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앨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 린
과학과 종교 - 충돌과 조화
앨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린 / 2017년 9월 / 333쪽 / 20,000원
과학과 종교의 대화
오늘날 종교와 과학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적 권력이자 지적 권력이 되었다. 그런데 몇몇 과학자와 종교인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여기서 특히 앳킨스나 도킨스 같은 교조주의적 무신론 과학자들이 연상되지만, 종교인 중에도 비슷한 관점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는 과학을 신앙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과학과 종교의 상호작용을 ‘전쟁’으로 보는 모델은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크지만, 과학 역사가들은 그다지 신뢰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과학과 종교의 대화는 이들이 상대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배울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것인지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과학과 종교의 문화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탐구하는 일은 두 분야를 더 풍성하게 할 수도, 두 분야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양쪽 모두에게 위험 부담이 따른다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왜 그럴까? 대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판단의 근거가 된다.
첫째, 과학과 종교 어느 쪽도 현실을 완전히 설명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품는 궁금증을 과학이 다 해결해주지 않으며 종교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양측이 함께한다면 어느 한 영역의 시각만 고집하는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한 입체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 둘째, 과학과 종교 모두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어떻게’에 집중하며, 종교는 ‘왜’에 주목한다. 과학에서는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하며, 종교에서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셋째, 최근 몇 년간 과학 탐구를 통해 제기된 더 광범위한 쟁점들에 대한 인식과 과학계가 그 쟁점들에 답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 관한 인식이 과학계 내부에서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자들은 윤리적ㆍ미학적ㆍ정신적 측면에서 자신의 접근법을 강화하는 다른 접근법들을 통해 세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보완하는데, 이때 자연과학이 과학 탐구를 통해 제기됐으나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문제에 맞설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으로 종교가 인정받는 추세다.
대화를 장려해야 하는 다른 이유를 제시하기는 쉽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의 대화에 어려움도 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 뚜렷한 어려움 중 하나는 한편에서 일부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그리고 상대편에서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어떤 대화에도 참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역사 - 3대 기념비적 논쟁
논쟁1 :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그리고 태양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는 근대에 인류가 세 가지 ‘자기애적 상처’를 입었고, 각각의 상처는 인간의 자긍심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단언했다. 첫 번째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음을 알려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입힌 상처였다. 두 번째 상처는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입증한 다윈주의였다. 세 번째는 인간이 자신의 한정된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님을 밝힌 프로이트 본인이 입힌 상처라고 그는 당당히 밝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혁명적 전환은 전자가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가중시키면서 인류의 위치와 중요성에 관한 철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여기서는 그 ‘상처’ 중 첫 번째인 코페르니쿠스 혁명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일련의 확립된 신념들이 존재한다. 중세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태양과 다른 천체(달, 행성 등)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믿음이었다. 성경도 이러한 믿음을 근간으로 해석했다. 참고로 중세 초기에 널리 받아들였던 우주관은 2세기 상반기에 이집트에서 활동했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런데 16세기 들어 지구중심 모델은 태양중심 모델, 즉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도는 많은 행성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는 기존 모델과 완전한 결별을 뜻하며, 지난 1,000년간 인류의 실재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 사고의 전환을 흔히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 부르며, 이것이 자리 잡기까지 세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먼저 폴란드 학자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뿐 아니라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이 모델은 차츰 버거워진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에 비해 단순하고 정밀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모든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지는 못했고, 이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수정이 필요했다.
덴마크 학자 브라헤(Brahe)는 코펜하겐 인근 섬의 관측소에 있으면서 1576년부터 1592년까지 행성 운동에 관한 일련의 정밀 관측을 실시했다. 이 관측 자료는 케플러가 수정한 태양계 모델의 토대가 되었는데, 그는 브라헤가 보헤미아로 이주할 때까지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다.
1609년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Kepler)는 화성 운행의 일반 원칙 두 가지를 밝혀냈다. 첫 번째는 화성이 타원형 궤도로 회전하며, 이때 태양은 두 초점 중 하나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화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1619년경 그는 이 두 원칙을 나머지 행성에 확대 적용해 세 번째 원칙을 밝혀냈다.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케플러의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개념을 상당히 수정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은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에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태양중심설이 부상하면서 신학자들은 일부 성구의 해석 방법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성경 해석법은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성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직해적 접근법인데, 창세기 1장을 직해적으로 해석하면 창조가 하루를 24시간으로 하여 6일에 걸쳐 일어난 것이 된다. 두 번째는 우의적 접근법으로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적절치 않은 문체로 쓰였음을 지적해, 이 견해에 따르면 창세기 도입부는 시적이거나 우의적인 표현으로서, 신학과 윤리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반면, 문자 그대로 지구의 기원을 전달하는 역사적 설명은 아니다.
세 번째는 조정의 개념에 입각한 접근법이다. 이는 성경의 해석과 자연과학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접근법이다. 여기서는 계시가 문화 및 인류학적 조건이 부여된 방법과 형태로 일어나 그 결과를 적절히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창세기 도입부에 사용된 언어와 이미지는 초기 독자들의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세 번째 접근법은 16~17세기에 신학과 천문학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로 유명한 칼뱅(Calvin)은 자연과학이 인정받고 발전하는 데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공헌했다. 첫 번째는 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두 번째는 앞서 설명한 ‘조정’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과학 연구 발전을 가로막던 큰 장애물을 없앴다. 즉 자연과학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물이었던 성경 직해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성경의 주 목적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신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능력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17세기 초 몇 십 년간 이탈리아에서 태양중심 모델에 관한 새로운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번 논쟁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계 이론의 대표적인 옹호자 갈릴레이(Galilei)의 입장을 둘러싼 것이었다. 결국 가톨릭교회는 갈릴레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오늘날 이는 일부 교회 관료들이 저지른 명백한 판단 착오로 인식되고 있다. 처음에 갈릴레이의 의견은 고위 성직자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교황의 총신 치암폴리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일부 작용했다. 그러나 치암폴리의 권력 실추로 갈릴레이는 교황 측근의 지지를 잃었고, 결국 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유죄 선고까지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갈릴레이를 둘러싼 논쟁이 과학 대 종교, 또는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있다.
성경 해석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은 복잡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화된 일촉즉발의 시대에 새로운 접근법이라도 용인했다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적법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해 당시의 신학 논쟁은 크게 편향되어 있었다.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이 ‘바뀌었음’을 인정한다면, 필시 프로테스탄티즘 핵심 교회, 즉 이제까지 로마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것’으로 여겨 거부해왔던 가르침을 정통 교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이의 견해가 저항에 부딪힌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신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특성 성구에 대한 갈릴레이의 해석을 수용한다면 가톨릭의 프로테스탄티즘 비판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특정 성구에 새로운, 새롭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을 도입했다는 주장에 기초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릴레이의 주장이 배척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분석을 통해 갈릴레이 논쟁의 배경에 성경의 해석과 과거 교의의 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은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교회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과 종교 - 일반적인 주제들
과학과 종교에서의 이론 발전
과학과 종교는 관찰한 것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론을 발전시킨다. 이론은 어떻게 발전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바뀌는가? 과학과 종교 모두에게 중요한 이 질문이 이번 장에서 다룰 주제다. 먼저 이론이 왜 생겨나는지 궁금하다. 과학자들은 왜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데 만족하지 않을까? 과학은 세상의 표면 아래 자리한 패턴을 밝히고 나타내는 데 관심이 있다. 이론은 기존의 관찰 내용을 수용하고 새롭게 관찰한 내용을 예측하게 해주는 실재에 대한 ‘그림’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뉴턴(Newton)의 행성 운동 이론은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비롯하여 방대한 관찰 내용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훌륭한 과학 이론의 특징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경험적 타당성 - 훌륭한 이론은 이미 관찰한 내용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 이론이 참이라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② 일관성 - 이론은 다양한 구성 요소가 상충하지 않도록 내적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게다가 더 우수하고 정교한 이론이라면 이미 그 타당성을 인정받은 과거의 이론과도 상통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앞서 등장한 뉴턴의 이론을 수용할 수 있었고, 뉴턴 이론은 더 일반적인 이론의 특수한 사례로 인정받았다. ③ 범위 - 훌륭한 이론은 지금까지 상관없다고 여겼던 관찰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있다. 맥스웰은 유명한 증명에서 별개로 간주했던 전기와 자기의 통일성을 입증했다. ④ 비옥성 - 훌륭한 이론이라면 연구 프로그램과 추가적인 이론 개발에 기여해야 한다. 실험을 통한 검증이나 반증이 가능한 예측을 내놓는 것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각각의 과학 이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발전하는가? 의심할 여지없이 과학 이론은 발전해왔으며, 그 와중에 증거 사실에 대한 최상의 설명으로 인정받던 이론이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예를 들어 ‘운동학’이라고도 하는 뉴턴의 역학론은 18~19세기에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모든 과학 이론 중 가장 확고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오늘날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자리를 내주었다. 뉴턴의 운동학은 더 일반적인 이론의 제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확고한 듯 보였던 이론이 역사 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또 다른 예를 광학 분야에서도 찾을 수 있다. 18세기에는 뉴턴의 미립자론이 널리 인정받았지만, 19세기 들어 프레넬의 탄성 고체 에테르 이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과학 방법, 특히 이론의 발전에 관한 대표적인 설명 중 하나가 쿤(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다. 쿤은 어떤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점차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전환과 함께 커다란 이해 변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과학사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용어를 내놓았다.
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로 이 ‘패러다임의 변화’란 용어를 사용했다. ①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 용어는 특정 과학자 집단을 하나로 묶어주는 다수의 공통 가정들로 이루어진 집합을 말한다. 즉 인정받은 귀납, 방법, 모델들이 모인 것이다. ② 또한 이 용어는 더 구체적이고 제한적인 의미로도 쓰이는데, 지금까지 성공을 거둔 과학적 설명을 가리킨다. 패러다임은 결국 그 패러다임이 폐기될 때까지 표준이자 모범으로 간주될 기본적인 구조를 제시한다. 여기서는 ‘개념과 이론, 도구, 방법론적 합의로 구성된 긴밀한 네트워크’라는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자연과학 발전사를 탐구한 쿤의 주장에 따르면, 패러다임은 그때까지 성공적으로 설명해온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참고로 어떤 패러다임이 인정받으면 쿤이 ‘정상과학’이라고 불렀던 시기가 찾아오는데, 이 기간 동안 지금까지의 성공으로 탄생한 패러다임이 정착한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에 어긋나 보이는 실험적 증거는 변칙, 이를테면 패러다임에 어려움을 야기하지만 패러다임을 포기하게 만들지는 않는 문제로 간주된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해답이 될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임기응변으로 기존 패러다임을 수정하는 방법이 제안된다. 예를 들어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서도 이론과 관찰의 불일치를 입증하는 증거가 늘어나자 주전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 주체스럽고 흉한 체제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고수했다. 뚜렷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변칙들이 쌓이면서 결국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힘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또는 하나의 변칙이 엄청난 위력을 지녀 그로부터 제기된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면? 그렇게 되면 임기응변은 불가능하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패러다임의 내부에서 위기가 고조되는데, 쿤은 이것을 ‘과학혁명’의 전주곡이라 말한다. 그는 이 혁명적 견해를 데이터와 지식이 쌓이면서 과학 이론이 점차 발전한다고 보는 본질적 진화 모델과 대조하면서 그 차이를 분명히 한다. 참고로 다른 과학 역사가들은 ‘과학의 진보’를 주장했지만, 쿤은 짧은 시간에 획기적인 가설의 변화가 일어나는 혁명의 이미지를 선호했다. 요컨대 기존의 패러다임과 미래의 패러다임을 동일한 척도로 잴 수 없을 만큼 달라 옛것이 새것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탐구하게 된다. 한편 일부 비판자들은 과학 발전에 관한 쿤의 설명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는 주관적인 이유를 강조한다며, ‘군중 심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연속되는 패러다임이 비교 불가능할 만큼 서로 다르다는 주장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과학의 역사를 일련의 패러다임 변화로 설명한 쿤의 주장에 대해 헝가리 과학철학자 라카토스(Lakatos)는 경쟁 관계에 있는 일련의 연구 프로그램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연구 프로그램이란 논리적으로 연결되고 다양한 데이터가 뒷받침되는 이론들로 구성된 방대한 네트워크다. 이 이론과 데이터의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것은 ‘핵심’, 즉 연구 대상 실재의 본성에 관한 논제로 종종 형이상학적 특성을 띤다. 이는 매우 중요한 담론이라 여기서 더 자세히 다루는 것은 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