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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조건

이주희 지음 | MID



생존의 조건

이주희 지음

MID / 2017년 7월 / 356쪽 / 15,000원





儒家, 인간을 믿을 수 없을 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을 지날 때의 일이다. 깊은 산골을 지나가던 공자 일행에게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향해 따라가 보니 한 여인이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연유를 알아보게 했다. 여인의 사연은 한마디로 기구했다. “원래 저는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주변은 호랑이가 사는 곳이었지요. 시아버지가 오래전에 호랑이에게 물려 돌아가셨답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자로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즉에 도망가는 게 옳지 않은가? 그래서 여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왜 호랑이가 없는 곳으로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까?” 그러자 여인이 대답했다. “여기엔 가혹하고 악독한 정부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로에게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탄식하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 일을 잊지 말도록 하여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

인간이 모여서 사는 이유는 혼자 사는 것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호랑이나 늑대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지만 모여 있으면 이런 들짐승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다만 모여 살려면 기본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소속된 집단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에 소속되면 최소한 혼자 벌판에서 호랑이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더 안전하게 보호해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모여 사는 것이 가능하다. 현대적인 개념을 빌리자면 ‘신뢰’라는 이름의 사회적 자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처럼 착취와 약탈이 일상이 된 사회는 호랑이보다 더 위험하다. 호랑이는 기껏해야 몇 명을 죽일 수 있지만 지배자에 의한 착취와 약탈은 수천, 수만의 인간을 지속적으로 학살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차라리 벌판에서 호랑이를 상대하는 쪽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자가 태산에서 만난 여인의 가족도 이 같은 생각으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일반 백성이 삶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 지배 계급의 삶은 편안했느냐 하면 이들도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니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지배자의 삶이 오히려 더 불안할 수 있다. 언제 자 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살해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공자가 생존했던 당시 노나라의 사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공자가 성인이 될 무렵 노나라의 군주는 소공이었다. 그런데 소공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허울뿐인 군주였다. 얼마나 힘이 없었는가 하면 자신의 아버지인 양공의 제삿날 제례무를 출 무용수가 겨우 4명이 전부였을 정도다. 그러면 나머지 무용수는 다 어디 갔을까? 노나라에 무용수가 부족했을 리는 없다. 나머지 무용수는 모두 당대의 권신들인 삼환의 집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선대 임금의 제사에 동원되어야 할 무용수들이 제사 당일 신하들의 집에서 춤을 추고 있었으니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없다. 굴욕이 이 지경에 이르자 소공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군대를 몰아 권신들의 우두머리인 계손씨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미 군사력과 경제력을 독점한 권신들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실패한 소공은 제나라로 도망을 쳤다. 소공이 도망을 가서 임금 자리가 비었는데도 권신들은 구태여 새로운 임금을 세우지 않았다. 소공이 제나라에서 울분 속에 죽을 때까지 7년 동안 이들은 임금 없이 노나라를 다스렸다.

이 정도 권세를 휘둘렀지만 삼환의 집안 역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이번엔 삼환 집안의 가신들이 나서서 주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삼환의 우두머리인 계손씨 집안 가신이었던 양호가 난을 일으켰다. 계손씨 집안의 가장으로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평자가 죽은 권력 공백기를 틈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양호는 쿠데타 후 조정 대신들을 잡아 죽였으며, 계평자의 후계자인 계환자를 구금하고 임금인 정공, 자신의 주군인 계환자 등과 맹약을 맺어 권력을 공고히 했다. 한 나라의 임금과 대신이 겨우 한 집안의 가신과 대등한 맹약을 맺을 정도였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양호는 쿠데타 이후 반대자를 수시로 잡아 죽이는 공포 정치로 노나라를 다스렸지만, 결국 4년 만에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양호가 없어졌다고 해서 권력이 임금에게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삼환의 시대가 다시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 그 후에도 양호와 한통속이었던 공산불뉴의 난이 일어나는 등 노나라의 정치는 혼란 그 자체였다. 지배자인 임금이나 대신들의 삶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공자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말 그대로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천하무도의 시대였다. 기존 사회에 존재하던 제도와 질서가 파괴되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주나라라는 중앙정부의 통합된 시스템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분쟁, 갈등과 모순이 폭발했고 당연히 수많은 제후가 토지, 백성, 자원을 쟁탈하려고 나섰기에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춘추전국시대는 그때까지 인류가 생활하는 데 의존해온 기본적인 원칙, 가치, 그리고 이념이 모두 사라진 시대였다.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한다

맹자가 만난 왕 중에 제선왕이 있다. 하루는 제선왕이 당상에서 쉬다가 소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왕이 물었다. “소가 어디로 가느냐?” “혼종에 쓰려고 데려가는 중입니다.” 혼종이란 새로 주조한 종의 틈에 피를 바르는 제사 의식이다. 왕이 보니 소가 죽음을 두려워하며 우는 모습이 딱했다. “나는 소가 벌벌 떨며 사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구나. 놓아주어라.” “그렇다면 혼종을 폐지하오리까?”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 바꿔라” 그렇게 해서 소는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불쌍하기로 따진다면 소만 불쌍하고 양은 그렇지 않은가? 소는 살려주면서 왜 애꿎은 양을 대신 죽인단 말인가? 그래서 제나라 백성들은 왕이 인색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보다 양이 싸기 때문이다.

맹자가 이 일이 사실인지 묻자 제선왕은 무척 억울해했다. 자기가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인데 그까짓 소 한 마리 값을 아까워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딱히 설명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자 맹자가 제선왕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 “소를 양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인(仁)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금수의 생명을 대하는 바는 살아 있던 것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며, 죽는 소리를 듣고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합니다.” 왕은 이 설명을 듣고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맹자의 설명이 너무나 명쾌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군자가 푸줏간을 멀리하라고 한 것이 그저 ‘군자들은 푸줏간을 가지 말고 모르는 체 고기를 잘 먹어라.’ 마음의 주저함이 없이 먹어라' 같은 소리를 하려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막상 현장을 목격하면 불쌍해하는 동정심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푸줏간을 멀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설명하려고 꺼낸 말인가 하면 바로 ‘인간의 측은지심은 이렇게 자기 주변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에게 먼저 발현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모습이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친한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양친(兩親)이다. 맹자는 가장 친한 양친에게 이런 측은지심, 사랑의 마음을 가장 많이 실현하게 마련이고, 그다음으로 형제, 친척 같은 사람에게 동정심뿐만 아니라 애정의 마음을 실현하는 데 점점 그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그래서 내 눈에 안 보이는 아프리카 난민, 오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애정을 확충하거나 신경 쓰기란 힘들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를 동등하게 사랑하자’ 같은 이야기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다. 실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고 애정을 베푸는 모습을 보면 차등적 방식으로 측은지심이 실현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그 점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본인이 느꼈던 측은지심을 부모와 자식 사이가 100이라면, 이웃과는 50이라도 되도록 확충해나가게끔 유도하려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제선왕에게 “마지막에 소에게 느껴서 확충한 측은지심을 당신의 주변에 많은 백성들에게는 왜 확충하지 않으십니까? 오히려 눈에 많이 띄는 건 백성일 터인데, 소에게 측은지심을 확충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백성에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충고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직접 관계 맺은 사람 혹은 생명체에게는 쉽게 잔인한 짓을 하지 못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차마 잔인한 짓을 하지 못하는 ‘공감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가족에게 가장 많은 측은지심이 발휘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족 사랑의 비밀은 혈연이어서라기보다 오히려 가까이에 있다는 거리감 혹은 친근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족 사랑이든, 이웃이나 공동체 전체에 대한 사랑이든 이 모든 사랑의 근원은 같다. 공감이라는 한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갈래의 시냇물인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근원이 같다면,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바로 이것이 공자와 맹자가 가족 간의 사랑에 그토록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 진정한 이유다. 그리고 이 논리를 좀 더 진전시키면 전통적이지 않은 다른 형태의 가족에 대해서도 매우 전향적인 자세가 가능해진다.



墨家, 정의 없는 세상에 분노할 때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익이다

묵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실 소박하고 천진한 것은 아니었다. 묵자에게는 사랑이라는 단어조차도 매우 실천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선 묵자가 겸애라는 해결책을 발견한 맥락 자체가 매우 실천적인 경험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상유이말(相濡以沫)이라는 말이 있다. 메마른 연못에서 물고기들이 침으로 서로를 적셔주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비참한 환경에서도 서로를 아껴주는 민중의 삶과 겹쳐 지지 않는가?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상유이말’의 고사야말로 묵자가 겸애를 주장하게 만든 민중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장님과 앉은뱅이’라는 옛이야기도 묵자의 겸애를 잘 보여주는 예다. 장님과 앉은뱅이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전 세계적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인도 설화 속의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숲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그 숲에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장님이었고 한 사람은 앉은뱅이 였습니다. 불이 나자 두 사람은 당황하였습니다. 앉은뱅이는 불이 난 것을 볼 수는 있으나 걸을 수가 없었고, 장님은 반대로 걸을 수는 있지만 볼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돕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장님은 앉은뱅이를 자신의 어깨에 태웠습니다. 장님은 앉은뱅이의 지시대로 걸어서 불이 난 숲을 빠져나왔습니다.”

위기에 닥친 장님과 앉은뱅이가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고 돕기로 했다. 이러한 연민 혹은 사랑은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묵자는 이런 상황을 ‘겸상애(兼相愛) 교상리(交相利)’,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서로에 게 이익이 된다고 설명한다. 묵자가 말하는 ‘겸상애’, 혹은 줄여서 ‘겸애’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을 뜻한다. 광범위하고 차별 없는 사랑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든 미래의 사람이든 과 거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가족이든 남이든 차별 없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현실적인가?

묵가의 경전에서 언급한 정의는 세상의 일을 자신의 일로 만드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즉, 새로운 세상의 이익을 자신의 본분으로 삼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묵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익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또한 모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묵자의 주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오히려 자신의 주장이 현실적이며, 세상 사람들이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부국강병의 술책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한 사람이 묵자에게 이런 비판을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역사를 돌아봤을 때 북방의 제나라나 진나라 그리고 남쪽의 초나라나 월나라는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넓히고 국력 역시 강성해졌죠. 그러니 침략 전쟁을 반대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쟁을 통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이에 묵자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좋습니다. 전쟁을 약에 비유해서 생각해봅시다. 이 세상에는 몇 천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데 이 모두가 서로 전쟁을 하다가 결국 마지막 네 개의 국가만 이익을 얻고 나머지 몇천 개에 달하는 국가와 그 국민들은 불이익과 고통을 받습니다. 이건 마치 내가 의사이고 약을 하나 처방했는데 이 약을 먹은 일만 명 중 단 네 명만 병이 낫고 나머지 사람들은 병이 깊어지거나 심지어 죽어나가죠. 그러면 과연 이 약을 좋은 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한 경쟁을 찬양하고 부국강병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사실 사물의 한쪽 측면만 편협하게 바라본다. 그들에겐 승리한 사람의 영광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공정하게 살펴보면 승리한 사람은 오히려 극소수다. 99%의 대부분의 사람은 무한 경쟁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결코 99%의 사람이 어리석고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무한 경쟁은 99%의 패배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무한 경쟁의 본질이다. 따라서 1%를 제외한 99%가 패배자가 되는 이 시스템은 수많은 사람에게 해악을 끼친다. 아니, 승리한 1% 조차도 언제 패배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묵자는 모두가 승자의 영광을 추구할 때 패배한 자의 고통을 주목했다. 승자의 눈이 아닌 패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얼핏 비현실적으로 여겨 지는 비공(非攻)과 겸애가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묵자 사상의 현실성과 관련해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물들임’에 대한 것이다.『천자문』에도 묵비사염(墨悲絲染)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뜻은 묵자가 ‘실이 물드는것을 보고 슬퍼한다’는 말이다. 어느 날 묵자는 실을 물들이는 사람을 보고 탄식해 말했다. “파랑으로 물들이면 파란색, 노랑으로 물들이면 노란색, 이렇게 물감의 차이에 따라 빛깔도 변해 다섯 번 들어가면 다섯 가지 색이 되니 물들이는 일이란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나 나라도 이와 같아 물들이는 방법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아마 자신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 대한 묵자의 최종적인 답변이다. 지금 비록 세상이 어지럽고 이기적인 인간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먼저 시작한다면 언젠가 모든 이가 겸애로 물드는 날이 올 것이라는 예언이자, 반드시 그렇게 들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서 말이다.



道家, 불안을 견딜 수 없을 때



오만한 원숭이의 최후

인간에게는 물질적 욕망 못지않게 강렬한 욕망이 또 하나 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 바로 명예욕이다. 이 명예욕도 물질적 욕망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인데 명예욕은 계산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자』에도 이 명예욕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 온다.

하루는 오나라 왕이 배를 띄워 강을 건너가 원숭이가 많이 사는 산에 올랐다. 왕이 행차를 했으니 신하와 병사 모두 꽤나 요란했을 것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원숭이는 왕의 일행을 보자마자 놀라서 모든 걸 버리고 달아나 깊은 숲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런데 한 마리만이 나뭇가지를 날렵하게 오가면서 열매를 따 휙 내던지기도 하며, 왕에게 보라는 듯 온갖 재주를 부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 이를 괘씸히 여긴 왕이 활을 쏘자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아버렸다. 재주가 보통이 아닌 놈이었다.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신하들에게 외쳤다. “한꺼번에 쏴라!” 원숭이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수많은 화살이 한꺼번에 날아오는 데는 피할 재간이 없었다. 결국 원숭이는 그토록 자랑스럽게 잡았던 화살을 그대로 손에 쥔 채 무수히 많은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를 지켜본 왕이 자기의 친구인 안불의를 돌아다보면서 말했다. “저 원숭이는 자기 재주만 믿고 방자하게 굴다가 이처럼 죽임을 당하는 지경에 이른 거라네. 자네도 그 잘난 얼굴을 내세우며 남에게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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