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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지 않는다

오제키 소엔 지음 | 큰나무



신경 쓰지 않는다

오제키 소엔 지음

큰나무 / 2017년 7월 / 240쪽 / 13,500원





돈이 없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 - 가난을 익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활기다

지금 지갑에 얼마가 들어 있는가? 10만 원? 오, 상당한 부자다. 뭐 1,500원? 음, 그것도 좋다. 그럼 이제 이 책을 덮고 있는 돈 전부를, 아니 1,000 원만 남겨놓고 다 쓰도록 하자. 조건은 오늘 중으로. 용도는 자유다. 아까운가? 자, 이제 다음 날, 당신의 주머니에는 1,000원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돈을 어디에 썼을까? 어디에 썼든 간에 기분만은 상쾌할 것이다.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 경지에 한발 다가선 것이다. ‘아아, 어리석은 짓을 했다며!’ 후회하는 사람은 나와 같이 ‘신경 쓰지 않는’ 길을 걸어보자.

이어서 두 번째 수행이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그 1,000원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역시 용도는 자유다. 돈이 부족하다면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에게 빌려도 좋다. 전당포에 가도 좋다. 공중전화 로 애인을 불러내 도움을 받아도 좋다. 돈을 쓰지 않고 아침부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해도 좋다. 인간은 2-3일 굶는다고 쉽게 죽지 않는다. 처음부터 비현실적인 수행을 요구한다고 불평하지 않기를 바란다. 단, 한 가지 알아줬으면 하는 건 ‘돈이란 무엇인가’이다. 인간은 돈에 의해 살아가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고 하는데 그건 순 거짓말이다. 돈이 없어서 죽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고 하는 활기가 사라지면 죽는다. 단돈 1,000원이어도 좋으니, 지금 가진 걸 어떻게 쓰며 살아갈지 그 임기응변이 인간을 살게 한다는 것이다.

돈이란 활기가 있는 곳에 모였다가 곧 떠나간다. 말하자면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 바람이 한곳에 오래 머물면 집착이 생긴다. 반대로 돈이 끊임없이 유통되면 집착이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있는 절만 해도 그렇다. 스승인 칸세 화상이 주지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절은 다른 곳처럼 부유하지 않고 몹시 황폐하고 빈곤했다. 그렇기에 스승도 나도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자 자연히 절 안에 활기가 돌고, 그 활기에 빨려 들어오듯 조금씩 돈이 모이고, 그 돈은 다시 활기에 의해 절 밖으로 내보내졌다. 그로 인해 더욱 많은 돈이 모이고 더욱 많은 돈이 나가게 되었다. 절에는 조금의 돈도 남지 않았다.

처음부터 부유한 절은 이렇게 할 수 없다. 지금 있는 재산으로 먹고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연히 활기가 없어진다. 모이는 돈이 적어지면 자연히 나가는 돈도 제한되고 거기서부터 집착이 생겨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는 대부분 구두쇠다. 부동산이 많다는 건, 즉 돈에 움직임이 없다는 소리다. 화장지, 연필 등을 낭비하지 말라고 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런 회사에는 활기가 없다.

큰길은 장안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장안은 사람이 많아 늘 번화하고 활기가 넘쳐흐른다. 그곳에는 큰길이 몇 개나 관통하고 있어 활기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상품을 가지고 들어오는 상인이 있고, 상품을 사서 나가는 사람도 있다. 돈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고, 돈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인간도 장안과 같다. 돈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의 진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중요한 건 활기다. 즉, ‘나는 살아 있다’는 생명의 힘이다. 활기가 있다면 두려울 게 없다. 돈에 집착할 것도 하지 않을 것도 없다.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릴 여유가 없을 만큼 그저 있는 힘껏 살아가면 된다. 본인도 돈에 급급하는 주제에 잘난 척하는 얼굴로 돈에 집착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자가 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힘껏 살아가라고 한다. 있는 힘껏 사는 사람은 돈 씀씀이에도 유연성이 있다.

선사에는 포천 대야가 있다. 손을 씻는 대야인데, 중국의 고대 화폐인 동전과 모양이 비슷해 ‘포천(布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대야는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하고 물을 담는 부분은 사각형이고, 양옆에 포와 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포’는 간수해놓은 돈, ‘천’은 유통되고 있는 돈을 뜻한다. 간수만 하는 돈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다. 써야 돈이다. 그런데 써버린 돈은 이제 돈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어제 억만금을 가지고 있었다고 으스대봤자 지금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거들먹거리며 살았던 이들이 이런 말을 늘어놓는데 백날 그래 봤자 아무 소용없다.

돈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사용하기만 하거나 혹은 모으기만 해서는 돈은 가치가 없다.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아낌없이 돈을 쓴다. 밥을 먹고 공부하는 데 투자를 한다. 그러면 그것이 활력소가 되어 다시 돈이 들어온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언제나 돈이 있지만 끊임없이 흘러가서 사라진다. 포와 천이 되는 것이다. 있는 힘껏, 그곳에서 그 순간을 사는 사람은 이렇게 돈을 쓰고 있다.



빼앗고 빼앗기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 가지고 싶은 것에 솔직해지는 마음



주고 빼앗는 것을 자유자재로 하다

나의 스승인 칸세 화상은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고 귀여워했다. 아이들 역시 잘 따랐다.

어느 날, 칸세 화상이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정말 귀여운 아이구나, 이렇게 귀여운 아이의 고추는 또 얼마나 귀여울까 이 아저씨, 네 고추가 갖고 싶은데 어쩌지. 요놈의 고추, 확 따버릴까 그래, 따버려야겠다. 자, 봐라. 땄다. 땄어!” 그러자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입을 모아 놀려댔다. “우아, 큰일이네. 고추가 떨어지면 큰일인데!” 남자아이는 깜짝 놀라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돌려주세요. 돌려주세요!”

주변 어른도 다 함께 “어서 돌려줘요.” 하고 애원했다.

“에이, 그럼 돌려줄까. 자, 봐라. 돌려줬지.”

남자아이는 기쁜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이 아이는 매우 어린 유아였다.



나의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이가 아침에 잠이 덜 깬 눈으로 말했다. “나, 발가락 다쳤어.” 내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이다. 발가락이 4개밖에 없네, 어떻게 된 거지?”

그러자 아이는 놀라며 발가락을 살폈다. 그러고는 안심한 듯 말했다. “뭐야, 5개 다 있잖아.” 그때 칸세 화상이 내 딸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이고, 가여워라. 그렇다면 내가 한 개 보태주마. 나는 발가락이 6개란다.” 아이는 자신의 발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를 깜짝 놀라게도 하고, 불안하게도 하고, 또 안심하게도 하는 칸세 화상을 보고 그저 장난을 좋아하는 스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렇듯 자유자재로 타인을 불안하게 했다가 다시 그 불안을 안심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을 선에서는 ‘여탈자재(與奪自在, 주고 빼앗는 것을 자유자재로 한다)’라고 한다. 아이의 마음은 자유자재로 칸세 화상에게 끌려다니며 기뻐했다가 슬퍼했다가 한다.

어린아이에게 화상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힘의 소유자다. 아이는 화상을 하늘처럼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상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주변에 있던 어른들도 다 함께 “우아, 큰일이다!”라며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게 되면 아이는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잃고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런데 내 딸아이의 경우에는 나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처음 남자아이와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상대는 절의 스님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인 것이다. 매일같이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기 때문에 승복이 가지는 권위라든지 마법, 신기한 불법의 힘 같은 것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아이의 경우에는 아침에 막 일어난 직후였던 것이 문제였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 그럴 때 발가락이 4개밖에 없다는 말을 들으면 순간 깜짝 놀라 울적하던 기분마저 든다. 발가락을 다쳤다는 좋지 않은 기억도 이런 일을 통해 유쾌해질 수 있다. 그리고는 기분이 풀려서 “뭐야, 제대로 5개 다 있잖아.”라고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활기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불쾌했던 기분은 2명의 어른을 통과하면서 완전히 빼앗겼다가 다시 부여받았다가 한다. 이것이 바로 ‘여탈자재’다.

부딪침이 서로를 살린다

그런데 화상이라는 지위, 권력, 마력은 여탈자재와 별로 관계가 없다. 여기서 꼭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칸세 화상은 아이들을 매우 좋아해서 조금 전의 남자아이와 잘 융합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초면이었다면 그렇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 우리 딸아이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마음은 융합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는 내 기분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고 아이가 생각해버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부모가 “어디, 어디?” 하고 나오니까 서로 융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앗, 발가락이 4개밖에 없다.”고 말했을 때 아이는 깜짝 놀라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와 융합되고 하나가 되는 것이 여탈자재의 첫걸음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칸세 화상도 나도 똑똑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꼿꼿한 다쿠앙 화상처럼 상대를 죽일 작정이 되는 것, 곧 죽일 작정으로 달려드니까 주는 것도 빼앗는 것도 자유자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 어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멍청히 있다가는 꼿꼿한 사람에게 자유자재로 휘둘리게 된다.

메이지 시대 말에서 다이쇼 시대 초반 무렵, 쇼코쿠지에 도쿠상이라는 화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도쿠상 화상이 이불 속에 누워 있는데 천장에서 쥐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러자 화상은 “음!” 하고 기합을 넣었다. 잠시 후 천장 위를 가보자 쥐가 바동거리며 죽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겠지만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비법은 뭘까? 쉽게 말해서 죽이고자 하는 쥐와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다. 내뱉는 숨도 들이마시는 숨도 쥐에게 정확히 맞춘다. 쥐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된 시점에서 갑자기 숨을 확 틀어버린다. 자신의 호흡을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그러면 쥐의 호흡도 흐트러진다. 쥐의 생명과 하나가 되어 그 마음을 빼앗는 것이다. 이것 또한 ‘여탈자재’다. 선(善)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 밑바닥에 있는 무서운 작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모르니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도쿠상 화상이 쥐를 죽인 것과 같은 것이다.



바보가 되어 신경 쓰지 않는다 - 어리석음을 키우다



바보가 되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종이에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1분간 가만히 노려보자, 자, 뭔가 보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증거다. 당신이 그린 것은 그저 평범한 원이 아닌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웃어넘길지도 모르겠다. 속는 셈 치고 오늘부터 하루에 1분간 원을 노려보길 바란다. 터무니없는 일이란 무엇인가. 해 봤자 소용없는 일, 다른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일,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일 등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 무의미한 일이란 소리다. 그러나 이 세상에 무의미한 일이란 없다. 그런 일을 해 봤자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다. 시시하다고 해서 ‘이득이 되는’ 일만 추구하는 사람은 언젠가 그 ‘시시한 일’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절대 협박이 아니다.

그 옛날, 석존의 제자 중에 주리반특이라는 우둔한 자가 있었다. 친형제를 비롯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바보 취급하며 가르침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석존은 주리반특에게 ‘먼지를 털고 때를 닦는다’는 법구를 외우도록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조차 외우지 못했다. 그러자 석존은 그에게 다른 제자들의 신발을 닦게 했다. 제자들 중에는 미안하다며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바보 취급을 받으면 열심히 신발을 닦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리반특은 문득 ‘먼지를 털고, 때를 닦는다.’는 법구를 생각해냈고 동시에 이것은 마음의 먼지와 때를 가리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주리반특은 좌선삼매에 들어가 아라한과라는 높은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갑자기 신통력을 갖게 된 주리반특이 얄미웠던 다른 제자들은 ‘좋아, 그렇다면 망신 한번 당해봐라.’ 하고 주리반특이 설법을 하는데 가서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본디 속수무책의 바보로 그저 부처님으로부터 법구를 전수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청중들 속에 이렇게 무분별한 자들이 나타난 것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참회했다. 그러자 재미있게도 그 무뢰한들의 혀가 꼬부라져서 말문이 막히고, 청중들은 주리반특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그것으로 일관하여 현명함과 어리석음이라는 가치 판정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오르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료칸 화상은 주리반특에게 감복해 본인 역시 그와 같은 삶을 살았다. 『벽암록』에서 남전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무릇 수행하는 자는 천치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선종의 수행에 뜻을 둔 사람은 모름지기 바보처럼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양우(養愚)’, 즉 어리석음을 키워라. 바보가 되어라. 바보가 되지 않으면 중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며 나도 수행을 거듭했다.

바보가 되다

인간은 현명해지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훌륭해지려고 한다. 그 때문에 자신 안의 어리석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현명함’에만 밥을 준다. 아니, 눈치채더라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고 화를 내며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 탓에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느라 본래 자신의 삶을 잃게 된다. 하지만 자신 안의 어리석음을 키우고 우둔한 부분에 밥을 주면 누가 보든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든 화가 나지 않는다. 생활도 즐거워진다.

친구 중에 직원을 300명가량 거느린 중소기업의 사장이 있다.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억척스러운 그 친구는 전쟁이 끝난 직후 맨몸으로 시작해 죽자 사자 일에 매달렸다. 날이 갈수록 회사가 번창 해 몇 년 전부터 그는 현장을 떠나 사장직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그는 억척스러운 반면 다소 허세를 부리는 기질이 있었다. 그런데 사장직에 전념하면서부터 점차 허세가 심해지더니 호화스러운 집을 짓고, 외제차를 사고, 주말에는 골프를 치러 다녔다. 뭐 거기까지는 괜찮다. 자기 돈을 어떻게 쓰든 그건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득의의 절정에 달한 그는 본인이 엄청나게 훌륭한 인물인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재능과 수완을 과시하고, 대기업 사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치와 경제를 논했다. 자신의 능력 하나로 그 자리까지 올랐으니 재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기분도 잘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정치와 경제를 논하면 언젠가 허점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정치와 경제를 논하는 것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허점이 드러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그 허점을 숨기기에 바빴다. 아는 척을 하며 그 상황을 얼버무렸다.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 창피했던 것이다. 그는 어설프게 아는 경제 이론을 으스대며 말하고, 잘하지 못하는 영어를 억지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연극은 금방 들통 나게 마련이다.

그때까지 ‘저 사람은 자수성가한 훌륭한 남자다.’라며 그를 존경하고, 음으로 양으로 힘을 보태주던 사람들마저 반발심이 생기게 된다. “뭐야, 그리 잘난 척을 하더니…….” 결국 하나둘씩 멀어져서 그의 곁에는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는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던 회사 직원들조차 점차 그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직원들의 의욕도 떨어지고 순식간에 실적이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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