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감정 동물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감정 동물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7년 8월 / 384쪽 / 15,000원





착각과 환상



왜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사람들이 부도덕해지기 쉬울까? - 도덕적 면허 효과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말이 유행이다. 이는 친환경 경영, 윤리 경영, 사회 공헌 등처럼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같이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의사 결정과 활동을 말한다. 학자들이 《포천》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놀랍게도 사회적 책임에 투자를 많이 했던 기업들이 나중에는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학자들은 이른바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과거 선행이나 도덕적 행동을 하면, 도덕성에 대한 자기 이미지(self-image)가 강해지는데, 이런 긍정적 자기 이미지는 자기정당화의 방편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미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나쁜 일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심리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도덕적 면허에 관한 연구들은 개인 차원에서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선한 첫걸음이 된다는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다, 2009년 한 연구에선 일반 제품 대신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 참가자들은 그 후에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지의 재활용을 위한 장치가 사람들로 하여금 종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죄의식과 관련 있다. 사람들은 물건을 소비하고 버릴 때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재활용한다는 말에 과소비로 말미암은 부정적인 감정을 누그러뜨리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다보니 소비가 더 증대된 것이다. 과소비가 재활용을 통해 완화되기 때문이다.”

2013년의 한 연구에선 사람들 앞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탄원서에 서명을 하거나 어떤 사회운동에 ‘좋아요’를 누르는 상징적인 제스처를 취한 사람들은 나중에 유의미한 방식으로 대의에 참여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시킬 수 있는 제품이나 상징물을 ‘지위재(positional good)’라고 하는데, 이런 지위재로 자신의 도덕 적 우월성을 직간접적으로 과시하는 걸 가리켜 ‘버추 시그널링(virtue signalling)’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신조어가 바로 ‘슬랙티비즘(slacktivism)’이다. 슬랙티비즘은 ‘게으른 사람(slacker)’과 ‘행동주의(activism)’의 합성어로, 사람들이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분명한 의사를 갖고 있음에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주저하면서 최소한의 관여만으로 최소한의 영향을 끼치는 참여, 즉 소심하고 게으른 저항을 말한다. 이런 참여나 저항을 하는 사람들을 슬랙티비스트라고 한다. 처음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던 슬랙티비즘은 시민 참여나 집단행동을 촉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지식인들 사이에 열띤 쟁점이 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치열한 토론을 벌이면서도 막상 실질적인 정치ㆍ사회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네티즌을 비꼬는 말로도 쓰인다.

직장 상사의 갑질도 도덕적 면허로 설명할 수 있다. 미시간주립 대학 교수 러셀 존슨은 기업의 관리자 172명을 관찰 추적해 상사들이 갑질하는 이유를 분석한 논문에서 갑질하는 상사들은 대부분 윤리적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이들은 그동안의 선한 행위를 통해 도덕성에 대한 자기 이미지가 강해져 부하 직원들에게 갑질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답을 내놓았다. 도덕적 면허 현상은 정치적 태도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흑인 후보인 버락 오바마에 대한 투표 선호도를 보여주었던 실험 참가자들은 이후의 결정 과제(직종에 대한 적합성과 기부금 할당)에서 흑인보다는 백인을 훨씬 편애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오바마를 지지한 참가자들은 그 지지를 자신이 인종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음을 표명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일종의 도덕적 신임장을 획득한 것으로 여긴 탓이다

도덕적 면허 현상은 사이버공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도덕적 면허를 얻은 사람일수록 사이버공간에서 도덕적 이탈을 할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 교수 허태균은 “부적절한 언행을 하거나 자신과 의견이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일부 사람이 후원금 18원을 보낸다는 보도를 종종 볼 수 있다. 이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설마 그 18원이 욕에 해당하는 그걸까라고 당연히 의심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하필 18원을 보내는 이유가 뭐냐고. 내가 모르는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느냐고 그런데 모든 사람이 바로 그 욕이 맞다고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니, 그런 쌍욕이 과연 공개적인 사회적 의사표현 수단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단지 그 국회의원의 언행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자신이 그 국회의원의 의견에 얼마나 반대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강력한 의사표현 수단이 필요하면 그냥 1원만 보내도 될 것이다. 그 1원의 기부만으로도 반대 의사 표현의 상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솔직히 그 국회의원을 골탕 먹이고 싶다면 후원금 영수증까지 요구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그런 쌍욕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짜 궁금하다.”

물론 허태균은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는 도덕적 면허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런 심리적 기제는 자신이 옳은 일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고 믿을 때, 역설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 한국사회는 헌법 정신을 위반하고 국정을 농단한 일련의 무리를 색출하고 단죄하는 데 온통 집중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소중한 교훈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또 다른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통해서라면, 과연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지고 미래의 한국 사회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지금의 혼란 극복 과정은 먹고사는 것이 다른 어떠한 것보다 소중했던 과거, 경제 발전을 위해 수많은 가치가 희생되고 다수를 위해 다수에 의한 폭력을 허용하던 구시대적 관습과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국민의식을 완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강하게 믿을 때, 바로 그때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때다.”

이렇듯 도덕적 자신감이나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사람들은 부도덕해지기 쉽다. 윌리엄 맥어스킬이 『냉정한 이타주의자』에서 잘 지적했듯이, 도덕적 면허 효과는 사람들이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것,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종의 ‘인정투쟁’이나 ‘구별짓기 투쟁’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정의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정의감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실제로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보다 자신이 정의로워 보이는 것,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지지 대상을 숭배하는 팬덤형 정의파들은 정의의 기준을 자신의 숭배 대상에 맞추느라 자주 자의적인 기준으로 정의의 경계를 설정한다. 정의로운 사람들마저 권력을 갖게 되면 타락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사례가 무수히 많다. 도덕적 면허 등급제나 유효기간제를 실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성찰하고 또 성찰하는 것 이외엔 답이 없을 것 같다. 언론이 도덕적 면허 효과를 자주 거론하고 다루는 것이 그런 성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의를 이기적이고 불의한 방법으로 팔아먹는 ‘정의 마케팅’은 오히려 정의를 죽일 수 있다. 정의를 위해 분노하되 정의를 좀 더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아와 자기통제



왜 사람들은 기회만 생기면 남을 속이려드는가 - 그럴듯한 부인

언어적 유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언젠가 너무나 뻔한 사실을 상대가 부인하자 이렇게 말했다. “Denial ain’t just a river in Egypt”, 직역하면 “부인(否認)은 단순히 이집트의 강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이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임귀열은 이 말은 “The Nile의 언어적 유희”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일강은 이집트에 있는 강인데 그가 한 말을 ‘The Nile is not just a river in Egypt’로 해석해보면 메시지가 보인다. 직역하면 나일강은 이집트의 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가 된다. The Nile을 발음이 비슷한 Denial~로 바꾸면 어떨까. ‘부인한다고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왜 뻔한 것을 자꾸 부정하고 거짓말하는가’라는 의미가 된다.”

트웨인은 점잖게 언어적 유희로 대처했지만, 뻔한 것을 자꾸 부정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인해 분통을 터뜨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다. 인간관계에서 사실을 부인하는 것보다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일상적 삶에서 인정해야 마땅한 것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그 점에선 사실 우리 인간은 부정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정에 능하다. 아지트 바르키와 대니 브라워는 『부정 본능』에서 “부정이란 의식하게 되면 참을 수 없는 사고, 감정 또는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불안을 누그러뜨리려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다.”고 말한다. 예컨대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잊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며,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동차 안전띠를 매지 않고 오토바이 헬멧도 착용하지 않으며 술을 마시고 육식을 하며 음주운전이나 운전 중 문자 보내기를 한다는 것이다.

‘심리적 부정(psychological denial)’이라는 개념도 있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객관적인 지각을 거부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의 투자 전문가 찰스 멍거는 투자 관리자의 필요 덕목과 관련, “여러분이 인생을 뜻있게 살아가려면 심리적 부정은 이용하지 말기를 권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럴듯한 부인(plausible deniability)’이라는 개념도 있는데, 이는 1960년대 초 미국 CIA가 만든 용어로,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기법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최상급자는 몰랐다고 연관성을 부인하면서 실무자에게 책임을 돌려 국가나 조직의 책임을 모면하는 조직 보호의 철칙이다. 전(前) 미국 중앙정보국장 리처드 헬름스는 이를 활용하는 것은 ‘비밀공작의 절대적인 필수요건’이라고 했다.

1985년 7월 10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연해에서 프랑스의 핵실험을 모니터링하던 국제환경 기구인 그린피스 소속 레인보 워리어호가 침몰했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격침이었다. 국제 여론은 책임자로 프랑스를 지목했지만 프랑스는 침묵했다. 뉴질랜드 경찰이 현장에서 검거한 2명이 프랑스 해외정보기구인 대외안보총국 정보요원으로 밝혀지면서 프랑스의 관여가 명백해졌다. 세계의 여론은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을 직접 지목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대외안보총국의 해당 부서가 독자적으로 수행한 작업이었다며 국가 책임을 부인했다. 레인보 워리어호 침몰 20주년인 2005년에 이르러서야, 당시 미테랑 대통령이 폭파 공작을 직접 승인했음이 밝혀졌다.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한희원은 이 사건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악의 위기에 몰렸던 프랑스가 정보 공작 ABC에 입각해 슬기롭게 대처했던 것이다. 정보학에서 말하는 소위 그럴듯한 부인, 또는 ‘위장부인의 법리’다. 위장부인은 상급자들의 연관성을 부인하면서 실무 책임자의 그것으로 회피하는 법 기술적인 수단이다. 최고책임자의 인식은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조직 자체의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다. 정보 공작에서 어느 수준의 책임자까지 관여했는지는 외교적 파장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 때문에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단계별로 은폐할 수 있는 장치가 중요하다.”

해외 비밀공작의 온갖 더러운 수법을 미국 내에까지 들여온 연방 수사국(FBI)의 ‘파괴분자 대응 정보활동’이 1971년 연방수사국 지부사무실을 턴 8명의 젊은이들과 언론에 의해 시행 15년 만에 폭로되었을 때도 미국 정부는 끈질기게 축소와 은폐를 시도했다. 3년 뒤 구성된 상원의 처치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대외관계에서 미국의 책임을 피하려는 그럴듯한 부인을 국내 정책 결정 과정에까지 적용해 헌법상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 논설위원 여현호는 2015년 7월 「그럴듯한 부인」이라는 칼럼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국가정보원이 해킹 의혹과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무자가 한 일만 부각하려는 듯하다. 이런 일의 승인권자인 대통령은 아예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증거가 없다고 생각한 때문일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의 와중에서 언론에 자주 등장한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모르쇠’였다. 박근혜를 비롯한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앞다투어 모르쇠 왕이 되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행태가 그럴듯한 부인의 수준이라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속된 말로 ‘미친 척’의 끝장을 보여주기로 작정했던 걸까? 특히, 박근혜는 2017년 1월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진정성 있는 반성은커녕 모든 의혹에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하여 탄핵안 가결 이후 누그러질 조짐을 보여온 국민의 분노에 새해 벽두부터 기름을 부은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였다.

서강대학교 교수 강정인은 “수사망을 좁혀오는 검찰에 맞서 국정 농단 세력은 ‘모른다’, ‘몰랐다’, ‘만난 적 없다’, ‘기억이 없다’, ‘사실이 아니다’ 등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자신들의 범죄(피의) 사실을 시종일관 부인하고, 어느 정도 사실이 파악된 혐의에 대해서도 교묘한 논변을 통해 그 범죄성을 부정하느라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순실 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정치인ㆍ관료ㆍ기업인 등 한국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범죄(혐의)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윤리 의식 실종에 참담한 마음뿐이다. 나아가 그들의 파렴치한 행태가 선량한 일반 국민의 법의식은 물론 도덕의식마저 오염시키고 있지 않나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힘 있고 돈 있고 배운 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법치를 악용하면서 처벌만 피하면 만사법통이고, 자신들의 도덕적 타락과 양심의 마비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도덕 불감증이 두렵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사회의 윤리적 기강에 미칠 해악이 무섭다. 평소 그들이 사회의 존경을 받는 지도급 엘리트였다면 더욱 가공스럽다.”

그런데 국정 농단 범죄와는 차원이 다른 대중의 일상적 삶에선 그럴듯한 부인이 꽤 만연해 있다. 이 개념에 깊은 관심을 보인 심리학자이 실험을 했다. 피험자에게 과제를 수행하게 한 후 쪽지를 한 장 주며 실험 참가비로 얼마를 줄 것임을 구두로 전달했다. 피험자들은 쪽지를 들고 다른 방으로 참가비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그곳의 경리가 금액을 한 자리 잘못 읽고 훨씬 더 많은 금액을 피험자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그 사실을 경리에게 밝히고 실수를 정정한 피험자는 전체의 20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리가 지불금이 맞는지 묻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때에는 피험자의 60퍼센트가 지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나머지 금액을 돌려주었다.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자 발뺌의 여지가 제거된 셈인데, 그 상황에서도 돈을 계속 챙기려면 자기 입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에서 이 실험의 종합적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결국 사람들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또 발뺌의 여지만 있으면 대부분이 남을 속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도 대부분은 남을 속인 후 실험실을 나가면서 애초 실험실에 발을 들일 때와 똑같이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 믿고 있었다.” 댄 애리얼리의 결론도 비슷하다. “정직한 사람들도 기회만 주어지면 상당수가 남을 속이려 든다. 우리의 연구 결과를 보면, 나쁜 놈 몇이 보통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람들 대다수가 남을 속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남을 속이는 것은 소소한 수준이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