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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

프리먼 다이슨 외 지음 | 생각의길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

프리먼 다이슨 외 지음

생각의길 / 2017년 8월 / 584쪽 / 22,000원





다이슨으로부터 온 첫 번째 편지 - 놀라운 교류의 시작



1993년,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의 수강생 마흔여섯 명은 12주 동안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를 읽으며 토론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의 저자이자 프린스턴 대학 고등학술연구소 교수인 프리먼 J. 다이슨과 연락해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일제히 그러자고 소리쳤다. 모두 함께 수업시간에 머리를 맞대고 정리한 내용을 대학 마크가 찍힌 편지지에 타이핑했다.

‘1993년 4월 6일 / 다이슨 교수님께 / 저희는 서던내저린 대학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과목의 담당 교수와 학생들입니다.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과목은 우리 대학의 교양 필수 과정입니다. 주로 학부 3학년이나 4학년이 수강하는데, 과학, 기술, 사회 그리고 개인 사이의 관계와 논점을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조명합니다. 저희는 교수님의 저서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를 이번 학기 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는 마치 이 수업을 위한 맞춤 교재 같습니다. … 심오하면서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서술돼 있어서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배경을 더 자세히 파악하고 다양한 관점을 경험하기 위해 종종 다른 책과 학술지, 영상물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여기, 책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과 질문을 정리하여 동봉합니다. 바쁘시겠지만 한두 건만이라도 답변을 해주신다면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일정상 쉽지 않으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드리는 이유는 그만큼 저희가 이 책을 통해 얻은 즐거움과 지식이 많았음을 어떻게든 알려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각자 이름과 전공을 적고 의견과 질문을 작성해 첨부했다. 그리고 편지와 질문지를 봉투에 넣어 부친 뒤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이슨 교수처럼 유명하고 바쁜 사람이 한때 원주민특별보호구라 불리던 허허벌판 66번 국도변의 작은 학교를 들어보았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프린스턴 자연과학대학 고등학술연구소 마크가 찍힌 편지가 도착했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다이슨 교수의 답장을 복사해 한 장씩 손에 쥐고 소리 내 읽었다.

‘1993년 4월 9일 / 노이엔슈반더 교수님께 / 여러분이 보내주신 이런 편지를 받는 것이, 책을 써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입니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의견과 질문을 읽으며 이 늙은이의 사기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한 분 한 분 따로 답장을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사정상 몇몇 질문에 간략하게 답변을 하고 그와 관련된 제 최근 강연 내용을 덧붙여 보내 드리겠습니다. …’

지혜로운 할아버지 같은 다이슨 교수의 답장은 우리에게 더없이 큰 힘이 되었다. 다이슨 교수는 단순히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수준을 넘어, 관련된 이야기와 그의 경험을 제시하며 성심껏 응대해줬다. 우리는 토론에서도 주로 서로의 체험을 공유했다. 맨 처음 주고받은 편지에서 그는 질문 중 ‘한두 건’이 아니라 여섯 건에 대해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마치 오랜 세월 알고 지냈던 할아버지처럼 다이슨 교수의 어투는 다정했고 격의 없었다.



질문과 함께 살아가기 - 이 수업은 정답을 찾지 않습니다



새 학기의 첫 번째 화요일, 한 학생이 강의실을 찾고 있다.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강의실이 어디지? 이름만 들어도 너무 애매하네. 5월에 졸업하려면 꼭 들어야 하지만 난 과학은 별로인데. 그냥 빨리 해치워버리자. 아, 여기네. 10호 강의실. 음악이 나오네. 핑크 플로이드 아냐?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Dark Side of the Moon)’ 앨범에 있는 ‘타임(Time)’? 음악이 흐르는 동안 학생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강의실 앞쪽 스크린에 1916년에 촬영된 흑백사진 한 장이 뜬다. 전통의상을 입은 코들레인 부족의 한 가족이 차머스 자동차에 앉아 있는 사진이다. 사진 위쪽에는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수업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란 글귀가 적혀 있다. 음악이 끝나고 교수가 자신을 소개한다. 이어 이 사진에서 주목할 점 두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이 가족은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새로운 기술을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둘째, 이 사진은 기술, 가치관, 세계관이 극명하게 다른 두 문화가 북아메리카에서 오랜 기간 격렬하게 충돌했던 역사적 사실을 연상시킨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땅을 신성하게 여기고 경외했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였다. 들소와 코요테를 친척으로 여겼다. 반면 아메리카에 이주해온 사람들은 땅을 소유하고 이용할 상품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고, 들소와 코요테는 박멸해야 하는 해로운 동물이었다.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 출신 이주민들은 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점도 많았다. 원주민은 이주민에게 문자, 과학뿐만 아니라 금속공학 같은 ‘회색기술’을 배울 수도 있었다. 식민지 개척자와 이주민 역시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동식물과 공존하는 ‘녹색기술’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땅과 거기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고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그 일부로 바라보는 방식을 배울 수도 있었다.

유럽에서 온 이들에게 북아메리카 정복은 영웅적 업적이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비극이었다. 유럽 출신 이주민들은 기술로 우위를 확보했다. 원주민의 용맹함만으로는 이를 넘어설 수 없었다. 고도의 기술로 무장한 침략자 사회가 원주민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은 북아메리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침략적인 기술 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나느냐, 원주민 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나느냐는 전적으로 운이었다. 참고로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는 운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낸 모든 창조물과 마찬가지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 거대한 기술에 관여하는 사람은 이를 발전시키려 하든, 저지하려 하든 모두 인간의 삶을 두고 도박을 벌이는 셈이다.”

‘1999년 4월 6일 / 다이슨 교수님께 / 수업에서 나온 100건의 질문 중 다섯 건을 추렸습니다. 다시 한 번 번거롭게 해드려도 될까요? …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희 수업과 삶에 매우 큰 기여를 해주신 데 대해 학생들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1999년 4월 10일 / 드와이트에게 / 편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좋은 질문을 해준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은 무엇인가? 언어. 그다음은 식물 재배와 동물 사육. 그다음은 글쓰기. 그다음은 종교. 그다음은 과학. 요즘 나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 인간 사회의 운명』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드와이트와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의문점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발명이 가장 중요했는가? 그러한 발명을 이루어낸 사회와 그렇게 하지 못한 사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이아몬드는 뉴기니 등지에서 원주민들과 오랜 시간을 보낸 현장 생물학자입니다. 그 원주민들이 우리만큼 혹은 우리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그는 직접 경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중요한 발명을 이루어냈고 그들은 못했다고 해서 결코 우리가 그들보다 똑똑하지는 않다는 뜻이죠. 우리는 단지 그들보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지리적 우연성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뿐이란 주장을 그는 아주 설득력 있게 풀어냈습니다. … 질문을 줄여줘서 감사합니다. 학생들에게 안부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업을 처음 듣는 한 수강생은 좌불안석이 된다. ‘교수님께서 곧 출석을 부르실 텐데 학생을 하나씩 호명하실 때마다 이 수업에 기대하는 바를 한 단어로 묘사해야 한다고 한다! 몇 분 시간을 줄 테니 옆자리 학생들과 어떤 단어가 좋을지 상의해보라고 하신다.’ 출석을 부르는 동안 학생들은 자기소개를 하며 각자 단어를 하나씩 말하고 이는 그대로 화이트보드에 나열된다. 변화, 발상, 산업, 관찰, 현실, 이해, 발견, 탐험, 혁신, 지식, 진보 등 낙관적인 단어도 있고, 갈등, 중요성, 오염, 불확실성 등 의문을 반영하거나 신중을 기하는 단어도 있다. 그리고 수 분간 토론이 이어졌다.

‘발전’이 대표적인 예다. 내가 사는 오클라호마의 피드먼트 상공회의소 간판에는 ‘열린 공간, 친근한 사람들, 피드먼트에 어서 오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다 10년쯤 전 이 간판은 ‘발전의 바람, 피드먼트에 어서 오세요’라고 적힌 벽돌 간판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친근한데 열린 공간과 도시 고유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있다. 발전은 증세를 뜻한다. 물론 도서관 신축, 도로 개보수와 같은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교통 체증, 우후죽순 생겨나는 간판으로 인한 시각 공해, 빛 공해, 개성 따위는 결여된 프랜차이즈 상점과 같은 부작용도 동반한다. 발전의 바람이 불면 득과 실이 모두 따르는 법이다.

학생들이 말하고 나면 나는 미리 화이트보드에 적어뒀던 단어를 공개한다. ‘감사(appreciation)’와 ‘인식(awareness)’이다. 나는 “여러분이 제시한 단어보다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과학, 기술, 사회의 영역을 헤쳐 나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단어”라고 말한다. 부연설명을 위해 영상을 바꾼다. 스포츠카 한 대가 화면의 절반을 채운다. 나는 “예를 들어 자동차는 빠르고 편안하게 대륙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기계”라며 “보잘것없는 중고 세단이라 해도 루이 14세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기계를 갖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기술 덕에 누릴 수 있는 삶에 감사해야 한다.

화면의 나머지 절반에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가 나타난다. 나는 말을 이어간다. 우리는 또한 이 훌륭한 기계 수백만 대가 세계 곳곳에서 작동하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인식해야 한다. 이 기계에 의존하는 결과로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가 기계를 다루고 있을까, 아니면 기계가 우리를 다루고 있을까? 우리 수업은 기술을 조명함과 동시에 그러한 기술에 의문을 던진다.



세계 2차 대전과 원자 폭탄 - 핵무기에 대한 반성



핵분열이 발견된 뒤 60번째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교수에게 과학의 실수에 대한 질문을 보냈다.

‘1998년 12월 3일 / 다이슨 교수님께 / … 과학의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998년 12월 5일 / 드와이트에게 / … 과학의 가장 큰 실수는 1939년 핵분열을 발견한 시점과 2차 대전이 발발한 시점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물리학자들이 전문가들을 모아서 국제회의를 열고 핵무기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도 있었지요. 1975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급작스럽게 발견되어 유전공학이 가능해졌을 때 생물학자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위험한 실험을 금지하는 규칙에 합의했고 이후 잘 지켰습니다. 1939년에 물리학자들이 그렇게 했다면 핵무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를 놓쳤습니다. 1939년 9월 2차 대전이 시작되고 난 뒤에는 각국의 과학자들이 서로 연락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너무 늦어버린 겁니다. … 행복한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되기를.’

나는 대다수 학생들이 핵무기와 그 역사, 개발자들에 대해 사실상 무지한 상태로 대학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라이언이란 학생은 “핵무기를 만든 사람은 물론이고 핵폭탄 그 자체에 대해서도 전혀 배운 적이 없다.”고 썼다. 제니슬린은 이렇게 덧붙였다. “강의 시간에 이 대량 살상무기에 대해 토론하지 않았다면 그 이면을 모른 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원자폭탄의 중심부 무게가 4.5킬로그램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구 형태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작은데 그토록 파괴력이 엄청난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만약 여러분이 그 시절로 돌아가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런데 보유한 과학 지식은 현재가 아니라 당시 수준이라면, 그래도 참여하겠는가?

메건이라는 학생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솔직히 처음엔 답이 정해져 있는 형식적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 강의 초반 내 대답은 ‘절대 아니다’였다. 세상을 파괴하는 행위에 일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좀 더 긴 고민 끝에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과학 실험에 참여한다는 것이 그 과학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봤다. … 화려한 과학계 인맥, 밀려드는 스카우트 제의, 연구 기회, 후대에 이름을 남길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게 젊은 과학자들이 그런 기회를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까지 확신하고 있었던 모든 윤리적 딜레마를 이 수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토론하며 우리는 존 엘스가 1981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트리니티 다음 날>을 시청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맨해튼 프로젝트, 그리고 그 후폭풍에 관한 이야기다. 한스 베테, 하콘 슈발리에, 프리먼 다이슨, 도로시 매키빈, 프랭크 오펜하이머, 아이작 라비, 로버트 서버, 스탠 울람과 프랑수아 울람, 로버트 윌슨과 제인 윌슨 등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영화를 틀기 전에 나는 학생들에게 원자폭탄을 처음 만든 사람들의 성향이 어떠하리라 짐작하는지 물었다. 잠시 토론할 시간을 준 뒤 학생들이 제시한 단어를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지적(知的)이다. 집중력이 뛰어나다. 애국심이 강하다. 추진력이 강하다. 괴짜다. 냉정하다. 반사회적이다.’ 이런 목록을 만든 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학생들의 짐작은 과연 얼마나 들어맞았을까? 홀리라는 학생이 평가했다. ‘처음에 나는 이 사람들이 전쟁 중독자에다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미움과 분노로 가득한 고집불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렇게 파괴적인 물건을 만들지 않았겠나.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이 사람들을 봤다. 가족을 사랑하고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는 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는 인재를 키우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 핵폭탄을 만든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부류였다. … 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그들의 사명감에 압도됐다. 오늘날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그 시대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됐다. 사람들의 동기와 성격을 전형적인 틀에 끼워 넣기 전에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느냐는 질문에 수강생 대다수가 처음에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참여하겠다는 학생이 많아졌다.

양심의 가책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빠졌던 사람이 있다. 조지프 로트블랫이다. 그는 독일이 원자폭탄 개발에 근접하지 못했음을 확인하자 추진력을 상실했다. 더욱이 1944년 3월 제임스 채드윅의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그로브스 장군으로부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폭탄이 개발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그런 이유로 핵폭탄을 개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로트블랫은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2001년 가을학기가 끝날 무렵 학생들은, 다이슨 교수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물었다.

‘2001년 12월 5일 / 다이슨 교수님께 / 크리스마스 휴가를 고대하고 계시겠군요. 지난 몇 달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 교수님이라면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로스앨러모스에서 빠져나오셨을까요?’

‘2001년 12월 8일 / 드와이트에게 / … 2차 대전 중 로스앨러모스에 있었다면 내가 그곳을 떠났겠느냐? 답은 ‘결코 아니다’입니다. 영국 폭격사령부도 로스앨러모스만큼 나쁜 곳이었는데 나는 폭격사령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는 로스앨러모스의 로트블랫보다 폭격사령부를 떠날 명분이 더 뚜렷했습니다. 당시 폭격사령부는 실제로 수많은 아군 젊은이, 수많은 적국 민간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로스앨러모스가 훗날 초래할 악보다 훨씬 명백한 이유였지요. 만약 내가 로스앨러모스에 있었다면 로트블랫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열심히 프로젝트를 완료했을 겁니다. 로트블랫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그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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