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들의 역사
로버트 에반스 지음 | 영인미디어
나쁜 짓들의 역사
로버트 에반스 지음
영인미디어 / 2017년 7월 / 336쪽 / 17,000원
술 파티가 어떻게 문명을 탄생시키고 붕괴시켰을까?
모든 것은 맥주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모든 것’이라는 말은 모든 인간 문명과 시민 조직을 뜻한다. 영장류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인간은 술에 매우 중요한 의도를 덧붙였다. 바로 목적성이다. 한편 술 고고학은 인간이 맥주 양조를 처음 조직화 했던 시기를 BC 8000에서 BC 4000년 사이로 보는데, 이 시기는 농업이 탄생한 지 1,500년 정도 되는 시점이다. 참고로 맥주가 생긴 시점과 도시와 인간 문명의 발생 시기가 대략적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술 만드는 기술은 훨씬 더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본다.
2013년에 고고학자 한 팀이(브라이언 헤이든, 네일 카누엘, 제니퍼 센스) ‘나투프 문화에서 무엇이 양조되었나?’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비록 정황 증거밖에 없다고 해도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천연 술에 점점 싫증을 내고 좀 더 의존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갈망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편다. 농사를 짓는 것은 맥주 생산을 보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인간은 농부가 되었다. 나투프 문화권(지중해 연안의 레반트 지역에 존재했던 문화로 농경시대 이전에 이미 정착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짐)에서 잔치는 UN과 같은 역할을 했다. 부족들은 이웃, 심지어 적들조차 잔치에 초대했고 자신들이 얼마나 공격적인지 떠벌릴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하곤 했다.
헤이든 박사는 그 전 과정에 대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잔치를 벌이는 것은 일종의 회전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어느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 잔치를 하면 다른 가족이 다음 주에 하고… 이를테면 돌아가면서 잔치를 했다. 그것은 끝없이 계속 돌고 돌았다. 그 사회는 동시대의 산업 사회보다 훨씬 더 사교적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회적 관계는 맥주로 견고하게 다져졌다.”
헤이든 박사는 이 과정을 단지 ‘맥주가 문명을 창조했다.’로 기술하는 것과 다른 대안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복잡한 공동체는 더 많은 잔치를 하고 양조된 음료는 자원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은 큰 가치와 높은 지위를 대변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맥주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농업의 증가였다.’ 맥주 양조가 농업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맥주 양조는 매우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단한 지위를 가졌다는 상징이었기 때문에 맥주를 충분히 만드는 것은 14,000년 전의 국가에는 매우 중요했다.
술의 시대에 절주하기
나는 과테말라를 여행하다가 처음 이질에 걸렸었다. 바보 멍청이처럼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로 입을 헹군 것이 화근이었다. 과테말라에서 우리 일행은 여덟 명이었고, 대부분 한 번 이상 이질에 걸렸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에 단 한 명만이 면역성을 입증했다. 내 친구 조쉬였다. 그는 하루 종일 뭔가를 먹고 마신 후에 언제나 가지고 다닌 과테말라 위스키를 몇 모금 들이켰는데, 그것이 참으로 귀한 결정이었다. 조쉬는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커피를 마시고 나머지 일행이 하는 모든 것을 같이 했지만, 단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대인들은 조쉬가 아는 것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 장을 온통 뒤집어 놓는 미생물이 알코올 앞에서 꼼짝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술은 질이 안 좋은 물을 안전하게 바꾸어 놓는다. 우리 조상들이 언제나 강한 술만 마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맥주는 양조 과정에서 물속에 있는 비우호적 미생물을 사멸시킨다. 와인은 알코올 함유량이 높아 마실 때마다 물을 타서 마실 수 있었다. 이것은 물을 훨씬 더 안전하게 만들었고 고대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만년 유물이 되지 않게 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문화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기 방어의 수단이었다. 신뢰할 수 없는 물이지만 생존을 위해 마실 수밖에 없었을 때 술이 보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술 중독으로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할 수단 또한 필요로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와인에 물을 많이 타서 마셨다. 그리고 배 속에 술만 채워지지 않도록 음식을 같이 먹었다. 이런 사회적 관습이 때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효과가 없을 때 그들은 피타고라스의 컵을 사용했다.
역사를 바꾼 술꾼들
술이 세계 역사의 행로를 바꾼 분명한 예 중 하나는 러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 원초 연대기에 따르면 이교도인 블라디미르 키에프 왕자는 988년경에 새로운 종교 쇼핑을 시작했다. 불가리아의 이슬람교도들은 그에게 이슬람교를 선택하면 ‘여자와 방종’을 허락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음주는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왕자는 이슬람교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음주는…” 그가 말했다. “러시아인들의 즐거움이오. 그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소.” 블라디미르 왕자는 이슬람교보다 기독교를 선택했다. 러시아가 이슬람이 되었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보드카의 세계적 인기가 심대한 타격을 받았으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론해볼 수 있다.
러시아와 관련하여 알코올로 인해 역사가 바뀐 예는 또 있었다. 스탈린은 유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잘 지내지 못했다. 1942년에 두 사람은 의견 대립을 일부 조정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이를테면 그것은 나치를 제거하는 중요한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회담이었다.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그랬다. 마지막 밤에 그들은 지독한 저녁 만찬 파티를 했다. 두 사람은 여느 때보다 더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난 후에 처칠과 스탈린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두 세계 지도자는 계속 술을 마시다가 타협점을 찾게 되었다. 파티는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 무렵 분위기는 “결혼식 종이 울릴 때처럼 즐거웠다.”고 했다. 모임을 구체적인 정책이나 계획에 맞추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스탈린과 처칠은 그것을 연합한 ‘팀 빌딩 훈련’이라는 관점으로 보았다. 처칠과 스탈린은 술 때문에 친해졌다. 나치로부터 서구 문명을 구하는 데 술이 한 가지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은 문명을 붕괴시키기도 했다. 남아메리카의 위대한 와리(Wari) 문명이 그런 경우였다.
나쁜 행동이 어떻게 문명을 구했을까? (악플러는 현대의 산물이 아니었다)
잠시 딕(dick)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여기서 딕은 싸가지 없고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배려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을 저속하게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순전히 대중적으로 공격적인 존재가 되는 것에 희열감을 얻으려고 싸움을 거는 부류들이다. 그들은 시간만 나면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재미로 사는 악플러들이다. 이런 싸가지 없는 인간들, 그리고 비슷한 군단은 인터넷 시대의 역병이다. 인터넷 초기 옹호자들은 유튜브 같은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들도 유튜브 댓글 난에 인종주의와 여성혐오 댓글이 달리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나르시시즘에 진화가 보상한 방식
소셜 미디어는 인간의 에고(Ego)에 연료를 공급해주는 영구적 운동 기계와 같다. 물론 많은 예술가들과 창작자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작품을 공유한다. 하지만 인간 문화에 정당하게 공헌한 작품들이 셀피(selfie) 더미 밑에 파묻혀 있다. 총기 난사, 자연 재앙, 혹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 또 다른 재난에 대한 인터넷 기사가 있다면 한번 읽어보라. 아마 유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내가 그 곳에 갔었다면…”이라는 글을 올려놓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자면 2015년 크랙드 지에 노르웨이의 우퇴위아 대학살(2015년 노르웨이에서 테러범에 의해 저질러진 오슬로 정부 청사 폭탄 테러 및 우퇴위아 섬 노동당 캠프 총기 난사 사건) 생존자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갑작스런 폭력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수사학적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읽고 있을 때 칼을 든 남자가 갑자기 뛰어들면 어떡할 건데요? 계획을 세워둔 것이 있나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잭메이오프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그 수사학적 질문에 어떻게 답을 했는지 여기에 있다. ‘계획?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총기 금고에서 357메가넘을 잡아챌 것이다. 그리고 탄환 여섯 발을 그의 가슴으로 발사할 것이다. 그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내가 칼침을 맞지 않도록 나 자신을 방어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두 명이 더 있는 경우에 대비하여 총알을 재장전할 것이다. 15~20초면 충분하다.’
이 포스팅을 읽었다. 나는 이 사람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햇살 부족으로 건강이 좋지 못하고 얼굴빛이 창백하다. 그리고 벽에 영화 ‘스카페이스’ 포스터가 붙어 있고, 몇 가지 장식검이 있는 남성 동굴(주택의 지하, 작업장, 창고 등 남성이 혼자서 공구를 사용하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 속에 숨어 있다. 그의 집 어딘가에 권총의 프로필과 ‘이것의 주인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표지가 있다. 그렇다. 이것은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그는 다음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불운한 사람이다. ① 자신의 능력을 심하게 과신하는 사람 ② 자신들이 얼마나 경탄스러운 사람인지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
독자들은 이런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더 힘들고 더 험한 곳에서 존재해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항생제가 존재하고 불시에 곰의 공격을 받는 일이 거의 없는 수월한 현대 세계에서 과신은 흠결 정도이다. 불안정했던 예전 시절에 그것은 훨씬 더 치명적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신이라는 망상의 나르시시즘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어쩌다 과신하는 인간이 옳을 때도 있다. 능력에 대한 비현실적인 찬사에 근거해 바보 같은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운이 좋고 위기 때 수완을 발휘하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었다. 콜럼버스는 인도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지만 운이 따라준 야심가였다. 콜럼버스는 바보스럽게 모험을 감수한 것에 행운과 명성으로 보상받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아들들 역시 자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무모한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었다.
과학자들은 역사 속에서 위험을 감수했지만 운이 좋았던 인간들의 유전적인 흔적을 발견했다. 우리 인체에는 도파민을 언제 어떻게 방출할지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DRD4라는 유전자가 있다. 그런데 우리 중 약 20% 정도는 DRD4의 변종인 DRD4-7R를 가지고 있다. 몇몇 연구는 이 변종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이 유전자가 온수 욕조로 침입하는 친구를 돕겠다고 울타리를 뛰어넘는 사람들과 친구가 제발 붙잡히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사람을 가르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하지만 과신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놀라운 규칙성을 보였다는 것은 어떤 장점이 있었기 때문임을 시사한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에 따르면, DRD4-7R는 사오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는데, 이 시점은 최초의 인간들이 안전한 거주지를 떠나 바다 건너에 더 좋은 것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자기 과신에 대한 고대의 지혜
코넬 대학의 데이비드 더닝 박사는 1999년에 저스틴 크루거라는 대학원생과 짝을 지어 인간의 과신에 관한 현상을 연구했다. 더닝 박사의 연구에 동기가 된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상당수의 짜증 유발자들이었다. 그는 교수단 모임 등에서 과신이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크루거와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테스트했고, 그들에게 개별적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 후 그들은 자신을 상당히 과대평가한 학생들이 테스트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성적이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수행 능력을 훨씬 더 정확하게 파악한 학생들이었다. 이 연구는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가 되었고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과학자 이름을 그대로 따서 ‘더닝-크루거 효과’로 불리게 되었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무능한 사람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더닝과 크루거의 연구는 악플러 행동이 인간에게 고질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더닝 박사는 자신이 관찰한 행동이 인터넷의 익명성에 힘입어 강화된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 사람들도 친구와 가족들 속에 있을 때에는 인터넷의 익명의 댓글 난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 행동이 인간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 나르시시즘과 과신은 전쟁에서, 주식 시장에서, 그리고 지난 20년간의 리얼리티 TV에서 인간을 망쳐온 주범이었다. 그렇다면 언제 그것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었길래?
지난 2011년에 옥스퍼드와 캘리포니아 대학에 적을 둔 두 과학자 도미닉 존슨과 제임스 파울러도 같은 의문을 가졌다. 성공한 괴짜인 그들은 수학적인 모델로 답을 얻기로 결정했다. 2011년에 《네이처》저널에 기고한 ‘과신의 진화’라는 논문에서 그들은 불확실한 힘을 가진 두 개인이 같은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 모델을 제안했다. 상황 모델에서 갈등 상황은 두 사람이 사과 하나를 놓고 서로 노려보는 것에서 두 나라가 금이 가득한 섬을 두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까지 다양했다.
만약 두 팀이 싸우면 결국 더 강한 쪽이 자원을 차지하게 된다. 만약 그들 중 한쪽만이 행동으로 옮기면 그렇게 하는 쪽이 싸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된다. 싸움을 하면 누가 이길지는 어느 쪽도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이봐, 내 이두박근 보이지?’로 기선을 제압하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쪽은 실제로 주인이 없는 자원을 손에 넣을 공산이 높다. 그렇게 하면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 또한 매우 높지만 통계학적으로 더 가지지는 못해도 일부라도 건질 것이다.
연구의 저자들이 이렇게 언급한 것처럼 말이다. ‘과신은 개인들에게 자원을 주장하도록 용기를 주기 때문에 이롭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것을 얻지 못할 상황에서 말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닝 박사는 과신을 언제나 긍정적인 것으로 추정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당신이 과신을 한 얼마 후에 부상과 장애를 얻었다고 하자. 조만간 자신의 삶을 끝내는 갈등 앞에 놓이게 된다. 위험이 동반된 문제는 당신이 진다는 것이다.’
존슨과 파울러는 위험이 크면 클수록 과신의 가치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 또한 언급했다. 위험이 적을 때는 실패해도 그렇게 큰 타격이 없고 뜻밖의 횡재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악플러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잘 싸우지 않으면서 온라인에서 온종일 죽치고 앉아 자신의 무용담을 끝없이 떠벌리는 이유이다. 자신만만하고 무모하고 자기 세계 속에 빠져 사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태곳적 시절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움켜쥐고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쉽게 승리했다. 이 쉬운 승리는 그들을 계속 배불리 먹게 만들었다. 그리고 과신은 고대의 갈등 상황에서 조상들이 화가 날 때 대응 방법으로 쓴 또 다른 개똥같은 행동과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냈다.
추악한 모욕과 대중적 비아냥이 사회를 이루다
언어학자, 리지야나 프로고바치와 존 로크에 따르면 인간 언어의 진화는 욕에 많은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들은 2009년 논문 ‘합해지려는 충동 : 의식적인 모욕과 구문의 진화’에서 합성어를 만드는 능력이 아이들 언어 발달의 가장 초기 단계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합성어는 모욕적인 말에도 사용된다. ‘dare-devil(무모한 사람), kill-joy(흥깨는 사람), pick-pocket(소매치기), scatter-brain(정신 산만한 사람), turn-coat(변절자)’ 같은 말과 ‘mother-fucker(후레자식)’ 같은 것이 동사와 명사의 합성으로 알려져 있다.