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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무측천 천하를 지배하다

장석만 지음 | 북허브



승부사 무측천 천하를 지배하다

장석만 지음

북허브 / 2017년 6월 / 319쪽 / 14,000원





제1편 유혹



미천한 소녀의 계략 / 남자를 위해 안색을 바꾸다

14세(637년)에 후궁으로 들어온 무측천은 입궁한지 두 달이 지나도록 황제를 가까이서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황궁의 규칙과 예의, 용어를 배우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야만 했다. 참고로 후궁들은 갖가지 이유로 품계를 받았는데, 가장 낮은 19등급 채녀(采女)부터 1등급 귀비(貴妃)까지 나뉘어 있었고, 무측천은 16등급 재인으로 낮은 신분에 속했으므로,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기 전에는 황제와의 관계를 갖기가 어려웠다.

막막한 생활 속에서 무측천은 비슷한 또래의 서혜라는 궁녀를 무척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학식이 높았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조정의 유력한 관리였기에, 또래의 궁녀들 중에서 태종 이세민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무측천은 서혜가 황제를 만나 출세를 하게 되면 자신을 도울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더욱 서혜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했고, 결국 단짝이 된 두 사람은 곧 의자매를 맺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측천의 예상대로 서혜는 황제의 부름을 받았다. 황제를 가까이 모시게 된 서혜는 무측천이 얼마나 아름답고 재능이 많은지 시간이 날 때마다 황제에게 고했고, 결국 황제로부터 무측천을 한번 보겠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황제로부터 전갈이 왔고 무측천은 황제와 잠자리를 가셨다. 태종 이세민은 무측천의 소녀같은 태도를 아주 흡족해 했고, 무측천에게 측천무미(側天武媚)란 이름을 내려 주었는데, 그 때부터 무측천은 무미랑이라 불리게 되었다.

불멸의 신념

첫 관계 이후 태종은 자주 무측천을 불렀는데, 최근 한 달이 지나도 황제의 부름이 없었다. 무측천은 먼저 황제가 변심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무측천은 그간 황제의 재인으로 있으면서 받은 봉급을 태감과 궁녀들에게 나누어 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여, 결국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원인은 무씨 성의 여자가 황제가 된다는 소문 때문이라는데, 그 소문대로라면 무측천은 앞으로 황제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무측천은 태종의 사랑을 되찾아 오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첫 번째 정치적 수완

당시 황궁의 태감이나 궁녀들 중에는 권력을 가진 자가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권력의 향배를 주시하면서 권력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빈틈없이 듣고 정보를 얻어, 이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해 주면서 적지 않은 재물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무측천은 이들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넓히면서 모든 정보를 손아귀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중하게 관찰한 무측천은 가장 나이가 많고 황궁에서 벌어지는 온갖 경쟁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노쇠한 태감들을 낙점했고, 그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젊은 궁녀가 자신을 성의 있게 대해 주자 나이든 태감들은 감격하여, 무측천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돈을 주어 사람을 매수한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태감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일종의 정치적 수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돈을 주었다고 해서 당장 필요한 부탁을 하여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 곧 무측천을 대하는 여러 태감과 궁녀들의 태도는 온화한 복종으로 이어졌다.

한편 여러 정보 가운데서도 무측천이 특별하게 관심을 갖는 것이 있었다. 바로 태종의 뒤를 이을 태자, 즉 이승건과 이태가 벌이는 황태자 자리다툼이었다. 무측천은 양측의 정보를 냉철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어 태감과 궁녀들의 도움으로 황제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 수 있는 일을 배정받았다. 비록 황제와 밤을 함께 보낼 수는 없었지만, 미천한 일을 하면서라도 황제 가까이에서 권력자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황제가 다시 자신을 총애할 수도 있었다.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다

태종은 14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 중에 문덕 장손황후로부터 승건, 태, 치를 두었다. 황자 이태는 황위 계승자인 이승건을 끌어내리기 위해 온갖 모함을 했으며, 이승건은 이태가 자신을 궁지에 몰아 넣을까봐 전전긍긍하다가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태의 계속되는 모함에 화가 난 이승건이 이태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는데, 사전에 발각되어 태자 자리를 박탈당하고 평민으로 강등되어 유폐되었고, 이태는 이 과정에서 황자 이승건을 모함한 죄가 드러나 역시 실각하였다. 이제 남은 건 셋째 이치뿐이었다. 이제 누구든지 이치의 총애만 받으면 정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태종의 여자가 아닌가? 그러나 무측천이 평범한 여자 같았으면 포기했겠지만, 무측천은 기회를 노리며 태자 이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마음을 여는 열쇠

태종은 휴양을 위해 황궁을 나와 여산에 머무르는 일이 잦았다. 시녀인 무측천과 태자 이치도 자연히 황제의 거동에 동행하였다. 그러면서 이치는 태종 곁에서 시중을 들던 무측천과 마주하는 날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점점 무측천의 미모와 몸짓에 마음을 빼앗긴 이치는 무측천에게 의미 있는 눈빛을 던지곤 했다. 어느 날 궁녀들과 태감들이 문안을 다녀간 후 이치가 잠시 화장실에 가게 되었을 때, 무측천이 이치의 시중을 들기 위해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두 사람이 결정적인 일을 벌였다고 한다. 그 후 이치는 무측천에게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나 황제의 여자 무측천과 황제의 아들 이치의 부적절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측천이 이치를 확실하게 잡아두기 전인 649년 5월 이세민이 서거하였기 때문인데, 황제가 죽으면 황제를 하룻밤이라도 모신 궁녀 중 자식이 없는 궁녀는 감업사라는 절에 들어가 평생을 비구니로 살아야만 했다.

여인의 혈시

감업사에 들어온 무측천은 다른 궁녀들과 다름없이 잿빛 적삼에 삭발을 하고 경전을 읽으며 태종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면서도 무측천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종 이치를 기다렸다. 1년 뒤, 태종 이세민의 기일에 이치는 선재의 명복을 빈다는 이례적인 이유로 감업사로 거동을 하였다. 이치가 감업사에 들어서는 순간 무측천은 기쁨이 뒤엉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치도 측은한 마음이 들어 눈시울이 젖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이치가 떠나갈 때 무측천은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만약 황제께서 저를 잊으신다면 저는 곧 목매어 죽을 것입니다.” 이치가 말했다. “너를 이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너를 궁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남자를 붙잡는 확실한 방법 / 심산(心算)

감업사에서 이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무측천은 임신을 했다. 무측천은 이 기회를 살려 반드시 황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이치가 드디어 감업사에 나타났고, 무측천의 임신 사실을 들은 이치는 무척 기뻤다. 하지만 이치는 무측천을 하루빨리 구해주겠다는 말만 할 뿐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무측천은 실망했다. 형새가 불리했지만 무측천은 이치의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한편 고종 이치의 부인 왕황후는 황실과 인척관계였고, 황궁에서 거만하게 굴고 후궁들을 엄격히 다루어 존경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고종과의 슬하에 아이가 없어 고종 이치와의 사이도 소원했다. 그리고 이치의 애첩인 소숙비는 아들과 두 딸이 있었는데, 소숙비는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삼을 것을 상상하면서도, 소숙비를 받쳐줄 지지 기반이 조정에 없었고, 후궁들도 소숙비를 따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궁에는 감업사의 비구니가 고종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왕황후는 사람을 보내어 임신한 비구니를 조사하였는데, 그 여인이 무측천이라는 사실을 듣고 일단 안심하였고, 소숙비를 제거하고 싶은 마음에 무측천을 이용할 방법 찾기에 고심하였다. 고종은 왕황후가 무측천의 문제를 따지고 들 것을 염려하였는데, 오히려 무측천을 입궁시키는 문제까지 너그럽게 이해할 수도 있다는 의중을 내비치차 감격해 마지않았고, 그동안 소원했던 내외 관계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까지 일었다.

암투

무측천은 28세에 감업사에서 아들을 순산했다. 이치에게는 다섯째 아들로, 이름을 홍(弘)이라 지었다. 그리고 이치는 무측천을 소의로 봉하고, 감업사에서 황궁으로 돌아오게 했다. 무측천은 일단 고종 이치를 독점하는 방법의 한 가지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주변의 여러 시녀들로 하여금 이 소식이 소숙비의 귀에 들어가게 했다.

소숙비는 이 소식을 듣고 화가 치밀어 통곡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이소절을 태자로 봉해달라고 울고불며 이치에게 매달렸다. 결국 이치는 마지못해 구두상으로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 소식은 즉시 무측천에게 전달되었고, 무측천은 왕황후에게 이를 알렸다. 왕황후는 고마워하며 외삼촌 유석 등을 찾아 대책을 세웠다. 그 결과 고종 이치는 여러 대신들의 압력으로 부득이 이충을 태자에 봉하였다. 그러자 소숙비는 분노와 절망, 비탄에 빠졌다. 왕황후는 뜻대로 이충을 태자로 옹립하면서 새삼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젖었고, 옆에서 크게 도움을 준 무측천은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무측천은 다시 임신을 했다. 훗날 왕황후를 몰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희생양이 되는 딸이었다. 그리고 무측천은 점차 왕황후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임신을 핑계로 조석으로 문안을 드리는 일을 거르기 시작하였는데, 무측천이 문안을 가지 않으면 왕황후가 그녀를 만나러 처소로 왔다. 그러면 무측천은 여전히 정중하게 나와서 황후를 예의 있게 맞이하곤 했지만 태도는 뭔가 달라져 있었다. 무측천의 세가 강해지자 공허와 적막감을 참을 수 없었던 왕황후는, 지난날 적수였던 소숙비와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왕황후와 소숙비가 연합하여 무측천을 타도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의 성과는 정반대 결과로 나타났다. 이치는 무측천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더욱 존중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무심한 기회

이치는 무측천이 새로 낳은 공주를 무척 귀여워하고 사랑하였다. 어느 날 왕황후가 새로 태어난 공주를 보기 위해 취미궁으로 왔다. 시녀도 없이 혼자였다. 그러나 왕황후가 취미궁을 방문할 무렵 무측천은 고종 이치를 만나러 양의전으로 가고 있었다. 갓난아기가 잠들어 있는 방에서 왕황후는 시녀들과 유모에게 혼자서 어린 공주를 보려하니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하였다. 어린 공주가 누워있는 방 안은 동으로 만든 화로의 숯불 때문에 따뜻하였다. 왕황후는 어린 공주를 잠깐 보고는 더운 듯이 방을 나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무측천은 상주(신하가 임금에게 아뢰는 글)를 읽고 지시하는 이치에게 아침식사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고 처소로 돌아와 잠든 아기를 보러 방으로 들어갔다.

《자치통감》은 이후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무측천이 공주가 잠든 방으로 들어갔고, 자기가 낳은 어린 딸을 두 손으로 목졸라 죽인 후 방에서 나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마침 조정 일을 끝마친 이치가 들어왔다. 무측천은 이치의 손을 잡고 맞이하면서 공주가 자고 있는 방으로 함께 갔다. 무측천이 이불을 들추다 말고 갑자기 딸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무측천의 다급한 외침에 환관과 궁녀들이 달려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무측천은 대성통곡하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유모와 시녀, 태감들이 이불을 들춰 보니 어린 공주는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이치는 주변 사람들을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시녀들과 유모는 이구동성으로 왕황후가 혼자 어린 공주방에 들어갔었다고 말하였다. 불려온 왕황후는 울분에 차 자신의 결백을 토로했다. 이치는 왕황후를 심문해서 죄과를 가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지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왕황후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무측천의 계략이라는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치는 이번 사건을 덮어야 했다.

파멸을 자초한 연적(戀敵)

이치로부터 신뢰를 잃고 자리마저 위태로워진 왕황후는 주술로 이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늙은 무녀를 입궁시켰다. 무측천은 정보망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곧 황제에게 알렸다. 이치는 대노하여 국법을 위반한 왕황후를 폐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처소에 연금한 후, 그 어머니 양씨의 입궁을 금지시켰다. 이를 계기로 무측천 쪽으로 대세가 기울었다.

비호세력을 키우다

무측천은 자신을 업신여기는 사족들과 달리 자신을 지지하고 보호해 줄 신진 관료들을 확보하여 그들을 권력의 핵심에 심기로 하고, 허경종을 발탁하였다. 허경종은 장손무기에 대해 반감이 있는 왕덕검과 이의부 등 몇몇 관료들과 연합을 했다. 이치는 침실에서 이의부의 상주를 받았는데, 그 뜻은 왕황후를 폐하고 무측천을 황후 자리에 세우자는 것이었다. 상주를 읽은 이치는 내심 기뻤다. 한편 이치가 이의부를 중서시랑으로 승직시키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이의부의 곁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무측천을 옹호하는 무리의 세가 급성장하였다.

가랑비처럼 남자를 적셔라 / 남자를 강하게 밀어붙여라 / 명목을 위해 명분을 찾다

고종 이치는 일단 무측천을 ‘신비’라는 새로운 지위를 만들어 앉혔다. 황후로 올리려는 준비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대신들은 왕황후가 정식으로 태종의 유지를 받아 세워진 황후이므로 함부로 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무측천은 태종의 재인이었으므로 도덕적으로 황후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고 강력한 반대를 펼쳤다. 그래서 황후로 올리려는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무측천은 이런 상황을 하루빨리 해결해야만 했다. 어느 날 고종이 식사를 하기 위해 무측천의 처소로 왔다. 이때 무측천의 심복인 한 시녀가 들어와 왕황후가 보내온 술에 대한 보고를 했다. 그 술은 본래 소숙비가 빚은 술로 왕황후에게 보내졌었는데, 왕황후가 그 술을 모두 마실 수가 없어 무측천에게 보내왔다는 보고였다.

이치는 무측천에게 그 술을 함께 마시자고 했다. 시녀가 그 술을 황제와 무측천의 술잔에 부어주었다. 그런데 이치가 마시려고 할 때 무측천은 갑자기 그 술잔을 저지한 후, 만일을 생각해서 먼저 봉어(奉御)에게 맛보게 했다. 그런데 봉어가 그 술을 마신 뒤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몇 번 구르더니 코로 피를 흘리며 곧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며칠 뒤 고종은 황제의 이름으로 조서를 내렸다. “왕황후와 소숙비는 술에 독을 넣어 나를 죽이려 했으니 서인(백성)으로 강등하고, 그 모친과 형제들은 제명하고 영남으로 유배시킨다.” 고종이 황후를 폐한다는 조서를 내린지 6일 만에 문무백관들은 동시에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은 대부분 무측천을 황후로 봉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제2편 참극



수렴정치(垂簾政治)

무측천은 고종 이치가 지병인 풍현으로 집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휘장(수렴정치) 뒤에서 조정의 정사를 맡아 처리했는데, 그 모습이 여러 사료에 나와 있다. 무측천은 실권을 쥐면서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는데, 그녀의 뛰어난 행정력은 남자도 행하기 어려운 것을 막힘없이 처리하여 허경종이나 이의부 같은 재상마저 덩달아 발전하게 만들었다. 고종 이치는 뛰어난 지혜와 과감한 결단력, 그리고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자기 대신 정무를 무리 없이 처리하는 무측천의 모습을 보고 그녀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미색으로 남자의 보루를 폭파하다

무측천이 황후가 되면서 친언니 무씨는 한국부인에 봉해져 보잘것없는 과부 신세에서 부와 권력을 거머쥐는 인생 역전을 맛보았다. 그러나 고종 이치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 황궁에서 쫓겨났다. 한국부인에 대한 노여움이 없어질 만큼 세월이 흘렀을 때, 무측천은 셋째 아들(훗날 예종)을 출산했다. 황족들은 저마다 새로 태어난 황자를 축복해 주기 위해 황궁에 입궁하여 무측천에게 예를 갖추었는데, 한국부인도 오랜만에 무측천을 배알할 수 있었다. 그 후로 한국부인은 다시 황궁 출입이 잦아졌고, 고종 이치도 자연스럽게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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