관계한다. 그 경우 상대의 인격은 도외시된다. 왜냐하면 일의 중심은 경제이며, 결과적으로 최대한 많은 돈을 모으는 목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돈에 의해 대부분의 일이 해결되고 처리된다. 온갖 종류의 즐거움을 사는 모습이 일상인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는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와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즉, 모든 것이 경제적이고 인공적이라는 말이다.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은 대개 금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고민밖에 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기뻐하지 않고 머릿속 화학반응이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차원에서만 기뻐한다. 죽음이나 이별, 사랑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희박해진 혹은 가짜 인생을 체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파리 컬렉션에서 발표된 옷과 비슷한 싸구려를 몸에 걸치고, 진짜 맛과 비슷한 요리를 진짜라고 생각하며, 자식을 키우거나 집을 짓는 걸 정상적인 인생이라고 여긴다. 이런 삶이 가짜는 아닐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현대인의 인공적인 가짜를 모두 집어던질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문학을 읽으면서 인간과 세상의 심연에 숨어 있는 신비를 알고, 진정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온갖 연구와 지성에 반드시 필요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될 것이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책을 읽는다

독서의 목적은 나 자신을 아는 것: 소설 『데미안』이나 『황야의 늑대』를 쓴 시인 헤르만 헤세는 ‘세계문학 문고’라는 소논문에서 세계문학을 읽는 것에 대해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 ‘세계문학과 독자의 생기 넘치는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특히 독자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감명을 준 작품을 아는 것이며, 어떤 기준 또는 교양의 잣대 등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중략)… 예를 들어 어느 걸작이 상당히 유명하다는 이유로, 모두가 아는 그 작품을 모른다는 게 부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읽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그 대신 누구나 각자의 성격에 어울리는 작품을 우선 읽는 것, 아는 것,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헤세의 독서론이 특별한 이유는 책을 읽는 최초의 목적이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독서론은 책에서 지식을 얼마나 빨리 흡수하는가에 주안을 두고 있다. 하지만 헤세에게는 지식 습득이 최초의 목적이 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헤세의 이런 생각이 대체로 옳지 않을까. 왜냐하면 실제로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기 자신을 안다’는 말이 무슨 심오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정말 무엇을 갖고 싶은지 확인하는 것이 자신을 아는 중요한 하나이다. 자신이 무엇을 갖고 싶은지 수많은 경험과 인간관계를 통해 제대로 아는 사람도 있다. 거듭된 도전과 뼈아픈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사람도 있다. 혹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아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세상의 찰나적인 풍조에 휩쓸려 유행하는 책이 아니라 보편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고전으로 손꼽히는 세계문학이 쓸모 있다.

화폐가 여러 장소에서 가치를 갖게 된 현대에 와서 인간은 가치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하고도 그것이 정말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만연해 있다.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성질의 대상을 비교하는, 이상한 금전 환산을 솔선수범하여 수행하는 것은 정부와 공무원이다. 그들은 세금을 들여 진지한 얼굴로 전업주부의 노동력이 어느만큼의 임금에 해당하는지 계산하여 발표하기도 한다. 국민들은 그와 똑같은 짓을 흉내 내고 있다.

자신의 모든 생애를 걸 만한 가치를 찾지 않고, 금전적인 가치로 선택을 좌지우지한다. 그들에게 일이란 강제된 고역과 비슷한 것이 된다. 본래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직장에 취직한 대가이다.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취직이나 노동 방식을 선뜻 결정 내리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희망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이해득실과 금전의 가치에만 매달리는 부모를 비롯한 이 세상의 어른 말을 귀담아듣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성의 레일이 있고 그 위를 달려야만 한다는 신앙에 몸담아 버린다. 그 결과 금형 틀에 꼭 들어맞는 소시민과 소비자가 생긴다.

독서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암시를 작은 목소리로 말해 준다. 어떤 책이 자신에게 해답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다른 사람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혹은 어떤 책이 자신의 타고난 성향에 어울리는가 하는 의미에서 본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준다. 보통은 10대 때 이런 깨달음을 경험한다. 물론 인생의 맛을 곱씹어 본 40대나 50대가 되어서 비로소 깨닫는다 해도 평생 깨닫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훨씬 낫다. 그럴 경우에도 책이 작은 목소리로 가르쳐 준다.



성인의 공부는 인생을 가슴 떨리게 한다 - 하고 싶은 일과 재능 그리고 지성



진정으로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가

사회성 편중이라는 병에 걸리는 사람들: 현대는 인간의 사회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사회성이 있고, 사회 규범을 준수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는 인재를 원한다거나 또는 그래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있는 듯 보인다. 물론 공공장소에서는 사회성이 필요하다. 단, 너무 강조되면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있어도 괜찮은 상황에서도 몸에 밴 사회성이 족쇄로 작용한다. 이를 풍자화로 그린다면, 자신의 집에 있으면서도 복장과 태도가 사회에 있을 때와 똑같은 식이다. 하지만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현실에서는 편안한 차림으로 집에 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사회성을 중시하는 인간 그대로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를 시작할 때도 소위 말하는 사회성이 가급적 많이 포함된 분야나 주제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 모습은 일종의 허세와 거드름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인에게 ‘최근 이런 공부를 시작했어’ 하고 떠벌리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현재 위치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회성 있는 분야나 주제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