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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박재용 지음 | 행성B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박재용 지음

행성비 / 2017년 9월 / 375쪽 / 18,000원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이 말해 주는 것: 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빛과 어둠, 하늘과 땅을 나누고, 바다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서 차례로 식물, 물짐승, 날짐승, 가축과 기어 다니는 동물, 들짐승을 창조합니다. 이 모든 준비가 다 끝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지요. 그리스 신화에서도 세상 만물이 모두 자리를 잡은 뒤에야 프로메테우스가 사람을 만듭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인간이 만물 중 가장 늦된 자이니 자중하고 겸손하란 뜻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모든 것이 준비된 다음 비로소 인간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비단 신화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인간은 다른 생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인간은 정말 그렇게 특별한 존재일까요? 과학의 발전, 특히 생물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것: 생명은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생명의 기본적인 특성을 나열하는 것으로 그 정의를 대신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생명의 기본 단위는 세포입니다. 세포는 대개 핵, 세포막, 세포질, 미토콘드리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세포를 외부와 격리시키는 것은 세포막입니다. 두 겹의 인지질로 이루어진 세포막은 내부와 외부를 나눕니다. 모든 생물에게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이에 따라 생명은 내부적 동일성을 유지하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생명은 효소를 이용해 물질대사를 합니다. 포도당을 연소시키려면 400도 정도의 높은 열이 필요하지만 세포는 체온으로도 포도당을 분해할 수 있습니다. 효소 덕분이죠. 셋째, 생명은 내부 엔트로피를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자연은 보통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갑니다. 불가역적입니다. 그러나 생명만이 이를 거슬러 내부 엔트로피를 낮은 상태로 유지합니다. 물질대사를 통해서입니다. 생명은 내부 엔트로피를 낮추기 위해 우주의 엔트로피를 높이는 존재인 것입니다.

넷째, 생명은 생장합니다. 생물의 생장은 무생물의 성장과 다릅니다. 두 가지 지점에서 그러한데요. 먼저 생장은 성장과 달리 물질대사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생장은 세포의 수가 커지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생장은 곧 세포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다섯째, 생명은 번식을 합니다. 애초에 번식을 목적으로 생명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번식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생명은 자연히 사라졌고 번식을 하는 생명들만 남았습니다. 이 생명들은 자기와 닮은 자손을 낳습니다. 여섯째, 생명은 연결된 존재입니다. 생명은 스스로 만든 생태계의 일원으로만 존재합니다. 어느 생물도 어느 종도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일곱째, 생명은 진화합니다. 진화하지 않는 생물은 없습니다.

생명은 어떻게 발생할까

생물학의 시조 아리스토텔레스: 생물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는 지상의 모든 사물을 무생물, 식물, 동물, 인간 이렇게 네 계층으로 나누었습니다. 그중 무생물은 영혼이 없고, 식물은 식물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동물은 식물의 영혼과 동물의 영혼을 함께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그것에 더해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분류 자체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동물과 차원이 다르다고.

생명은 스스로 생길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분류에 따르면 하등한 생물일수록 번식 방법이 단순합니다. 자연발생을 하거나 무성생식을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데서나 생명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기초가 되는 ‘생명의 배(Germ)’가 먼저 존재해야 하고, 이 배가 물질을 조직하여 생명의 모양새를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자연발생설입니다. 이 주장은 르네상스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맹활약했던 생기론자들(Vitalist)의 관점과 동일합니다. 생기론자들이 그의 주장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생명은 오로지 생명에서 생겨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은 이후 2000년간 유럽에서 주류로 인정받습니다. 대신 그가 주장하던 생명의 기운인 배는 신이 태초에 이 세상에 뿌려놓은 것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와 타협을 본 자연발생설은 생물 발생에 대한 일종의 보수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 속에서 잠자던 유럽을 깨운 것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이었습니다. 당시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가 별개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했는데, 그는 오직 인간만이 정신활동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일종의 기계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인간마저도 그 몸은 기계라 여겼습니다. 다만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어 다른 생물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이 영혼은 뇌의 송과선에 머무르는데, 영혼이 떠나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동일한 기계가 됩니다. 따라서 데카르트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생명의 배(일종의 영혼)는 부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세례를 받은 과학자들은 자연발생론을 부정하게 됩니다. 대신 생명은 오로지 생명에서만 생겨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생명속생설이라고 합니다.

자연발생설 VS 생명속생설: 자연발생설과 생물속생설의 논쟁을 끝낸 것은 파스퇴르의 실험이었습니다. 그는 고기즙을 플라스크에 넣고 목 부분을 가늘게 S자형으로 구부렸습니다. 그런 다음 플라스크를 가열해 멸균했습니다. 열이 식으면서 구부린 부분에 물이 찼고 외부 생물이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관찰을 하니 아무런 미생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S자 부분을 깨트리고 다시 며칠을 기다려 보니 미생물이 생겼습니다. 이를 통해 파스퇴르는 미생물도 공기를 통해 전달된다는 걸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짧게는 200년 길게는 2000년을 이어온 생명 발생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인간에서부터 세균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오로지 생명에서 발생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지구의 모든 생명은 발생에 관한 한 동등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속생설의 승리는 또 다른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모든 생명이 생명에서만 생긴다면 최초의 생명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여전히 논의 중인 문제지만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 거의 모두가 합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초의 생명은 누구의 도움이나 명령 없이 자연스러운 물리ㆍ화학 과정을 거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 갖추어진 곳이면 우주 어디에서도 높은 확률로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토록 다양한 생명은 어떻게 출현했을까

마침내 다윈: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2000년이 지난 후 새로운 진화론자들이 나타났고, 마침내 다윈이 등장했습니다. 다윈의 주장은 세상을 바꿔 버렸는데,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간단합니다. ‘생물은 같은 종이라도 각기 다양한 형질을 지니고 서로 경쟁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쉬운 형질을 가진 개체들은 살아남아 자신의 형질을 물려줄 수 있다. 경쟁에 불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는 살아남기 힘들어 자신의 형질을 물려주기도 어렵다. 경쟁에서 이긴 개체의 형질은 집단 내에서 더 많은 개체에서 나타나게 되고, 경쟁에서 패배한 개체의 형질은 사라져 간다.’

다윈은 이런 과정을 통해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의 형질이 전체 종으로 퍼지게 되고, 점차 이전과 다른 모습을 가진 생물들이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현재 이처럼 다양한 생물 종이 나타나게 된 이유도 공통 조상의 자손들이 저마다 다양한 양식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경쟁하며 진화했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인간도 예외 없이 이 공통 조상에서 시작된 진화 과정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다윈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종의 기원』에서는 이 사실을 대단히 은유적으로, 그것도 아주 비중을 낮춰서 서술합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진화론의 세 가지 핵심: 결국 진화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떠한 생물도 생태계 외부에선 존재할 수 없다. 심지어 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 식물조차도 수많은 다른 생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연결이 끊어지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 이는 생태계에서의 삶은 일정한 역할을 가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다른 생물들과 천적, 공생, 경쟁 등의 관계를 맺으면서 생태계가 동적인 평형 상태를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이 균형이 깨질 때 생태계는 위험해집니다. 생태계의 위험은 다시 개체 혹은 종의 위험으로 되돌아옵니다. 따라서 모든 생물 종은 생태계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생태계는 개별 종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항상 변화합니다. 이렇게 생태계가 변화하면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던 생물 종도 변화해야만 합니다. 진화를 통해 자신의 역할을 바꿀 수도 있고, 바뀐 생태계에서 원래의 역할을 하되 그 형태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진화의 두 번째 핵심은 방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뷔퐁이 이야기한 것처럼 퇴화하는 것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나 다른 이들이 말한 것처럼 점점 고등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적응할 뿐입니다. 수컷과 암컷은 자손을 만들 때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자손을 만듭니다. 유성생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여러 돌연변이도 이를 돕습니다. 발이 조금 더 긴 녀석, 귀가 조금 더 작은 녀석 등 여러 방면에서 조금씩 다른 자손이 나옵니다. 그중에서 그때의 생태계 조건에서,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역할에서 조금 더 유리한 녀석들이 조금 더 높은 확률로 살아남아 더 많이 번식합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진화의 세 번째 핵심은 무목적성입니다. 진화의 무방향성과도 어떤 면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인간의 조상인 유인원은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생태계 전체로 보아서도 그렇지만, 종으로 보아서도 그렇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현재의 사람으로 진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열대우림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초원이라는 새로운 조건에 맞추어 살아남은 영장류의 변이들이 모여서 현재의 인간이 되었습니다.

유전학이 인간에게 말해주는 것

유전하는 작은 인간, 호문쿨루스 / 멘델의 유전 법칙: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합니다. 우리는 이를 유전이라고 합니다. 유전학은 바로 이 유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유전 자체를 워낙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사실 150년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레고어 멘델이 그 시작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유전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밝힌 이들이 있었습니다. 멘델의 유전 법칙을 한번 살펴봅시다.

첫 번째는 분리의 법칙입니다. 분리의 법칙은 모든 생물은 하나의 형질에 해당하는 2개의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 중 1개를 자손에게 물려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열의 법칙입니다. 서로 다른 대립 유전자가 만났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우성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열성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독립의 법칙입니다. 각각의 유전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들이 서로 간에 아무런 관련 없이 전달되는 것을 독립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멘델은 완두콩을 가지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꼼꼼히 실험했고 위의 세 가지 법칙을 발표합니다. 이러한 멘델의 유전법칙은 쌍꺼풀의 어머니와 외꺼풀의 아버지가 아이를 낳을 때 왜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쌍꺼풀이 되는지도 명확히 설명해 줍니다. (쌍꺼풀이 외꺼풀에 대해 우성입니다.)

정리하는 글

생물학에 인간의 가치를 묻다: 우리는 늘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진화론과 유전학은 이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다른 동물과 하등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기원을 쫓아가다보니 결국 최초의 생명으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인간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관점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만약 인간이 다른 동물 모두와 다르다면, 그것은 생물학 이외의 영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밝히는 것은 생물학의 영역이 아니라 인문학의 영역일 것입니다. 다른 생물종 모두와 비교해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과학에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층위에서 다른 학문이나 대상에게 행해져야 합니다. 그곳에서 인간이 특별하다는 답을 들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요.



지구는 우주의 변방



천문학이 시작된 두 갈래 길

고대인들이 하늘을 관찰했던 까닭: 천문학의 역사는 두 가지 갈래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는 천문에 대한 관측입니다. 모든 문명은 신석기 시대부터 혹은 늦어도 청동기 시대부터 천문 관측을 행하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결과가 쌓이고 기술이 발달합니다. 다른 하나는 우주관입니다. 보통 천지창조에 관한 신화로 시작되지만, 각 문명마다 독특한 우주관으로 발전합니다.

고대인들이 하늘을 관찰한 이유를 많은 학자들이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핵심은 하늘이 보여주는 주기성 때문입니다. 또한 고대인들은 하늘에 떠있는 천체의 위치를 통해 지상의 방위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늘은 종교였습니다. 해도 달도 별도 모두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지상에도 숭배의 대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지상의 것과 달리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하늘의 천체는 격이 다른 존재였습니다. 그 숭배의 대상을 더 잘 알고픈 욕망은 하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중 으뜸은 시간을 매듭짓는 것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도, 한 달의 시작도, 1년의 시작도 모두 하늘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하늘만이 명확한 주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시간을 어떻게 나누었을까

태양 중심의 태양력과 달 중심의 태음력: 한 해를 나누는 기준은 문명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태양의 주기를 가지고 나누는 태양력과 달을 가지고 나누는 태음력입니다. 대부분의 서양 문명에서는 태양력을 사용했습니다. 한 해를 나누는 이유가 계절의 변화 때문이니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대략 맞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태양력을 쓴다고 하더라도 한 해의 시작은 문명마다 혹은 역사마다 달랐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낮과 밤의 길이로 한 해의 시작을 정한 것은 같습니다. 낮과 밤이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 밤이 가장 긴 동지와 낮이 가장 긴 하지 중 하나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여러 가지 축제나 행사가 열렸고, 이를 한 해를 시작하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시간 측정은 생각만큼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달은 지구 주위를 29.5일 동안 돌며 위상변화의 주기를 보이고 태양은 365.25일을 주기로 도는데, 이런 소수점 이하를 반영하지 않으면 몇 년 지나면 하루가, 몇십 년이 지나면 며칠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윤일이나 윤달을 넣는 등의 여러 조치를 취합니다. 이러한 관측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바빌로니아에서 가장 충실하게 오랫동안 이루어졌고, 이집트와 그리스도 이들의 관측 결과를 기초로 자신들의 천문학과 천체 관측을 시작했습니다.

지동설, 우아한 우주의 탄생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코페르니쿠스는 10세기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1000년을 이어져 온 천동설을 뒤집었다고 해서 이를 혁명적 전환이라고 말합니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에게 우주는 가장 완벽한 도형인 구이며,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지구 또한 구형이며 다른 모든 행성과 별도 구형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도는 궤도 또한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면 완전한 원을 이룹니다. 지구는 태양을 돌며 다시 자전을 하고, 별들은 매일 뜨고 집니다. 이보다 더 우아한 우주가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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