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풀고 세기로 엮은 대세 세계사. 2
김용남 지음 | 로고폴리스
대화로 풀고 세기로 엮은 대세 세계사 2
김용남 지음
로고폴리스 / 2017년 7월 / 516쪽 / 22,500원
C.E. 14세기 - 죽음을 넘어선 발전
아시아에서 원이 몰락하고 명이 들어섰다.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강국 티무르 왕조가 북인도를 침공했고, 오스만 튀르크가 제국을 세우며 유럽 발칸 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북유럽에는 칼마르 동맹이 생겨났다. / 중세 온난기가 끝나고 세계에 추위가 닥쳤다. 14세기 세계는 매서운 추위와 질병에 시달리며 고난의 나날을 보냈다.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프리카까지 휩쓴 흑사병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다양한 변화 속에 유럽의 르네상스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는 새로운 문화가 피어났다.
중세도시와 흑사병
[사회자] 유럽을 살펴보죠.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대결이 우선 주목되네요. [김경제] 킵차크 칸국의 등장은 서아시아를 거치는 기존 무역로 대신 초원길을 통해 흑해로 연결되는 새로운 무역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흑해의 무역권을 놓고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베네치아가 거두었고, 베네치아는 유럽 상업의 중심 지위를 굳힙니다. 베네치아부터 유럽 상업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었지만 재기해서 15세기 때 전성기를 이룩합니다.
[이정치] 흑사병의 유럽 유입 루트는 다양한 학설이 있는데, 몽골에서 전파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몽골의 킵차크 칸국은 베네치아의 도시 타나와 제노바의 도시 카파를 공격했습니다. 카파 포위가 길어지자 몽골 군대는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투석기를 이용해서 성안으로 날려 보냈지요. 그 결과 흑사병은 카파를 덮쳤고, 제노바의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상륙해서 유럽 전역에 퍼졌습니다. 14세기 중엽에 유럽 인구의 대략 1/3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회자] 흑사병을 몽골이 옮겼다면 왜 몽골인은 병에 덜 걸렸습니까? [김경제] 유목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해왔고 가축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면역력이 더 강합니다. 반면 고립된 지역에 살수록 면역력이 약하지요.
[사회자] 흑사병이 유럽에 준 의의는 무엇인가요? [박문화] 흑사병 때문에 신앙심이 줄어들었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장례 미사를 진행하는 성직자들이 더 많이 죽었거든요. [김경제] 14세기 초부터 유럽의 날씨는 추워지고 습도가 높아졌습니다. 삼포제를 통한 농법도 서서히 지력이 고갈되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농작물 수확이 감소해 굶주림과 폭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흑사병 이후 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졌습니다. 흑사병으로 인구가 줄어들자 노동력이 귀해졌습니다. 그 결과 농노의 처우가 나아졌습니다. 자영농이 늘어나면서 장원 체제가 해체되고, 해방된 농노가 도시로 이주하면서 상공업이 발달하고 화폐 경제가 확산되었습니다. 농민은 예전처럼 영주에게 각종 부역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로 납부했습니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농노의 경제적 지위는 상승했습니다. 도시 노동자들도 임금이 6배 이상이나 뛰자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소비가 늘어나자 상공업이 더 발달하고, 상공업 발달로 부유해진 사람들이 소비를 더 하는 선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정치] 하지만 일부 영주들은 수입이 줄어들자 농민을 더욱 속박했습니다. 직영지를 확대하고 부역을 강제했지요. 더구나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는 백년전쟁이 발발하면서 세금이 증가했습니다. 그러자 농민들은 봉기로 저항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358년에 자크리의 봉기, 잉글랜드에서는 1381년 와트 타일러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자크리는 농민을 집합적으로 부르는 말입니다. 와트 타일러는 부역 해방, 농노제 완전 폐지, 지대 인상 금지 등을 주장했지요. 실패했지만 이후 세금 인상은 어려워졌지요.
교회 분열과 르네상스의 시작
[사회자] 14세기부터의 유럽의 중요한 문화 현상인 르네상스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박문화]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들어 있던 인간 중심적인 고전 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지요.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친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의 발생지인 데다, 당시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했고, 비잔티움 및 이슬람 지역과 교류가 활발했기에 르네상스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김경제] 이 시기에 중국에서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 들어와서 15세기부터 유럽의 군사, 항해,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합니다. 그리스 로마 문명의 재생보다 동방 기술의 도입이 더 큰 변혁을 몰고 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회자] 끝으로 이 시기의 한국은 어떠했는지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정치] 고려는 25대 충렬왕부터 마지막 공양왕까지입니다. 몽골의 간섭을 받던 고려는 공민왕 때 개혁 정책을 시도합니다. 그 과정에서 신진사대부들이 정계로 진출하지요. 한편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무인들의 힘이 커집니다. 결국 급진적 신진사대부들의 이념과 이성계의 무력이 손을 잡아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합니다. [김경제] 몽골 간섭기에 친원 세력은 권문세족으로 성장합니다. 이들은 토지를 대량으로 소유하고 백성을 노비로 삼았지요. 그러한 경제적 모순은 고려가 몰락하고 조선이 개창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박문화] 몽골 간섭기에 국제적 문화 교류는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불교의 폐단이 커지자 신진사대부는 숭유억불 정책을 제시하지요.
C.E. 15세기 - 아시아 제국들의 전성
아시아에 강력한 제국들이 들어섰다.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고, 티무르, 오스만 제국이 지속적으로 팽창했다. 서유럽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벌였고, 신성로마제국은 작은 제후국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포르투갈 옆에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결합한 에스파냐가 생겨났다. /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압박하며 전성기를 맞은 명나라는 자금성을 건설했고, 영락제의 명을 받은 정화가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원정을 나섰다. 백년전쟁, 장미전쟁 등 잦은 전쟁과 기독교의 부패로 유럽은 혼란스러웠으나 14세기부터 시작된 르네상스는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절정에 달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향신료가 있는 미지의 땅을 찾는 항해를 시작했다.
C.E. 16세기 - 세계 무역망의 완성
대항해 시대를 맞아 전 세계를 연결하는 항로가 생겨나 유라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잇는 무역망이 확립되었고, 유럽의 침략으로 아메리카의 제국들이 멸망했다. / 새로운 항로가 확립되자 새로운 침략과 약탈이 시작되었다. 아메리카의 아즈텍과 잉카 제국이 멸망하고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노예 무역선이 대서양을 건넜다. 쌀과 밀, 감자와 토마토, 초콜릿과 커피, 후추와 은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이 전개되며 사회 변화가 일어난다. 오스만 제국과 무굴 제국이 번영하며 동서양은 활발하게 싸우고 또 교류한다.총, 균, 쇠로 멸망한 제국
[사회자] 지난 15세기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열었지요. 그 결과 유럽인의 침입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국가는 순식간에 멸망합니다. 이렇게 금방 무너진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정치] 아즈텍을 점령한 에스파냐의 코르테스가 이끈 병력은 600여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아즈텍의 인구는 800만 명에서 1,000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그럼에도 코르테스가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즈텍인에게 반발하는 다른 부족과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총포의 위력을 들 수 있습니다. 남미의 잉카, 즉 타완틴수요가 에스파냐의 피사로가 이끄는 200여 명의 병사에게 무너진 원인도 총포 때문입니다. [사회자] 결국 아메리카 대륙은 백인의 손에 들어가네요. 그리고 원주민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는데요. 살해당한 것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죠? [김경재] 인구가 감소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천연두입니다. 원주민은 백인이 가지고 온 전염병인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습니다. 반면 백인은 흑사병을 거쳐 살아남은 존재들이라 면역력이 더 강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문명에는 무기로 이용할 철기 제작 기술이 없었지요. 결국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저서 제목처럼 ‘총, 균, 쇠’가 그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은이 이루어낸 세계 무역망의 완성
[사회자] 동남아도 이때 무역이 활발하지요? 인도, 일본, 중국 상인은 물론이고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상인들도 등장하고요. [김경제] 포르투갈의 식민지인 믈라카와 에스파냐의 식민지인 필리핀의 마닐라는 무역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포르투갈은 향료 무역을 활발히 했고, 에스파냐도 아메리카에서 생산한 은을 마닐라로 가져와 중국과 교역했습니다. 중국은 해금 정책을 완화하고 비단과 도자기 등을 수출하고 은을 받아들입니다. 중국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청화백자, 비단 등이 유입되기도 했습니다. 멕시코의 아카풀코에는 아시아 음식이 등장했습니다. 이렇듯 동남아의 16세기는 상업의 세기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사회자] 결국 16세기에는 세계 무역망이 은으로 통합되는 시대이기도 했네요. 특히 중국은 블랙홀처럼 은을 빨아들이고, 비단과 차 등을 수출했고요. [김경제] 그렇습니다. 명나라는 정화 항해 이후에 어업, 무역 등을 제한했죠. 하지만 은이 많이 필요해지자 해금 정책도 느슨해졌습니다. 민간 주도의 무역이 활발해졌고, 결국 명은 무역을 합법화하지요. 당시 중국과 유럽은 금과 은의 가격 차이가 컸습니다. 유럽은 금이 은보다 12배 비쌌는데, 중국은 6배에서 8배 비쌌습니다. 따라서 중국에 은을 가져와서 팔고 금을 사가면 큰 이익을 볼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러한 교역은 다양한 작물의 전래도 동반했습니다. 감자, 고추, 고구마를 비롯한 새로운 작물들이 중국에 들어온 것입니다.
은 제련 기술이 가져온 동아시아 삼국 대전
[사회자] 다음은 일본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일본은 전국 시대가 계속되다가 통일이 되지요? [이정치] 전국 시대, 즉 센코쿠 시대는 무장들이 활약하던 시대입니다. 전국 시대는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거의 통일됩니다. 그는 신식 무기인 조총을 써서 나가시노 전투에서 기마부대를 격파하는 등 다른 다이묘들을 제압합니다. 하지만 그는 통일을 목전에 두고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 죽고 맙니다. 그 부하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제압하지요. 한편 또 다른 실력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에게 고개를 숙이고 때를 기다립니다.
[김경제] 일본은 화산 덕분에 금, 은, 구리 등이 풍부했는데 특히 은 생산이 많았지요. 오다 노부나가는 포르투갈 상인에게 은을 주고 조총을 사왔습니다. 일본의 은 생산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은 연은분리법 때문입니다. 회취법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의 김감불과 김검동이 개발한 방식입니다. 그런데 막상 조선에서는 이 기술을 소홀이 했고, 일본이 조선에서 기술을 받아갑니다. 이 기술을 이용한 덕분에 이와미 은광을 비롯한 일본의 은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의 1/3에 달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은을 생산해서 얻은 부를 원동력으로 조선 침략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 결국 첨단 기술 유출이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바꾼 셈인가요. 이제 임진왜란을 살펴볼까요. [이정치] 도요토미는 중국과 인도까지 점령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며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일본은 초반에 크게 이겼으나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반격 때문에 고전합니다. 명나라도 참전했고요. 7년에 걸친 전쟁은 도요토미가 병으로 죽으면서 끝나지요. 참전한 일본 다이묘들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기에 일본의 권력은 도쿠가와에게로 이동합니다. [사회자] 전쟁 결과 일본은 문화 발전의 계기를 맞았지요. 끝으로 16세기에 조선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이정치] 조선은 9대 성종에서 14대 선조까지의 시기입니다. 정계에서는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했고, 사화가 발생했습니다. 사림 세력이 집권한 후에는 동인과 서인의 붕당정치가 펼쳐집니다. [박문화] 이 시기는 성리학이 지배하는 시기였습니다. 지방에는 서원이 세워지고, 향약이 보급되며 양반 위주의 질서가 고착됩니다. [김경제] 이 시기에 조선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세계 무역망에 편입되지 못했습니다. 무역망이 육로는 중국에서, 해로는 일본에서 그쳤으니까요. 조선은 여전히 농업 위주의 물물 교환 경제였습니다. 시장이 조금씩 형성되었으나 쌀과 비단이 화폐 대신 쓰였고, 세금도 곡식과 특산품으로 받았습니다. 지배층의 폭압으로 농민은 고통에 시달렸고, 의적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임전전쟁을 겪으면서 인구도 격감합니다.
C.E. 17세기 - 절대 군주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에스파냐,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생겼다.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와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유럽의 큰 영토를 차지했다. 명이 멸망한 후 청이 건국되고, 오스만 제국, 사파비 왕조, 무굴 제국이 아시아를 주도한다. / 강력한 군주들의 시대가 왔다. 청의 강화제,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무굴 제국의 아우랑제브, 페르시아의 아바스 대제,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권세를 휘둘렀다. 유럽은 식민지에서 얻은 자원과 인력으로 부를 축적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과 이주 등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뉴턴이 활약하는 등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한편에서는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과도적인 시대였다.
C.E. 18세기 - 근대의 개막
영국, 에스파냐, 포르투갈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를 차지했으며, 프랑스도 카리브 해의 아이티를 식민지로 삼았다. 미국이 독립했으나 영토는 미시시피 강 동쪽에 국한되었다. 유럽에서는 프로이센이 성장했으며,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과 폴란드를 압박하며 영토를 더욱 넓혔다. / 근대의 막이 올랐다. 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전성기를 누렸고, 일본의 에도 막부도 발전을 구가했으나, 18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아시아는 기후와 경제 위기로 고난을 겪는다. 무굴 제국이 쇠약해지자 영국은 인도 일부를 식민지로 차지했고, 오스만 제국도 러시아의 공격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문화는 발전했다. 유럽은 왕위계승 전쟁을 거듭 겪으며 경제 버블에 시달렸지만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전은 다양한 사회 변화를 낳았다. 영국의 산업혁명, 미국의 독립, 프랑스 혁명 등 변화의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산업혁명과 맬서스의 덫
[사회자] 흔히 산업혁명이 1750년경부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영국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정치] 먼저 정치적인 이유인데 상공업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의회정치가 성립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사회적 이유인데 16세기에 1차 인클로저 운동에 이어 18세기에 2차 인클로저 운동이 전개되어 농민이 도시로 이주해 노동력이 풍부했습니다. 세 번째로 법률인데, 영국은 특허권 보호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특허권은 기술 개발을 자극했지요. [박문화] 네 번째로 학술 능력입니다. 영국은 왕립학회 등에서 과학 발전을 장려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1750년대에 스코틀랜드에서는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75%였는데 유럽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김경제] 다섯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유입니다. 영국은 흑인 노예무역을 통해 상업 자본이 축적되어 있었고요. 길드가 약해 자본주의 경쟁 체제가 들어서기 좋았습니다. 행운도 따랐습니다. 영국은 해전을 많이 치러서 배의 재료인 나무가 일찍 고갈되었습니다. 나무가 부족해지자 땔감의 대체재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마침 석탄이 풍부했습니다. [사회자] ‘맬서스의 덫’이 무엇인가요? [박문화] 1798년 출간한 《인구론》에서 그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인구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필연적으로 기근이나 전쟁이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맬서스의 덫’이라고 하지요. 맬서스는 인구가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맬서스의 주장은 틀린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최근 생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재평가 움직임이 있습니다. [사회자] 이 시기의 조선은 어떠했는지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